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2월27일】이 몆 년간 나는 끊임없이 법공부 하고 대법에 동화되며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이지로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을 알리며 자비로 홍법하고 세인들을 구도해야 한다.”《이성》,말씀에 따라 대법에 동화되었고 동시에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가족들과 거민위원회, 파출소등 관계부문의 인원들에게 심도있게 진상을 알렸다. 다시 말해서 낡은 세력이 배치한, 박해에 참여한 20%의 생명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적지않는 사람들이 나와 접촉하는 중에서 하나하나 마음에 맺힌 매듭들이 풀어지면서 악념이 해소되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대법제자들에 대한 박해를 포기하게 하였다. 나 자신도 보다 느슨한 환경에서 진상을 할 수 있었으며 중생을 구도하는 사전의 큰 서약을 실행하게 되었다.
아래는 내가 해온 일과 체험들을 적어내었으며 사부님의 가르치심과 동수들의 지적이 있기를 바란다.
1、가정에서 수련환경을 개척하면서 대법에 동화되다
나는 1994년에 사부님의 9일 강의에 참가한 노제자이다. 일찍
법을 얻게 배치하신 사부님께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나로 하여금 수련 방면에서 비교적 착실하게 법공부 하고 마음을 닦을 수 있는 환경과 과정을 마련해 주셨다.
나는 어려서 부터 신체 상황이 좋지 못했으며 또한 집에서 응석받이로 자랐기에 장기간 나를 중심으로 하는 의식이 형성되어 개인의 심성, 수양방면에 문제가 적지 않았다. 늘 병마에 시달리다 보니 심신이 하나를 이루지 못하여 괴로울 때면 죽기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많았다.
1994년 사부님께서 정저우에서 꾸린 학습반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심신에 비약적으로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개성이 강하고 교만스러웠던 내가 자아를 잃어 버리다니? 갑작스러운 돌변에 남편은 적응하기 어려워햇다. 그는 말했다.”정저우에 한번 갔다 오더니 예전의 ‘귀인’이 이렇게 변할줄은 천만 뜻밖이라고 “했다. 이전에 남편은 늘 말했는데 그저 나의 얼굴에 웃음기만 있으면 아들과 둘은 행복하다고 했다.
심신에서의 거대한 변화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것 같았으며 나는 대법의 나에 대한 의의와 가족들의 나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깊이 느끼게 되었다. 시작에 나는 의도적으로 가정의 환경을 양성순환의 수련 환경으로 개척해 나갔다.
오래동안 나는 집에서 설법녹음 테이프를 틀어놓고 일하는 한편 사부님의 강의를 들었다. 남편과 아들도 저도 모르는 중에 듣게 되었으며 무엇이 법인가를 알게 되었으며 심성이 얼마 높으면 공이 얼마 높다는 도리를 알게 되었으며 늘 일부 문제들을 나한테 제기 했으며 서로 교류도 하였다. 또한 내가 어떤 면에서 잘하지 못하여 “진선인”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으면 그들은 아무런 관념도 없이 지적해 주었으며 나도 허심하게 접수했다. 처음에 자신에 존재하고 있는 문제들을 발견하고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당신은 검토를 잘하지만 고치려고는 하지 않으며 마치 한 발자국 내디디고는 두 발자국 퇴보하는 식인데 아예 수련을 집어치우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러지 말아요 내가 예전에 일주일에 한번 성질을 부렸다면 지금은 두 주일에 한번 성질을 부린다고 해도 진보한 셈이 잖아요”
아들은 아직 어리지만 그러나 장난이 매우 심했다. 또한 애들 중에서 왕초였는데 늘 학교에 가서는 애들을 데리고 옛날 놀이를 하면서 모든 반 애들을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아들을 내가 맡아서 책임지기로 했는데 매번 학급에서 모임이 있을 때면 부모들이 나에게 아들을 지적했다. 그래서 오래동안, 나도 애를 교육하는 문제에서 잘 참지 못한 탓으로 심성을 지키지 못하여 제고가 늦었다. 한번씩 화를내고는 매우 자책감에 빠졌으며 잠자리에 누어서도 “진선인”을 반복하여 외워야 잠들수가 있었다.
