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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승(唐僧)과 당조(唐朝) 승려

글 : 지린수란(吉林舒蘭)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1월 18일】《서유기》는 가가호호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으로 현장(玄奘)법사, 즉 당삼장(唐三藏)이 나온다. 후세 사람들이 당승(唐僧)을 말하면 곧 그를 의미한다. 그런데 사실 당승 사제가 경을 얻기 위해 활약하던 시대에 당나라에는 부처를 믿고 부처를 수련하는 수많은 승려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당승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당시에 당나라 민중들이 비록 불법(佛法)을 신봉하긴 했지만, 서방불교국가와 비교하면 백성들의 풍속이 날로 하락하여 대승(大乘)불법의 도화(度化)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삼장경은 도리어 장안에서 십만 팔천리나 멀리 떨어진 서천(西天) 뇌음사(雷音寺)에 있었다. 현장법사는 동토의 중생들을 구도하기 위하여 의연히 진경(眞經)을 구해오는 중임(重任)을 감당하고 진경을 구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서원한다. 계절이 바뀌고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장장 14년의 세월이 걸려 서천에 도달하여 진경을 얻을 수 있었다.

《서유기》의 기재에 따르면 여래불(역주: 석가모니불을 지칭한다)은 현장이 경을 얻어오는데 공이 있다고 하여 그를 전단공덕불(旃檀功德佛)에 봉했고, 그와 함께 경을 얻기 위해 고생한 손오공(孫悟空)은 도중에 요마(妖魔)를 항복시키고 호법(護法)하는데 공이 있어 ‘투전승불(鬥戰勝佛)’에 봉했다. 또 충직하고 후더우며 아무런 원망 없이 임무를 완수한 사화상 사오정(沙悟淨)은 ‘금신나한(金身羅漢)’이 되었다. 욕심 많고 게으르며 색욕(色慾)을 전부 버리지 못한 저팔계(저오능)는 도중에 돌아가려는 마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서천까지 가는 것을 견지했고 큰 진보가 있었기에 천국에서 공양을 책임지는 ‘정단사자(淨壇使者)’에 봉해졌다. 한편 원래 용왕의 아들이었던 백마(白馬)는 축생의 몸이긴 하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을 많이 했기에 팔부천룡(천룡팔부)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당시 당나라 사원 중에는 수많은 승려, 법사, 방장, 주지들도 불법을 깊이 신봉하면서 수년 동안 경건하게 고생스럽게 수련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위와 같이 영광스런 과위를 얻지 못했다. 그 원인은 아주 분명한데, 사원의 승려들은 대부분 자신의 해탈을 위해 수련했지만 당승사제 4인은 동토의 중생을 구원하고 진경(眞經)을 얻고자 하여 머나먼 여정 중에 마난(魔難)을 감당하며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완벽하게 했다.

세간(世間) 여정 중에 비록 사제관계이긴 하지만 상사(上師)여래(如來)가 그들에게 한 배치 및 관세음보살이 친히 연화한 구구팔십일난(難)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 네 사람은 신(神)의 길에서 각기 다른 길을 걸어 부동한 과위(果位)를 성취한 수련인이며 매 사람은 부동한 위덕을 건립하였다. 그들은 각자 마난이 있었고 각자 제거해야할 속인의 마음이 있었다.

가령 서량국(西粱國 역주: 서유기에 나오는 여인왕국)을 지날 때 현장은 빼어난 미모에 기품도 훌륭한 여왕의 애모(愛慕)와 청혼을 받았지만 끝내 왕위(王位)에 연연하지 않고 홍진(紅塵)을 떨치고 도심(道心)을 굳건히 하여 서천으로 향했다. 사명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들은 서로 협조하면서 각기 책임을 다했다. 오장관(五莊觀 역주: 서유기에 나오는 도관으로 어린 아기 모양의 신비의 인삼과가 열리는 나무가 있다. 손오공이 홧김에 나무를 죽여 진원선의 노여움을 사 일행이 곤욕을 치른다.)에서 손오공은 스승을 대신하여 기름 가마에 들어간다. 그의 호법(護法)과 스승을 공경하는 마음은 실로 사람을 감동시키는데 그것도 여러 차례 출현했다. 또 대사형인 손오공이 없는 때에 말을 끌고 짐을 진 저팔계와 사오정은 수많은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요괴를 항복시키고 스승을 보호했다. 또 ‘흑송림(黑松林)’에서 난을 만났을 때 백마 역시 자신의 원래 모습을 드러내 마를 제압하고 스승을 구해내고 자신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매번 생명이 위급한 난을 당했을 때 모두 각층 신계(神界), 보살, 여래의 직접적인 구호를 받았다. 4명의 사제가 경을 얻은 역사는 또한 그들 개인의 수련의 역사이다. 진경을 얻을 때 각자 수련의 길을 끝까지 걸은 것으로 그들 각자가 마땅히 얻어야할 과위를 성취한 것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우리 대법제자들의 수련과 마주 대한 중생 및 마주 대하는 미래의 수많은 대법 수련인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사부님께서는 《북미순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하는가? 나는 전 세계에 실질적으로 70억 명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모두 합쳐도 당초에 다만 1억 명일 뿐이었다. 이는 어떤 비례인가? 그러한 사람들은 법을 얻을 수 없는가? 다음 일 보에 사람들은 여전히 수련할 것이며 또 원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개인수련에 불과하다. 첫 걸음에 법을 얻은 사람들을 ‘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부른다. 당신들은 정법시기와 함께 있으며 대법은 당신들에게 위대한 책임, 사명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장래에 법을 얻는 사람, 그들은 단지 개인수련에 불과하며 그들은 이런 영광이 없으며 그들은 이처럼 위대한 일을 만나지 못한다.”

또 우리가 상대한 세인들 역시 보통 세인이 아닌데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대법제자가 대단하다고 말하였다. 이번의 이처럼 심각한 박해 속에서도 당신들은 여전히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당신들이 구도한 그러한 생명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아주 간단하고 아주 평범한 일개인이겠는가. 만약 그가 정말로 방대한 천체에 대응된다면 당신이 그에게 진상을 똑바로 알렸을 때에 당신이 구원한 것은 바로 하나의 방대한 천체이고 방대한 생명군이며 구원한 것은 하나의 주(主), 하나의 왕(王)이다.”(《북미순회설법》)

우리는 운좋게 이렇게 특수한 시기를 만나 특수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비록 수련 중에서,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세인을 구도하는 중에서 전대미문의 마난을 겪었지만 만약 은사님과 대법의 가호가 없었다면 어찌 순조롭게 그렇게 큰 어려움과 험난함을 걸어갈 수 있었겠는가? 만약 대법제의 역사를 말한다면 중생을 구도한 한 부의 역사인 동시에 대법이 세간에서 위덕을 드러내고 우주 중에서 위엄을 펼쳐낸 역사이다. 만약 《서유기》에서 묘사한 것을 이전에 보통 세인들을 구도하기 위한 한 부의 ‘취경기(取經記 역주: 경을 얻는 기록)’라고 한다면 대법제자들은 진정으로 사존의 인도 하에 우리가 공동으로 펼쳐낸 파란만장한 한 부의 ‘인간구신기(人間救神記 역주: 인간세상에서 신을 구도한 기록)’라고 할 수 있다.

문장완성 : 2005년 11월 16일
문장발표 : 2005년 11월 18일
문장갱신 : 2005년 11월 1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5/11/18/1147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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