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베이징에서 창룽
[명혜망] 옛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불행이 실제로는 축복일 수 있다.” 나는 올해 64세로 자식들이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일하기까지 몇 십 년을 고난 속에서 버둥거렸지만 나의 큰 딸은 자영사업도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내 인생은 아주 괜찮은 거라고 만족하면서 행복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좋은 것은 오래가지 않는 것인지, 나의 막내딸이 갑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마치 사형선고와 같았으며 하늘이 무너지는듯 했다. 돈, 가족 등의 문제들이 뒤를 따랐는데 의사는 보험으로 충당되지 않는 의료비가 매달 10만 위안은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자식들에게 우리가 모든 것을 잃더라도 막내 딸을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행복은 내게서 완전히 떠나버렸다. 딸은 위장수술을 한 뒤 화학요법으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6개월 후 암은 허파와 림프선으로 급속히 퍼져있어서 병원에서는 6개월도 채 살지 못할 것이라 한다고 큰딸이 말했다. 나는 막내 딸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 마지막 길에서 딸을 돕기로 결정했다.
당시 딸은 머리칼이 전부 빠져 있었고, 아주 깡말라 있어서 보기가 흉했다. 그녀는 다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쌀죽이나 국만을 먹었다. 자식들 넷 중 특히 막내를 애지중지하며 키웠기 때문에 딸의 입맛이 까다로웠다. 지금 딸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내가 형편이 안 되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먹지를 못하기 때문이었다. 내 곁에서 죽어가고 있는 딸을 보는 것은 마치 칼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나는 온 밤을 울었다. 딸은 암으로 인한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종종 울었다. “엄마, 나는 더 살고 싶지 않아.” 그 말을 듣는 엄마의 느낌이 어떠한지 상상해 보라. 나는 다만 내게 있는 모든 돈을 써서라도 그녀가 죽기 전에 그녀를 데리고 다른 곳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당시 나는 완전히 절망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나의 사촌이 (파룬궁 수련생) 이 상황을 알게 되어 내게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왔다, “언니, 막 소식을 들었는데 아이가 너무 가여워요.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수련이 하나 있는데…” 나는 새벽의 빛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나는 즉시 이를 시도해 보겠다고 동의했다. 사촌은 남동생이 이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사촌의 집을 찾아갔더니 그는 내게 파룬따파의 원리, 연공, 예, 등을 들어가며 소개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좋게 느껴졌고 더욱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는 내게 《전법륜》 책을 주며 매일 한 강의 씩 읽고 제2강을 읽은 후 그와 토론해 보자고 했다.
그 후 나는 매일 딸아이를 데리고 사촌의 집으로 가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두 번째 방문하던 날, 딸의 안색이 창백한 데서 불그스레하게 건강한 빛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사흘 후에는 음식을 먹은 뒤 토하던 것을 그쳤다. 닷새 후에는 속을 넣은 찐빵을 먹을 수 있었다. 칠일 째 되는 날에는 약 먹는 것을 그쳤다. 내 눈앞에서 매일 매일 딸의 신체적 상황이 나아져 갔고 딸은 직접 어떻게 점점 더 좋아지는가를 설명했다. 한 달 후 딸의 머리칼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너무 경이로웠다. 나의 자식에게 희망이 있었다. 나의 마음은 안정을 찾고 행복도 돌아왔다.
이 기적을 통해서 나는 점차 대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록 당시 나의 주의가 딸에게로 가 있었지만). 기적으로 보여지고 있는 대법의 실증이 내 마음 속에 있던 장벽을 무너뜨렸다. 내가 막 수련을 하려고 결정하자,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여 나를 교란시키려 했다.
나는 손녀딸를 어려서부터 키웠는데 아들과 며느리도 간섭하지 못했다. 옛말에, “할머니의 눈에는 장손이 가장 귀중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녀는 내게 막내딸만큼이나 소중했다. 나는 손녀딸에 대해 아주 강한 집착을 하고 있었다.
내 딸을 구하는 것은 마치 내 마음에서 돌을 하나 제거하는 것과 같았는 바, 나는 대법을 수련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손녀가 작은 모순 때문에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자살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 되었다. (아이가 사교적이지 못했고 좀 괴짜였다) 나는 강가, 숲 등, 백방으로 손녀딸을 찾아다녔으나 아무 데서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법공부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잊고, 완전히 제 정신을 잃어버리고는 단지 손녀딸만을 생각했다. (나중에, 손녀딸은 저절로 돌아왔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오랫동안 교란을 받았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대법을 배우지 못하게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몹시 어렵게 만들었다. 다른 것들도 내가 수련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여기서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사부님과 동수들의 도움으로 나는 결국 이러한 장애를 제거하고 대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딸과 함께 연공을 시작했다. 딸에게 극적인 변화가 있은 후, 친구들, 친척들과 이웃들도 나를 보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의 딸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안 그래요?” 당시, 중국의 환경은 아주 나빴고 아무도 감히 파룬궁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했다. 그날 밤 한 수련생이 내게 말했다, “만약 중국 의사가 당신의 딸을 구해주었는데 그가 박해를 받게 되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지, 당신은 그를 위해 좋은 말을 해주지 않겠습니까? 파룬궁이 당신의 딸을 구해준 것이 진실입니까? 당신의 양심상 당신은 이에 대해 무엇인가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딸을 구해준 것은 “쩐싼런(眞善忍)”의 법입니다. 원리의 첫 번째 글자가 “쩐(眞)”입니다. 당신은 “쩐(眞)”, 진실을 말하는 것이 두렵습니까? 딸의 상황에 대해 다시 내게 물었을 때, 나는 마지못해 “파룬궁 수련을 통해서 회복했어요.”라고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때 나는 한 인간으로서 나의 양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중에 동수들이 내게 다른 사부님의 경문을 읽도록 이끌었다. 나는 책임을 이해하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법을 따르고 실증하는 데 분명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 나는 또 왜 수련생이 애초에 대법을 실증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나의 딸을 도우려 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더는 요청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솔선해서 더 이상 속인의 양심에서가 아니라, 대법을 실증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갖고 대화를 연다. 나는 지역사회 활동, 결혼식, 장례식 등, 여러 부동한 환경에서 만나는 누구와도 이야기할 것이다. 나의 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나는 대법을 실증할 뿐만 아니라 또한 진상도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어떻게 파룬따파(法輪大法)을 수련하기 시작했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 불행에서 행복, 행복에서 재앙, 그리고 재앙에서 다시금 진정한 행복으로. 수련의 길을 따르는 중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을 이행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는 더욱더 법공부를 해야 하고, 동시에 나 자신을 시정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나는 사부님과 대법이 내게 부여해 주신 지혜로 중생을 도와야 하고 역사 이전에 내가 한 홍대한 서약을 실현하고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칭호에 영광을 돌려야 한다.
발표일자: 2006년 2월 18일
원문일자: 2006년 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1/18/118923.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2/18/700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