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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타이베이 음악회에서 생긴,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

글/법용

【명혜망2006년5월28일】

동수님들 안녕하세요.

피아노 조율사 뤼선생이 음악회가 끝난 다음 며칠 후인 (화요일)에 우리집으로 피아노 줄을 조율하러 왔다.

“당신의 관심과 연락에 감사를 표합니다.”

뤼선생은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는 피아노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음악회가 거행되던 날 빌려온 피아노를 보았더니 대단한 고급 피아노였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날은 마침 태풍이 오기 전이라 큰 비가 오진 않았어도 가늘게 보슬비가 내렸는데 주최 측에서 피아노가 비에 젖는다는 이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비를 가릴 씌우개 같은 것을 준비하지 않았고 더구나 음량 효과를 높이기 위해 피아노 덮개를 훌쩍 열어 놓기까지 하여 줄이 비에 다 젖었던 것이다……. 조금만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피아노 줄이 물에 젖으면 녹이 슬고 악기의 수명도 줄어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관계자들에게 특별히 이 일을 당부까지 했지만 그의 이런 우려와 관심에 주의를 기울인 사람이 없었다.

그날 거행된 행사는 파룬따파일을 경축한 “음악회”가 아닌가? 참가한 사람 모두가 음악을 전공했거나 이 방면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아닌가? 이런 개념이 있으면서도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이 물건이 자기 것이 아니거나 혹은 자기와 상관없어서였는가? ‘나와 상관없다’라는 이렇게 변이된 마음이 확대되어서였는가?

내가 시 광장에서 단체 연공을 끝마치고 오후에 가족들과 함께 대안 산림공원으로 갔을 때 똑같은 상황을 보게 되었다……. 딸애가 나의 귓전에 대고 말했다. “엄마, 내 피아노가 비에 젖고 있어…….”

나는 할 수 없이 현장에서 피아노를 옮기는 수련생을 찾아서 내가 우려되는 심정을 말했다. 그러나 얻은 대답은 “비가 쏟아지면 당연히 방법을 찾아야지요”라는 한 마디였다.

큰 비가 내릴 때면 너무 늦지 않는가? 지금 벌써 내리고 있는데? 어째서 사전에 응당 해야 할 일들을 하는 사람이 없고 또 하려고도 하지 않는가? 오히려 한 속인 보다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가? 진정으로 문제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얼렁뚱땅해서 넘겨 버리려는지?

아마도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당신이 마땅히 마음을 내려 놓으세요. 사부님께서 이 모든 것을 순리롭게 진행하게 하실텐데.” 이것은 내가 어떠한 명확한 답안도 듣지 못한 상황에서 나 자신에게 한 말이다.
생각해 보자. 내가 만약 마음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어느 합창단에 피아노를 빌려주었는데 그들이 덮개를 씌우지 않았었음에도 또 다시 피아노를 내놓을 수 있겠는가?

만약 내가 마음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음악회가 끝난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당신이 나에게 전화를 해서 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을 때, 내가 당신에 대해 책망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 일이 지나간 지 일주일이 되어도 당신은 나에게서 한 마디 원망의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내가 당신에게 원망을 해도 부질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또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단지 관계자들의 ‘일시적인 소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피아노를 빌려간 사람, 사용한 사람, 옮기는 것을 책임진 사람,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했으며 누구도 피아노에 씌우개를 준비하는 것을 책임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누구도 잘못이 없다!? 여러 사람이 모두 잘못이 없는데 어째서 결과는 이렇게 좋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일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이 일을 향해 자신의 심성을 한번 돌이켜봐야 하지 않겠는가? 어떠한 행사를 진행하든지간에 사용되는 물건, 설비들에 대해 자신이 책임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물건이 잘못 사용되는 것을 보았다면 더는 그렇게 하지 않고, 모두 자기 물건처럼 생각하고 아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념으로 대하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된다고만 하지 말아야 한다. 최대한 일반인들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책임이나 태도를 갖추지 않는다면 이러한 행위는 속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 그러면 이것이 개인의 정념을 나타내고 초상적인 것을 체현하는 것인가, 아니면 대법에 먹칠을 하는 것인가?

이런 결과에 대해 나는 정말 괴롭다. 내 집 물건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러한 ‘순간적인 소홀’이 많아서 대법에 대해 깊은 인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오해를 가져다주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오늘 음악회에 피아노를 빌려준 사람이 내가 아니고 속인이라면 그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한번은 ‘VIP팀의 교류’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 날 많은 동수들이 법리에서나 일에서 매우 훌륭한 발언들을 했다. 그 중 한 수련생이 한 말은 나의 가슴을 울렸으며 오래도록 마음을 평정할 수 없었다.
그는 말했다. 자기에게 한 속인 친구가 있는데 매번 우리 행사가 있을 때 늘 행사가 거의 진행하기 직전 초대장을 보내는데 이것은 매우 큰 실례이며 또 수준이 낮은 표현이라고 했다. 사회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을 초청할 때는 반드시 그들의 스케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한 달 전에는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친구가 마지막에 한 마디 덧붙이길 “어쨌든 당신들 파룬궁은 그저 그렇더군!”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들은 속인이 말에 큰 신경을 쓸 것 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속인이 대법에 오해가 있고 잘못 인식하고 있을 때 당분간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그것을 속에 남겨 둘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한 속인이 우리들의 불찰로 대법을 잘못 인식하고 있다면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 두거나 우리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래서야 되겠는가?

