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6년 2월 15일】
한 여성 동료에게 “9평”을 주었다. 그녀는 처음에 호기심을 가졌으나 그 중 2평을 보고나서 다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몇 번 반복적으로 이렇게 되자 나는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됐다. 그녀가 보려하지 않는 것도 그녀의 선택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상관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대법에서는 ‘안을 향해 찾아야한다.’고 한다.
“우리가 연공(煉功)할 때 당신이 좋은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나쁜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가장 좋기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전법륜》)
그렇다면 내 마음은 정말로 그렇게 순정했는가?
“왜냐하면 속인을 상대하므로 각종 속인의 마음이 모두 당신을 교란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그의 병을 잘 봐주었지만 그는 당신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당신이 그에게 병을 봐줄 때 얼마나 많은 나쁜 것들을 떼어 버리고 그에게 어느 정도로 치료해주었지만, 그 당시에 꼭 뚜렷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좋아하지 않고 당신에게 감사도 드리지 않으며, 당신이 그를 속였다고 욕할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를 겨냥하여 당신의 마음으로 하여금 이런 환경 중에서 마련(魔煉)되게 한다.” (《전법륜》)
나는 홀연히 깨달았다. 당시 나의 생각은 법에 있지 않았으며 ‘최선을 다했다’라고 표현된 것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감각으로 일종 이기적인 관념이자 일종의 벽이었다. 그것이 나의 오성에 영향을 주었고 중생구도를 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이 점을 깨달은 후 나는 더 이상 괴롭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모든 기회를 이용해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그녀가 들으려고 하든지 하지 않든지 그것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리진 않았다.
어느날, 사무실에서 모두 모여 한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파룬궁 수련생들은 모두 마음이 선량한 사람들이야.”라고 말했다. 모두들 무엇 때문인가 물었다.
원래 그녀의 딸이 유치원을 다니는데 어느 날 아침 유치원에 가는 길에 아이가 가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녀가 아무리 해도 방법이 없었다. 이때 처음 보는 한 여인이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아이에게 접혀진 칼라 전단지를 한 장 주면서 “울지 말아요, 오후에 집에 가서 펼쳐보세요.” 라고 말하였다. 아이는 곧 몹시 좋아하며 울음을 멈추고 유치원에 갔다. 아이는 칼라 종이를 엄마에게 주면서 집에 돌아와 보자고 했다.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유치원에 갔으며 그녀도 당시 몹시 고맙게 생각하였다 .
오후에 집에 가서 쪽지를 보니 그것은 원래 파룬궁 진상 전단지였다. 그 동료는 계속 말했다. “당시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우는 것을 보았지만 바삐 지나갈 뿐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파룬궁을 수련하는 분이 도와주었어요.”
내가 이어서 그녀에게 탈당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물었더니, 그녀는 “당장 하겠습니다. 또 식구들을 대신해서 탈퇴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깨달았다. ‘모두 협조를 잘 했기에 자신의 이 방면의 씬씽과 오성이 제고되었고 그녀의 기연(機緣)도 찾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그녀가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되었구나.’
사부님께서는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에서 말씀하였다.
“우주의 과거는 사(私)적인 것이다. 사람을 말해본다면 정말로 관건시기에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정법(正法)을 시작할 때, 일부 신들은 나에게 “당신만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 씁니다.”라고 했다. 당신들이 들어도 불가사의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대법이 육성한 다른 사람을 위한 정법정각(正法正覺)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하지 않는다면 모든 생명은 역시 역사에 따라 결속된다. 그러므로 한 생명으로서,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고려할 수 있는 것과 표현된 관용은 기점이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 수련자가 자신이 사(私)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면 점차적으로 그것을 극복하라. 인식을 했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 중에서 또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이 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며 또한 자신이 이기적인가 이기적이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수련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반대로 늘 자신을 돌이켜보고 안으로 향해 찾을 것이다.”
나 자신을 대조해 보니 이전에 처해있던 상태와 환경은 바로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관념으로 촉성된 가상이었다. 일찍이 한 수련생이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수련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누구도 나를 개변할 수 없습니다.”라고. 나의 마음은 동요되지 않았다. 이후 며칠 동안 교류를 통하여 법에서 어긋나게 수련하던 수련생들이 다시 법속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원래 우리를 가로막았던 관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표현되고 있다.
1. 진상을 알린 것이 일정 정도 되었을 때 어려움이 크다고 느낄 때면 곧 ‘자연스러움을 따른다’고 하면서 자신의 씬씽을 보지 않는다.
2. 일부 동수들이 법에서 어긋난 후 사오(邪悟)하면 어떤 수련생은 몇 차례 교류를 해서 효과가 없으며 포기하며 역시 안을 향해 찾지 않는다.
3. 일부 지역에서는 수련생 사이의 간격이 아주 커서 ‘자신을 보호’하는 상태에 빠져 정체적인 협조와 정상적인 교류 환경이 없다.
세 가지 일을 하는 과정에서 고층의 장애 요소들이 가끔 우리의 대뇌에 반영되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자신을 찾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낡은 세력의 이념에 따라 하게 되면 중생구도의 효과에 도달하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가 세 가지 일을 할 때 속인의 형식에 흐를 수는 없는데 법학습과 마음을 수련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보증이다.
문장완성 : 2006년 2월 14일
문장발표 : 2006년 2월 15일
문장갱신 : 2006년 2월 15일 01:23:10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2/15/1208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