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7월 9일]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개인 수련시기에는 단순하게 법공부와 자신의 마음을 잘 닦는데 역점을 두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세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해야만 비로소 자신을 잘 닦을 수 있게 된다. 그 중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잘 하는 것 역시 세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는 보증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는 이 각도에서 자신을 잘 닦아야 하는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동시에 자신을 잘 닦는 것 역시 중생을 구도하는 관건이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는 중요성에 대해 감성적 인식을 깊이 하였기에 지금 글로 써 내어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자신을 잘 닦는 것과 중생을 구도하는 것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 가를 이런 각도에서 실증하고 싶다.
내가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박해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는 개인수련과 법 실증을 함께 하고 있는 정황에 속한다.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나의 왠선이 신체를 떠나는 현상이 번번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왠선이 아주 사악한 공간에 들어가곤 하였지만, 내 마음 속에 힘이 있고 정념이 나를 주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악의 밀도가 너무나 커서 정신적으로 비할바 없는 압력을 느꼈지만, 나 자신이 주동적으로 마난을 초월하여 어려움에 처해도 이겨 나가고, 나 스스로 마난을 정시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후부터 나는 자주 다른 공간의 각종 부동한 마난을 거의 돌파하였다. 비록 혼비백산할 정도로 간고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항상 수련할 수록 마음이 더 착실해지고, 정념은 갈수록 더 강하며, 압력은 점점 더 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일부 사악한 공간에 있는 사악은 갈수록 적어졌고, 수승(殊勝)한 공간과 사물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후에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발정념으로 신통을 운용하여 악을 제거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제서야 그 시기 나 자신의 왠선이 신체를 이탈하였을 때 사실 악을 제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이에 대해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그 당시 나는 왜 악을 제거해야 함을 잘 몰랐고, 또 악을 제거하는 지령을 명확하게 내보내지 않았지만, 무엇 때문에 거의 매일마다 왠선이 자동적으로 신체를 떠나 악을 제거하였을까하는 생각을 하였다. 후에서야 나는 그 원인을 찾았다. 그것은 내가 그 당시 매일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였으며 실질적인 닦음(實修)을 아주 다그친 까닭이었던 것이다.
수련을 시작한 뒤부터 나는 매일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배우는 것을 가장 중요한 관건으로 보았으며, 매일 한결같이 상서로운 심태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내가 매 번 왠선이 신체를 이탈할 때 마난을 돌파하는 힘과 용기가 근본적으로 여기에서 나온 것임을 강력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나는 직감적으로 매일 법공부를 통하여 이 한 점을 잘 장악해야 함을 느꼈다. 그럼 매일같이 연공, 가부좌의 통증, 일상 생활 사무에 대한 평형, 수련하지 않는 가족과의 관계처리 등 각 방면에서 자동적으로 가장 좋은 심태와 행위표현이 나타났다. 그것은 또 일종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나 자신이 인위적으로 가서 어떻게 하려고 생각하여 배치한 것이 아니라 힘을 들이지 않고도 도달할 수 있는 상태였다.
예를 들어, 그 시기 나는 매일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였고 동시에 상서로운 심태에 있었다 (나는 이것이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여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 시기에 매일 연공할 때 나 자신은 힘든 정서가 아주 적었고 포륜동작을 한 시간이 넘도록 유지하였다. 가부좌는 한 시간을 참을 수 있었지만 이것 역시 박해가 시작된 후 집에서 닦을 때의 상황이었다. 외부의 힘이 독촉하지 않은 정황 하에서 사람과 일과의 모순에 부딪치면 곧바로 안을 향해 찾았다. 그 마음 속의 불편함을 가끔은 아주 빨리 돌파하였고, 가끔 순식간에 돌파하였으며 잘못을 저지른 상태를 승인하고 싶지 않지만 곧바로 상서로운 심태를 회복하였다. 또 아주 괴롭게 느껴지지 않았고 또 아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상 사무를 처리할 때도 극단으로 가지 않았다. 즉 밥을 지을 시간이 되면 자연적으로 가서 밥을 하고, 바닥이 더러운 것을 보면 자연적으로 닦았다. 빨래통 안에 수련하지 않는 가족이 벗어 놓은 더러운 양말, 옷을 보면 씻었다.