아들은 비록 장난이 심했지만 부모들이 수련하고 있는 집 애 몇 명하고는 하는 말들이 “우리는 수련하는 집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후에는 다른 사람과 좀 달라야 한다.”라고했다. 처음 한 1년동안 애들이 늘 하는 말이 “너 오늘 공을 헛되게 연마했어” 혹은 “네가 무슨 수련인이냐!…………”라는 식이였다. 이러한 방법들이 나에게는 매우 효과적이였다. 나는 냉정하게 자신을 찾을 수 있었으며 이렇게 하는 것이 나에 대하여 매우 촉진작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애들이 고맙게 생각되었으며 그들이 이렇게 하도록 고무해 주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애들도 점차 법의 요구대로 하게 되었다.
내가 수련하여 제고하려는 심태가 매우 순수했던 탓인지 사부님께서는 늘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점화시켜주었으며 나더러 도를 깨달게 했다. 95년도 금방 연공장을 개설했을 때 보도원을 맡은 두 사람지간에 모순이 있게 되었는데 그중 한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서 다른 사람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머뭇거리더니 “xx는 당신이 보도원인데도 연공 동작마저도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하더라”고 하면서 나의 집착심을 끄집어 내어 그의 말을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보도원의 동작이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것은 보도원이 집착심이 있는 것과도 같이 매우 정상적인 일이며 동작이 부합되지 않으면 고치면 되잖아요. 그가 앞에서 나한테 지적해 주어 고치게 하면 얼마나 좋아요. 그러나 내가 없는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는 것은 내가 심성에 어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그만 멋적어져 그냥 가버렸다.
서재에 있던 남편은 우리들이 하는 말들을 다 들었다. 후에 그는 매우 엄숙하게 나한테 말했다. “내가 한 가지 건의 하겠는데 수련자격을 취득할 예비기간을 두고 불합격이면 도태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수련은 엄숙한 것이며 신성한 일인데 그렇지 않으면 난법하는것이 아니요?” 나는 말했다. “수련 중에 있는 사람이 어찌 한 걸음에 하늘에 닿을 수 있겠어요? 천천히 제고하는거지요” 그러면서도 남편이 하는 말을 듣고 보니 강렬한 진동을 받았다. 사부님이 남편의 입을 통해 나는 점화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으며 수련의 실질은 마음을 닦는 것이며 일사 일념 속에서 해 나가는것이 수련이며 자신의 일언 일행을 “진선인”에 동화시키면서 대법을 수호하며 대법을 널리 알려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진선인”에 위배되면서 대법을 파괴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
초기에 수련생들은 늘 우리집에 모여서 교류를 진행했다. 동수들이 가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이야기 할 때면 나는 걸핏하면 “어찌 이럴 수가 있어요?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라는 식으로 말했다. 남편이 이를 듣고 말했다. ” 내가 당신한테 한 가지 건의 하겠는데 당신은 이후에 말하는 방식을 고치는 것이 좋을것 같아요. 부정적인 어투나 부정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단어를 삼가하는 것이 좋을 같아요. 왜냐하면 당신의 이런 방식은 사람에게 쉽게 딱딱하거나 원용하지 못한 감을 주는데 바꾸어서 반문한다거나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하는 식으로 말하는것이 좋지 않아요?” 듣고 보니 참 좋은 생각이었다. 그 후부터 교류 방식에서 보다 부드러운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자신에 대해 중시를 돌렸는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비교적 원용한 사유 방식을 양성하게 되었다.
