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중국대륙 대법수련생
[명혜망 2005년 11월 14일] 지난 몇 년 동안, 나 자신의 수련과 또 다른 수련생들을 보면서, 善(싼)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다.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하면서, 나는 사부님께서 善에 대해 강의를 많이 하셨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善에 대한 나의 얕은 인식을 교류하고자 한다. 만약 부적합한 것이 있다면, 부디 친절하게 이를 지적해주기 바란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선(善)을 알기 쉽게 해설”》에서 말씀하셨다.
“善은 우주의 특성이 부동한 층차, 부동한 공간에서의 표현이며 또한 大覺者들의 기본 본성이다. 그러므로 한 수련자는 반드시 善을 수련해야 하면 眞,善,忍(쩐,싼,런) 우주 특성에 동화되어야 한다.”
善은 수련 중에서 우리가 계속 대법에 동화된 후 신체에 반영되는 우주의 특성이다. 수련생들의 매 생각, 매 언어 그리고 행동은 자연스럽게 善을 체현해내는데, 이것을 한 문구로 요약하면, “수련생은 선량함으로 충만 되어 있다” 이다. 그러한 진정한 善은 대법수련생들이 끊임없이 보여주는 내면 본성의 진정한 반영이다. 이것은 시간,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 善은 자비이며 다른 생명들이 이를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인간 세상에서 체현될 때, 다른 사람들은 이에 감동을 받고 변화될 것이다. 그러한 진짜 善 앞에서는, 사악한 요소들마저도 즉시 해체될 것이라 느낀다.
내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을 때 같은 노동수용소에 샤오 저우라고 불리는 한 수련생이 구치되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샤오 저우와 접촉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가 매우 순수하고 친절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샤오 저우를 “에워싸고 감시하던” 그런 사악한 사람들마저도 이 때문에 그를 존경했다. 그들은 왜 샤오 저우가 그처럼 고집스럽지만 그의 가슴이 지극히 선량한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대법에 동화된 후 대법수련생들이 보여주는 순수한 善은 수련생들을 박해하는 경찰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다. 한 번은 우리가 줄을 서 있을 때, 한 경찰이 내 앞에 있었다. 나는 그가 줄에 서 있는 대법수련생들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한 사람 한 사람씩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눈이 악의에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샤오 저우를 보았을 때, 갑자기 그의 사악한 표정이 완전히 사라지며 미소까지 지었다. 그는 편안하고 기분 좋게 변한 다음 샤오 저우에게 농담을 했다. 당시 우리는 이 경찰을 통제하고 있던 사악한 요소가 사라진 것을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이 장면은 나의 뇌리 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한순간에 이 사람의 얼굴 표정이 그렇게 극적으로 변화된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은 사부님께서 《싱가폴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善의 힘은 상당히 크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던, 그 한 층에서의 내포를 내가 진정으로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나는 또 대법수련생들의 선량함 뒤에는 불법의 위엄이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많은 사악한 환경에서, 나는 그러한 동수들을 본다. 그들은 자비와 조화로운 상태를 지키며 극단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가장 엄중하고 어려운 순간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계속 부드럽고 조용하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대법에 대해 견정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각종 방법을 사용해서 필요한 순간에 대법을 실증하고 수호한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서도 지혜와 이성으로써 사람들에게 진상하며 사악한 사람들과 경찰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존경하게 한다. 사악한 사람들은 그러한 수련생들 앞에서 사악한 행동을 전시할 수 없다. 중생들은 그러한 수련생들에게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대법에 대한 존경심과 감탄을 나타낸다. 대법에 동화된 진정한 수련생들의 순수한 자비심 앞에서, 모든 사악은 해체될 것이고 과거의 모든 원한들도 선량한 해결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사부님께서 《역시 두셋 마디를 말하다 (也三言兩語)》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주 진리(宇宙眞理)에 대한 견고하여 파괴될 수 없는 정념(正念)은 선량한 대법제자(大法弟子)의 반석같이 확고한 금강지체(金剛之體)를 구성했는데, 일체 사악(邪惡)으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케 하고, 방사(放射)해낸 진리의 빛은 일체 생명 (生命)의 바르지 못한 사상 요소를 해체했다.”
