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다롄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0월 16일】
1、새로운 불상을 개광하는 것에 관해
전 한동안 다롄(大連)의 많은 동수들이 다롄시 XX절 불상의 개광의식에 참가하였다. 의식에 참여한 사람이 이렇게 묘사했다. “200여명 대법제자들이 산허리를 따라 한 줄로 앉았는데 아주 장관이었다. “열려서 수련하는 한 동수의 말에 의하면 절간의 여우 두 마리를 청리했고 사부님께 개광을 요청한 후 불상에는 또 정말로 사부님의 법신이 계셨다고 한다. 많은 동수들이 가서 향을 피우고 꿇어앉아 절했다. 이 일은 현지에서 영향이 아주 컸다. 후에 새로운 절간이 건립되기만 하면 동수들이 모여 개광하러 달려갔다. 말로는 새로운 절은 모두 대법을 위해 건설된 것이고 낡은 절은 과거를 상관하지 않으며 사부님께서 대여산에서 불상에 개광을 하신 것은 바로 우리가 그대로 따라 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자 중에는 또 지역 책임자가 있었고 자료를 만드는 동수 등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행위는 이미 대법에서 벗어났고 사부님의 우리에 대한 요구를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절이든 낡은 절이든 지간에 모두 속인이 만든 절이고 속인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수련하는 형식은 절 혹은 사원 이런 형식이 필요 없으며 대법은 무형이다. 사부님께서 대여산의 불상에 개광하신 것은 대여산에 가서 부처에게 절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며 더 많은 중생들을 구도하기 위함이며 중생에 대한 자비이다. 사부님께서 전법(傳法) 초기에 손으로 사람에게 병을 치료해주신 것은 대법을 널리 전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절대로 사람에게 병을 치료해주면 안 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수련 중의 사람이고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이 아니시다.
제자로써 반드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대법이 요구한대로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지금 긴박하게 해야 할 일이다. 법 실증과 관련된 것은 우리가 가서 하고 무관한 것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자기 집안의 불상에 개광하는 것은 우리가 대법수련자이기 때문이며 사부님께서 우리에 대해 자비하시어 우리를 도와 수련 중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때문이다. 근데 우리는 또 어찌 함부로 곳곳에 가서 절 안의 불상에 개광할 수 있는가? 온 사람이 구하는 것이 또 무엇인가? 만약 대법수련을 위한 것이 아니면 이는 사부님에 대한 큰 불경이 아닌가? 수련하지 않는 친구의 불상이든 절간의 불상이든 마주하는 것이 모두 속인이며 단지 절하고 구하는 사람이 다소 다름에 불과하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개광”에서 법리를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이런 일에 참여한 동수들이 법공부를 제대로 잘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집착심에 이끌려 법 실증과 상관이 없는 일을 한 것인지. 여기까지 쓰고 나니 머리 속에 갑자기 다롄지역에 최근에 대 체포가 나타나 손실이 침통했던 일이 생각났다. 전날 두 명의 다롄수련생이 고향에 가서 새 절간에 개광하려다가 의외로 가족에게 매 맞고 욕을 먹었고 개광을 하지 못했다. 어떠한 우연한 일이 없다. 오늘날 세 가지 일에 이탈된 모든 일은 우리의 길이 이미 빗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법 실증과 중생구도에 손실을 조성하게 된다. 우리는 마땅히 더 많이 자신을 찾고 누락을 미봉해야 하며 낡은 세력의 일체 요소를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2、순정한 수련자의 마음으로 대법을 실증하자
진상자료를 만들려면 자금이 필요하다. 우리 대법제자들이 자신의 자금수입을 사용하는 것은 노동소득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며 이는 우리가 한 개의 순정한 수련자의 마음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고 순정한 자비한 마음으로 세인을 구도함이다.
일부 수련생은 수련의 단계가 다르다고 여기는데 지금 땅에 있는 돈을 보면 주어서 대법에 선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는 주어온 전화카드를 협조인에게 주면서 대법에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며 잃어버린 자에게 덕을 쌓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정법이 어느 단계에 왔든지 간에 수련인은 여전히 큰 뜻을 품고 사소한 것에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한 수련생이 무슨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행위 자체가 오히려 얼마나 많은 사람마음, 집착, 사람의 관념, 사람의 좋지 않은 마음이 속에 뒤섞여 있는가?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임을 잊지 말라, 우리는 우선 좋은 수련자여야 하고 대법에 부합되는 제자여야 비로소 법을 실증할 수 있다. 속인이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행위는 속인마저 모두 주시하고 있다.
대법수련자는 어디에서나 모두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며 속인과 다른 더욱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법을 실증한다는 것을 구실로 삼아 아직까지 제거하지 못한 속인마음을 덮어 감춰서는 안 된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오로지 자신을 진정하게 법속에 용해시키고 자신을 잘 닦아야 한다. 이로써 당신이 체현해낸 순정한 일체가 바로 가장 좋은 법 실증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부님의 《대뉴욕지역 법회의 설법과 해법》의 한 단락 해법을 적어 함께 깨달아보려고 한다.
문: 사부님께서는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어떻게 하면 돈을 사용하고 물건을 사용하는 방면에서 바르게 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해줄 수 있습니까?
사부: “오늘날까지 이 일체는 이미 곧 결속되는데 우리는 어떠한 한 개의 국가, 어떠한 한 개의 정부, 어떠한 한 개의 조직, 어떠한 한 개의 회사의 돈을 한 푼 가진 적이 없으며 우리의 모든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가 자신의 월급수입으로 자신의 소득으로 한 것이다.” “우리 일반적인 수련생들은 자신이 법을 실증함에 있어서 자신의 수입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원칙상 모두 문제가 없는 바, 모두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수입으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위덕이다…….나는 여태껏 당신들에게 무슨 회비라든가, 마치 종교처럼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런 것을 모두 해서는 안 된다.”
“당신들의 길을 여러분은 이미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아주 좁은 것이다. 당신이 약간 빗나가기만 한다면 당신은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되지 못하게 된다. 오직 한 갈래 매우 바른 길 만이 우리들이 능히 갈 수 있는 것으로 조금만 빗나가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가 요구한 것이며 그것은 미래 우주 중생의 생명이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우주는 여러분이 정법 중에서 누락이 생김으로 인해 약간의 편차(偏差)라도 나타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모든 매 한 걸음을 잘 걷는 이것은 모두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두 가지 현상에 대해 현지에서 아직까지 서로 다른 인식이 존재하기에 이것을 써내어 동수들이 함께 교류하기를 바라며 대법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기 바란다. 자비한 시정을 부탁한다. 허스!
문자완성:2005년 10월 06일
문장발표:2005년 10월 16일
문장갱신:2005년 10월 15일 23:08:58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0/16/11245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