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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수련생을 도와 주는 것에 대해 교류

【명혜망 2006년 3월 28일】요즈음 우리 지역에 있는 한 동수의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일로 하여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주요한 원인은 경제문제로 하여 발생하였다.

동수A의 아내가 2000년에 박해로 사망했으며 그도 같은 해에 불법 노동교양을 받았는데 집에는 두 아이만 남게 되었다. 하나는 20여세이고 하나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 기간에 현지의 동수들은 줄곧 경제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었으며 여러 경로을 통해 이 동수의 집에 돈을 보내주었다.

동수의 말에 의하면 동수A의 아내가 박해로 사망한 후 그를 통해서 도와준 돈만 하더라도 8,000위안이 되며 다른 동수들을 통해서 도와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고 한다. 동수A가 노교소에서 돌아온 후 어떤 동수들은 그의 형편이 어렵기에 계속 그한테 돈을 보내고 있으며 이번에 그의 아들이 결혼하게 되자 이 기회에 경제적으로 도와주자고 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적어서 몆 십원 많아서 천 위안이 되게 돈을 내놓았다. 개별적으로 그 동수와 평소에 괜찮게 지내는 수련생을 제외하고도 거의 서로 내왕이 없던 동수들도 돈을 보내왔으며 모두 합하여 8,000위안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으나 체면 때문에 돈을 내 놓았다.

사후에 동수들은 이 일에 대해 의논이 분분했으며 심지어 동수 지간에 모순이 생겨 서로 논쟁을 하기까지 했다. 한쪽은 이것은 돈을 모으는 행위에 속하기에 대법에 부합되지 않기에 동수지간에 좋지 못한 영향을 조성하게 된다고 했으며 다른 한 쪽은 동수지간에 서로 도와주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틀리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이 일을 가지고 서로 다투기 까지 했다.

모든 일은 우연한 것이 없으며 이 일을 통해서 우리 지역에 존재하고 있는 일부 문제들을 폭로하게 되었는데 우리들에게 확실히 법리가 명백하지 못한 곳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미국동부에서 하신 설법》에서

문: 만일 장기간 수련자 친구의 선의적인 기부를 받는다면 무한히 德(더)을 잃는 것이 아닙니까?

스승: 내가 여러분에게 사례를 들겠다. 어느 한 수련생의 가정이 갑자기 곤란하게 변했다. 이 곤란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아마 그가 예전에 진 이런 빚일 것인데 없애버리는 과정 중에서 그로 하여금 반드시 이러한 감당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러할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럼 어떤 수련생은 그가 이처럼 곤란하다고 느끼어 우리들이 그를 도와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돕는가?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그에게 돈을 주어 그 일가가 생활하도록 한다. 자, 그럼 이로부터 이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법공부를 하는 외에 집에서 먹고 마시면서 그들의 돈을 쓴다. 그럼 더 이어 내려간다면 법도 배우지 않으며 당신이 돈을 가져 오라. 나는 이처럼 생활하겠다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들은 자비가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이처럼 대할 수 없다. 개개인은 모두 그의 난이 있는 것으로 여러분은 자비에서 우러나와 그를 도울 수 있으며 직장을 해결해 주거나 혹은 임시로 응급 조치를 취해 문제를 좀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장기적으로 이렇게 할 수 없다. 내가 그에게 배치한 그 한 갈래의 길을 당신들이 다 파괴한 것으로 그도 수련할 수 없게 되었고 마지막에 그는 수련하지도 않는다. 그는 직장도 찾지 않으며 곤란도 해결하지 않는다. 어쨌든 쓸 돈이 있으며 달마다 당신이 나에게 가져오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건대 수련생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인가?