후에 와서 나는 남편과 아들에게 “진선인”의 표준으로 나에 대해 감독하고 귀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도 쾌히 승낙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가족들은 저도 모르게 법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으며 모두가 법에서 제고할수 있었으며 법에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나도 그들에 대해 속인이라는 관념이 없었으며 나와 동수들 지간에 있었던 모순들을 남편에게 들려주고 그가 법리에서 나를 도와서 문제의 근원을 찾게 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의 심령의 전부를 털어내어 법으로 비춰보고 싶으며 법의 세례를 받고 싶어요.”
99년 7.20 당시 남편은 마침 홍콩에서 회의가 있었다. 당시 그는 공산당에 대해 매우 큰 반감이 있었으며 또한 나에 대해서도 매우 근심했다. 후에 가서야 나한테 말했는데 남편은 나를 열녀라고 생각했으며, 이렇게 침중한 타격을 받아 감당해 내겠는가고 생각했으며, 그가 파룬궁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 처음으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공산 악당에서 탈당해야겠다는 생각이였다고 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매우 감동을 받게 했다.
10년래 가족들은 나의 수련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으며 그러면서도 그들도 자신의 방식대로 정법,홍법과 진상을 알리면서 자신들이 할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을 해 나갔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중에서도 나를 이해해 주면서 묵묵히 이 모든 것을 감당해 나갔다. 친구들이 남편에게 어찌하여 아내를 그렇게 하게끔 내버려 두는가고 물었을 적에 그는 내심하게 대법의 진상을 알렸으며, 나의 수련후에 심신에서 변화된 상황들을 이야기 해주면서 친구들로 하여금 대법을 이해할수 있게 하였다. 아들도 시종 견정하게 대법을 수호했으며 외할아버지가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때 8장에 달하는 진상편지를 보냈다. 외할아버지가 잘못 알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어 외할머니의 수련환경이 많은 개변을 가져오게 했다.
오늘에 이르러 나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동시에 가급적 집안의 일들도 잘해 나가면서 가족들을 원용해 나갔으며 가족들도 예나 다름없이 나에 대해 잘 대해주고있다.
2,”진선인”으로 모든 생명을 선해하며 외부의 환경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법을 실증
가정에서 수련환경이 좋아지자 우리가 홍법과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하는데 뒷근심이 없어졌으며 더욱 많은 정력을 우리들이 신성한 사명을 완성하는데 투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가정환경의 개선은 정법 수련의 한 방면에 자나지 않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진선인”으로 소유의 생명을 선해하며 최대한 우리들 수련의 외부 환경을 개선하여 중생을 구도하는데 도달해야 한다.
사악이 대법에 대한 박해가 시작된 후 파룬궁 수련생들을 대처하기 위해 거두위원회와 정부 조직들에서 연합으로 여러가지 형식을 취하여 파룬궁 수련생들을“전향”, 감시하고 있었다. 당시 거두 위원회는 늘 수련생들을 핍박하여 태도를 표명하게 했으며 소위 전향반을 꾸렸으며 집을 찾아 다니면서 대법제자들을 감시했다.
선후로 10차례나 우리 집을 찾아와서 조사하고 나에 대해 사상공작을 하면서 수련을 포기하고 보증서를 쓰라고 했다. 처음부터 나는 수련의 기점을 바로 잡았으며 이 한 차례의 박해를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보지 않았다. 때문에 평온한 심태로 감정을 섞지 않고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며 그들을 사악이거나 나를 시끄럽게 군다고 생각지 않았다. 속으로 사부님이 이들을 이용하여 나의 선한 마음과 인내심을 고험하거나 혹은 법공부가 어떤가 하는 것을 시험해 본다고 생각했다. 대법이 인간 세상에서 비방당하고 있는데 나의 언행이 “진선인”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그들에 의해 이용당해 법을 공격할 것이며 그러게 되면 나는 대법을 파괴하는 것이며 나의 언행이 법에 부합되면 바로 대법을 원용하고 수호하는 것으로 된다.