일상생활 속의 일 중 아주 번잡한 일을 할 때는 나는 되도록 시간을 다그쳤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것이 수련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마음이 괴롭지 않았다. 심지어 그 일을 하기 전에도 나는 내가 수련인이기에 마땅히 어떻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 따위도 하지 않았다. 바로 아주 자연스럽게 가서 하였고, 잘 하였으며 모든 일에 하루 또 하루 반복적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함으로써 가져온 자연상태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곁에 있는 수련하지 않는 가족도 나의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고, 또 나에게 마난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법을 실증하다 체포되어 갇히고, 박해로 또 집을 떠나 떠돌아 다닐 때에도 가족들은 이로 인하여 여러 차례 괴롭힘을 당했지만 지금까지 나를 원망하지 않고 계속 도와주고 있다. 이웃들도 내가 박해당하는 일을 정면적으로 대하고 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여 안정적인 상서로운 심태를 가져왔기 때문에, 상서로운 심태에서 한 일, 이 과정과 사후의 심태 모두 단순하고 순정하며 또한 환희심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수련과 생활의 각 방면에서 모두 잘 할수 있음은 바로 매일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련인이 이런 안정적인 정념과 청성한 상태 속에서 자연스럽게 기타 일체 일을 하면 모두 眞,善,忍의 방향에 따라 자연적으로 연화한다.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해야 함을 알고 또한 아주 쉽게 잘 할수 있다. 하여 내가 그 당시 악을 제거해야 함을 모르면서 또 악을 제거하자는 명확한 지령을 내보내지 않았지만 거의 매일마다 왠선이 모두 자연적으로 신체를 이탈하여 악을 제거하였는가는 바로 그 당시 근본적으로 매일마다 마음을 조용히하고 법공부하는 것을 잘 파악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런 안정적이고 순선(純善)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의 잘 닦은 그 일부분의 신체(神體) 신의 일면을 움직일 수 있었다. “깨달은 본성은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 것이다.”《도법》 때문에 그 당시 사부님께서 정념을 내보내어 악을 제거하란 요구를 제기하지 않으셨지만 나 자신은 이미 실질적으로 악을 제거함에 참여하였다. “왠선(元神)이 빠져나갈 수 있는 수련생들은 수련 잘된 그 일부분의 신의 몸(神體)을 주재(主宰)할 수 있다.” 《미술창작연구회에서의 설법》 물론, 사실 천목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왠선이 신체를 이탈할 수 있든지 없든지, 정념이 늘 있게끔 파악하기만 하면 반드시 올바른 작용을 일으켜 사악한 요소를 제거한다.
이 글을 써내는 목적은 또 자신을 잘 닦는 것과 중생을 구도하는 관계 문제를 다시 말하고 싶어서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을 잘 닦지 못하면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는 효과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울러 현재 우주 중에 남아 있는 최후의 타락한 요소는 아직까지 정법을 교란하고 중생이 구도됨을 교란하는 나쁜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우리가 세 가지 일을 할 때 자신을 실질적으로 수련(實修)하고 잘 닦음에 더욱 중요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 우주의 최후의 사악한 요소를 반드시 신속하게 해체하며, 이로써 중생이 외래 요소에 통제 당하지 않은 청성한 상태에서 지혜롭게(明智) 대법을 대할 수 있으며, 가장 청성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즉 정법을 교란하지 않고 구도되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함이다.
문장완성:2005년 07월 08일
문장발표:2005년 07월 09일
문장갱신:2005년 07월 10일 00:19:32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7/9/10575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