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8월 19일】(앞에 이어서)
8.경계심은 선한 마음이 아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나한테 진상을 제작하는 방면의 일을 물었는데 나는 안전을 고려하여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후에 나는 이 일이 감각이 좋지 않은 것을 느꼈지만 어째서 그런가를 몰랐다. 오랜 후에야 나는 무의식중에 한 동수에게 자료를 만드는 일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그는 매우 불쾌해 하면서 강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당시 나도 몹시 불쾌했으나 그러나 그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며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법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최근에 가부좌를 하던 중 갑자기 깨닫게 되었는데 –우리 모두가 틀렸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상대를 경계하고 있었으며 반감을 나타내는 것이 표현되었기에 악한 것이며 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어느 기점에 서서 다른 동수에게 자료에 관한 일들을 알려주지 않았는가? 하나는 자료점을 책임지는 각도에서 였으며 말하자면 법을 위해 책임지는 것이며 또 하나는 수련생을 위해서였는데 일단 그가 수구를 잘하지 못하거나 혹은 사악의 위협에 못이겨 자료점을 알려주면 가능하게 그가 짓는 업은 대단히 클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원인으로 하여 동수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은 동수에 대한 제일 큰 선(善)이며 우리는 제일 안전한 방법에 따라 한 것이다. 안전 원칙에 따라 했으며 수련생을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나는 원래 내가 불편했던 것은 “악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계심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선념으로 대해야 한다.
9.자책에서 벗어나다
나는 이전에 나 자신의 개인 수련과정에서 제일 엄중하다고 하는 착오를 범했다. 그러고 나서 아무리 애써도 다시 새롭게 정진하기 어려웠으며 이것으로 하여 나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후에 와서야 나는 이것은 사악이 사상업을 통제하여 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내가 그 당시 그것을 이기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더는 그것들의 통제가 달성하지 못하게 하며 그것을 승인하지 않으며 잘하려고 했으며 또한 잘 할 수 있을리라고 믿었다. 나는 꼭 그것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때로부터 엄중한 자책속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현재 나는 어떤 동수들이 이전에 있은 착오 때문에 줄곧 자책속에 빠져있는 것을 보았는데 나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된다. 우리가 틀릴 수 있지만 그러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며 사부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데 만약 우리가 기회를 놓쳐버리면 그것은 정말로 사악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법회에서의 설법》“내가 당신이 틀렸다고 하면 그러면 당신은 또 하나의 자책속에 빠지며 또 다른 하나의 극단으로 가서 집착을 하는데 마가 틈을 타서 당신의 옳지 못한 마음을 이용하여 당신을 교란한다.”
《2004년 뉴욕국제법회에서의 설법》“사악은 당신의 정을 이용하여 더욱 당신을 박해 할 것이며 당신의 욕망으로 하여금 더욱 중하게 집착하게 하므로서 당신이 잘 가늠하지 못하여 비뚠길로 가게 한다. 사부는 이것을 보았다. 만약 당신이 잘 할 수 있고 잘 수련할 수 있다면 이 죄는 모두가 사악의 것이며 만약 당신이 아직도 잘 하지 못한다면 이 죄는 당신의 것이다 ”
《북미순회설법》“그러나 표면적으로 사악한 생명의 조종에 의하여 일부 나쁜 짓을 한 것은 집착심이 사악한 생명에 의하여 이용당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대법제자의 본질을 빼낼 것이다. 하지만 대법제자의 표면을 조종하여 나쁜 짓을 하게끔 배치한 낡은 세력과 그러한 낡은 세력에 이용되어 직접 대법을 박해한 사악한 생명은 모두 과위가 없어져 버리고 일체 능력이 없어져 버리게 되며, 그에게 박해 당한 대법제자의 업력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여러 가지 관념으로 구성된 그 부분의 사람 몸에 밀어 넣는데 이 부분의 사람 몸은 신진대사 중에서 모두 제거되게 된다. 즉 그것들에게 이용당한 그 부분이 밀어 넣어진 후 함께 지옥으로 떨어진다. 왜냐하면 정말로 나쁜 짓은 낡은 세력이 사악한 생명을 이용하여 사람의 업력과 관념을 조종하여 한 것이기 때문에 나의 제자로 하여금 당초에 어떻게 왔으면 어떻게 되돌아가도록 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다 갖고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돌아간 후에 그가 대표하는 방대한 천체는 전부 텅 비어있고 종전의 일체 생명이 없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잘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체는 모두 나쁘게 변했고 모두 도태된 것으로 다시 만들 수 밖에 없다.”
