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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사례에 대해 전화를 건 심득

글 / 금련

【명혜망 2005년 5월4일】오늘 나는 박해사례에 대해 전화를 건 심득을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유형의 사례에 전화를 거는 것이 진상을 알리는 절차에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절차라고 늘 생각해왔다. 대법제자는 이를 마땅히 중시해야 한다. 그것은 이런 박해가 수련생 개인을 놓고 말할 때, 그들이 붙잡혀 들어간 후 심신은 잔혹한 박해를 받아 일부는 맞아서 불구가 되고, 일부는 가정이 파탄되며, 일부는 심지어 생명을 잃는 전대미문의 참상들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살인 방화하는 것을 보고도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心性(씬씽) 문제인즉,” (《전법륜》) 하물며, 그들은 우리의 동수이다!

정체적으로 말하면 붙잡힌 이 제자들은 모두 걸어 나와 진상을 알린 이들이고 그들이 붙잡힌 것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도 될 기회를 잃는 것인 바, 손실은 아주 거대하다. 때문에 긴박성에서나 중요성에서 모두 홀시할 수 없다. 그외 사례 속에 발표된 공안, 경찰, 610사무실, 노교소 인원들은 모두 사악의 통제를 받아 직접 박해를 집행하는 사람들로서 우리의 정체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 아주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하고 그들이 저지르는 악을 제지해야 한다. 이로써 대륙 동수의 강대한 압력과 위험을 감소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정념으로 악행을 제지하라》의 경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현재 하는 일체는 모두 세상 사람과 중생을 구도하고 있으며, 모두 박해를 폭로하고 있고, 모두 박해를 제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악의 각종 박해 행위를 인정해서는 안 되며, 박해 중에서 사악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대법제자를 박해하게 해서는 더욱 안 된다.”

최근 우리는 가오룽룽이 또 다시 불법으로 체포되고, 기타 박해 사례도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았다. 《명혜망》의 보도에서 매일 평균 10여 개, 20여 개의 박해사례가 있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끼치게 한다. 원인을 찾아보니, 나 개인적인 체험은 《9평》이 나와 사악으로 하여금 두려움이 생기게 하여 죽기 전의 발악을 하는 것 외에 우리의 정체에 누락이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대륙의 제자들은 이 1년, 2년 동안 온갖 심혈을 기울이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 개 또 한 개의 혈흔이 찍혀있는 박해 사례를 해외로 전하였으며 사악으로 하여금 대면적으로 폭로되게 하였다. 현재 우리가 정리한 박해사례는 이미 3만개를 거의 채워가고 있다. 작년 7월 내가 전화팀에 가입하였을 때 거의 5천 개에 달하였지만 현재 박해사례는 몇 배나 증가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수련생들이 아직도 심리장애를 돌파하지 못하였고 이 방면을 금지구역으로 여기며 부딪치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감히 부딪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타이완에서 진정으로 지속적으로 박해사례에 대해 전화를 거는 이는 아직도 제한되어 있다. 이 수 만 개의 박해사례와 비길 때 비례수가 현저히 떨어지고 정체적인 힘을 형성할 수 없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만약 홍콩 23조에 겨우 몇 백 명이 일어선다면, 만약 타이완 총통부 광장 앞의 장(江)제소사건 혹은 탈당 성원활동에 겨우 몇 십 명의 동수들이 참여한다면 무슨 작용을 일으키겠는가? 그럼 이렇게 사악하고 사람을 해치는 이런 마귀굴과 요귀굴을 마주하고 모두 다함께 일어나서 마주해야 함이 더욱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방금 전에 말한 그 심리장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다. 두려운 마음이 제거되지 않아 아직까지 공안을 대처하는 가장 좋은 무기인 전화기를 들지 못하였으며 그것을 이용하여 포위 공격하는 임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전력(戰力)은 물론이거니와 제고되기도 아주 어려운 것이다.

