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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외운 이야기

[명혜망 2004년 2월 8일] 나는 방금 ‘전법륜’을 한번 다 외웠다. 돌이켜보면 할 이야기가 꽤 있으며 여러분에게 참고가 되도록 글을 써보려고 한다.

나는 98년 말에 기쁘게 대법을 얻었다. 난 이런 유형에 속했는데 즉, 대법을 보자마자 무릎을 치며 “세상에 이런 것이 있다니!”라고 했는데 정말 “마침내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뜻밖에 잡생각이 너무 많고 사부님의 해외설법만 읽기 좋아하면서 ‘전법륜’은 잘 읽을 수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대법 사이트에서 수련생들의 법공부 체험을 보게 되었고 “전법륜을 외우면 정신을 팔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전법륜을 외울 마음이 생겼다. 그리하여 99년 3월부터 나는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는 통독도 몇 번 하지 않았고 나쁜 많은 것들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전법륜을 외우기 좋아했다. 기억나는데, 사부님이 이야기하신 “왜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해줄 수 있는가?” 이 부분을 외울 때는 마침 99년 봄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 우주 중에서 우리가 보기에 사람의 생명은 속인 사회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다.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우주 공간에서 생성된 것이다” 이 한 단락을 외우고 있었는데 정말 마음속으로부터 외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생명의 시작이었다.

법을 외우는 가장 좋은 점은 주의력이 분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주의력이 분산된다면 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 좋은 점은, 어디가나 법공부를 할 수 있고 수시로 도(道)를 깨우칠 수 있어 별도로 고정된 시간을 내서 법공부를 할 필요가 없으며 책을 읽을 때처럼 사상업과 지속적인 전쟁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결심을 내리고 외운다는 것은 사상업력, 각종 교란과의 결전(決戰)에서 속전속결해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99년은 정말 특별했다. 제2강의를 거의 다 외울 때 쯤에 7.20사건이 일어났다. 그 때 내가 아는 수련생은 모두 합쳐 6명도 안 되었는데 그 중 4명이 수련을 포기했다. 또 한 사람은 전화에서 얼버무리며 “우리 여기서는 전부다 나가서 수련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나머지 한 명은 연락이 끊겼다. 어찌된 일일까? 매스컴에서는 매일마다 천지를 뒤덮을 듯한 거짓선전을 해서 점차 정말로 흐리멍덩해지는 것 같았다. 명혜망에 접속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봉쇄되었고 일체 객관적인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에이, 모르겠다, 당분간 내려놓자.” 이렇게 되서 나는 처음으로 법을 외우는 것을 중단했다.

법을 외우는 것을 내려놓은 것은 별일 아닌데, 문제는 모든 나쁜 것들이 모두 되돌아 온 것이었다. 어느날, 한 친구가 내게 담배 한 대를 권했는데 나는 좀 망설이다가 받아서 불을 붙였다. 머리 속에 어렴풋하게 사부님을 떠올렸지만 이미 아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수련 전으로 다시 돌아와 매일 명리를 위해 하늘땅이 빙글빙글 돌도록 뒤죽박죽인 생활을 1개월 동안이나 했다. 8월 말 어느날, 명리 속에서 몸부림치던 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모든 것(날조)은 도대체 진짜일까, 가짜일까? 도대체 부처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다른 공간이라는 것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그날 나는 잘 생각해 봤는데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꼭 똑똑하게 알아내고야 말리라 생각했다. 만약 정말 부처가 없고 그 모든 것이 없다면 인생도 그저 이렇게 그럭저럭 보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이튿날 나는 아침 일찍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큰 서점에 가서 책들을 뒤졌는데, 의외로 20세기의 중대한 고고학 발견들이 담신 시리즈를 발견하게 되었다. 손이 가는 대로 펼치고 읽었는데, 알고 보니 ‘전법륜’에서 이야기한 것은 모두 진실이었다. 그 밖에도 많은 고고학계의 중대한 발견들은 모두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고 무신론 기점의 착오를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반나절이나 그 책들을 읽었다.

서점에서 돌아온 후 나는 부처는 정말 존재하므로 꼭 수련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교를 수련할지 아니면 파룬따파을 수련할지 선택해야 했다. 이 염두가 떠오르자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파룬따파을 선택했다. “만약 부처가 있다면 나는 꼭 파룬따파을 수련하겠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전법륜’을 들기 시작했다. “전법륜을 계속 외워야지.” 이렇게 1개월 동안 중단되었던 법을 외우는 과정이 다시 시작됐다.