기부한다고? 무엇을 기부한다고 하는가? 내가 당신에게 한 가지 물건을 주겠다. 그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왜 당신에게 물건을 주어야 하는가? 오, 모두 아는 수련생이다. 수련생 사이에 귀중한 물건을 함부로 선물할 수 있는가? 무엇 때문인가? 당신도 무엇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만약 귀중한 물건이 아니라면 왜 장기간 끊임없이 공급하는가, 무엇 때문인가? 당신은 왜 받아들이려고 하는가? 당신의 탐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슨 원인인가? 당신 자신은 왜 찾지 않는가? 이건 안 된다. 우리 이 대법은 모두 돈을 만지지 않고 물질거래를 하지 않으며 돈을 모으지 않고 물질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들이 수련하려 오고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는데 나는 당신들의 일전 한 푼도 받지 않을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준다면 당신들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는가. 여기에서 특히 하나의 문제를 제출하겠다. 대법을 위하여 사업하는 모든 사람 혹은 사부를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떤 원인을 막론하고 당신들은 절대 수련생의 어떠한 물품을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응당 어떻게 수련생을 도와주어야 하는가? 우리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수련생을 도와주고 수련생을 잘 대해주는 것인가? 사람의 기점에서 도와 준다면 이것은 진정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가능하게 되려 나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오직 대법의 기점에서 도와주어야 옳으며 사부님의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응당 더욱 명석해야 한다.

이번 일에서 우리에게 확실히 자금을 모으는 문제가 있었다. 이 수련생은 알게 모르게 동수들에게 아들이 결혼 한다는 것을 알렸으며 평소에 별로 거래가 없던 동수들에게도 알렸으며 또 어떤 동수들은 이 수련생을 도와 주라고 다른 동수들에게 알려주기까지도 했다. 비록 좋은 마음에서 한 일이지만 그러나 좋은 마음이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는데 이것은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으로 인해 조성된 것이다.

사실 이 동수의 가정 형편이 너무 그렇게 험악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의 아내가 박해로 사망한 후 동수들에게는 동수로서 그에 대한 관심, 동정하고 응당 그래야 한다는 이러한 요소들이 있었으며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동수의 집 형편이 어려운 줄만 알고 있었으며, 더구나 법으로 가늠해서 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몇년래 줄곧 경제적으로 도와주었다. 그 아들이 결혼하는 문제에서 어떤 동수들은 체면 때문에 내키지 않으면서도 돈을 내놓았는데 이것도 역시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당연히 평소에 친하게 지내면서 속인사회에서도 친구 사이에 서로간에 주고 받는 것은 문제로 되지 않는다. 이것도 속인의 상태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이러한 마음들이 이미 이 동수에게 바르지 못한 상태가 생기도록 촉성했는데 그로 하여금 금전 문제에서 집착이 생기게 했다. 이번에 결혼하는 일에서도 대법의 요구로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동수들이 자기를 먹여 살려줄 것을 바랐다. 이렇게 되어 매우 오랜 시간에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와 법 공부, 발정념, 심지어는 연공을 해도 졸고 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동수들은 이러한 문제에 비추어 그와 함께 법공부를 하면서 교류도 하였지만 그는 입으로는 아들의 결혼 기회를 빌어 돈을 챙기려는 마음이 있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대법에 조성한 손실을 만회하려고 더 받은 돈을 되돌려 주려고 하자 또 이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제자 문의: 최근 한 수련생이 계속 경제적으로 저를 지원하고 있어서 저는 뉴욕에 남아서 많은 일, 대법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주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부님, 저의 인식이 정확합니까?

