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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이 움직일 때 반드시 즉각 경성(警醒)해야

【명혜망 2006년 8월 18일】최근 일부 수련생들은 해외 수련생 중 어느 ‘이름있는 수련생’이 암으로 사망한 소식을 듣고는 아주 놀라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공 스파이들은 이런 ‘소식’을 무슨 정보를 얻은 것인양 사악의 무리들은 이것을 빌미로 기사를 크게 내면서 대법을 공격하는데 이용한다. 우리는 먼저 이 일이 빌생한 것에 정말로 상관하지 말아야 하며, 더구나 사악의 헛소리에 대해서는 상관할 필요가 없다. 본 문장은 이름있는 수련생과 자신의 수련을 법리적으로 어떻게 정확하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동수들과 교류하려 한다.

법은 정념을 단호하게 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에서 마침 유사한 현상에 대하여 법리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써 먼저 법을 한 번 배워서 사상을 청리하고 교란을 제거하자. 아래는 사부님과 수련생의 문답이다.

” 제자: 한국 수련생들은 지금 여러 가지 방식을 이용하여 힘차게 각계에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있고 또 점차적으로 각계 인사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효과도 더욱 좋아지고 있으며 동시에 전국 각지에서 신수련생들이 대량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연속적으로 몇 명의 수련생이 의외로 불행하게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사람은 타고 가던 자동차가 전복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물에 빠져 사망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작업 도중에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중 한 수련생은 진상을 알리는 데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몇 차례 사건이 발생 한 후, 신수련생 속에서 일정한 파동(波動)이 조성되었습니다.

사부: 나는 방금 정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낡은 세력의 교란을 이야기했다. 그럼 낡은 세력은 왜 이렇게 하는가? 그것은 무슨 목적에서 나온 것인가? 그것들의 생각이라면, 당신들이 모두 와서 수련하고 모두 대법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당신들은 진정으로 법리에서 대법이 좋다고 인식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모두 따라서 좋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이익을 얻었다고 느껴 대법이 좋다고 말하는가? 수련과 대법은 엄숙한 것이다. 그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神)이 되게 할 수 있다. 낡은 세력은 참을 수 없어서 당신들을 고험하려고 한 것이다. 어느 사람의 수명이 끝났으면 그를 먼저 가게 하는데, 이때 당신이 아직도 대법이 좋다고 말하는가 말하지 않는가, 당신이 그래도 계속 여기에 남아 수련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본다. 이것은 바로 낡은 세력이 한 것이다. 때문에 생명위험이 나타난 수련생을, 그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고, 또한 그에게 무슨 엄중한 문제가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실은 모두 낡은 세력이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교란한 것이다. 하나는 어떤 수련생들의 마음은 쉽게 파동을 일으킨다. 만약 이 수련생들이 모두 잘 수련했고 아주 착실하다면 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어떤 수련생들이 마음속의 장기적인 집착을 버리지 않아도 박해와 교란을 받을 수 있다. 즉 나는 연공을 하고 나서 병도 나았으며 아주 편안하고 생활상에서도 편리해졌다. 인식이 줄곧 여기에 머물러 있고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쉽사리 문제가 나타난다. 물론 모두 이런 문제인 것은 아니다. 낡은 세력은 오랫동안 이렇게 해왔는데 그해에 중국대륙의 수련생들도 수련 중에 이런 정황이 있었다. 때문에 수련 중에서 반드시 정념으로 인식해야 한다. 수련은 가장 엄숙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해야 한다. 
 