나는 늘 그들더러 말을 다 하게 하는데 악인적인 것이나 혹은 도발성적인 문제든지 막론하고 그냥 내버려 둔다. 그들이 기만당하고 있기 때문에 모르고 한 일에 대해서는 과오를 묻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선의적으로 진심으로 하나 하나 해답을 주었다. 처음 시작에 그들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쓰던 그러한 식으로 사람을 금방 집어 삼킬듯한 기세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진공 태세를 취하고 공격해 왔다.그들은 7월22일 중앙TV에서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한 내용을 가지고 허다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나는 “하나가 움직이지 않으면 만가지 움직임을 제압한다”는 심태로 질문에 해답하기 시작했으며 처음부터 개념상에서 그들이 사고할 수 있게끔 대답했다.” 7.20전에 대법이 중국에서 7년동안 널리 보급되었는데 심지어 몆년 전에는 국가 외교부에서 중화민족 전통문화의 정수를 해외에 널리 전했는데, 그래 이 전후 7년은 한개의 당, 정부의 영도가 아니란 말인가? 어차피 한 개 당과 정부라면 어제는 하늘에 있었다가 오늘은 땅 속에 있다면 이것이 논리에 맞는 일인가?”그들은 들으면서 묵묵히 사고하고 있었다. …
그러고 나서 그들이 제출한 의문에 대해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초기에 법을 전하실 때 몇 명의 딴 심보를 품은 자들이 사욕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사부님을 따라다녔으며 그들이 대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것이 사부님께 저지당한 후 자기들의 사욕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자 사부님에 대해 원한을 품고 사부님을 배반했을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사부님을 모해하는 자료들을 꾸며가지고 도처에 보냈는데, 오히려 국가 체육총국, 기공협회등 부문들의 내막을 알고 있는 지도자들의 비평과 저지를 당했으며 당시 큰 파문을 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믿기 어려우면 관계부문에 찾아가서 조사해보라고 했다. 오늘 중앙 TV에서 방송한 프로그램들은 이 사람들이 모함하는 자료를 가져다가 쓴 것인데 그 목적은 사마소의 속내를 길가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또 그들이 제출한 “생일이요” “호화주택”이요 하는 물음에 일일이 대답해 주었다. 실제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아무런 구하는 마음이 없이 근거가 있고 이치에 맞게 이야기들이 진행되다 보니 처음부터 평화적이고 이성적으로 잘 통해나갔으며 낡은 세력이 배치한 그런 당 문화식의 따지거나 질문하고 논쟁하는 것들을 제거했다.
그들이 연공을 계속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했을 적에 나는 화제의 초점을 파룬궁이 무엇이며 매 하나의 생명에게 어떤 유익한 점이 있는가 하는데 맞추어서 이야기 해 나갔다. 담화의 분위기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마치 동수 지간에 교류를 하는 것처럼 정서가 높아지더니 또 웃음 꽃을 피우면서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하나 하나씩 해답해 나갔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딴 심보를 품은 자도 있었는데 교란을 하면서 나의 심성을 고험했다. 갑자기 “당신이 말해보시오. 어느때 가서야 당신들이 누명을 벗겨질수 있는지?”라고 한 마디 던졌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공산당이 해왔던 3반,5반,문화 대혁명,어느 한 차례 운동이 억울한 안건, 착오적인 사건이 아닌 것이 있어요?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공산당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 예를 들면 탐오 ,회뢰, 매음,흡독,독품밀매 어느 한 가지를 사람들이 하지 않고 있는 것이예요? 당신들은 이런 것을 관할하고 있어요?”
어떤 때는 그들이 “당신의 사부(직접 사부님의 이름을 부른다)가 언제 귀국하는가?”라고 물으면서 나의 사유를 교란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참기 어려웠으며 온 몸의 피가 정수리까지 올라갔다. 이야기도 조급해지며 정서에 파동이 생긴다. …….사후에 제때에 안을 찾아 억제하며 자신을 바로 잡았으며 다음에는 많이 좋아지는 감을 느낀다.
