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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히 자아를 내려놓고 법 중에 용해되다

문/중국화북대법제자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여러 동수들 안녕하세요?

동수들이 너무나 바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이번 심득교류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에 감사 드린다. 나는 수련 중에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과 워낙 거리가 너무 먼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부님께서 《2002년 보스턴법회에서의 설법》중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대법제자(大法弟子)가 그 무슨 일을 할 때, 모두 법(法)을 가장 크게 보아야 하며 그 어떠한 일을 처리할 때에도 당신은 모두 우선 법(法)을 생각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법(法)에 동화되는 표면은 여전히 끊임없이 제고될 것을 요구하며, 당신이 끊임없이 제고될 때 당신에게 닦아버려야 할 그러한 것을 배치하여 주며, 매 한 경지에는 매 한 경지중의 상태가 있는데 만약 당신이 그 곳에 멈춰있으면 그것은 긍정적으로 정법(正法)의 형세를 따라잡지 못한다.” 나는 이것이 정법의 수요이고 사부님의 배치라면 매 대법제자는 반드시 이를 원융시켜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래에는 개인수련중에서의 일부 체험으로 여러분과 함께 서로 교류하려 한다.

나는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하였기에 마음을 어기고 보증서를 썼다. 그러나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동수(나의 부친)를 보내 나에게 경문을 가져다 주게 하고 교류하게 해 주셨다. 법을 얻은 시간이 짧고 두려운 마음이 많았기에 비록 대법이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감히 천안문에 가서 법을 실증하지 못했다. 그러나 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기에 혼자서 진상은 알렸다.

사악의 요소가 너무 많았을 때, 나는 단지 개인의 힘에만 의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정체적인 제고, 정체적인 승화”의 함의를 깊이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 마을 수련생들은 거의 법학습을 그만 두었고 서로 간에도 연계가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사람들을 조직하여 같이 학습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 누구도 떨어지지 않을텐데…”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나는 겨우 두 번밖에 연공장에 가본 적이 없고 겨우 세 사람밖에 모르니 그들이 내 말을 듣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변이된 사상은 나의 정념을 약하게 하여 그저 매 번마다 생각만 했다가 포기하게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매 한사람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계시기에 경문 《위치》에서 나의 집착을 지적해 주셨다. “사람은 곧바로 사람이라, 관건적 시각에 사람의 관념을 내려놓기가 아주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늘 일부 구실을 찾아 자신을 설득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 위대한 수련자는 바로 중대한 고험 속에서 능히 자아(自我), 속인의 일체 사상에 이르기까지 내려놓을 수 있다.” 나는 깨달았다. 우주는 정법을 하고 있고 매 생명마다 모두 자신의 위치를 바로 잡고 있으며 매 대법수련생마다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할 중임을 짊어지고 있다. 대법은 부동한 층차의 중생을 만들었다. 현재 낡은 우주 중에서 배치한 일체는 사부님께서 대궁(大穹)을 구함에 거대한 교란과 시끄러움을 조성하였다. 만약 사부님과 대법이 없다면 나의 존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보잘것없이 작디 작은 나는 대법을 얻었고 구도를 받았는바 어찌 자신의 사적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중생들의 안위를 무시하며 자아(自我)가 팽창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정법제자가 정법시기를 걸어 넘어가지 못한다면 다음 한 차례의 수련기회는 없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나의 실수로 많은 대법제자들이 정법의 진정(進程)에 따라오지 못한다면 사부님의 기대에 어긋나는것인바 이 죄는 너무나도 큰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사존님과 같이 인간세상에 있으며 위대하고 장엄한 불법을 수호하고 있다. 사부님께서 나를 그렇게 높은 위치에 올려 놓았는데 사악이 어찌 나와 겨룰 자격이 있단 말인가? 나는 단번에 마음이 확 트이며 두렵지 않고 마음속에 정기(正气)가 가득 찼다. 나는 나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비록 보도원이 아니지만 우리 마을의 매 수련생들을 찾아서 말해 보기로 결심했다.

먼저 수련생 두 명을 찾아 사부님의 경문을 그녀들에게 주었다. 교류을 하자 그녀들은 비록 연공과 법학습은 하지 않고 있지만 대법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하였으며, 지금 외부의 정황이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들은 “수련생이 하루 빨리 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러면 일년이란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을텐데…”라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집체학습의 환경을 개척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첫 번째 법학습 소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비록 세사람이었지만) 그후 나는 속속 기타의 노년 수련생들을 찾아갔다.