10.법의 위덕을 제자에게 베풀다
정법수련이 금방 시작되었을 적에 두려운 마음이 매우 중했으며 이 때문에 한가지 생각이 나왔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정법의 홍세가 오게 되면 대법을 저촉하는 생명은 도태되기 때문에 우리는 진상을 알려 세인들을 구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가서 하면 안전하지 못한데 어째서 대법의 지혜와 법력으로 구도하거나 혹은 생명을 도태시키지 못하는가? 이렇게 되면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하면서 사람을 구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이런 사상의 지배하에 나는 줄곧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며 정법수련 중에서 정진하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다. 후에 법 공부를 많이 하고 나서야 점차 명백해 졌다. 법은 정해진 것이며 불변 불파한 것이다. 우리가 법에 동화되고 법속의 한개 입자로 되려면 이런 책임이 있다. 법이 그의 위덕을 우리에게 주었고 법의 신성함을 우리에게 주었기에 우리는 “대법제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호칭은 바로 법을 책임진 생명이며 우주 중에서 제일 높은 영예이다. 더 명확하게 말한다면 법은 이 법력과 지혜가 있다. 그러나 대법이 이 법력과 지혜를 우리들에게 주었고 우리더러 그 중의 한 입자로 되게 하였다.
《2004년 시카고 법회에서의 설법》:“당신에게 배치한 이 길은 우주 중에 이러한 요소가 있기에 당신에게 준 것이며 당신더러 걷도록 한 것이다. ”“당신은 우주가 당신에게 한 중요한 부탁(重託)을 저버렸는데, 이것은 하나의 작은 일이 아니다.”
11.상하로 관통되어 있는 표준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속인들이 늘 묻는 말이 “ 대법이 좋다고 하면 구도 된다고 하는데 어째서 그런가?”였었다. 최근에는 또 “사악한 당을 좋다고 하면 도태된다고 하는데 어째서 그런가?”라고 묻는다. 나는 일시 사람의 이치로 이것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 높게 말하면 또 사람들이 접수하기 어려울까 봐서 였다.
《전법륜》에서 말씀하시기를:“……이 사람은 구도 될 수 있으며 좋고 나쁨을 분간할 줄 아는데……”,내가 깨달은 것은 이 사람이 능히 좋고 나쁨을 분간할 줄 아는가 하는 것이 구도 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좋고 나쁘다는 시비도 가를줄 모른다면 사람들은 이 사람을 “되지 못한 놈”이라고 할 것이며 사람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표준이 있는 것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 진선인은 인간세상에서도 제일 아름다운 도덕 표준이다. 진상을 알고 난 뒤에도 이 사람이 만약 이것을 부정한다면 그렇다면 이 사람은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든다면 진선인은 한 집의 제일 완미하고 제일 견고한 기석과 같다. 만약 사람이 이 기석을 헐뜯고 파괴한다면 이 집은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자아 생존할 공간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반대로 공산악당의 사악한 영은 인간 세상에서 제일 나쁘며 그것은 또한 무수한 생명을 해치고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박탈했으며 모든 사람들의 양지를 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이 좋다고 하는데 이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비록 미혹되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9평》이라는 신의 부적까지도 당신에게 주었는데 당신이 아직도 청성하지 못한다면 어찌 선량한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마치 악마가 생명을 해치고 생명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훼멸했는데도 도리어 이 악마를 칭찬하는 것과 같은데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생명인가? 그 사람들이 말하는 “좋아도 좋은 줄을 모른다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
툭 털어 놓고 말하면 당신이 제일 좋은 것을 비방하고 있으며 제일 나쁜 것을 좋아하는데 당신은 사람의 자격이 없으며 법에 의해 도태되고 만다. 이 표준은 중생에 대해 말하면 제일 자비한 것이다.
神의 각도에서 볼 때 정법에 대한 태도는 생명이 남는가 남지 못하는가 하는 표준인데,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가능하게 이해 못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법은 관통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이 한 층의 중생으로 하여금 이해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미국중부법회에서의 설법》“ 대법은 사람을 제도할 수 있고, 우주중의 일체를 창조할 수 있는바 그 부동한 층차의 법리가 있는 것이다. 매 한 층의 법리는 모두 전체 법과 관통되는 것으로서, 상화로 관통된 것이며, 내외로 관통되며,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에 관통되며, 상호 관통된 것인바 어떠한 층차도 모두 단독으로 관통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법은 어느 각도에 서서 말하더라도 그는 모두 원용한 것이며, 분명히 말할 수 있으며, 깨지지 않는 것이며, 법리상에서 일체를 원만하게 똑똑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는 그가 창조한 것이기 때문에 물론 그는 진리(真理)의 무소부제(无所不在), 무소불능(无所不能)을 원만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
12.변화와 대응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나는 주변에 있는 속인들이 대법에 대한 태도가 늘 변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으로 하여 동수들은 매우 곤혹스러워 했으며 중생을 구도하는데 정진하는 마음이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우리 동수들 중에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는 마음이 생긴 것과 이상적인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며 속인의 변화를 추구하는 목적으로 삼았기에 낡은 세력이 틈을 타고 들어온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결과를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중생으로 하여금 법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도록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우리자신들은 또한 응당 자기를 향해 찾아야 하며 나에게 원인이 있지 않는가를 보면서 제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자신의 “뜻을” 자비로 여겨서는 안되며 결과를 얻게 되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침해 져서는 안된다. 부처나 보살이 이런 상황에 처하면 이렇게 하겠는가?