한번은 그들이 왔다 간 후 남편은 말했다.”당신 몇 글자 적어서 연공을 하지 않겠다고 하고 집에서 계속 연공하면 되지 않아요? 날마다 찾아와서 시끄럽게 구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할 작정이요?” 나는 생각에 잠겼다. 7.20 이후에 나는 두려운 마음이 거의 없었으며 또 그렇게 큰 압력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러나 남편은 매일 신문과 방송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텔레비에서나 신문에서 거짓 선전들이 그에게 상당한 압력을 가해주는 것 같았으며 매일 나한테서 어떤 불행이 생길가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회사에서 사회 여러방면에서 파출소 거민 위원회의에서 늘 찾아오는데서 그는 감당하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말했다.“나더러 보증서를 쓰라고 하는데 당신이 먼저 나한테 보증서를 쓰되 1,내가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 2,내가 병이나서 약을 쓰면 그 비용을 전부 부담하겠다는 것 3,내가 약을 먹으면 병이 꼭 낳는다는 것, 내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쓰세요.” 남편은 “당신 억지를 부리지 마오.”라고 했다. 나는 또 이렇게 말했다.“중공의 매스컴에서 파룬궁이 약을 먹지 말라고 했으며 파룬궁을 수련하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그들더러 파룬궁 책을 몽땅 뒤집어 보라고 해요. 연공을 하면 죽지 않다고 한 말들이 있는가고 병원에서도 병을 치료할수 있지만 사람의 명을 구할수는 없잖아요. 사람은 생로병사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모든 종교에서도 사람은 죽는다고 했어요. 공산당은 어째서 남의 종교을 갔다가 사이비로 정해요?”나는 그가 사색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후에 파출소 거민 위원회에서 사람들이 왔을 때 연공을 하느냐 하는 문제가 또 제기 되었는데 남편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한 마디 말했다. “동작에는 그 무슨 계급성이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듣고 나서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집에서 연공을 하십시요. 그러나 밖에 나가서 말하지 마십시요” 나는 말했다. “오늘 당신들이 찾아와서 나보고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 나도 당신들 집에 찾아가서 말하지 않지요. 당신들이 나를찾 아와서 말하라고 하는데 내가 말하지 않으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어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내가 연공을 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나한테 파룬궁에 대해 물어 보는데 내가 어떻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99년 12월에 나는 북경에 청원하러 갔다가 1개월동안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서기는 나를 기어코 세뇌반에 보내려고 했다. 주임과 가두의 서기는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을 참답게 들었으며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들이다)극력 반대하였다. 나중에 가두의 서기는 나에게 말했다. “그가 원래 당신을 세뇌반에 보내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 당신은 매우 자상했고 상태도 좋아 당신을 보내는데 동의하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이 그들의 입을 빌어 나를 격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0년 5월,사부님의 생신날 법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노동교양 1년을 판결 받았다. 법에 대한 인식이 높지 못하고 개인수련과 정법수련간의 관계를 잘 바로잡지 못했기에 또한 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지 못한 것으로 하여 8개월후 노교소에서 “전향”하였다. 사악이 틈을 타고 들어왔으며 자신의 수련의 길에서 지워 버릴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후에 와서 나는 깊은 자책감과 고통스러운 후회 속에 빠져들어갔다. ……
2001년 5월 집으로 돌아 온 후 전력을 다해 법공부를 했으며 특히는정법시기의 설법집을 많이 읽었다. 점차 정법수련과 낡은 세력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있게 되었다. 오늘에 발생한 이 모든 일들이 모두가 낡은 세력이 오래전부터 배치하여 온 것을 알게 되었으며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이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낡은 세력의 배치를 타파하고 거짓말에 기만당한 중생들을 구도할것을 요구 했으며,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정법수련의 길을 걸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내가 좌절당하게 된 것은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은것과 박해를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내가 부딪친 가장 큰 문제는 법공부를 잘하고 낡은 세력의 배치를 철저하게 부정하며 수련환경을 새롭게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진선인”으로 대법제자들을 박해하고 감금하고 있는 사람들을 선해하며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법리로서 대법의 위력을 나타냈다.
