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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리즈와 함께 했던 날들을 회상하다

글 / 랴오닝성, 선양시, 수련생

[명혜망] 대법제자 선리즈(남)는 2002년 3월 3일 청두 610 사무실의 한 경찰에 의해 고문 다한뒤 사망했다. 이 청년은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념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죽음에 이르는 고문을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중국에는,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살인과 고문이 매일 일어나고 있으며, 공산주의 국가의 잔혹성으로 가득 차 있다. 수없는 가정이 박해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으며,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그들의 부모를 잃었고, 수없이 많은 부부들이 헤어졌다. 나는 선리즈와 함께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던 날들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1998년 11월에 선리즈를 알게 되었다. 선양 204 광장에서 연공을 하고 있던 어느 날 키가 큰 한 청년을 만났다. 그날 이후로 그를 알고 지냈는데, 선리즈는 유머가 많고 활발했으며 낙천적인 대학원 학생이었다.

1999년 7월에, 장 정권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선리즈는 당장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다. 선리즈는 여러 번 내게 전화를 걸어 베이징으로 갈 것을 촉구했다. 나는 초기에는 무거운 인간의 마음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법공부를 통해서 점차 정념을 강화하고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1999년 8월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베이징에 도착하자 선리즈와 다른 수련생이 기차역으로 나를 마중 나와 있었다. 톈안먼으로 가는 도중 선리즈는 길가에서 플라스틱 조각 하나를 집어들더니 내게 가방에 넣어두라고 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 알지 못했다. 밤에 우리가 둥단 공원에서 쉬고자 했을 때에야 이 플라스틱 조각이 우리가 잠잘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우리는 땅은 침대로 하늘은 이불로 삼았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셔서 9월 밖에서 잠을 잤는데도 춥다고 느껴보지 못했고 비에 젖지도 않았다. 경찰들이 종종 수색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하룻 밤에도 여러 번 잠자리를 바꾸어야 했고 종종 체포되기도 했지만 매번 우리는 정념으로 벗어나올 수 있었다.

당시 선리즈, 나 그리고 다른 많은 수련생들은 정법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랐다. 우리는 단지 걸어 나와야 하고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다. 그래서 법공부를 한 후 종종 톈안먼 공장이나 공원에서 전국에서 온 수련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환경이 어려웠기 때문에 일부 수련생들은 집으로 돌아가거나 열성이 부족한 것이 나타났지만, 선리즈는 항상 행복했고 우리를 격려해 주었다.

후에 선리즈는, 우리가 함께 어울리게 되면 서로 의지하려는 강한 집착심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우리에게 서로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행동할 것을 제안했다. 그런 뒤 나중에 선리즈가 공원에서 연공을 하고 있을 때 경찰이 그를 납치하여 선양으로 보냈다.

뒤에 우리가 함께 감금되어 있던 선양 구치소에서 나는 그를 여러 번 보았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그에게서 직접 소식을 듣지 못했다.

발표일자: 2005년 11월 10일
원문일자: 2005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0/29/113384.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11/10/667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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