사부: 나 역시 매 하나의 대법제자들이 모두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자신이 대가를 치르면서 또한 진상을 알린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른 사람에 의지해 대가를 치른다면, 그것은 조건있게 한 것이 아닌가? 만약 남이 당신에게 주지 않으면 당신은 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가 남의 물건을 가질 때 다른 사람에게 빚진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마음이 편한가? 또한 특수한 정황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절대적으로 말할 수 없다. 회사를 경영하는 수련생이 일부 대가를 많이 치러 수련생이 하는 무슨 항목을 지원하는 것은 가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정황에서 볼 때 나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록 진상을 알리는 이런 일을 할지라도, 나는 역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 장기간 이곳에서 머물 수 있다면 일을 찾고, 그 다음 여가 시간에 하여도 된다. 어쨌든 어디까지나 자신이 경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부양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안 된다. 내가 법리상에서 이렇게 말하지만 그 신(神)들이 당신들을 볼 때 눈을 부릅뜨고 있다. 때문에 여전히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잃으면 얻는다고 사부님께서는 이전에 밥을 빌어도 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하셨으며 또 대법제자의 길은 매우 좁다고 하셨다. 우리는 꼭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며 바르게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낡은 세력은 이러한 점을 틀어쥐고 대법제자를 훼멸하려고 한다. 사실 이 동수의 실제 상황은 그렇게 아껴 먹고 절약하면서 남긴 돈으로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 다른 제자에 비해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줄곧 대법제자들이 주는 돈을 받았다. 물론 이것은 이 수련생을 질책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동수들이 이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하고 더는 사악이 이러한 문제에서 틈을 타고 들어와 이 동수의 이 방면의 집착을 조장하도록 못하게 해야 하며 이런 교란을 제거하고 자신이 이지적으로 집착을 제거하고 법에서 진정으로 제고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 동수의 살림 형편이 어렵다고 여기면서 돈을 주었던 동수들도 응당 법에서 깨달아야 할 부분이 있지 않겠는가? 어째서 줄곧 그가 생활이 어렵다고 하면서 계속 돈을 주는가? 이것은 사람의 정인가 아니면 동수에 대한 자비인가? 수련생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은 응당하지만 그러나 이렇게 끝이없이 도와준다는 것은 어딘가 이지가 분명치 못한 곳이 있지않겠는가? 이 일에서 우리에게 법에서 어긋나는 곳이 있으며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 동수의 현재 상태를 보면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다. 며칠 전에 연세가 많으신 한 동수분이 또 그에게 500위안을 갖다 주었다. 그는 돈을 받았으며 하는 말이 할머니가 돈을 내놓고는 총망히 가버렸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는 자신이 돈을 헌납한 것으로 여기면서 자료를 만드는데 준거나 똑같을 걸로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자신이 그저 위덕을 쌓으면 그만인가? 정말로 이렇다면 이것도 하나의 사심이며 응당 제거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을 써내는 목적은 경제적으로 수련생을 도와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며 구체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지역의 한 부부가 함께 불법 판결을 받고 감금되었는데 집에는 중학교에 다니는 딸애만 남았다. 매우 고독하게 보내고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생활상에서 매우 큰 압력을 느끼고 있었다. 동수들은 늘 그 애를 보러갔으며 경제적으로도 도와주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위안해 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보고 있었으며 가슴 속에 이 일을 묻어 두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파룬궁을 나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좋은 거다 부모들이 모두 잡혀가서 돌봐줄 사람이 없게 되자 그래도 파룬궁을 하는 사람들이 늘 찾아와서 애를 보살펴 준다. 이 한가지만 보더라도 나는 파룬궁이 좋다고 본다.” 이것이 그래 대법을 실증한 것이 아닌가? 또한 이 한 쌍의 부부수련생은 감옥에서 나오자 어느 수련생이 도와주었는가를 알고나서는 그 돈들은 기본상 되돌려 주었다.

경제적으로 수련생을 도와주는 중에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문제가 우리 지역에서 이미 상당히 오래 되었으며 이번에 나타난 일도 우연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들에서도 동수들 중에 이와 같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기에 오늘 이렇게 써내어 여러 사람들과 함께 교류를 함으로써 우리들이 법 공부를 더욱 잘하여 절대로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말자!

개인의 인식이며 잘못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의 자비한 지적을 바란다.

문장완성:2006년 03월 23일
문장발표:2006년 03월 28일
문장수정:2006년 0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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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위치: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3/28/1235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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