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지린성 대법수련생
[명혜망] 박해를 받는 동안 많은 동수들처럼 나의 집이 약탈당하고 불법으로 구치되었으며 강제노동수용소로 선고가 내려지고 혹독하게 얻어맞았다. 노동수용소 당국은 내 가족으로부터 돈을 강탈해 낼 때까지 나를 풀어주지 않았다. 나는 길을 잘못 가고 있었다. 동수들의 도움과 법공부를 자세히 함으로써 나는 진상과정을 통해 두려운 마음상태를 제거할 수 있었고 계속 제고하면서 정법시기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에 나는 인간사상으로 구치소와 박해를 대했다. 석방된 후에도 내게 뚜렷한 인식이 없었다. 다시 체포되는 것이 두려워 경찰차나 경찰관을 보면 나는 우회했다. 나는 감히 다른 사람들을 방문하지 못했고 누군가 나의 문을 두드리면 나는 혼비백산했다. 나는 마음에 많고 많은 두려움이 있었다. 법공부할 때 쉽게 잠에 떨어졌으며 발정념할 때 손을 똑바로 들고 있지 못했다. 나는 일부 수련생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만 들으면 무서워했다. 나는 진심으로 중생을 구도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마치 나의 할당을 끝내는 것처럼 진상을 했다. 동수들은 나의 좋지 않은 상태를 주목하고 내게 조용한 마음으로 법공부를 할 것과 나의 근본 집착심을 들춰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대법 책을 읽고 사부님의 경문을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나는 박해를 인간 대 인간의 것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그 층차에서 올라가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미국서부국제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 중에서 일단 무슨 인심(人心)이 반영되어 나오면 곧 사악이 빈틈을 타는 곳이 되며 사악은 곧 이 일을 이용하여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나쁜 일을 한다.”
나는 한 사람이 인간의 생각을 하고 있기만 하면 사악이 곧 그를 박해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대법제자라는 것을 잊을 수 있었는가? 내가 어떻게 사악한 당에 의해 박해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도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있었는가?
사부님께서는 《미국서부국제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정말로 곤란 앞에서 염두가 아주 바르다면 사악의 박해 앞에서 교란 앞에서 당신이 한 정념이 단호한 한마디 말은 사악을 즉석에서 해체할 수 있으며, (박수) 능히 사악에 이용된 사람이 고개를 돌려 도망가도록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박해가 종적 없이 깨끗이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교란이 소실되고 자취를 감추게 할 것이다.”
이것을 반복해서 읽음으로 나의 이해가 깊어진 것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아주 분명히 하셨다. 사부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은 치명적이다. 실제로 수련은 사(私)를 위하고 ‘나’를 위하는 관념을 돌파하는 것이다. 수련자는 두려움이 없어야 하며 한 손에 부처를 잡고 있으면서 다른 한 손에 사람의 것을 잡고 있는 이것은 안 된다. 두려움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오랜 기간 사령이 세뇌한 결과이며 사악한 공산당이 저지른 많은 운동 중의 살인, 기만과 거짓말의 결과이다. 두려움은 사령에 속한 것이지 내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법리가 뚜렷해진 후 진상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나는 정말로 인간으로부터 걸어 나왔다. 지금 나는 아주 일찍 일어나 5장 공법을 연공하고, 그런 다음 진상하기 위해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한가운데로 간다. 어느 날 나의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나는 짧은 여행을 했다. 여행 중에 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삼퇴(三退)하는 것을 도왔다.
때때로 진상하는 중에 두려운 마음상태가 출현한다. 이것이 나오자마자 나는 대법으로 나 자신을 바르게 한다. 어느 날 한 친척이 내게 말했다. “당신은 전단지를 배부하고 삼퇴 성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느라고 매우 바쁘군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알고 있고 모든 일은 당신이 했다고 생각할 것이오.” 이를 듣자 나는 깜짝 놀랐다. 나의 가슴은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나는 동수들에게 내게서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도록 발정념을 부탁했고, 나는 사부님의 시 《홍음 II, “두려울 것 뭐냐”》를 반복적으로 암송했다. 한두 시간 이상이 지난 후 두려움의 물질이 용해되었다. 갑자기 이완되는 것을 느꼈고 차분해졌다. 나는 법의 위력은 거대하며 법을 따라 하기만 하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종종 중생들을 구도하기 위해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이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간다. 참석하기 전에 나는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께 나의 힘을 보강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좀 일찍 가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진상한다. 그들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이 듣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한구석으로 데리고 가 개인적으로 대화를 갖는다. 한 사람이 탈당에 동의하면 나는 다음 사람에게로 간다. 나는 일상생활의 화제에 관여하지 않으며 옮겨 다닌다. 만약 여러 친척들이 모여 있다면 나는 그들 모두에게 함께 진상하고 그들이 함께 탈퇴하도록 한다. 나는 어느 누구라도 또는 화제를 꺼내기가 어려운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내게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있다. “나는 당신 모두를 구하러 왔다.” 그들의 알고 있는 면이 이것을 인식한다.
집들이 파티에서 나는 기회를 잡아 27명이 탈당하는 것을 도왔다. 이와 같은 경우가 일곱 여덟 번 있었다. 나는 나중에 매우 행복했는데, 왜냐하면 많은 중생들이 구도되었기 때문이다. 진상하는데서 나는 이것을 간단하게 한다. 만약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나는 더욱 자세하게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 문제를 중요한 것으로 이해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또 진상하면서 나 자신을 제고해오고 있다. 과거의 두려워했던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나는 진상할 때 모든 것을 잊고 단지 이야기를 계속한다. 때로는 나는 몇 명이 탈당한 것에 집착한다. 만약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탈당을 도왔다면 나는 아주 만족하지만 몇 사람 되지 않으면 나는 하루를 허비했다고 느낀다.
법공부로부터 우리가 “구함이 없어야 저절로 얻는다.” 《시드니에서의 설법》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내면을 향해 찾으며 내가 왜 다만 소수의 사람들이 탈당했을 때는 실망을 느끼는지 이상했다. 이것이 바로 명(名)과 이(利)에 대한 집착심이 아닌가? 과시심에 대한 집착심이 아닌가? 다른 사람의 논평에서 “놀랍군!”이 나오면 나는 기쁘고 매우 유쾌하다. 실제로 사악은 과시심과 환희심에 대한 집착을 쉽게 이용한다는 것을 나는 나 자신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나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물질을 원치 않으며 결단코 이를 거부한다. 물질은 점차 해체되었다.
이것으로 나의 인식을 마칩니다. 부디 부적합한 것이 있으면 지적해주기 바랍니다.
발표일자: 2005년 12월 28일
원문일자: 2005년 1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11/30/115504.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12/28/683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