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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말하다

[명혜망 2005년 11월 30일] 게으를 “라”(懒)글자는, 부수 “忄”에 이득 “뢰”(赖)를 가한 것이다. 그런데 “뢰”는 또 약속할 “속”(束)에 등질 “부”(负)자를 가한 것이고, “속”자는 묶다와 붙들어 매다의 뜻이며, “부”는 부담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뢰”는 마땅히 질질 끌다 또는 연장한다는 좋지 못한 뜻이다. 그렇다면 “라”자는, 글자 표면으로 얘기 한다면 나의 인식으로는 부담을 마음속에 묶어 놓고 몸으로 가서 완성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또 태만하고 부지런하지 않다는 것이다. “라”는 속인의 악습이며, 육체적인 타성(惰性)이다.

속인으로 말한다면 “게으름”은 안위와 편안함을 추구하고, 지불하기 싫어하고, 버리기 싫어하며, 잃어버리기 싫어한다. 그러나 이 우주중의 이치는 또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데, 지불하지 않고 어떻게 수확을 얻을 수가 있겠는가? 옛말에 의하면 ㅡ 사람이 부지런하면 땅이 게으르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한 사람은 대다수가 풍부하고 넉넉하지만, 게으른 사람은 구차하고 타락되어 있다.

그러나 수련을 놓고 말한다면, “게으름”은 수련인을 방해하는 큰 산이고, 또 관이며, 반드시 돌파해야 할 집착심인데, 마치 사람이 반드시 없애버려야 할 칠정육욕과 같다.

“게으름”은 수련 중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나타난다. 예를 든다면 연공을 게을리 하고, 법공부를 게을리 하며, 진상을 게을리 할 뿐만 아니라, 홍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게을리 하는 것이다. 물론 ” 게으름”은 수련자로 놓고 말한다면 사실 의지가 견정하지 못하고, 수련에 자신감이 강하지 못하며, 주의식이 해이하고, 나태(怠惰)한 표현이다.

현재 우리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한지 벌써 6년 남짓 되었다. 비바람 속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확실히 쉽지 않았다. 사존님께서는 정법하시는 것은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기에, 사악들의 최후의 발악은 이미 죽음에 접근하였다고 하셨다. 우리는 어떻게 육체의 게으름과 안위를 찾는 관념에 의하여 끌리고 밧줄에 묶일 수가 있는가? 우리의 신의 일면으로 하여금 정말로 “신”처럼 신비롭고 불가사의하게 하여, 일체 낡은 세력의 속박을 돌파하고, 용맹정진하여, 더욱 큰 노력으로 사부님을 도와 “3가지” 일을 완성함으로써,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고, 우리 사전의 위대한 염원을 실현합시다!

문장완성: 2005년 11월 29일
문장발표: 2005년 11월 30일
문장갱신: 2005년 11월 29일 23:45:12
문장분류:[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1/30/115532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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