물론 또 일부 일이 발생하고 있다. 각지 수련생들이 현재 기본상 모두 아주 냉정해졌고 모두 법에서 인식할 수 있으며 이런 일을 정확히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수련생들이 늘 말하기를, 우리 연공장에서 이 사람의 표현이 너무 좋기에 그가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 주겠다. 절대 이렇게 하면 안 되고 또 절대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수련하는 사람은 사람을 배울 수 없으며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以法爲師) 한다! (박수) 당신들이 일단 이렇게 하려고 하고 이렇게 생각할 때,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하나는 아마 당신이 그 수련생을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갈 수 있는데, 낡은 세력이 아마 그로 하여금 문제가 생기게 하거나 심지어 먼저 가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기타 수련생을 고험한다. 당신들이 모두 그를 보는데, 이런 정황 하에서 당신들이 여전히 배우겠는가 배우지 않겠는가? 수련하겠는가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정황 하에서 정말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 사람까지 안 되는데 내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동요한다. 그럼 이것은 낡은 세력이 빈틈을 탄 것이 아닌가? 나, 이 사부까지도 할 말이 없다! 그 낡은 세력들은 말할 것이다. 당신이 보시오, 이 고험의 결과가 어떤가를? 우리가 맞게 한 거지요. 그러므로 정념이 강하지 못할 때 사람의 마음은 안정할 수 없는데 부디 주의하라!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당신은 어느 사람이 수련한 것이 어떻다 해서 그리하여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안 된다.

그해에 중국대륙에서 박해가 막 시작되었을 때 이런 수련생이 있지 않았는가?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그 보도원을 보고 있었는데, 보도원이 어떻게 하면 그도 어떻게 하고 보도원이 타협하면 그도 따라서 타협했다. 물론 수련생은 필경 수련생이기 때문에, 돌이켜 보고 냉정해진 다음 틀렸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법공부를 한 후, 이 인식이 틀렸고 잘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일을 말한다면 그것은 자신에게 먹칠을 한 것이 아닌가? 자기가 이전에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은 수련인으로서 오점(汚點)이 아닌가?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면 수련 환경에 시끄러움을 가져올 수 있다. 부디 이러한 것을 주의하라.”

그러므로 나는 이런 유형의 소식 중에서 예를 들면, 어느 수련생이 붙잡히고 노동개조당하고 어느 수련생이 ‘병’에 걸리며 어느 수련생이 먼저 사망하였다란 소식에 대해 우리 대륙 동수들은 마땅히 명혜망의 태도를 참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련의 일로 여기어 대해야 하고 수련 중에서 무슨 소식을 들음은 모두 우연이 아니다. 남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든 모두 우연이 아니다. 만약 자신의 사람 마음을 움직였다면 그 마음을 찾아내어 제거해야 한다. 속인과 혼동하지 말아야 하고 일부 사람 마음에 좌우되어 골목소식을 전하지 말아야 한다. 수련제고가 지극히 중요한데 제고하지 않으면 속인과 혼동하여 문제와 모순에 부딪치면 사람 마음과 관념으로 대하게 된다. 오랫동안 이렇게 지속된다면 그럼 도대체 자신은 대법의 진수제자가 맞는가?

사실 수련인 중에는 ‘명인’과 ‘보통사람’의 구분이 없어야 한다. 과거의 수련형식 중에는 개인 수련과정 중 소수의 이런 속인사회 중의 이름난 ‘수련 명인’들이 있었다. 역사상의 일부 유명한 신선들 역시 사람들에게 수련문화를 남겨주기 위해 수련 원만한 후 세간에 허다한 신적을 남김으로써 명인이 되었다. 과거 수련은 모두 깊은 산 속에서 하였고 인간세상을 벗어나 수련했다. 거기에는 수련인이 명과 이익을 수련원만의 최대 장애로 여기기에 대부분 청정하게 혼자 수련했으며 사람들이 모르게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대법제자의 수련은 다른데 속인사회 속에서 수련하고 있다. 또 이번 박해가 발생하여 더욱 광범위하고 더욱 효과적으로 대법을 실증하고, 박해를 폭로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대법제자들 스스로 TV, 라디오방송, 신문, 사이트를 만들어 대중적인 공공매체로 나아가고 있다. 마침 법을 실증하는 이러한 항목의 필요로 인해 일부 대법제자들은 사회 속에서 공인하는 명인이 되었다.