법을 외우기 시작한 이튿날, 나는 줄곧 연락이 끊겼었고 한 번밖에 본 적이 없는 노수련생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대리서버 주소를 알려 주었는데 그것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명혜망을 볼 수 있었다. 아, 알고 보니 이 모든 것은 모두 악독한 날조였다…

돌이켜 보면 정말 위험했다. 사부님께서는 사실 줄곧 나를 지켜보고 보고 계셨는데 내가 중대한 고험 속에서 독립적으로 명백해지는지, 도대체 무엇을 선택하는지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수련하려고 생각하기만 하면 불성이 나온 것으로 본다. 이 일념은 제일 진귀한 것으로 그가 반본귀진하려 하고 속인의 이 층차를 벗어나려 하기 때문이다.” 법 외우기를 중단한 1개월 동안, 사부님께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나를 기다려 주셨는데 다행히 나는 본성을 상실하지 않았고 아직 구할만 했으므로 사부님께서는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또 도와주셨다.

외우지 못한 곳을 계속하여 외웠는데 전과 전혀 달랐다. 외울수록 더 빨리 외워졌다. 나는 처음에는 하루에 4페이지를 외우다가 나중에는 하루에 10페이지, 심지어 더 많이 외울 수 있었다. 자주 한 밤중에 깨어났는데 제일 첫 반응은 나도 모르게 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다시 잠들었다. 나중에는 나 자신도 이것이 꿈에서 외우는 것인지 깨어서 외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아무튼 항상 외우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나는 늘 하던대로 아주 일찍 일어나 연공했다. 계절은 이미 한 겨울에 접어 들었는데 그날은 특별히 추워 5장공법까지 다 연마했는데도 몸이 더워지지 않았다. 7시에 아내가 출근하자 나는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정신이 흐릿한 가운데 침대가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아내가 아직 나가지 않았나 생각하다가 ‘아니야, 나는 확실히 그녀가 집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를 들었어’하는 생각에 재빨리 일어나 누구인지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일어나 앉을 수 없었고 어떤 ‘물건’이 나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안간힘을 다 썼지만 몸은 마치 내 것이 아닌듯 힘을 쓸 수 없었다. 겨우 눈을 반쯤 떴는데 이불이 머리까지 씌워져 있었다. 나는 내가 ‘마(魔)’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숨을 좀 돌린 뒤 또 다시 힘을 써봤지만 역시 헛수고였다. 그 때 나는 마가 나의 손발과 신체를 통제할 수는 있지만 나의 입, 나의 사상은 통제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는 법을 외우려고 했다. 이 일념이 떠오르자 나는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불법은 가장 정심하다” 가장 첫번째 글자가 입에서 나올 때, 나의 눈은 자연스럽게 떠졌고 방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며 내가 큰 소리로 읽은 그 한 구절만이 미약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손발을 움직여 봤더니, 아, 그것들은 또 내 것이 되어 있었다.

99년 말, 나는 끝내 한 번 다 외우게 되었다. 전에 한 수련생이 법을 외운 체험을 본 적이 있는데 열 번을 외워서야 철저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또 두 번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아주 빨랐다. 제1강의는 하루만에 다 외웠고 제2강의는 이틀에 다 외웠는데 2000년 초에 나는 이미 5강의까지 외웠다.

그 때, 나는 매일 나가서 공개적으로 연공하기 시작했는데(이는 물론 법을 외운 결과였다.), 파출소에 고발되어 구치소에 15일간 갇혀 있었다. 구치소에서 나온 뒤에 나는 일자리를 찾아 출근했는데 시간이 적어지자 ‘전법륜’ 외우기를 포기했다. 그 때 포기한 후 3년이나 그대로 보냈다. 나중에야 나는 그렇게 포기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그 3년 동안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정법이 우주와 인간세상에서 천지를 뒤덮을 듯 진행되었던 것이다. 나 자신도 마난을 겪을대로 다 겪었다. 세뇌반, 간수소, 노교소를 드나들었고 잘하다 못하다를 반복하면서 어렵게 구불구불한 길을 걸었다. 전에 한 번 하고, 제5강의까지 더 외웠던 ‘전법륜’은 앞 두 강의만 대체로 기억이 났는데 두 번째에 왜 견지해 나가지 않았던가 후회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진정으로 또 다시 ‘전법륜’을 외우려고 결심하게 된 것은 노교소에서였다. 그 때는 고강도의 발정념으로 인하여 대량의 변이된 물질이 제거된 뒤라서 사부님의 어느 한 단락의 법을 외워도 모두 무궁한 법리가 펼쳐졌고 현묘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나는 내가 아직 기억하고 있는 앞 두 강의를 반복해 외웠는데 그것은 그 무슨 임무를 완성하거나 박해를 줄이거나 자신의 제고를 위해서 외운 것이 아니고 정말 너무 미묘하다고 생각되어서였다.