지금 우리 다함께 사부님의 《2003년 미국중부법회에서의 설법》을 다시 배워보자. “사악들이 창궐하다고 보지 말라. 모두 벌벌 떨고 있고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 물론 사악한 생명이 전부 제거되기 전에 여전히 악인을 지시하여 나쁜 일을 할 것이며 사악에게 조종당할 때 악인은 이지가 없지만 냉정해졌을 때 그것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있다. 수련생들의 매 한 통의 전화마저도 그것들이 놀래서 잠을 못 자는데—두려워한다”

사부님의 경문을 보면 우리 매 한 통의 전화가 사악을 진감시키는 이렇게 좋은 작용을 하는데 우리는 도리어 또 “무슨 까닭에 발걸음이 느릿느릿한가”? 한 사람의 두려움, 두 사람의 두려움은 그래도 작은 일이지만 만약 현재까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체에 누락이 있음이 아닌가? 나는 우리가 마땅히 잘 가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안 강제노동수용소에 전화를 거는 것이, 전반적으로 효과가 좋고 나쁘고는 어느 사람들이 얼마나 잘 말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제자들이 전화를 들려고 하며, 지속적으로 정념으로 가서 전화를 거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만약 해외의 대다수 대법제자들이 모두 조금만 시간을 내어 직접 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면 매일 한통, 30초도 괜찮다. 정말로 시간이 없으면 이틀 혹은 사흘에 한통, 심지어 일주일에 한 번씩도 괜찮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다 일어나서 참여할 수 있는가이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포위 토벌》에서 말한 대로 “대법제자들 진상을 알리거니 정념 법력으로 요귀 소굴 때려 부수는(大法众徒讲真象 正念法力捣妖穴)” 정체의 역량으로 “썩어빠진 귀신들의 마음과 간담이 서늘하게(烂鬼心胆寒)” 할 수 있다.《그물을 거두고 있다》

나는 우리가 사람마음을 조금이라고 더 내려놓고 전화기를 가볍게 들면 된다고 보는데 산을 넘고 고개를 넘을 필요 없고, 또 모진 비바람과 혹독한 더위를 마주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에서 “입으로 예리한 검 뿜어내어” 이런 흑수와 썩은 귀신들을 조준하여 발사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좋은 것을 하지 않을까?

그외 일부 수련생은 전화가 끊어져 효과가 좋지 않다고 여기고 좌절감이 생기어 계속 전화를 걸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전화를 걸기만 하면, 한 마디만 하여도 혹은 상대방의 이름만 불러도 힘이 있다. 전화를 끊어도 전화를 거는 사람이 많으면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가끔 상대방이 해외라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끊는다. 혹은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라는 것을 알고 고의적으로 받지 않는데 이렇게 해도 여전히 작용이 있다. 그것은 이것이 사실 상대방이 두려워한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절대로 어떠한 좌절감이 있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자신의 힘을 얕보지 말아야 한다.

모두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라, 50명, 100명이 매일 십 여 통 전화를 걸면 만 명이 매일 한 통 거는 것이 아닌가. 이 힘을 어찌 비길 수 있겠는가? 만약 한 파출소에서 불법으로 사람을 붙잡은 후 매일 전화를 몇 십 통씩 받는다면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있는가? 한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사람을 때리기만 하고 살인하기만 하면 단번에 아주 많은 전화가 몰려들어오는데 그들은 그들이 한 나쁜 일이 수시로 감시 당하며 숨길 방법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물론 두려워한다. 우리는 동수들이 이 문제를 잘 고려해 보기 바란다.

전에 한동안 TV에서 세미나 프로를 보았다. 한 정치평론가는 그가 늘 중공을 엄하게 비평하는데 도리어 중공측으로부터 방문 요청이 자주 들어온다고 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붙잡히면 어쩌죠?” 그는 “그럼 당신들이 날마다 전화를 걸어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세요. 이후에 일이 소란스럽게 되면, 사람을 풀어주지 않아도 그 안에서도 좀 잘 지낼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 암흑 속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이 한 단락 대화를 동수들에게 참고로 제공한다.

나는 상대방이 두려워한 한가지 예를 들겠다. 한번은 대법제자를 체포한 공안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는 절반 정도 듣고 긴장하여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또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전에 한 소장은 진상을 들은 후 더는 박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표시하였다. 한번은 성이 이(李)씨인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절반가량 듣고서 연거푸 부인하기를 전화를 잘못 걸었으며 나는 이씨가 아니라 장(张)씨다고 하였다. 일분도 안되어 그는 성을 고친 셈이다. 일부 사람들은 전화를 끊어버린 후 내가 다시 전화를 걸면 그들은 전화를 팩스로 돌려놓거나 또 선로고장으로 바꿔놓는다. 심지어 전화선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또 한번은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 걸었다고 말하였고 나는 그에게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시켰다. 그는 전화번호는 맞지만 이미 식당으로 되었다고 말했으며 나는 그에게 바뀐 지 얼마 되었는가 고 물었더니 그는 반년이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그가 공안인 것을 알고 그에게 식당 이름을 물었는데 그는 갑자기 대답하지 못하며 이름도 지어내지 못했다. 나는 그를 곤란하게 하지 않고 진상을 알렸고 나중에 그는 진상을 모두 들었다.