청성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이 ‘명(名)’은 사부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더 좋게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주신 것이지 수련인으로 하여금 환희심, 명리심, 구별심, 숭배심, 의지심을 생기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 또한 ‘명인’ 유형의 동수들과 주위 동수들에게는 고험이고 그들이 반드시 잘 걸어야 하는 수련의 길이다.

일부분 동수들은 ‘명인’ 의 일에 대해 깜짝 놀라는데 그들은 속인 중의 ‘유명(有名)’을 자신도 모르게 수련에 정진하지 않고, 층차가 높고 낮음의 표준으로 여긴 것이다. 이것 또한 우리가 수련 중 아직 제거하지 못한, 사람마음 속에 여전히 자신이 감지하지 못한 명리에 대한 집착이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구별심, 숭배심, 의지심이 생겨도 자신은 이를 잘 모른다. 일부 동수들은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명인을 모범으로 여긴다. 그러다보니 무의식 중에 그 ‘명인’동수에 대한 마난을 가중시켰고 이로써 사악이 박해하는 초점과 낡은 세력이 감히 그 수련생을 박해하는 독수를 뻗치게 하였으며 사람마음을 고험한다는 최대의 구실과 틈이 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 방면의 설법을 많이 하셨고 이 방면의 교훈도 이미 아주 심각하였다(99년 전 각 지역 보도참의 참장, 책임자, 사당의 총리, 정XX 등등) 나는 이 일을 본 모든 동수들은 어느 한 편의 교류문장에서 쓴 것처럼 ‘박해당하는 동수의 몸에 자신의 발 하나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수련인은 수련 중에서 반드시 생사를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원만할 수 있다. 수련은 생사에서 해탈할 수 있지만 수련의 목적은 도리어 절대 속인의 이른바 장생불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생사에 대한 집착이고 수련인이 제거해야 할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이 일로 대법을 공격하고 수련인의 바른 믿음을 동요시키려는 사악한 망나니로서는 어떻게 생각해도 모르는 부분이다.

수련인은 미혹 속에서 사물의 본질과 일의 인연관계를 보지 못하지만 법리상에서 반드시 청성하게 인식해야 한다. 수련인이 수련 중에 가는 길은 절대로 속인과 같은 결말이 아니고 원인도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역사상 이런 형식으로 원만하겠다고 서약했음에도 그 당시 정념이 부족하여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간 것일 수 있다. 장기간 법에서 정진하지 못하여 천년에 닿았을 것이고 또 가능하게 기타 정황이 있다. 때문에 수련인은 절대로 일의 진상을 보지 못함으로써 사악이나 자신이 후천에 형성된 집착과 관념에 미혹되지 말아야 하고 교란당하지 말아야 하며 이로써 바른 믿음과 정념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일부 동수들은 도대체 무슨 집착으로 사악에게 체포 당한 수련생의 소식을 가지고 의논하고 전파하는데, 사망한 동수의 소식을 들어도 그렇게 한다. 그러면서 이 일을 왜 내가 들었을까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내보낸 생각이 법에 있는지, 정념인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일을 통해 자신에게 무슨 집착이 있는지를 보고 빨리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체험하기로, 수련은 바로 자신을 닦는 것이고 바로 자신의 심성을 수련하는 것인데 왜 하필 남을 보는가. 만약 우리가 수련 중에서 남을 보는 마음으로 자신을 보고 안을 향해 찾는다면 법을 실증하는 이 길에서 우리는 반드시 더욱 온건하게 정진할 것이다.

이상의 문장은 현지 일부 동수들과 이 일에 대해 토의한 뒤 적은 글로써 여러분들과 함께 교류한 것인 즉, 적절치 못한 곳은 여러분들이 자비하게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6년 08월 15일
문장발표:2006년 08월 18일
문장갱신:2006년 08월 17일 21:39:51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8/18/135786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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