예를 든다면, 어느 하루는 “사람의 신체가 한 번 움직이면 인체의 세포는 모두 따라서 움직이는데 미시적인 경지의 모든 분자, 양성자, 전자, 아주 작은 모든 성분들은 모두 따라서 운동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도리어 그것들의 독립적인 존재 형식이 있다.”, 이 부분을 외웠는데 번티(本體)의 현묘함을 활연히 깨달을 수 있다. 층층의 이미 수련된 신체(神體)는 주체(主體)의 정념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주체를 따라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발정념하고 진상을 알리며 각 층차에서 비할바 없이 위대하고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도리어 그렇게 평범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이 진상을 알게 된 후 나는 정말 조금 격동되었다. 그리하여 기회만 되면 동수들에게 “당신은 당신이 발정념할 때 얼마나 위대한지 알고 있습니까? 절대 예사롭다고 생각하거나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하여 실망하지 마십시오!”

나는 법에 그렇게 현묘한 이치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을 외울수록 후회했다. 어느 하루는 “한 승려가 가부좌하고 연공할 때 왠선(元神)이 극락세계에 가서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하루 동안 돌고 인간세상에 돌아오니 이미 6년이 지났다.”, 이 부분을 외우고 있었는데 머리 속에 갑자기 사부님께서 미국설법에서 이야기하신 아미타불과 극락세계의 법이 떠올랐다. 극락세계가 사유(思維) 속에 나타나 머리를 돌려 수미산(須彌山)을 보았는데, 아, 알고 보니… 사유(思維)는 미묘하여 현란하기까지한 인상 속에 빠져들어 있었다. 갑자기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는데 나는 그때서야 자신이 아직도 노교소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법을 더 잘 외우게 됨에 따라 나는 갈수록 한 가지 이치를 깨우칠 수 있었다. 즉, 이 몇 년간 나는 왜 그렇게 힘들게 걸어와야 했는가, 왜 때론 굽은 길을 걸어야 했는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두 번째로 전법륜을 외우다가 포기한 대가였다. 물론 법을 외우는 형식을 포기한 자체 때문이 아닌, 법공부에서 정진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역사상 있어본 적 없는 크나큰 마난 앞에서, 정법의 가장 관건적인 시각에 나는 그와 상응한 있어본 적 없는 가장 큰 정력으로 법공부하여 법에 동화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길을 잘 걸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똑똑히 알고 있다. 만약 내가 그때 법을 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한 번 또 한 번 외우면서 정진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지금 아마 이 마의 소굴에 있지 않을지도 모르며 길은 이렇지 않을 것이고 손실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서 나가면 우선 ‘전법륜’을 외우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나온 뒤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마의 소굴에 빠졌다가 나온 많은 동수들은 모두 이러한 체험이 있을 것이다. 즉, 갇혔을 때는 법공부를 늦추지 않고 했지만 풀려난 뒤에는 도리어 많이 소홀해진다. 나도 그런 요소가 있었는데 또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또 다시 아주 큰 마난에 부딪쳐 하마터면 잘못될 뻔 했다. 그렇게 지체된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2003년 8월이 되었다. 그러나 3년 8개월만에 나는 끝내 또 다시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번에 외울 때는 앞 두번과는 또 달랐다. 그렇게 많은 일들을 겪고 난 뒤라서 법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기점도 전혀 3년 전의 나 자신이 아니었다. 그 기간에 나는 무엇을 ‘환골탈태’라고 하는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는 아주 바쁜 와중에 법을 다 외웠다. 나는 기술적인 일을 알고 있었으므로 자료점의 기술적인 일들을 책임졌다. 자주 장거리 버스를 타고 사방으로 다녔지만 나는 시각마다 사부님께서 떠나지 않고 나를 보호해 주고 가지(加持)해 주시고 있음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매 한 강의를 외울 때마다 일상생활과 일 속에서 모두 상응한 일들에 부딪히게 되어 내가 한창 외우고 있는 법의 배후에 숨어있는 법리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법을 외우는 것과 동시에 우리 자료점은 갈수록 더 잘 꾸려졌고 나 자신의 능력도 갈수록 강해졌으며 주위 동수들의 칭찬도 갈수록 많아졌다.

