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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에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에서의 반성과 깨달음

글/ 산시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3월 8일】사부님께서는《2005년 샌프란시스코 설법》에서 이렇게 지적하셨다.“일부 수련생들은 근본 집착을 줄곧 제거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근본적으로 대법제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사부님의 말씀에 나는 놀랐는데, 즉시 나자신이 대법에 걸어들어올 때 지니고 온 사람의 관념과 동경을 기억하여 나자신에게 있는 근본 집착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어머니가 신에게 빌며, 부처님께 절하는 진솔함에 영향을 받아 신과 부처님의 존재를 믿었으며 인과응보와 윤회전세 또한 진실하다고 믿었다. 생활 속에서 갖은 고난을 겪은 후 중년에 들어선 나는 이미 중공이 선전하는 인생관이 허위로 속이는 것임을 인식하고는 사람의 진전한 의미에 대해 고민했다. 1991년 여름철에 나는 어느 절에서 001의 번호가 찍힌 ‘상상’ 가치를 뽑았다(이는 나의 일생에서 유일한 한차례 가치 뽑기) 그 가치에는 좋은 뜻의 상서로운 말들로 충만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신선의 대열에 들다’란 문구가 있었다. 그후 나는 속세를 벗어나 신선으로 수련하겠다는 동경이 생겼으나 속인의 사업을 버리기 힘들어 출가할 용기가 없었다.

1997년 나는 처음으로 《전법륜》을 경독했고 사부님의 제1강의 제목 “진정하게 고층차에로 사람을 이끌다”는 나를 아주 매료시켰다. 대법을 수련하면 원만할 수 있고 또 출가하지 않아도 됨을 이해했을 때 정말이지 너무나 기뻤다. 바로 이렇게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또 많은 수련생은 사람의 관념으로 대법에서 같지 않은 인생 동경과 소원을 찾았다. 바로 이런 사람 마음의 집착에 사로잡혀 대법수련 중에로 들어왔다.”《원만을 향해 나가자)이었다. 하여 나의 근본 집착은 원만에 집착하는 것이었다.

몇 년 동안 나의 근본집착에 대한 인식이 모자라 수련의 길에서 수 많은 굴곡이 생겼고, 나중에는 곤두박질 하듯이 걸어오게 되었는바 교훈은 심각하다. 나는 사부님의 최근에 하신 설법을 새롭게 배우면서 나자신의 근본집착에 대해 반성했으며 일부 깨달음이 있게 되었다. 지금 이를 써내어 동수들에게 참고로 제공하니 부족한 면은 시정해 주기 바란다.

(1)나는 근본집착의 은밀성을 인식했다

사부님께서는《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에서 이렇게 지적하셨다.“나는 설법(講法)중에서 만약 한 학생이 오로지 공부를 잘 한다면 자연히 대학에 갈 수 있고, 대학 자체에만 집착하고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한다는 도리를 말한 적이 있다. 한 수련자가 원만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이 속에서 나는 법공부를 잘하는 것, 법을 실증하는 것과 수련 원만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또 한번 “추구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얻게 되는” 중요한 법리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사부님의 이 가르침에 나는 그 당시 진동했으며 나자신에게 더 이상 개인원만에 집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아쉬운 것은 나자신이 법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깨달음이 너무 차했기에 원만에 집착하는 위해성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원만에의 집착이 바로 나자신의 근본 집착이었음을 더욱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사부님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깨닫지 못한채 부분적으로 “한 수련자가 원만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에 대해서만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강조하면서 나자신도 모르게 이를 따라 집착을 덮어감추며 원만에 집착하는 구실로 만들었다. 바로 이렇듯 하나의 집착은 늘 작용을 일으키고 표현되어 나왔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마음 속에 환희심이 생겨서 이번에는 층차를 제고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좌절을 당하면 아주 낙심하여 이번에는 원만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2000년 내가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할 때 수련생이 “정법이 곧 결속되기에 천안문에 가는 것은 선생님을 향해 도착을 알리는 것이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현수막을 펼치기 전 천안문을 향해 묵묵히 “사부님, 제자가 사부님을 향해 도착을 알립니다!”라고 묵념했었는데, 사실 이 한마디 말에는 하나의 마음이 은밀하게 감춰져 있었던 즉 “사부님, 모두들 원만할 때 저를 빠뜨리지 마세요!”였다.