우리가 정말로 하나 또 하나의 ‘순간적인 홀시’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이런 착각을 주어야 하겠는가? 속인들은 대법의 위대함과 깊은 내포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들 매 수련생의 행위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 일에서 나 역시 안을 향해 찾았다. 나도 이 가운데 있기 때문에 꼭 무언가는 자신을 향해 찾아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귀중한 물건을 내놓았다는 것은 물질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무사(無私)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째서 대법제자 간에 나타나는 이런 좋지 못한 표현들을 자주 보게 되는가? 이 일을 할 때의 나의 심태가 과연 순수했는가?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히 무사(無私) 목적으로 했는가? 은폐된 나쁜 마음이 있지는 않았는가?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은 없는가? 나를 표현하려는 그러한 마음은 없었는가? 있다면 정말로 아주 자그마한 것이라도 나는 진심으로 자신의 부족을 대하며 이러한 착오를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일을 했다하더라도 형식에 따르는 것이며 이렇게 신성한 일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

오늘의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이다. 내가 음악 팀에서 진행되는 행사를 보면서 그 중에서 나타나는 누락에 대해 정에 끌려 스스로 시끄러운 일을 찾지 않으려고 하고 그저 보고만 있으면서 일만 보고 사람을 보지 않는 그러한 태도를 취하며 부족점을 지적하지 않고 정체적으로 제고를 가져오지 못하고 심지어 속인들이 오해를 받는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집착과 이기심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당신에게 알려주는 것이며, 이 일에서 어느 한 개인을 질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일을 통해 정체적으로 바로잡고 더욱 바르게 걸어갈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그리고 뤼선생은 나에게 임시로 피아노를 임대해 줄 수 있는 대여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도 애당초 당신이 피아노를 빌리려 할 때 내가 건의했던 것이다.

왜 그를 모셔다 음을 조율하면서도 이 일에 대해서는 알아보지 않았는지? 그가 말하기를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운반비와 수리비 같은 것을 자체로 알아서 하기에 여러 면에서 좋은 점이 있으며 대법 정체로 말해도 좋은 일이다. 나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데 대해 아무 말도 못했다. 이런 일은 내가 잘 모르며 또 아는 사람은 나서지 않는다.

이것도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점을 반영하는데 이런 행사를 진행할 때 일의 편리를 위해서나 여러 방면에 있어서 생각이 구체적이지 못한 현상이(죄송합니다. 또 내가 직접 본 일들을 직통으로 말했네요)보였다. 이 중에 매우 깊이 은폐된 ‘私’나 정체적으로 정말로 엄숙히 대해야 할 일들 있지 않은가? 음악 행사를 진행하면서 음악을 배우는 동수에게서 피아노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음악 행사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한테서 빌려간다. 빌리지 못하거나 빌릴 수 없어서가 아니다. 구체적인 행사에서 사용할 때 자기와 상관없으면 아끼지 않거나 손실되는 일이 쉽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설령 새것으로 하나 사서 음악팀에 선물해도(후에 음악팀에서 늘 우리집에 와서 빌려 가는데 집의 딸애도 사용해야 하므로 이렇게 자주 옮기는 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남편과 상의하여 아예 하나 새로 사서 선물하려고 하였다.)모두가 자기 것처럼 대하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심성에서 큰 누락이 생긴 것이며, 이 문제점을 찾아서 제고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정체적 표현에서 속인보다도 못한 행위나 상태가 나타날 것이다. 음악 팀의 동수들은 어릴적부터 음악을 배웠는데 어찌 피아노 하나도 빌려 쓰지 못한단 말인가? 혹은 우리집의 것을 빌려 사용하지 못할 경우(딸애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 정말로 다른 빌려 쓸 곳이 없는가?

뤼선생은 줄곧 음악을 배우는 동수들에게 장기적으로 음을 조율(그의 말에 의하면 여러 차례나 대법 행사를 도와주었다고 한다.)해 주었다고 하는데 나는 동수들이 이미 그에게 진상을 했거나 홍법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른 속인들보다 더 열정적인 것을 보았다. 이렇게 대법 제자들과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에게 그가 이 한 생에 온 진정한 목적을 알려준 사람이 없다니?

혹시 나와의 연분인가보다! 내가 그에게 ‘전법륜’책을 선물하자 그는 쾌히 받았으며, 다 본 다음 체득을 글로 써서 나에게 보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혹시 법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일이 내게는 전체 사건 중에서 제일 마음의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뒤로 미루다가 4일이 지난 후에야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이다. 처음에는 이기심으로 인해 이미 지나갔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후에 전체 사건의 득실을 가늠하고 나서 이것을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인식했다. 내심으로 본 다음 이 일에 관계있던 동수들에게 이 글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대법이 널리 보급된 지 14년이 흐른 지금 우리 자신들은 정체적으로 제고되고 수련 초기에 비해 모든 것이 좋아졌고 또 이미 많은 행사도 진행해 왔지만, 아직도 진행 과정에서 물품을 분실하거나 훼손하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있는 힘껏 노력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원용하였는가?

정체적인 승화와 방향성을 위해 서로 간에 제안하고 교류할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개인의 어떤 애호나, 기쁨, 듣기 좋음, 정서 등의 문제가 아니다. ‘정법 시기 대법제자’라는 이렇게 중대하고 엄숙한 문제로서,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수련의 길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이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낸다.

다른 동수들도 어떤 체험이거나 지적할 부분이 있으면 추호도 감추는 것이 없이 꺼내어 교류하기를 바란다.

감사합니다!

문장완성: 2006년 05월27일
문장발표: 2006년 05월 28일
문장수정: 2006년 05월 28일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5/28/1289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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