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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의 화상(火傷)으로부터 말해보자

글 / 위칭

[명혜망 2006년 1월 3일] 2005년 11월 비교적 정진하는 수련생이 사업을 할 때의 이야기다. 그는 증기배관이 새면서 뜨거운 증기와 뜨거운 물이 옷에 스며 들어 어깨, 다리, 엉덩이, 사타구니 등의 큰 면적에 화상을 입었다. 그런데도 3일 후 화상부위가 전부 나았을 뿐만 아니라 나은 부분의 피부는 원래의 피부모양 그대로 아무런 허물도 없었다.

이렇듯 신기한 일에 직면하여 신수련생은 아주 격동되었는데, 그 환희심은 가히 이해할 수 있는바 나 또한 환희심이 생겨났다. 사부님은『전법륜』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 “과거에 한 사람이 무척 애를 써서 나한(羅漢)으로 수련되었다. 그 사람이 정과를 얻게 되었고 나한으로 수련되었는데, 그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삼계(三界)를 벗어났다! 이 기뻐함이 바로 집착심이고 환희심이다. 나한은 마땅히 무위(無爲)이며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그는 떨어졌으며 수련이 헛되게 되었다.”그럼에도 환희심이 생겨난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기실 신수련생이든 노수련생이든 대법에 갓 들어섰을 때에는 아주 많은 신기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여러 해의 고질병들이 저절로 나아지는 등등이다. 신의 길을 걷고 있는 대법제자에 대하여 말한다면 이것은 아주 정상적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도리어 사람의 마음으로 대하였다. 내가 이런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중생구도를 하고 세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면 또 슬며시 과시심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 역시 우리 수련인이야! 정말 신기하지! 그러나 집착심을 가지고 가서 아무리 신성한 일을 한다 해도 위력은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사부님께서도 보고 계시고 사악도 보아낸다. 본래 사악이 우리를 교란하고 박해하는 구실로 바로 우리가 집착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이 수련생이 상처가 났어도 아픔을 참으면서 자료를 배포하고 중생구도를 하고 돌아오니 팔부터 손까지 모두 부어있었다. 나와 두 명의 신수련생은 이런 정황을 안 후 말했다. –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이렇게 되지 말아야 하는데. 수련생은 아주 잘하고 있는데 어째서 또 다시 심해졌는가?” 나는 그 동수에게 물었다. “자료배포하러 가기 전에 제일 첫 번째 의념이 무엇이었어요?” 그녀가 하는 말이 “내가 자료배포를 끝내고 돌아오니 또 많이 나아졌어요.(화상 후 네 번 째 날) 하지만 이 염두가 나오는 순간 나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료를 배포할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 ‘나는 상처가 빨리 낫기 위해서거나 공덕(功德)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하여 재료를 배포한다.’” 이 수련생은 바르게 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가. 그제서야 나는 일이 생기면 먼저 다른 사람을 찾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수련생은 일하는 과정 중에 이미 옳게 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자신의 집착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지금 나는 이것도 일종 관념의 반영이란 것을 또 깨닫게 되었는데 즉 조건을 따지는 것이다. “불가는 사람을 제도함에 조건을 따지지 않으며 대가를 따지지 않는다.” 『전법륜』 그런데 나는 조건을 따졌다. – 좋은 일을 하고는 좋은 보답을 받으려고 한다. 수련생은 일하는 중에 바른 데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확실하게 말해서 우리의 사람 마음이 동수의 고통을 더해주어 낫는 시간을 끌었으며 중생구도를 교란하였다.

후에 이 수련생은 자기 가족이 자신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이해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또 가족이 법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으로 인하여 사부님을 존경하지 않고 그래서 업을 빚을까 봐 두려워하였다. 정에 대한 여러 가지 집착으로 인하여 그에게 ‘매우 고생스럽고 매우 힘들다’ 는 염두가(나도 있었다) 생겨나게 하였다. 그런데 이 염두가 나오자 마자 정말로 숨쉬기도 힘들었고 발정념 조차 견지하지 못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이것이 그래 자신의 사람마음이 조성한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수련생이 나더러 자기를 대신하여 체험을 쓰라 했을 때, 원래 그녀에게 있었던 사람마음이 나에게도 있었고 동수에게 없는 것도 나에게는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수련생은 바르게 돌려 세웠지만 나는 아직 발견하지도 못하였고 수련생은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나는 듯이 달려도 나는 아직도 느릿느릿 굼뜨게 앞으로 이동하였으니 벌어진 거리도 이제 대단히 멀다.

그럴 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수련생은 문제가 있으면 늘 나와 교류하였는데 내 딴에는 내가 법공부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왔다.(기실 나는 동수보다 글자 몇 개 더 알고 있을 뿐이다) 속으로 득의양양해 하면서 비록 어떤 면은 잘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교류를 통해 수련생이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은 일이야! 라고 여겼다. 기실 동수에게 도움이 되었다 해도 그게 어디 나의 공로인가? 나는 그저 법으로 다른 사람을 대조해 봤을 뿐이며 그것은 사부님이 나의 입을 빌어 수련생을 점화해 주신 것이고 나도 점화해 주신 것이다. 수련생은 깨우쳤지만 나는 도리어 자신을 그 속에 놓지 못하였다. 실제로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나는 어떤 때에는 정념이 부족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안일을 추구하여 5장 공법도 날마다 끝까지 하지 못하였고 정진하는 의지가 해이해졌다. – 두려운 마음이 엄중하면서도 ‘법을 위해 책임지고, 동수의 안전을 위해 생각한다’는 구실로 자신의 집착을 덮어 감추었다. 자신의 장점으로 동수의 부족한 점을 비기었으며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법의 부동한 층차에서의 자신에 대한 요구로 가늠하지 못하였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나 자신이 얄밉기만 하다. 나 이 바르지 못한 제자를 위하여 사부님께서 해주신 일체를 조금도 갚아드리지 못했는데 지금은 또 나로 인해 동수로 하여금 이렇게 많은 고통을 받게 하였고 중생을 구도하는 이 큰 일을 교란케 하였으니 그 죄 또한 크다. 어떻게 보완하겠는가? 원래 이 수련생이 나더러 그녀를 대신하여 이 글을 쓰게 한 것도 사부님의 배치이다. 이 문장을 쓸 때 첫 시작에는 동수의 명의로 썼는데 쓰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 해도 모두 합당치가 않았다. 법공부와 동수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다른 각도에 서서 부족한 점을 찾는 것으로 고쳤지만 그래도 안되었다. 마지막에 와서야 바르게 돌려 세울 수 있었다. 이 과정에 기실은 나를 핍박하여 자신의 집착심을 찾게 하고 나 자신을 쓰게 하였다. 마지막까지 쓰고 나서야 나는 사부님의 고생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고집스럽게 깨우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고 놀랐다! 나는 이미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사부님 안심하세요. 제가 이제 따라 잡을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과 저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중생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 드립니다. 동수님의 도움에 감사 드립니다.

문장완성: 2006년 1월 2일
문장발표: 2006년 1월 3일
문장갱신: 2006년 1월 2일 23:37:39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6/1/3/1179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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