몇 년 동안 바로 이렇게 나자신의 원만을 걱정했는데, 항상 이는 다만 양호한 소원이지 무슨 집착이 아니라고 여겼다. 마침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았다. “우리 허다한 수련생들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허다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허다한 마음은 이미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으며 그 자신도 느끼지 못한다.”《전법륜》 이는 내가 원만에 집착했던 은밀성의 한 가지 방면이었다.

다른 한 방면에서는 수련 중에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을 때 나자신에게 누락이 있음을 알았지만 단지 일부 표면에서 드러난 사람 마음만 찾았지 심층의 원인에 대해서는 깊이 찾아보지 못했다. 실제로 깊은 층의 원인은 원만에 집착하는 것이었는데, 이 집착은 늘 겉에 드러난 일부 사람 마음에 의해 덮어 감춰졌고 그것은 오히려 아주 깊이 숨어들었다.

(2)나는 원만에 집착하는 위해성을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북미순회설법》에서 우리에게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 심각한 내포를 엄숙하게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여러분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으로 당신들의 수련은 절대 개인적으로 간단하고도 간단하게 원만(圓滿)하는 문제가 아니다. 당신들의 수련은 당신들에게 무한한 희망을 기탁하고 있으며 당신들과 대응된 천체의 무수한 중생들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며, 당신들의 수련은 매 하나의 방대한 천체 대궁(大穹) 중의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대법제자의 책임은 개인의 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이며,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대법제자의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에게 반드시 극대한 자비와 무사무아의 고상한 경지를 요구하고는 시종 중생구도를 첫자리에 놓으며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걸을 것을 요구한다.

만약 원만에 집착하면 정법 노정을 따라가기 아주 어렵다. 개인의 원만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 여전히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며 필연적으로 잃게 된다. 사부님의 《북미순회설법》에서 한 수련생이 이러한 문제를 제기했다. “대륙 수련생들이 나와서 홍법(洪法)하는데 그러면 긍정적으로 잡히고 맙니다. 만약 홍법을 하지 않으면 또 정법과정에서 자신의 층차에 영향을 줄까 두려워합니다. 대법제자는 어떻게 파악하여야 합니까?” 이는 개인의 원만에 집착하면서 또 두려운 마음이 무거운 복잡한 심태의 전형적인 반영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이 두 가지 사상은 모두 옳지 않다. 나와서 홍법하지 않아 층차에 영향을 주고, 제고에 영향 주며, 원만에 영향 주고, 이 영향을 두려워하고, 저 영향을 두려워하는 것은 진정으로 대법제자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보지 않는 것이다.”

사실상 이런 복잡한 심태는 법 실증에 영향을 주었으며 개별현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미 정법의 최후단계로 왔지만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두려워하면서 사람에서 걸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로 자신이 적극적으로”9평”을 알리고 “3퇴”를 알리지 않음에 대해 구실을 찾는다. 표면에서는 일을 하고 있지만 중생을 구도한다는 긴박감과 열정이 모자라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하여 원만에 집착하면 정법의 노정에 따라가기 아주 힘들다.

만약 원만에 집착하면 필연코 각종 속인의 마음이 자라나고 또 그것에 이끌릴 수 있어 정념정행 하기 아주 어렵다. 예를 들어, 층차에 올라가기를 추구하고 위덕을 건립하겠다는 의식에 이끌려 일부 수련생은 법을 실증할 때 개인을 실증하는 요소가 섞여 들어가는 바, 과시심, 질투심이 선명하게 표현된다. 일부 수련생은 일을 하는 마음이 아주 강해 세 가지 일에 대해 늘 놓치고 심지어 법공부 시간마저 놓친다. 일부 수련생은 대법으로 자신의 환경(가정 포함)을 원용하지 못해 좋지 못한 영향을 만들었다. 하루 빨리 원만하려 하고 세속을 떠나려는 생각에 일부 수련생은 시간에 대해, 예언에 대해 속인의 집착을 기탁하면서 바라고 있어 마음상태가 안정되지 못했다. 하여 “소침(消沉)한 상태가 출현했고 정진(精進)의 의지가 해이해졌으며”(《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이 일체는 바로 원만에 집착하여 나타난 누락이고 모두 사악한테 틈을 타게 된다.