우리의 수련된 면이 아주 빠르게 분리되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서 대법에 순응하기란 쉽지 않다. 남아있는 부분은 이 인간세상의 큰 염색 독 속에서 수련되어야 한다. 만약 대법에 더 이상 동화될 수 없다면, 우리는 속인들의 환경에 남아서 깨닫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명, 리, 情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행동할 때, 우리는 속인들처럼 행동하며 또한 속인들과 똑같게 된다. 삼계 내에서의 정(情)은 우리를 난감하게 하며 그런 모순의 아주 세부적인 것에 의해서도 혼동되며 이것 뒤에 있는 교란과 진정한 이유를 근본적인 본성을 통해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곳에 주저앉아 나오지 못하고 만다. 우리의 생각이 情 속에 있을 때, 우리에게 중생을 구하려는 자비심이 생겨나오지 않거니와, 또한 대법수련생들의 善도 보여줄 수 없다. 우리에게 이러한 교훈은 너무 많다. 우리가 수련생이라는 것을 잊고, 이기적으로 우리 자신의 명, 리, 정과 쟁투에 대한 집착심을 보호하려 할 때, 우리는 속인과 싸우고, 대법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으로 중생들과 장벽을 만들어, 그들이 대법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막는다.
내가 법공부가 충분치 않았던 때를 기억한다. 수련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집중해서 공부하지 않았다. 나는 직장에서도 일부 특정한 모순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침 회의에서, 상사가 내게 갖고 있던 장기간의 오해로 나는 약간의 불만이 있었다. 대화하는 동안, 나는 명, 리, 정에 대한 집착심으로 속인이나 할 수 있는 부적합한 말을 했고 기분도 속인의 것이었다. 이때 상사도 동요되었고 나중에는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말을 하며 대법을 존중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나를 진정하게 깨어나게 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후회했다. 만약 내가 잘하지 못한다면, 그녀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일념(一念)의 차이로 선(善) 아니면 악(惡)을 생성해낸다. 내가 정말로 그들 생명의 근본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나 자신의 책임을 기억해냈을 때, 그 즉시, 상황이 갑자기 변했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며 조용해졌다. 나는 그녀의 큰 변화에 놀라움을 느끼고, 기회를 만들어 조용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었다. 나는 솔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나 자신의 단점들을 인정하고 그녀가 나를 용서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했으며 끝으로 대법에 대해 그녀의 정념(正念)이 다시 나오도록 도왔다. 나중에, 나는 내가 당시에 정념을 가졌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셨고 갑자기 일이 호전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명, 리, 정에 집착한다면, 우리는 중생들을 파괴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진정한 본성으로부터 중생을 구도하고자 하는 선량한 생각을 한다면, 그때는 중생을 구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에 부딪힐 때에 우선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가 끼치지 않는가를 생각한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함에 있어서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는가? 우리는 한 생명의 진정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고려하고 그들이 대법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진상을 이해할 수 있어서 사악한 거짓말과 비방선전에 독해되지 않고 기만되지 않도록, 그리고 대법과 정법의 관계에서 그들 자신을 바르게 위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장기간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우리와의 인연관계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고, 그리고 그들이 진정한 자신이 그에게 부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 물론, 만약 우리가 대법의 요구를 잘 따르지 못해 그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손상을 주었다면, 우리는 시간을 내서 이것을 만회해야 한다. 잘못을 인식할 때 우리가 그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 위대한 善이다.