집의 환경이 다르고 동수들의 마음도 부동하였다. 어떤 사람은 수련을 포기했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집에서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고 했으며, 또 자식들에게 연루가 될까봐 두려워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사부님의 경문을 보고는 나에게 돌려 주었으며 사부님에 대해 의심까지 하는 것이었다. 이 2년 남짓한 동안 내가 계속해서 그들을 찾아갔기에 그녀들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싫어 했으며, 어떤 사람은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줄까봐 나만 보면 머리를 숙이고 지나갔다. 그녀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억울하여 전혀 마음이 평형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내가 너무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지금 얼마나 바쁜지 아는가? 늘 당신들을 찾아다니느라 내 시간을 얼마나 지체하는지 아는가?”라고 생각했다. 화도 나고 마음속으로 그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사부님께서는“만약 수련인의 사상이 법을 이탈한다면 사악은 파고들어 올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내가 제 때에 안으로 찾지 않고 표면현상에 집착할 때 사악은 부단히 나의 집착을 확대시켰으며 또 자신에게 집착하게 하였다. 집착스레 사람의 마음으로 법을 실증하는 속에서 부딪친 문제를 고려했는데 결과에 집착할수록 더욱 조급해 졌으며, 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조급해 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불평을 부렸고 법학습을 홀시하였으며 그들의 접수능력도 고려하지 않고 내가 이해한 이치를 억지로 받아들이게 했다. 명(名)을 구하는 마음이 있어 자그마한 일에도 화를 냈다. 참, 나는 왜 법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지 않는지? 결과 실망하였고 선심(善心)도 없어졌다. 결국 사부님의 설법이 나의 마음속 매듭을 풀어주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절대 실망하지 말라. 누구에 대해서든지 모두 자비롭게 이처럼 해야 하며 강철을 용해시킬 자비가 있다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2003년 정월 대보름날 설법》

그후부터 나는 나자신의 씬싱을 수련하는데 주의하였으며 부단히 자신을 바로 잡았다. 동시에 그녀들에게 개인수련과 정법수련이 다름을 알려주고 대법의 초상적인 힘과 동수들이 정념으로 사악을 없애던 예를 들려주었다. 동시에 발정념을 많이 하여 그들의 정진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을 없앴다.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속속 집체학습에 참가하였고 이 환경속에서 점점 이지적이고 명석해졌으며 정념도 점점 강해졌다. 진상을 이야기하는 중에 법을 얻은 신수련생도 있으며 신수련생도 세 가지 일을 함에 정진했다. 또 4,5명의 사람이 법을 학습하고 연공을 하였다. 모두들 집착심을 버림에 노력하였고 신노수련생들은 공동으로 집체법학습의 환경을 개척하였는데 지금까지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비록 이 동안 각종 교란형식이 있었지만 우리 매 수련생들은 모두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았다. 나는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에 따라 나간다면 꼭 틀림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수련과정 중에서 나의 용기, 지혜, 능력에는 모두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로운 심혈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자신이 오직 부단히 정진해야만 비로소 사부님께서 맡겨준 세 가지 일을 잘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응당 해야하는 것이다.

처음 진상을 이야기 할 때는 진상자료를 얻을 수 없어서 붓으로 글을 썼다. 나는 비록 붓글씨를 배운적이 없었지만 사부님을 굳게 믿고 사부님께 나를 가지해 줄 것을 빌었다. 결과 쓴 붓글씨는 보기도 좋고 정기(正气)가 가득 했다. 그때 나의 아이(3세)가 어리기에 나는 낮에는 아이를 데리고 진상을 이야기 하였고, 저녁에 나갈 때는 아이를 잠재워 놓고 나갔는데 진상의 일을 하고 돌아와도 아이는 여전히 달게 자고 있었다.

