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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 수련생: “끊임없이 발정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 / 서양인 수련생

[명혜망]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잘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은 모두 (전체를 구성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것이며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효과적이고 명석하게 법공부를 하지 않고는, 발정념하는 동안 조용한 상태로 들어갈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미국 플로리다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수련인의 사상이 법을 이탈한다면 사악은 파고들어 올 수 있다.” 발정념하는 동안 사람들이 마주치게 되는 교란과 산만한 생각들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법공부를 하지 않으면 정념이 약해진다. 법공부로서, 그리고 마음이 오직 법에 있을 때가, 바로 고요함이 깊어지는 때이고, 정념이 가장 강대한 때이다.

사부님께서는 《대(大)뉴욕지역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에서 말씀하셨다,

“사실 정말로 조용해질 때 그 일념(一念)은 천지(天地)를 뒤흔들기 충분하며 못 하는 것이 없고 단번에 정말로 당신이 뒤덮은 범위내의 일체를 모두 고정하고 억제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마치 하나의 산 같이 단번에 그것들을 모두 억제할 수 있다. 사상이 늘 안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안정하지 못하면 그 한 점을 해낼 수 없다.”

이것은 왜 우리가 진상할 때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의 이유이다. 우리가 진상하는 것을 추구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것을 그런 식으로 보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나는 이 중생들을 구하고자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진정으로 정념이 우리를 인도하게 한다면, 그때 우리에게서는 어떤 집착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고로, 낡은 세력은 우리를 교란할 아무런 누락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최근, 나는 연례 지역 아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근처의 연공장 밖에서 ‘파룬따파 리더스(Falun Dafa Readers)’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지나가고 있었고, 그들은 페스티벌을 보러 가든가 아니면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둥글게 만 포스터와 음료수 캔을 들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피곤해 보이던가 혼란스러워 보였다. 처음 내가 행인들에게 자료를 건 내줄 때, 나는 “써(Sir)” 또는 “맴(Ma’am)”이라는 존칭을 써서 그들의 주의를 끌고 그들에게 종이를 주려고 했다. 결과는 그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로였다. 미소를 짓거나 “받을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은 종이를 받았다. 손에 물건을 잔뜩 들었거나 “받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은 종이를 받지 않았다.

약 10분 후, 나는 자료를 나누어주면서 발정념을 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아직도 나를 교란하는 그런 작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고, 사부님께서 《정념(正念)》에서 하셨던 말씀에 주의를 두지 않았었다:

“눈을 감는 것과 감지 않은 것의 효과는 같다. 눈을 뜰 때에는 속인 공간의 일체를 보아도 안 보이도록 해내어야 한다.”

이에 대해 생각한 후, 나는 “滅(미에)”에 집중하고 내가 그들에게 자료를 주는 동안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료를 받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지나 갈 때, 내가 한 사람에게 전단을 주면, 그 뒤에 있던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받았다. 마치 나의 마당에 용해되기 전에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전부가 전단을 받는 것인 것 같았고, 마치 그들이 나와 똑같은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은 나를 감동시켰고 발정념에 대한 나의 신념을 강화시켰다.

위의 글은 나의 인식이다. 부정확한 것이 있으면 부디 시정해주기 바란다.

발표일자: 2005년 8월 13일
원문일자: 2005년 8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8/13/638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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