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중국대륙 대법수련생
[명혜망] 나는 제229호 ‘명혜주간’에 올라온 기사, 《(사부님의 평주가 있는) 마성을 제거하다》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기사에서 수련생이 말했다.
“우리가 바르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고 우리를 사악과 가릴 수 있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사악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서 사악을 제거해야 한다. 사상업이 나타날 때 나는 더는 예전처럼 그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소극적으로 감당하지만 않았고 그것이 내가 아님을 알고 있는 데만 그치지 않았으며 또 사부께서 그것을 소멸해버릴 것을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지금 나는 자신의 모든 결심을 불러일으켜 전력으로 그것을 소멸하고 있으며, 그것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소극적으로 그것의 존재를 허락하는 것은 나의 마성의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수마’를 제거했는가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나는 때로 밤에 수련할 때 피곤을 느낄 때면, 잠을 좀 자고 다음 날 수련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면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이것은 분명히 ‘수마’가 나를 교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 동수의 기사를 읽은 후, 나는 수마가 진정한 나 자신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수련해야할 때마다, 나는 잠이 아니라 잠이 주는 편안함을 생각하곤 했고 거기에 빠져버렸다. 사실, 이것은 수마의 교란의 결과였다. 이것은 바로 수련생이 기사에서 말한 ‘소극적으로 그것의 존재를 허락하는 것은 나의 마성의 표현이다’와 똑같았다. 매번 내가 수련하고자 할 때마다 수마가 진정한 나를 교란하기 시작했다. 비록 내가 종종 수련을 견지했지만 매우 피곤했다. 이것은 내가 실제로 교란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도법’》에서 말씀하셨다.
“더 끝없이 끌고 내려간다면, 만약 心性(씬씽) 또는 행위에 기타 문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꼭 사악한 마(魔)가 당신들이 방치한 틈을 탄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필경 속인이 아니다. 그럼 본성의 일면은 왜 법을 바로 잡지 않는가?”
일단 이 일을 이해하고 나는 밤에 수련했을 때, 나의 심태를 바꾸었다. 나는 편안히 잠자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수련, 어려움과 고통은 좋은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편안하게 잠자는 생각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잠을 전혀 자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내 생각의 초점을 맞추자 이완되는 감을 느꼈다. 연공을 두 번했고, 자정까지 한 시간 정공을 했다. 발정념을 한 후 잠을 자러 갔다. 다음 날 졸리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들의 사고방식에 부합되는 생각을 가질 때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마의 교란이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우리가 사악에서 우리 자신을 분리하고 그것들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때, 마가 우리를 교란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에 의해 우리자신을 수련해야 하고 항상 바른 이치를 사용해야 한다. 어려움과 고통 받는 것을 좋은 일로, 편안을 나쁜 일로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때 우리는 피곤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편안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심태를 바꾸고 인간관념을 제거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나는 동수들이 사부님의 경문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를 다시 읽을 것을 제안한다.
발표일자: 2006년 7월 20일
원문일자: 2006년 7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7/1/131757.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7/20/756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