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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은 나에게 생활의 즐거움과 자유를 주었다

글 / 대만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9월 23일] 어릴 때부터 늘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갈까? 라는 생각을 했다. 전설에 나오는 천사가 있는 천당에 가는 걸까 아니면 ‘목련이 어머니를 구하다’의 영화 속에 나오는 그런 무서운 지옥일까? 사람이 죽은 후 다시 기어 일어나서 숨을 쉬며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공부를 하고, 사업을 찾고, 친구를 사귀고,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이런 저런 인생 백태를 겪어 왔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게 된다. 사람은 왜 사는 것이 이다지도 가련한가? 이 모든 것이 또 무엇 때문에 이다지도 공평하지 못한가?

내가 출근하는 회사는 열악한 작업환경이다. 기름 짜는 공장에서 내보내는 연기에 가공제품이 오염될까봐 모든 창문을 꽁꽁 닫아버렸고, 또 전기세를 절약하기 위해 일년 내내 환기창문 하나만 열어놓아 거의 밀폐되다시피한 곳에서 일하다 보니 나는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회사에 들어서기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질식할 것만 같았고,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사지가 나른하며 호흡할 방법이 없어 침대에 쓰러져 꼼짝 못했는데 마치 살아있는 시체였다. 게다가 가사일과 집의 경제적 압력으로 기억력은 점점 쇠퇴해 지고 중년에 일자리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몸과 마음의 시달림은 거의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동안 병원에 가서 두 번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병도 검사해 내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 나의 인생도 이젠 끝나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짧디 짧은 몇 십년 인생에 아무런 즐거움도 맛보지 못했는데 도리어 여기에서 정지되어 버린단 말인가? 내가 간 후에 두고 간 일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양의가 안 되니 중의를 찾았고, 약을 먹어도 늘 재발하여 아무 소용도 없었다. 집 식구들은 여전히 출근하고 학교에 가고 하였는데 그저 하루하루 겨우겨우 살아 갔다.

어느 날 외할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둘째 오빠와 함께 고향에 가서 장례식에 참가하려고 오빠를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수소문 끝에 오빠네 부부간이 파룬궁을 배우느라 바삐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파룬궁이 신체에 대해 아주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집에 오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전법륜』 책을 샀고 이튿날에는 연공장에 나가 동작을 배웠다. 바로 이렇게 나는 파룬궁 수련의 길에 들어 섰다. 오늘까지 5년이 넘는 동안에 약도 먹지 않았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으며 즐겁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해산 후 조리를 잘하지 못하여 생겼던 산후풍도 사부님의 자비로운 정화로 모두 나았고, 인생에 대한 일체 의혹과 불만은 대법책에서 모두 해답을 얻었다. 사람의 생로병사 및 운명에 대한 인식도 어려운 수련 속에서 전변되었고, 더욱 진실한 감수는 사부님께서 이야기 해주신 인생의 길을 개변하려면 오직 수련 뿐이다라는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 드린다. 우리를 위해 그렇듯 많은 것을 감당하셨고 매 번 난관에 부딪혀 어려울 때 사부님께서 중생을 위해 감당하시는 일을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을 걷잡을 수가 없다. 나의 깨우침이 차(差)하여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길을 따라 대법수련의 길로 걸어갈 수 있었으니 그 감격 또한 크다.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여 사부님을 바싹 따르세” 의 법이 줄곧 나의 머리 속에 떠오르며 넘어져도 괴로워 말라고 일깨워 주는 듯 하다. 결정한 길을 꼭 끝까지 견지하여 걸어 가련다.

문장완성: 2005년 9월 22일
문장발표: 2005년 9월 23일
문장갱신: 2005년 9월 23일 01:45:39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9/23/1110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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