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리순낸
[명혜망 2005년 12월26일] 오늘 우리 선생은 아침 일찍 8시가 좀 지나서 나가더니 11시가 될 무렵에야 돌아왔다. 어디에 갔다 왔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예배당에 갔었다는 것이다. 그가 하는 말이 예배당에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꽉 들어찼다는 것이다. 우리 이웃집에서도 어제 저녁에 갔었는데 빈자리 하나없이 오늘보다도 더 많더라고 말하였다. 나의 선생은 흥미진진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말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둘러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중 감히 나서서 그에 대한 박해를 정지하라고 호소한 사람이 없었다. 지금 예배당을 물샐틈 없이 막아선 사람들이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만일 오늘 예수가 바로 눈앞에서 박해받고 형을 받는다면 내가 능히 그를 위해 용감히 나서서 호소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강권의 핍박으로 피해버리겠는가? 혹은 나하고는 상관없으니 내 알바가 아니라고 여기겠는가? 혹은 자신의 지금의 안일이 위협을 받을까봐 숨어 버리겠는가?
관건은 그가 혹형을 받아 가장 고통스러울때 당신이 그를 위해 호소하고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 그에 대한 박해를 정지하라는 공정한 말을 할수 있는가 하는것이다. 바로 오늘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함께 목소리를 합쳐 원흉을 질책한다면 그것이 바로 생명의 의의이다. 그러므로 관건적인 시각에라야 진짜 금을 고험할 수 있지만 평화시기엔 진짜 금 제련이 매우 어렵다.
나의 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파룬궁 탄압을 중지할것을 긴급히 호소하는 것은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줄곧 여겨왔기 때문이다. 느릿느릿 보조적인 일도 조금씩 하긴 했지만 그러나 쉼없이 부지런히 탄압정지 호소를 견지하는 일을 그가 해내기는 아주 어려웠다.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늘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나의 말속의 숨은 뜻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엄중하게 박해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탄압을 즉각 정지하라고 호소하지 않는다.그렇다면 탄압이 결속될 때를 기다리고 다른 사람들의 박해제지 호소가 성공했을 때를 기다려 당신이 다시 그때의 일을 기념한다면 얼마나 난처하겠는가. 그것은 당신이 한일이 아닌데 말이다. 시국이 변한 다음에 당신이 다시 태도 표시를 한다 해도 이미 늦었다. 그것은 이 양심의 시험앞에서, 마음의 테스트 앞에서 개개인은 모두가 자기의 가장 진실한 면모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어디에서나 사람의 마음을 떠본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충분한 기회를 주어 개개인이 모두가 이번의 이 영혼시험앞에서 진실한 일면을 펼쳐보이게 한다. 개개인에게 주는 기회는 바로 당신이 경과하는 매개 사건중에 있을수 있으며 하늘과 땅이 아는 중에 조금만 늦추어도 기회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2005년 12월 25일 씀
문장완성 : 2005년 12월 25일
문장발표 : 2005년 12월 26일
문장갱신 : 2005년 12월 26일04:27:13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12/26/11734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