동수들 가운데 대법수련생이 체현해내는 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로 관용하는(相互的宽容)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 원용하는 것이다 (相互的圆容).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서, 우리의 수련된 면은 대법에 동화되어 장벽이 없는 원용이다. 우리가 아직도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대법에 동화하지 못한 부분과 수련을 통해 바르게 되어야 할 아직 표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은 각종 집착, 인간 심태와 관념으로 체현되 나올 것이다. 수련생들이 함께 있을 때, 이러한 일들이 자체로 체현되어 나오고 그런 다음 수련생들은 모순을 일으키고 연달아 서로 충돌하게 된다. 모순을 갖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우리가 대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우리 자신을 수련하면서 대법을 제 일 순위에 놓을 수 있다면, 그때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쉬워질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대법을 실증하는 우리의 일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서로 협조하게 할 것이다. 실제로, 모순에서 우리의 많은 집착과 인간 관념이 폭로될 것이고 이것은 수련생들이 집착심과 근본적인 이기심을 버리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법공부
정법수련에서,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정체로서 각종 문제와 고난에 부딪힐 때, 그리고 우리의 누락을 이용해서 사악이 우리에게 고난을 만들 때,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법공부를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장기간 우리가 법공부를 잘 하지 않고, 우리가 가진 많은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당이 순수하지 못하고, 많은 누락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발정념을 할 때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하는 능력의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진상할 때도, 우리가 강한 인간 집착과 강한 교란을 갖고 빈약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느낀다면, 수련생들은 각종 모순으로 서로 교란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부탁하셨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법을 잘 공부하지 않는다면 다른 두 가지 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다른 두 가지 일을 잘 할 수 없다면, 법공부 역시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설법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공부를 더 잘할 것과 또 법공부의 더욱 깊은 내포를 설명해 주신다. 수련생들 또한 서로를 상기시켜준다. 법공부에 중요성을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쁠 때, 각종 인간의 칠정육욕으로 교란 받을 때, 게으름으로 통제받을 때, 우리는 법공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법공부를 하는 것조차 잊는다. 정말로 일부 수련생들은 오랜 시간 법공부에 충분한 주의를 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속인의 작은 문제에 매달려 나오지 못한다. 그들은 책을 들고 읽는 대신에 텔레비전이나 의미 없는 잡담으로 그들의 삶과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우리 수련생들이 정진하지 않을 때 부동한 층차에서의 대법의 더욱 깊은 내포는 우리에게 체현되지 않을 것이다.
법공부에 대한 동기는 사람의 내면 깊은 데로부터 대법에 동화하려는 욕구이어야 하며, 고난이나 말썽을 줄이려는 의도로 대법을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가 대법을 잘 공부할 때, 우리의 수련의 길은 자연적으로 더 좋아지며 더욱 안정될 것이다. 표면에서의 수련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수련을 인도하는 목적으로 설법을 하신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근본적인 내포를 볼 수도 없거니와, 또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서 그것들을 말할 수도 없다. 우리가 수련에서 제고할 수 있고 대법의 부동한 내포를 이해할 때, 그때의 우리의 느낌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이고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한 것이다.
대법수련생이 법공부를 견지하고 대법에 동화되어 가는 데는 어떤 전제조건이 없다. 사실, 이것은 우주 중의 생명에게 가장 행운이며 가장 행복한 영광이다. 내가 구치되었을 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평상시처럼 대법을 공부하는 기회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정상적인 환경에서 법공부를 귀중히 여기지 않은 것을 후회했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종종 그 기간에 꿈에서 《전법륜》을 찾았다. 나는 그런 경험을 가졌던 매 수련생이 비슷한 느낌이 들었으리라 믿는다. 석방된 후, 나는 《전법륜》과 사부님의 다른 설법 책을 다시 갖고 평상시처럼 법공부를 하게 된 것을 너무 행복하게 느꼈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법공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법공부에 충분한 주의를 돌릴 수 없다면, 그러면 법정인간의 날, 마침내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기만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 얼마를 후회한다 해도, 다시는 그러한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
생명의 의미와 목적을 진정하게 이해하고 정법수련을 지나온 대법 수련생들은 부동한 층차에서의 대법의 부동한 내포를 이해할 것이고, 대법의 위력을 이해할 것이고 우리 자신의 사명과 우리의 책임을 알 것이다. 우리는 대법을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고 법공부에 충분한 중요성을 부과할 것이다. 각종 박해 환경을 정정당당하게 걸어지나올 수 있었던 수련생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조용한 마음으로 법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대법을 우리의 가슴에 간직할 수 있을 때, 사악한 요소들은 존재할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인간의 심태와 집착심들은 우리를 쉽게 교란할 수 없을 것이고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우리를 막는 그런 관념과 장벽들은 끊임없이 제거될 것이다.
법공부를 잘할 때에만, 우리는 끊임없이 정념을 간직할 수 있다.
법공부를 잘할 때에만, 우리는 진정하게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할 수 있다.
법공부를 잘할 때에만, 우리는 우리의 최후의 길을 이성적으로 청성한 마음으로 잘 걷게 될 것이다.
발표일자: 2005년 11월 29일
원문일자: 2005년 1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11/14/114517.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11/29/673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