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북경 대법제자 징랜
[명혜망 2006년 8월 6일] 최근 들어 북경은 거의 날마다 폭우가 끊이지 않고 기온이 보기 드물게 내려가 주변의 적지 않은 동료들과 친구들이 감기를 앓고 있다. 이전에 신변의 사람들이 감기를 앓을 때면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나는 수련인이기에 속인들의 감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확실히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전 부모(동작만 연마하고 심성 수련은 하지 않는다)님들이 옷을 입고 감기 예방을 하라고 일깨워 줄 때 나는 도리어 수련인이 응당 지켜야 할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과시심을 가지고 농담하듯이, 실제로는 아주 엄숙하지 못하게 대답하였다. “난 감기에 걸리지 않아요.” 그런데 이튿날 이른 아침에 나의 목 안이 붓고 아팠다. 그러나 나는 이 증상을 그저 교란으로만 여기고 안으로 자기 문제를 찾지 않았다. 감기와 같은 증상이 점점 더 중해졌고, 맑은 물과도 같은 콧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려 근본적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 할 수 없게 하였다.
이때 나는 깨달았다. 꼭 심신상에 문제가 생겼으니 반드시 안으로 찾아봐야 하며, 심신상의 구멍을 찾아내야 하고, 법리상에서 중시해야만 이 고비를 넘을 수 있다. 비록 자신에게 구멍이 있다는 것을 깨닫긴 했어도 그러나 내심으로는 또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았다. 최근에는 이전보다 법공부와 심성수련에 더욱 정진하였는데 별로 선명한 구멍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곤혹을 지닌 채 동수에게 전화로 자신이 고비를 넘긴 상황을 이야기하고 함께 구멍이 생긴 곳을 분석하였다. 바로 이때 나는 갑자기 내가 이틀 전에 부모에게 했던 그 ‘우스개소리’가 생각 나 동수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이렇게 적당치 못한 말을 하였는데 이 말이 원인이 아닐까? 수련생은 듣고 나서 즉각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런 말은 수련하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닌데 주의해야 한다.
전화를 놓은 후 나는 나의 ‘감기’증상이 전화를 걸기 전보다 훨씬 줄어들었고 거의 공제되었으며, 단번에 60%나 나아졌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저녁에 잠자기 전에 채 읽어보지 못했던 《명혜주간》전1기를 마저 읽노라니 곧바로 《너, 나, 그, 그것의 놓일 위치를 똑똑히 가르자》는 동수의 문장이었다. 문장은 아주 비슷한 경력을 제기하였고 수련생은 “자신은 수련을 엄숙히 대하지 않고 과시심을 품고 장난하는 심태로 한 몇 마디 말이 흑수, 난귀에게 꼬리를 잡혀 많은 ’병독‘을 묻혀 와서 나더러 그것을 소멸하게 하였다.”고 깨우쳤다.
나는 읽고 나서 문득 크게 깨달았고, 자신의 더욱 깊은 곳의 누락을 찾아내게 되었다. 이 ‘우스개 소리’ 뒤에는 더욱 많은 속인의 마음이 숨어 있은 것이다. 과시심 : 자신은 수련인으로서 남들과 다르며, 세속을 벗어났다. 쟁투심 : 비록 선명하진 않다. 하지만 그러나 숨겨진 기간이 있었음으로 하여 부모와 말대꾸 하는 방식을 쓰게 하였다. 이것은 내가 부모를 대할 때 심성은 속인으로 떨어졌고 자비로운 심태가 없어 부모들의 대법수련에 대한 불 이해를 가중시켰으며, 부모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러므로 이것은 절대로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수련인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최근 들어 나는 발정념과 나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면 언제나 자신에게 정념이 충족해야 하고 신의 마음이 사람마음을 이겨야 한다고 일깨워 주곤 한다. 그러나 신은 신의 언행이 있으며, 신의 언행은 자비롭고, 선이적이며, 사람마음이 없다. 나의 이 한마디 말은 신을 향해 걸어갈 뜻을 세운 대법수련자가 응당 해야 할 말이 아니다. 신의 언행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자연히 신의 정념과 신통이 있기 어려우며, 법을 실증하는 효과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대법제자는 매 시각마다 자기의 신분을 잊지 말아야 하며, 시시로 언행에 주의하며, 대법의 요구인가 아닌가를 보아야 한다. 만약 자비하지 않고 선하지 않는 염두와 기타 각종 인심이 숨겨진 것을 발견하였다면 없애 버리거나 규정하여야지 묵인해서는 절대 안 된다.