여기 이 소제목에서 내가 말하는“변화가 없다”는 것은 당신의 감각이며 사람의 감각이다. 그것이 정말로 변화가 있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모르며 이것은 우리 사람의 이 한층에서 말하는 것이다. 더 깊은 층에서 말하면 지금의 매 한사람마다 거의 모두가 무수한 대궁의 생명과 대응되고 있으며 금방 당신에게서 진상을 들은 생명이 구도되었으나 그러나 정법 노정의 추진에 따라 또 더욱 많은 생명들이 구도되어야 하며 그들은 의연히 대법의 진상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들이 가서 진상을 할 것이 수요된다. 때문에 이것이 무수한 중생과 대응한 사람의 표면의 태도가 부단히 변하게 되는 원인이며 이런 변화는 이전의 중생이 구도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며 더욱 많은 생명을 구도할 것을 수요한다.
13.정념의 나
어느 한 시기에 대법을 실증하는 사업이 매우 바쁘다 보니 법공부와 일하는 것이 시간상에서 충돌이 생겼다. 나는 잠자는 시간을 줄이려고 했는데 1시간 더 늦게 자거나 혹은 아침에 1시간 당겨서 일어 나려고 했다.(원래 나는 영시 발정념을 하고 잤으며 아침 5시에 일어났다. )
속인일 때 나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새벽 1시가 지나서 눕거나 혹은 아침 4시 전에 일어나면 신체에 꼭 열이 났다. 이 한차례는 나에게 하나의 고험이었다. 나는 지금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며 더는 이전의 나가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공간 이치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이전과 같은 상태가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고 했으며 만약 나타난다면 사악이 연화하여 낸 것이며 나는 견결히 인정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다.
며칠 그래도 매우 미약하게 열이 나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견결히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사악이 연화해낸 것이며 나의 상태가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 증상이 즉시 사라졌다. 비록 잠자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러나 정신 상태는 매우 좋았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연화해낸 상태가 나타났는지를 몰랐다. 후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는데 내가 “만약 사악이 연화해 낸 것이 나타난다고 해도 나는 견결히 인정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것에 대해 인정한 것으로 되었으며 사악에게 공간을 남겨 주었던 것이다.
평소에 우리는 매 한가지 일들에서 거의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과거의 관념을 개변할 것이 수요되며 자신을 하나의 진정한 神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의 이해는:자신을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이며 자신을 神이라고 한다면 바로 神이다. 잘하지 못한 것은 표면상의 관념으로 인한 것이며 우리는 지금 수련중에 있는 神으로서 어느 것이 자신이고 어느 것이 그것인가 하는것을 잘 분간해야 한다. 나는 어느 한번 “오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감각이 있었는데 그러다 갑자기 이 생각이 틀렸다는것을 의식했다. 내가 神인데 어떻게 좋지 못한 상태가 있을 수 있는가? 좋지 못한 상태는 사악이 연화해낸 것이다. 그러자 사상이 즉시 분명해 지며 상태가 금방 변하면서 정념이 매우 강해졌다. 그리고 또 나는 무릎이 아파서 가부좌를 못한지 3년이 된다. 후에 수련생이 나에게 “그것을 다른 사람으로 보며 아픈 것이 자신이 아니라고 여기며 자신을 神이라고 해요!”라고 귀뜸했다. 시작에 매우 아팠으나 그러나 나는 이 한 일념을 견지했다. 다리가 정말로 아프지 않았다. (내가 동수들에게 건의하고 싶은 것은 173기 《명혜주간>에서 “자신의 일사 일념을 틀어잡고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자”는 문장을 다시 한번 볼 것을 권한다.)
우리들의 매 하나의 생각이 가능하게 많은 방면에서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지만 우리는 때로는 도리어 어찌 할 바를 모르는데 내가 느끼건대 이 한점에서 우리의 정체는 이것을 중시해야 할 것이 필요하며, 자신을 확실하게 하나의 神이라고 긍정해야 한다. 위에서 서술한 몇가지 이야기에서 이러한 법리가 안에 표현되고 있다. 예를들면 《묵인》,《병아리의 죽음》, 《사람의 문과 신의 일념》,《간격》 등이다.
이상은 나 자신이 현재의 층차에서 깨달은 인식이며 어떤 것은 한개 측면에서 동수들의 정법수련에 도움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문장을 쓰는 과정에 일부 법리에 대해 새롭게 인식되는 것을 느꼈으며 그러나 어떤 것은 어쩐지 아직 완전히 표달하지 못한 것 같은데 동수들의 자비한 지적이 있기를 바란다.
문장 완성:2005년 08월 16일
문장 발표:2005년 08월 19日
문장 수정:2005년 08월 18일 19:36:29
문장 분류:[제자교류]
문장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8/19/10857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