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2월 24일】 나는 98년도에 법을 얻었다. 그런데 나에게 아직 버리지 못한 속인의 마음이 많다. 여기서 근본 집착이 무엇인지 줄곧 찾지 못하였다. 이 근본적인 집착으로 인해 수련 과정에서 더욱이 정법시기 대법을 증실하는 이 신성한 일을 함에 있어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다.
근래 명혜망에서 많은 동수들의 근본적인 집착을 버린 문장을 본 후 이것이 바로 나를 놓고 말한 것 같았다. 근본적인 집착을 안 후에야 바로 그것을 버릴 수 있었으며, 따라서 그에 연관되는 기타 집착도 버릴 수 있었다.
사부님은 《원만을 향해 나가자》에서 “집착을 갖고 법을 배우는 것은 진정한 수련이 아니다. 하지만 수련 중에서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점차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야만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부님께 빠른 시기에 나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아 그것을 버리고 정진할 수 있도록 점화해 주실 것을 요구하였다.
지금에 와서야 나에게 있는 근본적인 집착은 바로 명(名)과 리(利)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이 두가지 집착이 있음으로 하여 질투심이 따라 다녔고 정(情)과 색(色)에 대한 것들이 폭로되었다.
내가 대법의 길에 들어선 후 수련한 것을 돌이켜보면 속인 중의 명이란“공부에 노력하여”,“명예를 따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법을 수련하여 신체가 좋아지면 마땅히 법공부를 많이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여기에는 속인 중의 명리가 포함하지 않았다. 《홍음2·도중행》에서는 “명(名)정(情)리(利)를 씻어버리거니, 어떠한 난이 성자를 가로 막을소냐”를 외울때 늘 “명리정”을 혼돈하여 몇 번이나 외우면서 틀렸다. 여기서 나는 여전히 명리에 대한 집착이 너무 엄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재삼 느꼈다. 속인에게 “3퇴”를 설명할 때에도 미혼부(속인)는 내가 하는 일이 명을 얻기 위해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책을 보는 것도 모두 나에게서 그러한 상태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미혼부의 말을 빌어 몇번이나 나의 이 집착을 버리게끔 점화시켜 주었다.
나는 현재 시각마다 정념으로 이것을 부정하고 제거한다. 그러나 “오늘 또 몇 명에게 3퇴의 진상을 알렸으니, 덕을 얼마 쌓았구나”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 제자에게 이런 신성한 일을 더욱 정진의 동력으로 할 수 없다. 마땅히 이것을 정법의 기점에 놓아야 한다.
홍음 《무위》에서 “3교 수련은 무를 중시하거니, 마음을 잘못 쓰면 유위이노라, 전문 착한 일을 한다해도 역시 유위인지라. 집착심을 제거해야만 진정한 무위이노라 ”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오늘 법공부 하면서 오늘 못하면 내일로 미루고, 힘들고, 피곤하면 또 내일로 미룬다. 사부님은《원만으로 향해 나가다》에서“어떤 사람은 줄곧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전념하여 책을 보지 못한다. 특히 대법을 위하여 일을 하는 사람들, 당신들은 어떠한 구실로도 당신들이 책을 보지 않고 법을 배우지 않는 것을 덮어 감춰서는 안되며, 당신이 사부인 나 개인을 위하여 일을 할지라도 역시 날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배워야 하며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법공부는 반드시 견지해야 하며, 그 어떤 집착을 가지고 공부해서는 안된다. 만약 법공부 할 때 잡생각이 많으면 법공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세가지 일을 했다고 느낄 때 이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의 수련은 주의식 수련이기 때문에 만약 주의식이 청정하지 못하면 누구를 수련하는가? 만약 법 공부도 이렇게 한다면 법에 동화되지 않을 뿐 시간만 낭비한다.