그때 나는 마침 ‘자심생마’를 외우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그 마는 또 당신을 대단히 높다고 칭찬할 것인데, 당신은 얼마나 높은 대불(大佛)이고 얼마나 높은 대도(大道)이므로 대단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다 가짜이다.”, 이 부분을 외우고 있었는데 식은땀이 흘렀다. 세상에나, 지금 내가 바로 이렇지 않은가? ‘나는 얼마나 대단한가, 나는 기술을 잘 알고 법공부도 잘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읽고 있지만 나는 외우고 있으며 명혜망에 글까지 발표했다. 내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모두 할 수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나를 떠날 수 없다.’ “이 반에는 지금도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말하는 태도도 다르다. 자신이 도대체 어찌된 것인가에 대한 것은 불교 중에서도 매우 기피하고 있다.”(전법륜) 내가 식은땀이 흘렀다고 하는 것은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그 때 나는 이 부분을 많이 반복해서 외우면서 거듭 자신에게 일깨워 주었다. “자신이 도대체 어찌된 것인가, 수련은 도대체 어찌된 것인가, 반드시 똑똑해야 한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므로 반드시 똑똑해야 한다!”

그때 쯤에 마침 사부님께서 평주를 쓰신 ‘금부처’가 발표되었는데 나는 마침 그 방면의 체험이 있었으므로 읽은 후 사존께서 마침 적중한 곳을 일깨워 주셨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제7강의를 외우기 시작할 때는 한 가지 특별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법을 외울 때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 멈출 수 없었다. 그 날, 내가 “어려서부터 고생하면서 철이 들 때까지 자랐을 때, 사부가 왔다. 물론 그는 알아보지 못한다. 사부가 공능으로 저장되어 있는 사유를 열어 주면 단번에 생각나는데, 이는 사부님이 아닌가. 사부는 그에게, 지금은 됐다, 수련할 수 있게 됐다고 알려준다. 그렇게 되어 많은 시간을 경과한 뒤, 사부는 전할 것을 그에게 전해주었다.”, 이 부분을 외우게 되었을 때, 나는 외우기를 멈추고 아주 오랫동안 흐느끼며 울었다. 사실 나는 속인 중에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젊어서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몇십 년간의 파란만장한 생활을 겪으면서 흘린 눈물을 다 합쳐도 이처럼 많지는 않았다. 그 눈물은 본성의 귀진(歸眞)이었고 보답할 수 없는 사부님의 큰 은혜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제8강의를 외울 때, 갑자기 진척이 느려졌다. 사부님께서 평주를 쓰신 “현지의 민중에게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자”가 발표된 후 우리는 즉시 바빠졌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해야 했으며 빨리 만들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또 동수들과 교류하여 공동으로 제고해야 했다. 사악도 마침 급소를 찔려 광적으로 교란했다. 나는 할 일이 많아져 법을 외우는 것을 점차 소홀히 했다.

소홀히 할수록 더 외울 시간이 없었고 일은 갈수록 많아졌으며 교란은 더 커졌다. 때로는 심지어 3일에 한 페이지밖에 외우지 못했고 상응한 교란도 심해지기만 했다. 한 번은,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이 같은 지역에 사는 수련생의 집에 자료를 수집하러 갔는데 아파트 아래에서 두 명의 악경과 부딪쳐 진퇴양난이 되었다. 다행이 사존께서 보호해 주셔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때는 법을 외우기 매우 어렵다고 느껴졌고 머리 속에서 고려하는 일들도 너무 많았다. 이미 9강의를 외우기 시작했지만 어떻게 해도 더 앞으로 추진할 수 없었다.

마침내 어느날, 사악의 큰 교란이 왔다. 올해 설날에 사존의 설법이 발표되어 나는 자료점에 가서 인쇄하려고 했지만 인쇄기가 고장나 있었는데 고쳐도 소용없었다. 마침 설이라 인쇄기 고쳐주는 사람들도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급히 다른 동수들을 찾아 도움을 청해 겨우 경문을 찍어 냈다. 우리 지역 말고 또 두 곳에 자료점이 있었으므로 나는 밤을 새며 거기에 찾아 갔다. 도착하니 그곳 동수들도 인쇄기가 고장났다고 했다. 온통 시커멓게 찍혀 나온 것을 보니 경문은 절대 찍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 한 곳을 채 가보지 않았으므로 거기에 가서 한꺼번에 찍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곳의 인쇄기도 고장났을 줄이야.

