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타이완 대법제자
최근 대륙 이외의 지역에서 대법제자의 육신이 엄중한 상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고 심지어 이로 인해 육신을 잃은 이도 있다. 병업처럼 보이는 이 표현형식은 사실 낡은 세력의 정교한 배치와 교란임이 틀림없다. 많은 교류를 통해 모두들 이는 제자 개인의 요소가 그 속에 있음을 알고 있지만 또한 정체 대법제자를 고험하는 요소도 그 속에 있다.
본 지역을 두고 보더라도 몇몇 동수에게 최근 엄중한 병업교란이 나타났다. 그중 한 남자 수련생은 숨이 거의 넘어갈 무렵에 법공부팀에 왔고 많은 동수들은 모두 그의 정황을 보았지만 법공부팀에서 단체 발정념으로 그를 도와 발정념하자고 제기하는 이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비로소 그 자리에 있던 보도원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즉 한 면으론 이 동수 개인이 “정진하지 않고 누락이 있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 면으로는 “단체 발정념을 제기하면 신수련생이 이해하지 못할 것”을 고려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 남자 수련생은 법공부가 끝난 뒤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그가 조금만 더 늦었다면 위험했다고 한다.
후에 몇 명의 수련생은 그가 어떻게 정진하지 않고 누락이 있더라고 우리 모두 반드시 조건없이 그를 도와 발정념해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여 우리는 병실 앞에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하였고 동시에 이메일을 보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발정념할 것을 호소했다. 지금 병이 중했던 이 남자 수련생은 이미 연공장에 와서 연공을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예가 있는데 몇 명의 동수들이 함께 북미 법회에 참석했고, 그중 한 수련생은 법회가 끝난 후 발을 움직일 수 없는 교란 증세가 나타났다. 그 당시 상황에 따르면 이미 한치도 발을 옮길 수 없는 지경에 달했다. 그 수련생은 고통스러움에도 같이 갔던 동수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 뿐더러 심지어 한 수련생은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 자신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말의 뜻은 당신은 어느 곳에 누락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발이 아팠던 그 수련생은 후에 전차에 앉을 수 없어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했더니 같이 갔던 동수들은 단지 한 마디 “예, 좋아요!”라고 말하고는 더는 그의 일을 묻지 않았다. 발이 아픈 그 수련생은 전혀 영어를 몰랐으며 동행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시름을 놓은채” 그가 길거리에서 택시를 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때 한 미국수련생이 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주동적으로 다가와서 그와 함께 걸으면서 그를 격려했다. “우리 함께 발정념 합시다.” 고통스러워하던 수련생은 그 말을 듣고는 삽시간에 신심이 가득해지면서 정념이 충복했다. 결국 아팠던 발은 교란을 극복했다.
타이완에 돌아온 후 그는 이 일을 생각하면서 감촉이 아주 컸다. 우리는 선(善)을 닦지 않는가? 누구에게나 모두 자비해야 하지 않는가? 어찌하여 실제적인 정황이 닥치면 오히려 냉담한 느낌을 주는가? 일부 사람들은 사부님의 법을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마난을 당할 때 대법에 대해 사부님에 대해 단호히 믿어야 하고 마난에 대해선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수련생이 병마의 박해를 받을 때 우리가 표현해 낸, 마음을 움직이지 않음은 우리가 모두 냉담하고 마비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음”은 어떠한 동작을 취하지 않는다가 아니다.
마음이 교란의 파동을 받지 않는 동시에 마난을 당한 수련생을 격려하고 협조해 주어야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의 참뜻이다. 만약 살인 방화를 보고도 상관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수련인 인가?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예를 보면서 나는 수련생이 이렇게 엄중한 교란을 당할 때 절대로 “개인수련”의 인식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비록 사람이 수련하지만 어느 누가 누락이 없겠는가? 오늘 당신이 멀쩡하게 그 곳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당신은 정말로 누락이 없단 말인가? 누락이 있고 부족점이 있기 때문에 신체가 박해를 당한다를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이런 생각은 낡은 세력의 박해를 묵인한 것이 아닌가? 낡은 세력은 대륙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할 때 우리는 바로 그의 정념을 때려서 나오게 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동수들이여! 우리는 무형 중에 낡은 세력처럼 되면 안 된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러 왔으며 하나의 정체이며 모두 대법 속의 입자이다. 낡은 세력이 우리 속의 어느 한 사람을 겨냥해 왔다면 정체를 향해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닌가? 우리는 마땅히 마음을 합쳐 그것을 제거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정말로 아주 가슴이 아프다! 확실히 낡은 세력은 누락이 있는 제자를 향해 손을 뻗치지 않지만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대법제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도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마땅히 먼저 이 수련생의 육신을 보존해야 하지 않는가? 수련생이 엄중한 병업을당할 때 먼저 그를 질책해야 하는가? 아니면 먼저 단체로 발정념하여 대법이 받는 손실을 최저한도로 감소시켜야 하는가? 사실 일부 제자들은 아예 혼미상태이고 혼미상태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시기 그는 낡은 세력에게 잡혀 풀려나지 못하는데 그의 그 당시의 정념은 긍정코 부족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체 발정념으로 낡은 세력의 그에 대한 교란을 제거하여 그로 하여금 자신의 진념과 정념을 찾아오게 해야 한다. 그 다음 이후에 한 걸음 한 걸음 그를 인도하여 그가 대법에 대해 수련에 대해 신심을 회복하게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부족점을 찾게 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는가?
정념은 노정이 있으며 또한 노정의 빠름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일부 인식들은 반드시 즉시 따라와야 함이 필요하고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낡은 세력의 짓거리를 간파하는 중에 잘못된 인식이 있게 되며 만회할 수 없는 결과를 조성하게 된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을 써내어 여러분들과 교류한다. 적절치 못한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 주기 바란다. 감사합니다.
(정견망에서 퍼옴)
발표시간:2006년 06월 23일
정견문장: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6/6/23/382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