한 번은 그들이 나더러 사상회보를 하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나는 공안기관이 정부의 도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당신들의 하려는 성질은 공구이나 사람은 공구가 아니다. 만약 내가 당신들의 누나나 동생이라면 어떻게 대하겠는가? 또한 법률도 사람의 행위를 관할하지 사상은 관할하지 못하는데 신앙자유는 하늘이 사람에게 가져다 준 것이며 이것은 당신들이 나보다도 더 잘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의 사상은 나의사상으로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회보하라는 것인가? 내가 다른 사람들더러 나한테 사상을 회보하라고 할 권리가 있는가? 당신들도 집에서 아내나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사상을 당신에게 회보하라고 하며 당신들의 사상도 다른 사람에게 회보하는가?” 그들은 듣고서 하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그들이 매달 한번씩 우리 집으로 방문을 오겠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당신들의 사업을 능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나의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는가? 그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있을 때면 늘 사람들이 찾아와서 교란을 하고 있으며 혼자서 고독하게 있을 때면 누구도 와서 관심주는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 남편의 사업을 위해 나는 사직하고 집에서 가정을 돌보고 있는데 이것은 남편의 사업을 최대한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그가 일년에 국가를 위해 몆 백만의 세금을 바치는데 당신들이 받는 월급도 그가 바친 세금일 수도 있다. 남편은 당신들이 납세인의 돈을 받으면서 납세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수 있다. 당신들이 달마다 찾아오게 되면 교란을 받게 되는데 차라리 흡독자,도적,도박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교육한다면 국가,가정, 개인에 모두가 이득이 있을것이며 사회와 가정의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결국 그들은 그만 두기로 했다.
또 한번은 서기가 세 사람을 데리고 우리집을 찾아왔다. 그는 나보고 우리집 부근에 있는 한 동수와 왕래하지 말라고 했다. 그 수련생은 우리 가두구역 범위내에 있지 않지만 우리들은 함께 연공을 하고 있었다. 몆번 북경에 청원을 했으나 그들은 그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나는 말했다. “한 사람이 정상적으로 집에 있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합법적 공민이 아닌가? 합법적 공민이 아니라면 집에 있을 수 없지 않는가? 사람은 모여서 살기 마련인데 춤을 추는 사람, 마작을 하는 사람, 연공을 하는 사람 이렇게 모두가 나름대로 자기의 파트너가 있는데 내가 이 자리에서 보증서를 쓰면 이후에 내가 혹시 그 사람을 만나게 되면 당신들은 ‘나에게 그 어떤 남에게 알릴 수 없는 그러한 무언가 있다’고 할것이 아닌가 때문에 나는 보증서를 쓸 수 없다.” 그들은 듣고 나서 아무 말도 못했다.
몆 년간 가족들 지간에, 형형색색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중에서 대법의 박대함과 자비를 체험하였다. 여러가지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마다 대법은 나에게 지혜를주었으며 나로 하여금 진상을 알리고 세인들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을 제고할 수 있게 하였다. 이 한차례 얻기 힘든 정법수련 중에서 내가 비록 응당 해야 할 일들을 하였으나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에 비하면 아직도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아냈다. 법공부도 부족하고 심성이 온정되지 못하고 발정념에 대한 중시도 크지 못하다. 나는 진정으로 마음으로 법공부 하고 법을 수호하고 법에 동화되어야 만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길에서 갈수록 더 잘해 나갈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장완성:2006년02월26일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2/27/1217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