나는 앉아서 인쇄기를 보면서 수심에 잠겼다. 고치는 사람들은 빨라서 8일쯤에야 출근할 것이었으므로 혼자서 고쳐보려고 온 하루 고치고 있었다. 며칠간 법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몇 번 떠올랐지만 어떻게 해도 책을 들 수 없었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온 하루 헛수고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세 곳의 인쇄기 세 대가 동시에 고장났는데 이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는데, 집에 돌아와 인쇄가 되면 다시 인쇄된 경문을 그 두 자료점에 가져다 주려고 생각했다.

갔다왔다 하는 동안 몸과 마음은 모두 극도로 지쳐있었고 기분은 바닥까지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사악에게 교란당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여러가지로 헛수고만 했다. 내가 사는 도시로 돌아와 보니 동수들이 인쇄기로 경문을 찍어 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들 수 있었다. 이미 ‘근기’까지 외웠는데 ‘깨달음’은 어떻게 해도 외워지지 않았다. 오늘은 꼭 ‘깨달음’을 외우고 말리라고 생각하고 나는 한 편으로는 인쇄를 하면서 한 편으로는 외웠다. 나는 법을 외우는 것이 이미 나의 마지막 남은 ‘취미’임을 발견하게 되었다.(만약 나에게 아직 취미가 있다고 한다면 말이다) 외우다 보니 나의 피로는 가셔졌고 마음속으로부터 즐거움이 생겼으며 또한 행복마저 느껴졌다. 생명이 법 속에 있다는 행복, 그것은 어떠한 오락과 취미도 모두 가져다 줄 수 없는 내심의 희열이었다.

나는 동수들이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만약 정법이 끝나는 그날이 있다면, 수련이 끝나는 그 날이 있다면, 우리의 법공부 시간도 끝나는 날이 있지 않겠는가? 법공부도 하루가 지나면 하루 적어지는 게 아닌가? 나는 때로는 어떤 동수들이 정력과 마음을 불필요한 곳에 쓰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러 여기에 왔고 무엇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며 도대체 무엇이 생명의 가장 크고 가장 근본적인 행복인지 정말 반복적으로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인식했기에 나는 한 시각도 늦추지 않고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서 제일 첫 페이지를 펼치고 또 한번 법을 외우는 과정을 시작했다. 지금 나는 “오행중에 있지 않고 삼계를 벗어나다”를 외우고 있는데 이번에 다 외우면 ‘북미순회설법’, ‘대보름설법’ 등을 외우려고 한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한바, 내가 외우기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책을 들 때, 그것이 한 권의 책이 아님을 진실하게 느꼈다. 그것은 나의 생명의 창조자이고 나의 전부의 귀속이며 나의 모든 것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의의있게 하는 이유이다. 예전에 법을 외울 때 나에게 여전히 임무를 완성하거나 자신의 제고를 위하거나 박해를 줄이거나 그 무엇을 얻기 위한 생각이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의 나는 법을 외울 때만이 진실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로 바뀌었다. 나의 하루 중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바로 법을 외울 때다. 그러므로 내가 법을 외우는 이유는 아주 간단한바, 바로 내가 외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법을 외운 이야기는 잠시 여기까지만 하겠다. 여기서 법을 외우려 하지만 아직 시작하지 않은 동수들과 조금의 경험을 교류하려고 한다.

1. 한꺼번에 숙련되게 외우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아주 어렵게 되는데 중도에서 포기하기 쉬우므로 몇 번 외울 준비를 해야 한다. 통독할 때처럼 한번 또 한번 ‘전체적으로 외워야’ 한다.

2. 절대 잊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앞 부분을 외울 때 뒷부분을 잊어버리는 것은 정상적이다. 수련된 부분은 격리되므로 잘 외운 부분도 격리된다. 만약 당신이 항상 앞부분을 외웠는데 잊어버렸다고 다시 외운다면 하나는, 자신감이 영향받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진도가 아주 늦어질 것이며 또한 자신감이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실, 당신이 두번째로 외울 때 보면 잊어버렸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과분하게 ‘자세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우기가 아주 어렵게 되고 진도가 느려지며 자신감에 영향을 주게 된다. 물론 한 글 자도 빼놓지 않는 것은 필수적이고 긍정적이지만 빠뜨린 곳을 보충해 기억하는 것을 차차 도달하는 과정으로 생각하면 더 쉽다. 나는 처음 외울 때, 많은 글자들을 빼놓았지만 두번째로 외울 때 많은 것을 보충해서 외웠는데 반복해 외우는 과정에서 모두 보충할 수 있었다.

