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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진정으로 신통해지자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4월7일] 최근 《명혜주간》중의 중요시사 “쑤자툰 비밀 수용소”를 읽고 난후 나는 더없이 놀라움을 느낌과 동시에 마음속에서는 많은 의문점들이 생겼다.

2001년 이후 정법 진행이 오늘에까지 이르러서도 무엇 때문에 이런 비밀식의 박해 장소가 있을 수 있는가? 무엇 때문에 이런 강제수용소가 아직도 존재할 수 있고, 그 참혹한 내막을 폭로하는 사람이 이제서야 있게 되었는가? 무엇 때문에 그 난귀들은 대법제자를 이렇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놀란 마음을 차츰 냉정히 가라앉히며 이것을 자세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마난을 당하고 있는 대법제자들을 사부님께서 과연 보호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것은 확실히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원인인가?

대법제자들이 이 몇 해 동안 받은 박해를 돌이켜 보았을 때, 우리가 박해를 받아들이지 않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사악의 박해를 승인하지 않은 때가 몇 번이나 되는가?
예를 들면, 실종된 대법제자에 대하여 시간이 길고 짧음을 막론하고, 우리는 진정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었는가? 마음속으로 충분히 중시했는가? 그들의 행방을 찾아보게 되었을 때, 이 동수에게 물어서 모른다하면 저 동수에게 묻고, 그래도 모른다고 대답하면 결국 흐지부지 그렇게 끝나지 않았던가?

수련생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신속히 다른 동수들에게 알려 발정념을 해야 할 때, 마음속으로 사악의 박해를 승인하지는 않았는가? 며칠간 발정념을 해도 결과가 없으면 또 그저 흐지부지 그만 두었던 것은 아닌가?

이런 현상은 내가 보건대, 한 지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마 대부분 지역에서 존재하는 양상일 것이다. 대법제자가 실종되고, 불법 납치되고, 판결을 받고, 악인에게 강간당해도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는 모두 마비되는 것 같다. 어떤 대법제자들은 이번 박해를 사람이 사람에 대해 행하는 박해로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정체상에 있어서 어떤 한 방면으로는 법리상 인식이 명확치 못해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키워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우리가 오랜 시간동안 “사”를 부둥켜안고 있었거나, 혹은 당 문화 중의 “나와 상관없는 일에는 참여 안 한다”는 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람이 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외래적인 요소가 없다면 사람이 감히 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법 중에서 정념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갖지 말라》
사부님께서는 설법 가운데서 대법제자는 대단하다고 여러 차례 긍정하셨다. 사부님의 법을 우리는 저마다 모두 읽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무엇 때문에 도리어 ‘신통’하지 못한가? 우리는 우주의 보호자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강요한, 사부님마저 승인하지 않는 이번의 일체 박해를 당해야 하는가?

우리의 방임으로, 실종된 대법제자에 대한 지속적인 발정념이 없었기에, 우리가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동수의 일을 나의 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의 금강원용 불패의 정체를 형성하지 못했기에 사악은 비로소 이렇듯 아무 거리낌 없이 수련생을 박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빈틈’인가!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동수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비밀 수용소의 존재를 방임하였다. 나는 참으로 사부님께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모두 안으로 잘 찾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일언일행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 어디에 부합되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쑤자툰 강제 수용소의 몸서리치는 악행이 폭로되었으며, 그것들은 철저한 해체와 훼멸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라건대 대법제자들은 마음속에 파동이 일지 말아야 하며, ‘두려움’도 생기지 말아야 하고, 또 그것이 아직도 매우 사악하다고 느끼지도 말라. 우리의 이 일념이 사악에게 에너지를 더해 줄 수 있다. 만약 대법제자 한 사람이 그것이 정말 사악하다고 말하고 또 많은 대법제자들이 모두 그것이 정말 사악하다고 말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가강하게 되어, 발정념으로 그것들을 없애려 할 때 효과가 아주 나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정념으로 부정하고 사악과 난귀가 행한 일체를 소멸해야 한다.

대법제자는 속인 사회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는 것인데, 모두가 이런저런 후천적인 변이 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면 이것은 곧바로 이른바 ‘빈틈’이다. 그러나 이 빈틈은 사악이 들어오라는 빈틈은 아닌바 부단히 법공부하는 가운데서 법으로 귀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견고히 사악의 속임수에 들지 말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문장발표 : 2006년 4월 7일
문장분류 : 제자절차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4/7/124696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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