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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을 말함

글/단양(丹陽)

【명혜망 2005년 8월 16일】

◎속인의 인연

속인은 인연을 떠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인연은 업력윤보(業力輪報)로 촉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믿건 믿지 않건 상관없이 인연을 벗어나거나 떠날 수 없다. 속인의 인연은 바로 그의 운명이며 만약 그가 인연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곧 운명을 개변시켜야 하고 업력윤보를 벗어나야한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오로지 2개의 길만이 있을 수 있다. 끝없이 악(惡)을 저질러 형신전멸(形神全滅)로 철저히 소훼(銷毁)되거나 수련의 길을 걸어 악업(惡業)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속인은 인연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속인의 일생은 잘 정해져있다.

비록 이렇다고는 하지만 속인의 일생은 도리어 안정된 것이 아니며 수시로 외래요소의 작용 하에 개변될 수 있다. 단, 개변되건 안 되건 상관없이 이것은 모두 속인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것으로 속인인 그는 능력이 없다. 그의 무능력은 그로 하여금 운명을 탓하고 한탄하게 만들며 그의 머릿속은 시끄럽고 번잡하게 교란하는 생각들로 인해 세상일은 예측하기 어렵다고 느끼게 만든다.

인연은 바로 속인 이 한 층의 이치이므로 이 한 층의 이치에 부합하는 것은 바로 이 한 층의 좋은 생명이다. 속인으로 하여금 운명이 있고 인연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해 좋은 점이 있다. 투쟁을 감소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름 모를 고통과 가슴 태움을 감소시키며 여유와 침착성을 증가시키고 사람이 된 진정한 즐거움을 증가시킨다.

◎수련자의 인연

속인들에게 진상을 알림에, 분명히 세속에는 명백하게 이런 인연이 존재한다는 것은 맞지만 그러나 이 이치를 수련인 자신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

수련인은 이미 보통 인연 속에 있는 것으로 칠 수 없다. 그가 미래에 걸어가는 매 한 걸음은 모두 미지(未知)의 것이며 사부가 그에게 제공한 길도 꼭 한 갈래가 아니라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수련인이 직면한 인연은 모두 사부가 제자의 수련성공을 위해 선택적으로 배치한 것이며 모두 제자의 수련제고를 위한 것이다. 수련인 역시 몸은 인연에 처해있지만 그러나 이 인연에 지배당하는 것은 아니다. 수련인이 인연에 의해 촉성되어 부딪히는 어떠한 일도 모두 이 인연의 매듭을 풀기 위한 것으로 선(善)을 사용하고 수련인의 자비와 포기를 통하여 이 인연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지극히 중요한 집착에 대한 포기, 업력의 감소, 수련 층차의 제고에 도달한다. 수련이란 곧바로 운명을 개변하고 인연을 벗어나며 업력윤보를 벗어나는 것이다.

수련인은 과거의 인연과 세속의 인연을 정시(正視)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그것을 무슨 진리나 행동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되며 흥미진진하게 수련인에 대하여 무슨 인연이고 인연이 아니고, 원망이고 원망이 아니고를 말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단지 아무런 의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세속의 고통과 즐거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무슨 이치로 여긴다면 곧바로 속세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 것으로 명백히 말하자면, 바로 진수(眞修)할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닌가?

세속인연도 수련도 근원은 모두 정법(正法)을 위한 것이다. 만약 정법을 떠나서 말한다면 이 일체는 모두 아무런 의의가 없다. 정법제자는 인연 속에 국한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것을 제도하고 구도하는데 사용할 수 없다면 반드시 속박이기 때문이다.

더 광범위하게 말해보자. 만약 정법이 아니라면 낡은 우주와 그 법리는 일찍이 붕괴되었을 텐데 그것이 촉성한 무슨 인연이라도 좋고 원망이라도 좋은데 역시 일찍이 완전히 사라져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낡은 우주가 아직 붕괴되어 훼멸되기 전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촉성한 인연이 당연히 무엇을 초래하겠는가? 어떻게 하면 비로소 이 낡은 법리에 부합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낡은 우주의 법리는 곧 성(成)․주(住)․괴(壞)․멸(滅)․공(空)으로 만약 이 법리에 순응한다면 낡은 우주는 지금 마땅히 멸(滅)과 멸이후의 공(空)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면 만약 이 법리에 부합한다면 지금의 일체는 모두 마땅히 멸하고 마땅히 공해야한다. 그렇다면 이 이치를 순응할 수 있겠는가? 이 인연이 믿을만한 것인가? 이런 이른바 인연을 강조하고 믿는 것에 어떤 의의가 있단 말인가?

역사적인 각도에서 말해보자. 낡은 세력의 교란과 안배는 역사를 가득 채우고 우리들의 생생세세(生生世世)를 가득 채우고 있다. 고생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고 옳은 것이 있으면 또 그릇된 것이 있다. 어느 것이 사존(師尊)의 안배인지 우리는 똑똑히 가릴 방법이 없고, 어느 것이 낡은 세력의 안배인지 우리는 똑똑히 가릴 방법이 없으며, 어느 것이 우리 자신이 패괴(敗壞)하여 촉성한 것인지 우리는 여전히 똑똑히 가릴 방법이 없다. 역사는 너무나 멀고 오래되었으며 당신과 나는 일찍이 기억을 잃어버렸다. 말법시기에 세상은 너무나 난잡해졌고 훼멸시기의 우주는 이미 온통 혼란과 미혹이다. 낡은 세력은 너무나 악독하여 그것들의 요소는 심지어 당신과 나의 생명에도 가득 차있다. 당신과 내가 너무나 집착하여 지혜롭지 못하여 사존의 법을 극단적이고 단편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렇다면 정법제자로서 만약 자신의 깊이 함몰된 은혜와 원한에 따라 인연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면 결과는 무서운 것이다. 당신이 무슨 인연을 믿는단 말인가? 낡은 세력은 당신에게도 이렇게 멀고 오래전부터 만장(漫長)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인연이다. 당신의 만장한 역사, 당신의 오래된 과거는 일찍이 모두 낡은 세력의 요소로 충만되었다.

선연(善緣)이건 아니면 악연(惡緣)이건 상관없으며, 인연이 있건 인연이 없건 상관이 없다. 제자사이에도 역사적인 은혜와 원한이 있다. 이런 은혜와 원한이 수련인을 좌우지할 수 있는가? 제자와 세인(世人) 사이에도 역사적인 은혜와 원한이 있는데 이 사람의 은혜와 원한 때문에 세인에 대한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있겠는가? 정법제자는 이른바 이 연분을 중시할 수 없는데 그것이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그것이 보기에 아무리 아름답든 혹은 무섭든지 상관없이, 심지어 그것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지 상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따른다면 틀림없이 틀린 것이며, 사존의 법이야말로 최종적인 준거임을 망각한 것이자 수련의 근본목적이 무엇인지 잊은 것이며 자신이 정법제자임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연은 존재하는 것이지만 대법제자는 그것에 좌우지 될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을 수련 중의 이치로 여길 수는 없다. 설사 개인수련에 한정하여 말한다손 치더라도 수련인의 최종목적은 바로 세간의 일체를 벗어나는 것인데 이런 인연을 벗어남을 포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장완성: 2005년 8월 13일
문장발표 : 2005년 8월 16일
문장갱신: 2005년 8월 16일 01:50:50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5/8/16/1083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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