4. 전일(專一)하는 것이 좋다. 나의 경험으로는 외우면 통독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전법륜’을 읽기로 한 시간을 모두 외우는데 이용하고 머리로 할 일이 없는 시간(이전에는 늘 잡생각들로 보낸 시간)은 모두 외우는데 사용하면 반드시 효율이 가장 높을 것이다.

여기서 또 일깨워 주고 싶은 것은,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거나 외우려고 결심했을 때, 외우는 것을 교란하는 요소가 나타나 늘 통독이나 책을 베껴쓰게 하는데 표면상으로는 역시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교란이다. 특히 법을 외우기 시작했을 때 이러한 생각이 나타나면 교란일 가능성이 크다.

5.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고 마음을 내려놓고 외우기만 하면 되는데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 보면 알 것이다. 처음에 생각한 바와는 반드시 같지 않을 것이다.

6. 절대 포기하지 말라. 아무리 큰 어려움에 부딪치더라도, 진도가 아주 느리더라도, 심지어 며칠 중단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포기하면 자신감이 크게 떨어진다.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견지하기만 하면, “만약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정말 막다른 곳에서도 길이 열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柳暗花明又一寸)”

7. 노수련생들은 유리한 점이 있다. 그들은 이미 많이 읽어 익숙하기에 외우는 것도 매우 빠르다. 내가 법을 외울 때 95년에 법을 얻은 수련생이 가까이에 있었는데 외우다가 생각나지 않는 곳이 있으면 그녀가 이어서 외워주었다. 사실 그녀는 외운 것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 그녀도 외우기 시작했는데 첫 번에 아주 빨리 외웠다.

마지막으로 법을 외우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형식일 뿐이며 법에 동화되는 것만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여기까지 쓴 김에 한 가지 더 알려줄 것은, 나는 점차 내가 알고 있는 동수들 중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한 동수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동수들은 대부분 모두 외우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어 전과 전혀 다름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아직 외우고 있는 중이고 잘하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많은 동수들이 ‘전법륜’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외운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 쓴 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일 뿐으로 동수들에게 도움될까 하여 발표한 것이다. 꼭 부족한 곳이 있을 것이므로 동수들께서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존님의, 법을 외우는데 관한 설법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물음: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통독도 하고 외우기도 싶지만 외우면 통독에 영향줄 것 같습니다. 이 관계를 어떻게 바로 잡으면 좋습니까?

사부: 통독하는 것은 당신의 제고에 상당히 좋다. 만약 외운다면 당신은 특정한 시간 내에 공을 들여 외울 수밖에 없지만 그 후에는 책을 들고 통독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반드시 시간을 집중하여 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통독하다가도 외우고도 싶어하고 그러다가도 또 다시 통독하려고 하는데 계속 이렇게 생각한다면 계속 그렇게 반복할 것이다. 당신이 외울 때는 통독에 영향주지 않으며 통독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고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매 한 글자의 배후에는 모두 무궁무진한 불, 도, 신이 있어 당신이 외울 때, 매 한 글자는 모두 당신이 부동한 층차의 이치를 알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법륜불법-유럽법회에서의 설법)

“우리 어떤 수련생들은 법을 다 외웠지만 한 단락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잘 외웠던 것도 또 잊어버리게 되는데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아주 잘 외운 그 한 부분은 이미 수련하여 넘어갔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여전히 명백하지 못한 그 한 부분이므로 계속 보아야 한다.” (법륜불법-장춘보도원회의에서의 설법)

“나는 대체로 이러한 뜻을 말한 것인데, 즉 이렇게 좋은 것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외우지 않는 것인가? 시시각각 우리에게 속인 중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제고될 것을 요구하는데 외우면 더 좋지 않은가? 시시각각 모두 대조할 것이 있게 말이다. 이렇게 되어 책을 외우는 붐이 일어났다.”(파룬따파의해)

주) 이상 사존님의 말씀은 출처를 밝힌 것 외에는 모두 ‘전법륜’에서 발췌한 것이다.

문장완성: 2004년 2월 7일
문장발표: 2004년 2월 8일
문장갱신: 2004년 2월 8일 15:46:43
문장분류: [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4/2/8/668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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