바로 내가 똑똑하고 전면적으로 자신의 누락에 대해 인식하게 되자 ‘감기’증세도 90%로 회복이 되어 아무 교란도 없이 한잠 푹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남은 10%가 여전히 계속하여 나를 고험하고 있었다. 비록 내가 이 기간 체험을 써 명혜망에 투고하여 동수들과 교류해야 한다는 것을 알긴 하였어도, 그러나 어제 출근하여 바삐 보내고 보니 또 게으른 나쁜 버릇이 생겨 나와 퇴근하자 집에 와서 제때에 법공부와 원고 쓰기를 하지 않고, ‘임무’를 또 오늘로 미루다 보니 오늘아침 일어나자 머리가 어지러운 ‘감기’증상이 또 나타났고, 마음도 조용하지 않았으며 그때 어떻게 깨우쳤던지 거의 생각나지 않으면서 원고 쓸 생각조차 없었다. 나는 이것이 낡은 세력이 나의 게으른 마음을 이용하여 나와 정념을 갈라놓으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꼭 제거해 버려야 한다. 결국 교란을 극복한 후 나는 이 체험을 써 낼 수 있게 되었고, 금방 비집고 나왔던 ‘감기’증세도 소멸되었다.
그 외, 나는 나의 신변의 개별적 동수들, 더욱이 좀 젊은 동수들은 동수들과 심득 교류할 때는 언행에 좀 주의하긴 하지만 그러나 속인들과 이야기 할 때면 심성 요구를 낮추어 버려, 속인들 보다 더 떠들어 대며, 농담도 아주 진하게 한다. 하여 대법제자의 형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조성하여 신변의 인연있는 사람들이 진상을 받아들이는 것과 대법에 대한 진일보의 인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마음이 아픈 김에 수구방면에서 잘하지 못한 동수들께서 자신의 언행이 신의 언행과 아직 얼마마한 거리가 있는가 모두 잘 반성해 보길 바란다. 더는 다시는 자신의 일사일념을 방임하지 말기를 바란다.
사부님은 《미국 수도 법회 설법》중에 이렇게 말씀 하셨다. “그렇다면 수련인으로서 말한다면 어떻게 해야만 수련이라고 할 수 있는가?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는 것, 예를 들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 등 이것은 모두 해야 할 책임이며 이것은 위덕을 세우는 일부분이지만, 자신의 제고야말로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이 제고되지 않으면 당신은 그러한 일을 모두 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자신의 부족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제거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당신이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찾아보면, 최근 반년동안, 비록 정법진행을 점차 따라잡긴 하였지만 그러나 일하는 마음이 줄곧 아주 중하여 기본적으로 법공부에 대한 중시가 부족하였다. 늘 자신은 자료점을 수호해야 되겠다고만 느끼면서 하루에 진상자료를 적지 않게 만들어 낼뿐만 아니라 배포도 적지 않게 하고 있으므로 법공부도 적게 하고, 연공도 적게 하여도 괜찮다고 여긴다. 이러한 염두가 나로 하여금 쉽게 교란을 받게 하며, 심성이 온정되지 못하게 하여 진정한 제고에 영향을 주고 있다. 법을 실증하는 일로 개인수련을 대체할 수 없으며, 일을 하는 동시에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는 것을 절대로 홀시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일사일념으로부터 일언일행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바로 세워야만 신으로 되는 길에서 더욱 온당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층차의 제한으로 깨우침이 부족한 곳은 동수들께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8월 6일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8/6/13488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