2002년 여름에 있었던 일로 기억된다. 그날 집에 돌아오니 12시기에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진상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진상을 하기 편리하기에 노년동수들에게는 우리 마을에서 하도록 하고는 나는 다른 마을로 향했다. 그 마을에는 밭에 전봇대가 많기에 진상자료를 붙이기 좋았다. 내가 한창 진상자료를 붙이다가 머리를 돌려보니 한 중년남자가 눈을 부릅뜨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즉시 정념을 내 보냈다. “다른 공간의 일체 대법을 박해하는 사악을 해체한다. 법정건곤, 사악전멸.” 그리고는 계속 붙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계속 붙이는군, 붙이는 것이 무엇이요?”라고 했다. 나는 그때 두려운 마음이 없었으며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일 하러 일찍이 나오셨네요. 저는 파룬공을 연마하는 사람이예요. 내가 붙이는 전단지는 ‘법륜대법은 좋다, 법륜대법은 전 세계에서 홍전(洪传)되고 있다”는 내용이예요.. 아저씨 여기에 와서 앉으시겠어요?” 나는 “그대로 갈 수 없는바엔 이 아저씨께 진상을 이야기 해주자. 모두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고 생각하였다.

그 아저씨는 내가 대법을 연마한다는 말을 듣고 “알았네, 자네 여기에 와 앉게. 도망칠 생각을 하지 말고.”라고 했다. 나는 태연히 그의 옆에 앉으며 웃으며 말했다. “저는 도망칠 생각을 한적이 없어요. 전 나쁜 일을 하지 않았어요. 아저씨, 마음을 놓으세요. 우리 대법을 학습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예요. 나는 살인하지 않을 것이며 천안문분신사건도 모두 파룬공을 모함하기 위해 거짓으로 만들어 낸거예요. 파룬공이 나쁜 것이라면 어찌 전 세계 50여개 나라에서 사람들더러 연마하게 하겠어요? 우리가 진실한 말을 하기에 소인(小人)의 질투를 받아 박해를 받는거예요.” 나는 그 아저씨에게 나의 부친이 어떻게 박해를 받았는가를 말해주었다.

그 아저씨는 나의 말을 들으며 눈빛도 온화해 지고 경계심도 적어졌으며 또 어떤 문제를 묻기도 했다. “파룬공이 좋다면 왜 탄압을 받는가? 당신들 사부는 왜 외국으로 도망갔는가? 당신이 붙이는 이것을 누가 시킨 것인가?”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말했다. “역사상에서 악비는 나라에 충성했지만 어째서 진회의 모해를 받아 풍파정에서 비참히 죽었나요? 문화대혁명중에 팽덕회나 류소기는 당을 반대했나요? 팽덕회는 진실한 말을 하였기에 박해를 받은거예요. 이 세상에는 바른 것이 있으면 사한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는 법이예요. 우리 사부님은 97년도에 벌써 외국에 거주하였으며 불법을 전 세계에 널리 전하셨어요. 나는 법을 배웠기에 몸도 좋아지고 가정도 화목해졌어요. 지금 우리 사부님께서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데 나는 양심에 어긋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좋은 것은 곧바로 좋은 것이예요. 저의 생각에는 천하의 어느 부모나 모두 자식이 자신한테 효성하여 만년을 잘 보낼것을 희망할 거예요. 우리 사부님은 곧바로 우리더러 부모님께 효도하고 다른 사람을 착하게 대하라고 가르쳤어요. 법륜대법은 불법(佛法)이예요. 사람이 불법을 박해한다면 하늘의 징벌을 받을 것이고 보응을 받을 것이예요. 선하면 선한 보답을 받는거예요. 아저씨도 좋은 사람이예요. 아저씨는 오늘 대법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나중에 꼭 복을 받을 거예요. 아저씨도 아저씨가 들은 이 진상을 친척친우들한테 알려주세요. 나는 그들이 진상을 알기를 희망해요. 그리고 집식구들한테 거짓말 선전을 믿지 말라고 알려주세요. 천리(天理)는 제일 공평한거예요. 신과 부처가 좋은 사람을 보우할때 꼭 하나의 나쁜 사람도 빠뜨리지 않을거예요. 아저씨는 아마 모를거예요. 지금 많은 대법을 박해하고 대법제자를 적발한 사람들이 이미 보응을 받았어요. 나의 이 말은 아저씨를 위협주는것이 아니라 진정 아저씨를 위해서예요,”

나는 그 아저씨와 한 시간가량 이야기 하였는데 그는 정말로 명백해졌다. 아저씨는 “오늘 자네는 나를 똑바로 만났네. 인젠 그만 붙이고 아직 사람들이 적은 기회를 타 빨리 돌아가게. 이 부근에는 모두 순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감시가 심하네.”라고 나와 말했다. 나는 “아저씨 감사해요. 좋은 사람은 꼭 좋은 보답이 있을거예요.”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생명이 구원 받게 되어 기뻤다. 나는 나머지 진상자료를 다 붙이고는 사부님의 보살핌하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그 일념(一念)에 달렸다고 말한다.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법제자가 진상을 이야기 하는 과정에 오직 마음이 바르고 념두가 바르다면 사부님은 꼭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후부터 나는 각종 기회를 이용하여 대법을 실증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나의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갖은 노력을 기울여 대법의 아름다움과 사부님의 자비를 중생들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 힘썼다.

