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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스승으로 하여 두려워하는 마음과 죽음에 집착하는 마음에서 걸어 나오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9월 20일] 수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부단히 각종 집착심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부분 동수들은 두려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아직도 정도 부동하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더욱이 대륙의 사악의 중심지역 혹은 개별적인 지방의 개별적인 동수들 마음속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직도 매우 강하게 존재하고 있다.

“7. 20” 초기, 수련생들은 거의 모두가 “두려워하는 마음”의 고비를 넘어야 했다. 그때 “두렵지 않다”고 말한 동수들은 다수가 이미 법리로부터 인식했었다. —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그러나 법을 얻은 후, 처음으로 그처럼 큰 난에 봉착했기에 짧은 시간 내에 그 “두려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은 많은 동수들로 놓고 말하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 말한다면 도리는 비록 말할 수 있으나(그러나 진정으로 완전히 법에 동화하지 못했음) 마음은 안정되지 못했다.

예를 들면 — 어떤 사람이 “뱀을 무서워했다.” 그는 뱀의 로템(图騰), 장난감 뱀, 뱀의 그림만 보아도 무서워했고 심지어는 뱀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불안해했다. 무엇 때문인가? 그 본인도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려워” 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 그리 무서운지 말조차 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사악에 직면 했을 때 어떤 사람은 뱀을 본 그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처음 뱀을 보게 되면 그 누구나 놀랄 수 있다. 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 것으로 심지어는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나 한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들이 “법을 실증하고 사악을 폭로”하는 지금에 와서 아직까지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였다면 지체하지 말고 법리상에서 원인을 찾아보아야 한다.

대법 수련은 세인의 그 어떤 물건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불가는 공(空)을 말하고 도가는 무(無)를 말한다.”, “무루를 진공으로 하다.(無漏爲眞空)” 우리들이 정녕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다”를 할 수 있을 때, 세간에서 아직도 그 무엇을 집착할 가치가 있단 말인가?

“죽음”에 대해 말해보자. —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도 역시 정확한 견해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대법제지이므로 걸핏하면 “죽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자살”하는 것을 “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아마 어떤 동수들은 아래와 같이 말 할 수도 있다. — 어느 누가 죽으려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사악이 우리에게 무리한 폭행을 감행할 때 마음속으로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 “대법제자는 사악의 폭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때리려면 때려라, 때려 죽여도 나는 전화되지 않겠다.” 등 유사한 생각들을 한다. 그러나 그 당시 무엇 때문에 아래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가?— 나는 이미 속인을 멀고도 멀게 초월하였다. 사람들이 우리들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쁜 사람들이 정념이 충족한 대법제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생명)에 대하여 폭행을 감행할 때 왕왕 손이 아직 내려오기도 전에 도리어 그 악인이 보응을 받곤 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그 악인들이 우리를 때리게끔, 심지어 우리를 때려죽이게끔 용허 한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정념이 부족하고 대법에 대한 이해가 명확하지 못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대법제자이다. 사부님께서 나를 관리 하신다. 나의 수련의 길은 사부님께서 안배하는 것이지 너희 낡은 세력과 악당악령이 안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과 그 어떤 관계도 모두 단절하며, 내가 이전에 낡은 세력과 맺은 일체 서약을 승인하지 않는다. 나는 금생 금세에 법륜대법 중에서 원만하겠다. 그 누구든지 나의 대법수련의 길을 가로 막고 수련을 간섭한다면, 그가 곧 죄를 범하게 되며 빚을 배로 갚아야 한다. 우리는 또 동시에 발정념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말 안 되면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실 것을 요구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그 어떤 큰 고비도 모두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여러 동수들 생각해 보라. 우주중의 아무리 높은 생명이라 할지라도 대법이 그의 존재를 허락해야만 비로소 생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대법이 중생의 생명을 주었다. 사악이 존재함은 정법, 이 일이 아직 결속되지 않았고, 그것들이 아직도 낡은 세력의 안배 하에 계속 박해자의 역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들로 하여금 도리어 반 박해 중에서 사악을 깨끗이 소멸하고 새로운 우주의 정각으로 수련되게끔 하기 위해서 이다. 일단 정법이 결속되면 사악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철저한 훼멸이다. 때문에 대법제자와 대법제자를 교란하는 인소와의 관계를 똑똑히 해야 한다. 대법제자가 어찌 자신의 수련의 길에서 명석하지 못하여 자신의 미래를 사악에게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좀 과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수련인 이므로 내가 한 말이 정확하지 못하다면, 동수들이 나에게 지적하여 줄 수 있다. 만약 내가 한 말이 정확하다면, 여러분들은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낡은 세력에게 그 어떤 틈도 주지 말아야 하며, 마음은 반드시 바르게 하고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 한다. 수련의 길에서 우리 모두 다 같이 정진합시다!

문장완성: 2005년 9월 19일
문장발표: 2005년 9월 20일
문장갱신: 2005년 9월 20일 1:26:44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9/20/11077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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