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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이성적인 ‘신념(神念)’

글/미서명

【명혜망 2006년 8월 14일】공연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가능하게 체험했을 것인 즉 만약 공연자가 단지 개인의 격정(사람의 요소와 사람의 능력)을 펼쳐 보인다면 관중은 표면의 정서에 이끌리고 공연 효과는 공연자 능력의 제한을 받는다. 그리고 공연자는 항상 또 마음이 아주 피곤함을 느끼는데 격정이 지난 후 전부 빼앗겨간 듯한 피곤함이 잇달아 몰려온다(글 쓰기도 같다). 만약 공연자가 자신의 수련된 행위와 능력을 이용하여 예술작품 배후의 내포를 냉정하게 관중들에게 펼쳐 보인다면 그 배후의 내포가 얼마나 깊으면 관중들이 받는 진동도 얼마나 클 것이다.

대법제자로 구성된 천국악단과 신당인의 스펙타쿨러(갈라)는 공연 기교가 완벽하지 못하지만 관중의 반응은 아주 좋다. 사부님께서도 그 당시 다른 공간에서 발생한, 사람마음을 놀라게 하는 진상을 명확히 제시하셨다. 대법제자의 예술형식 중 진정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형식 배후에는 대법의 끝없는 위력과 내포가 있다. 대법제자가 정법 수련에서 내보낸 에너지이고 우주 중에서 가장 순정하고 가장 바른 요소가 속인의 마음을 흔들고 있어 비로소 이렇게 사람마음을 울린다. 그러나 예술형식 자체는 평화롭고 이성적이다.

우리가 한 일체 정법일은 모두 같은 것으로서 목적은 법을 실증하고 결국에는 세인들에게 사부님의 선택, 대법의 배치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위력이 끝없는 것으로서 필연적으로 사람을 진감시키고 사람을 개변할 수 있다. 개인이 일을 하든지 아니면 정체가 협조하든지 간에 최후에 도달해야 할 효과는 일찍이 정해진 것으로 마땅히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가는 법 속에 이미 있으며 우리의 능력은 끊임없이 수련 승화 속에서 이미 차츰차츰 갖춰져 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법은 진작부터 여기에 있었고 다만 중생이 어떻게 이 법에 따라가서 하는가 하느냐 일뿐이다.”《2003년 캐나다 밴쿠버 법회에서의 설법》

정을 섞지 않고 개인의 관념을 지니지 않은 상태에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해주신 능력은 비로소 충분히 작용을 일으킨다. 냉정과 이성 속에서 강대한 법력은 비로소 완전하게 재현된다. 엄격하게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행하면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어느 한 수련생은 일을 할 때 마음같이 잘 되지 않고 사람마음으로 사악과 ‘맞붙어 때리며 싸우고’ 있는데 생사 결단하여 돌파하면 돌파하는 것이고 돌파하지 못해도 나 또한 온갖 힘을 다하였다고 한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단호한 믿음 속에 사람의 정을 지니고 있어, 속인의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을 향해 나가는 것과 정의감으로 수련자의 정념정행을 대체했다. ‘사람염두’로 사악한 요소의 교란을 제지했는데 그럼 대법제자의 진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마치 육신의 손으로 다른 공간의 사령을 잡지 못하고 사악의 본질을 요동할 수 없으며 말해낸 말도 법력이 없어 사람마음을 울릴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신 경문《성숙》에서 대법제자들이 정체적으로 이성과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기대를 말씀하셨다. “총체적인 느낌이라면, 다수 대법제자들은 성숙되었고, 수련의 형식도 성숙되었으며, 수련에 대한 수련자의 인식도 성숙되었고, 사람 마음이 갈수록 적어진 이성적인 행위 표현이 성숙되었다. 모든 대법제자들이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사악을 모조리 제거하고 신불(神佛)이 크게 나타날 것이다.”

“대법제자의 지혜는 정념(正念) ―― 즉 신념(神念)에서 오는 것으로”《아태지역 수련생 회의에서의 설법 》, 이는 법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는 기초 위의 이성적 행위이지 속인의 의기와 용맹이 아니다. 우리가 법 속에서 수련해낸 지혜와 능력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이며 말해낸 말은 비로소 위덕이 있고 사람마음을 개변할 수 있다.

문장완성 : 2006년 08월 11일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8/14/13535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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