“구평”이 발표됨에 따라 정법은 또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는데 이 역시 사부님께서 배치한 대법제자를 연마하는 과정인 것이다. 오직 우리 대법제자들이 부단히 각종 관념의 교란을 타파하고 가상에 미혹되지 않으며 발정념을 많이 하여 악당의 사령(邪灵)을 없애며 착실하게 꾸준히 견지해야만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으며 사부님의 간절한 기대와 고도(苦度)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진상을 이야기 하는 중에서 발정념하는 것은 극히 관건적이며 중요한 것이다. 다른 공간의 사악이 세인들에 대한 조종과 공제를 청리하면 사람들의 명백한 일면은 우리가 그를 진정하게 위함을 인차 알아차리게 되며 따라서 더 쉽게 구도될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여야 정념을 유지할수 있는가? 오직 법을 많이 학습하고 잘 학습하며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속인사회에서 형성된 각종 집착심과 욕망을 버려 자신을 순정하게 하여야만 비로소 자신으로 하여금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 사악을 해체하고 공능을 운용하여 우주중에서 법을 떠난 모든 것을 정화(净化)할 수 있다. 당신이 거기에 앉았을 때만이 정념을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곳곳에서 모두 정념을 내보내는 것이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간고하고 위험한 고비를 무수하게 넘으며 서약(誓约)을 지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있다. 다른 한 방면, 낡은 우주중의 일부분 신들은 사존께서 대궁을 다시 바로 잡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의 사심을 깡그리 나타냈는바 자신의 이미 있은 배치를 개변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반영되여 인류표면 공간에서의 각종 가상을 조성하였으며 또 이 배치는 사부님의 정법에 교란을 조성하였는데 그 근본목적이 바로 중생을 회멸시키는것이다. 이는 정법중에서 사부님과 대법제자들의 승인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대법제자들이 불법신통을 운용하고 발정념을 하여 사악을 없애는 이것은 사부님의 말씀에 따른것이고 하늘의 뜻에 따른 것이다. 이는 우주중생을 책임지는 표현이며 크나큰 자비이다.

내가 이 심득을 다 쓰고나니 이미 새벽 3시 40분이 되었다. 원래 이미 다 쓴 원고는 교란하에 불에 타 없어졌다. 각종 집착은 나를 교란하여 심득을 쓰지 못하게 했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나의 많은 집착을 찾았다. 나는 이것들을 승인하지 않으며 교란이기만 하면 없애 버렸다. 나는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을 따라 나갈 것이다. 정념을 견정히 하는 본신이 사악을 해체하는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를 드리는바 나로 하여금 사유가 더 명석해지게 하였다. 나는 이것이 이 시각 내가 응당 해야 할것을 한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미국서부국제법회설법》에서 하신 한 단락의 법을 아래에서 같이 학습하기로 하자. “… 때문에 한 수련인으로 말하면, 능히 자신을 견정하게 할 수 있고, 능히 무엇이든 모두 동요시킬 수 없는 한 가지 견정한 정념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마치 금강처럼 반석같이 견고하여 누구도 움직일 수 없으면 사악마저 보고서 두려워한다. 만약 정말로 곤란 앞에서 염두가 아주 바르면, 사악의 박해 앞에서, 교란 앞에서 당신이 말한 정념이 단호한 한마디 말은, 사악을 즉석에서 해체시킬 수 있으며, (박수) 능히 사악에게 이용된 사람이 고개를 돌려 도망가도록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박해가 종적 없이 깨끗이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교란이 소실되고 자취를 감추게 할 것이다. 바로 이렇게 바른 믿음(正信)의 일념을, 누가 이 정념을 지켜낼 수 있으면, 누가 최후까지 걸어갈 수 있으며, 누가 대법이 만든 위대한 신이 될 수 있다. (오랫동안 박수)”

문장 완성: 2005년 10월 28일
문장 발표: 2005년 11월 03일
문장 갱신: 2005년 11월 02일 23:16:55
문장 분류: 【수련마당】
원문 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5/11/3/1133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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