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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에서 질문할 때 응당 더욱 경사경법(敬師敬法) 해야한다

글 / 북경에 있는 외적(外籍)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7월22일] 이전에 다행히 사부님의 설법, 해법을 경청할 수 있었다. 매번 법회에 참가하기 전이면 언제나 질문을 잘 준비했다가 사부님께서 해답하실 때 올려 보내곤 하였다. 매번 조건이 허락될 때면 나는 곧 질문할 문제를 인쇄물로 만들어서 법회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인쇄물의 글 자체도 사부님께서 제일 즐기시는 예서로 썼다. (그때 영문 컴퓨터에는 예서 글자체를 찾아 보기가 매우 힘들었다.) 비록 이것은 사람의 표면 형식이긴 하지만 그러나 나는 그래도 응당 이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다.

일전에 어떤 수련생이 나에게, 법회에서 사부님께서 문제 해답을 하실 때 한 수련생이 손으로 갈겨 쓴 종이 쪽지를 안경을 꺼내 쓰고 보셨다는 정황을 들려주었을 때, 나는 그때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많은 분들이 경사경법(敬師敬法)을 운운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하였는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법회 형식은 이미 십몇년이나 되었다. 사부님께서 법회에 친히 오셔서 우리를 위해 법을 해석해 주신지도 여러 차례나 된다. 특히 북미라는 이곳은 정법 중 제일 훌륭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그러나 법회에서 ‘손으로 쓴 종이 쪽지’ 이 문제는 마치 ‘유래가 깊어’ 지금까지 누구나 받아들이는 사실로 되었다.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은 자비로우시고, 사부님은 너그러우시며, 사부님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아 하시는데 그렇게 생각할게 뭐냐?”라고 말하였다.

사부님께서 자비로우시다. 그러나 이렇다 하여 우리가 경사경법(敬師敬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는 절대 될 수 없다. 정법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사부님이 왜 오셨는지를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우리는 지금까지도 우리를 위해, 중생을 위해 사부님께서 희생하신 것이 얼마나 되며, 감당하신 것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단 말인가? 우리는 아직도 십여년 전, 대법이 갓 전해진 초기의 인식, 그러한 태도와 방식(손으로 쪽지를 쓰는 것을 포함하여)으로 우리의 신성하시고 위대하신 사부님을 대해야 한단 말인가? 자비와 위엄은 같이 존재한다. 우리는 사부님의 자비로움을 장난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천상의 신들은 모두 꿇어 앉아 법을 듣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는 아직도 누워서 법을 보는 이들이 있다. 내가 보았던 어떤 노제자는 황금색 비단으로 《전법륜》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법공부 할 때마다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꺼내서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지금도 《전법륜》을 본 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거나 혹은 융단 바닥 위에 놓고 책 위로 건너 다니는 것이다.

‘질문’ 이 문제를 말해보자.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속인들도 사업 중 상사에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혹은 서면으로 보고할 때 모두 규격이 있는 회사 용지로 보기 좋게 프린트 한 후 보고를 올리는 것이다. 사업보고서를 아무렇게나 제출한다면 아마 직장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불교 중의 많은 경서들은 금박으로 새긴 것으로서, 이것은 사부와 법에 대한 경의(비록 이런 경서들은 5백년 후에야 정리해 낸 것이지만)를 나타내기 위함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없이 넓은 우주 중에서 제일 뛰어나게 특별하고 신성한 법회에서 우리는 도리어 조그마한 쪽지에 갈겨 쓴 질문들을 사부님 앞에 내놓고 우리가 쓴 쪽지의 글을 어렵게 보시게 하고 있다.

질문을 제출하는 동수들이여! 우리들의 질문을 사부님께서 일단 해답해 주셨다면 이것은 곧
곧 영원히 우주대법 중에 새겨져 있을 것인 즉, 그렇다면 우리들의 이런 성의 없는
글쪽지들이 여기에 어울릴 수 있는가? 당신들은 한번 물어보라. 당신들을 통해 마음속의
하고 싶은 말들을 표현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천백만 대륙 대법제자들이 허락할 수
있는지를? 당신들은 한번 물어보라. 법회에 함께 참가하고 있는 기타 공간의 많은 정법
신들이 허락 할 수 있는지를?

편집부의 문장 중, ‘자비로우시고 위대하신 사부님’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이렇게 썼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에게 내려진 업력과 사악이 구성한 거대한 물질 인소를 모두 함께 모아서 사부님의 자신의 신체로 감당하시고 동시에 이런 사악의 거대한 인소를 제거하였다. 이런 사악한 생명들은 거대한 업력과 악독한 인소들로 함께 뭉쳐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아홉달이라는 긴 시간으로 강대한 공력을 들여서야 비로소 이런 물건 짝들을 소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악의 인소와 업력이 너무나 크기에 사부님의 신체는 엄중한 상태에 있었다. 사부님 신체에 조성한 기타 상해는 사부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는데, 그것은 이로 인해 수련생들이 사악한 생명에 대하여 원한을 품게 되고, 그러면 수련생들의 수련에 영향이 미치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자비로우시고 위대하신 사부님이신가. 이와 같이 정법 중에서 사부님은 중생을 위하여 일체를 다 내놓으셨다.’

함부로 아무렇게나 글쪽지를 쓴 동수들이여! 법회를 조직한 동수들이여, 여러분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아시겠는가? 나는 정말로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여러분들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래 우리가 아직도 자기의 힘을 적게 들이기 위해서 사부님의 두 눈을 소모하시게 할 작정인가?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그러면 우리가 아직도 ‘사부님을 도와 세간에서 행하네’에 적합한 것인가? 자기 자신의 심성에 대한 요구가 엄격한 것인가?

미국, 캐나다 법회에 비교적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는 동수들이여, 여러분은 얼마나 행운스러운가! 정법 수련의 오늘날, 당신들은 자유롭고 안전하게 다양한 대형 법회교류에 참석할 수 있고, 당신들은 직접적으로 사부님의 설법, 해법을 들을 수 있는데 여러분은 사전에 질문할 문제를 잘 준비하고 인쇄할 수 없단 말인가? ‘사부님께서 오시면 질문할 문제를 준비하고 만일 사부님께서 오시지 않는다면 나는 헛준비 한 게 아닌가?’ 헛 준비했다 해서 손해본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큰 이기심인가? 얼마나 큰 득실 심리인가? 얼마나 큰 구하려는 마음인가! 속인 중의 학생들도 학과목 예습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도리어 앞당겨 준비하는 요만한 일도 하기 싫은가?

북미 각지 법회 조직위원회 동수들이여, 여러분은 사부님의 곁에서 사업을 하는 만큼 더욱 응당 경사경법(敬師敬法)해야 하며 더욱 응당 사부님을 위하여 생각해야 한다. 나는 매번 법회마다 모두 신수련생들이 참석하며, 혹은 어떤 동수들은 미처 인쇄물을 준비할 시간마저도 없이 바쁘게 법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회의장에 인쇄 할 수 있는 컴퓨터와 프린터기 한대를 준비해서 글 쪽지들을 프린트 한 후, 다시 사부님께 드려 해답을 하시게 해도 되지 않을까? 이는 기술상에서나 기능상에서 모두 아주 쉽게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해외 대법동수들이시여, 경사경법(敬師敬法)은 법회에서부터 하기 바랍니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으로서 동수들께서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문장완성:2005年 07月 21日
문장발표:2005年 07月 22日
문장갱신:2005年 07月 25日 11:53:39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5/7/22/10668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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