옆에서 볼 때 아주 잘한다고 여겨왔던 일부 동수들이 사악에게 납치당하고 , 박해당하거나 혹은 병마에 엄중하게 시달려 생명을 잃지 않았던가? 나는 이들 속에는 가능하게 이 방면의 원인으로 박해당한 이들이 있다고 본다. 사부님께서는 《2005년 샌프란시스코설법》에서 사악의 박해를 이야기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이 수련생을 박해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수련생이 집착하는 틈을 타서 비로소 그것이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조성한 것이 아닌가? 일부 수련생들의 신체상 괴로움을 포함하여, 심지어 병이 굉장히 중한 것 같으며, 어떤 사람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는 그 속에 낡은 세력이 배치한 요소가 있으며 또한 자신이 정말 그처럼 바르게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정말로 그처럼 바르게 했다면 무엇이든 모두 움직일 수 없다.”

만약 원만에 집착한다면 정법에 대해 장애가 형성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2000년 원만에 집착함에 대해 《최후의 집착을 없애버리다》를 발표하셨는데, 이 때 나는 원만에 집착함은 개별현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한 사람이 생각하고, 두 사람이 생각하고, 세 사람이 생각하고, 그 것도 별일이 아니다. 만약 전체 대법제자가, 더욱 많은 사람이, 여러분이 모두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의 강대한 마음, 강대한 장애가 아니겠는가?”(《북미순회설법》)

만약 정법의 최후시기에 수많은 동수들 모두가 이런 집착이 있다면 가능하게 근본집착일 것이며 정법에 교란과 장애를 조성할뿐더러 또한 낡은 세력에게 대법을 계속 박해할 수 있는 구실이 주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원만을 향해 걸어가자》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셨다.”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지금 낡은 악세력(惡勢力)이 대법에 대해 박해하는 가장 큰 구실 중의 하나가 바로 당신들의 근본적인 집착이 덮어 감추어진 것이다 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 난을 더 크게끔 해서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내려고 한다.” 하여 만약 원만에 대한 집착을 하루 빨리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 위해성은 자신이 원만하지 못하게 할뿐더러 더욱 엄중한 것은 정반 정법노정에 영향을 주고 또한 중생구도를 지체한다.

(3)세 가지 일을 잘하는 과정에서 원만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자

어떻게 원만에 대한 집착을 제거할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2005년 샌프란시스코설법》에서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만약 당신이 나는 알고 있다고 느끼면서, 또 아주 조급해 하지만, 그러나 실천 중에서 당신은 결코 진정으로 그것을 극복제압[克制]하지 않고 그것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사실 당신은 단지 이런 사상 활동을 오로지 보고 느끼는 것에만 머물러 있을 뿐 당신은 그것의 행위를 억제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당신은 단지 생각만 했지 결코 실천하여 닦지 않았다” 때문에 원만에 집착하는 이 마음에 대해 그것을 수련하며 제거해야지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세 가지 일을 잘 하는 실천 과정 중에 그것을 수련하여 제거해야 한다.

우선 법공부를 중시하고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한다”란 이 하나의 법리를 단호히 믿어야 한다. 오로지 법공부를 해야 비로소 이 하나의 집착을 식별하고 찾아낼 수 있으며 비로소 법의 고도에 서서 그것은 똑똑히 인식하고 법을 스승으로 삼아 자신을 대조해보며 하나의 집착을 주동적으로 닦아서 제거할 수 있다.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실천과정은 바로 우리의 수련과정이고 바로 각종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물론 또 사람 마음에 대한 집착을 제거함으로써 원만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항상 지속적으로 집착에 대해 끊임없이 폭로하고 극복하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장기간 양성된 것 역시 낡은 우주생명에게 눌려 내려온 요소들에 의해 층층이 분할되었기 때문에, 매 한 층을 돌파하면 한 층을 제거해 버리고, 한 층을 돌파하면 한 층을 제거해 버리며, 한 층을 돌파하면 한 층을 제거해 버린다. 그러므로 그것은 갈수록 약해지며 갈수록 적어진다. 그것은 단번에 전부 제거되지는 않는데 이런 표현이 있다. 수많은 다른 속인의 마음을 포함하여 역시 이런 표현이다.”(《2005년 샌프랜시스코설법》)
때문에 원만에 집착하는 이 마음을 철저히 닦아서 제거하고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과정 중에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해 나가야 한다.

(정견망에서 퍼옴)

문장완성:2006년 03월 07일
문장발표:2006년 03월 08일
문장갱신:2006년 03월 08일 03:09:57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3/8/12234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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