사부님께는 《원만을 향해 나가다》에서 줄곧 법공부의 중요성를 강조하였다. 법은 우리가 수련하는데에서 근본이기 때문이다. 명, 리의 집착을 가지고 법공부하는 것은 역시 대법에 대한 불경이다. “책 속의 무수한 불,도,신은 당신의 가소롭고도 가련한 사상을 보고 있고, 사상 속의 업력이 가증스럽게 당신을 통제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당신은 아직도 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하고 있다. ”고 말씀하셨다.
어떤 동수들이 법을 외워 심성상 제고한 동수들의 문장을 보고 법을 외우기 시작한다. 여기서 속인의 명, 리를 지니고 법을 외우면 외우는 속도가 빠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절실하지 못하기에 법을 외우는 여기에서 신성(神圣)한 감을 잃으며, 속인들에게 초초히 성공을 바라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집착의 명, 리의 마음은 흔히 질투심을 일으켜 속인들과 업무를 비기며, 경색하고, 복지에서 쟁론한다. 한 동사자가 있었는데 회사에 해놓은 일은 나보다 적은데, 어리고 이쁘다. 허다한 원인으로 복지 대우는 모두 나보다 많다. 여기서 질투심이 생긴 나는 심지어 미혼부의 얼굴을 쳐다 보아도 그의 두눈이 평온하지 않은 감을 느낀다. 이 동사자는 회사에서 제1위로“3퇴”를 하였다. 여기서 나의 명과 리에 대한 집착을 보아낼 수 있었다.
8년이나 되는 수련의 길에서 명과 리에 대한 집착으로 줄곧 이렇게 심각한 인식이 없이 정신을 못 차렸다. 나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은 후 이러한 좋지 못한 사상을 견결이 제거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보통 사람이 넓은 도량마저 없다면 그 무슨 중생에 대한 자비, 사부를 도와 정법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반드시 정법의 기점과 수요로부터 인류 사회에서 대법을 증실하고 구도중생을 하여야 한다. 우리가 하는 직업, 함께 사업하는 동사자들 모두 연분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동사자가 “3퇴”를 하게 된 것도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는 더욱 어떠한 환경, 장소에서도 모두 우수해야 하며, 자비로와야 하며, 대법제자의 이 신성한 위대한 이름에 미안한 일을 해서는 안된다.
명, 리의 집착으로 속인 속에서 현시심과 쟁투심을 불러 일으켜서는 안되며, 항상 속인들과 친구처럼 지내야 한다. 특히 진상 할 때 속인에게 자기가 위대한 인물이라는 그 표현이 매우 좋지 않는 현시심이다. 미혼부에게 진상을 할 때에도 자기도 모르게 나는 당신보다 아는것이 많다는 것을 내세워 기타 중생들처럼 내심하게 그에게 해석하지 않았다.
사부님은 『전법륜』제6강에서 “우리의 많은 수련생은 속인 중에서 많은 놓지 못한 마음이 있다. 어떤 것은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여 그 자신이 감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시심은 곳곳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현시심이 나타난다.”고 말씀하셨다.
명리에 대한 집착은 또 정과 색의 집착을 초래한다. 나 자신이 많은 한단의 굽은길을 걸어왔고, 속인의 상태에 부합되게 하지 못했기에 자신에게 매우 많은 곤난을 조성하였다. 회상해보면 많은 속인 동학들이 모두 하나의 좋은 곳으로 귀속되었다. 때론 심지어 속인들과 비기는 마음이 생긴다. 여기서 자신은 마땅히 비슷한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미혼부를 만났을 때 속인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하였다. 후에 법을 증실하고 구도 중생의 이 기점에서 문제를 보면서 그와의 관계를 비교적 좋게 처리하였다.
앞으로 나처럼 이러한 집착이 있는 동수들은 모두 나와 같이 그 집착을 버리고, 더욱 이지적으로 청성하여, 이 만고의 기연을 아끼고, 공동이 정진하여 공성원만하기를 부탁한다 .
문장완성: 2006년 2월 22일
문장발표: 2006년 2월 24일
문장갱신: 2006년 2월 23일 22:37:58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2/24/1214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