며칠 전 나는 610사무실의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람이름이 없고 핸드폰 번호만 있었다. 그는 장례식장이라고 하였다. 그는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이 집단학살죄를 저지르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 그때가 되면 (박해자는) 사형 당하는가고 물으며 이렇게 되면 그의 장례식장 장사가 잘 될 것이다 고 하였다. 나는 “문화대혁명시기의 그 사람들의 말로를 생각해보라. 자살한 사람은 자살하고 총살한 사람은 총살되며 어차피 선악에는 보응이 있어 언젠가는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고 하였다. 사실 끊임없이 욕하며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도 실은 마음이 허한 표현이다. 내가 전화를 건 경험에서 볼 때 정말로 그러하였다. 하여 우리는 정말로 자기 자신이 자신을 놀라게 하지 말아야 하며 또 전화가 끊겼다고 하여 좌절감이 생기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우리가 열심히 전화를 걸고 지속적으로 걸면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박해사례에서의 구도대상 중 아주 많은 이가 사람을 불법으로 체포하거나 사람을 때리고 살인한 자들인데 만약 구도할 수 없다고 하여도 역시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해야 한다. 그래서 전화가 끊기는 상황이 발생하면 나는 다른 화제를 돌파구로 하여 다시 전화를 걸었다. 예를 들어 파룬궁이란 말만 들으면 전화를 끊지만 내가 다시 전화를 걸어 분신자살이 가짜라고 말하고 이번 박해는 천리를 거스른 불법 행동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내가 “파룬궁박해를 추적조사하는 국제조직”이란 사이트에서 당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보았다고 말하였다…… 혹은 파룬궁탄압에 참여하면 집단학살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들에게 오늘날 탄압한 “공로”가 내일의 죄증이 되고 파룬궁이 반드시 명예회복된다는 등등을 일깨워주었다. 이렇게 하면 가끔 또 그들은 계속 듣고 상대방이 잘 듣지 않는다. 세 번 끊어버리면 또 세 마디 진상을 듣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만약 장검(长剑)이 효력이 없으면 단도(短刀) 를 이용할 수 있다.

《9평》이 나온 후 진상 알리기에 또 한 가지 예리한 무기가 증가되었다. 《9평》을 돌파구로 하기 위하여 나는 제3자의 신분으로 말하였다. 나는 일반적으로 이렇게 시작하였다. 국내에서는 파룬궁을 금지하지 않는가?(금지란 단어는 비교적 중성으로 말함) 이미 6년이 거의 되어가나 우리는 지금 해외에서 매스컴이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한 소식을 자주 보게 된다. 맞아서 불구가 된 이, 얼굴이 훼손된 이가 있고, 게다가 사진까지 있으며 이미 국제적인 주목과 질책을 일으켰다. 이번 박해는 우리 중국의 명예에 큰 손실을 끼쳤다…… 그리고 일부 인권수호사건을 섞어서 말한다. 예를 들면 스촨(四川) 한위안(汉源) 공안이 농민을 총살한 것, 자오쯔양이 죽기 전까지 연금된 것 등등이다. 즉 파룬궁을 중공이 인권을 박해 하는 사건 중의 한 개 사건으로 여기게 하였다. 그 다음 대법진상을 알렸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위화(伪火)”를 보았는가고 묻고 장쩌민이 기소된 것을 아는가 등등을 묻는다. 소식을 서로 나누는 형식으로 다시 《9평》을 말한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효과가 괜찮다. 대기원의 정중성명, 9평 표제 그리고 탈당조류 등을 들은 후, 가끔 그들은 희망의 소리와 자동응답 전자메일 주소를 적었다.

그외 가끔 대법진상을 알릴 때 그들로 하여금 《9평》을 보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정보과의 공안은 나에게 파룬궁이 중난하이를 포위공격 하였는데 붙잡지 않을 수 없지 않는가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해외 매스컴이 이것을 보도하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나의 진상알림을 통하여 상대방의 일부 독소를 제거하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그는 그에게 “9평”이 있지만 보지 않았다고 하였다. 나는 또 일부 “9평” 정황을 말하였는데 그가 반드시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 여 경찰은 “9평”을 들은 적이 있지만 보지 않았다고 하였다. 진상을 알린 후 그녀는 보겠다고 하였다. 나의 체험은 《9평》을 말하면서 또 대법진상을 알림을 홀시하지 말아야 하며 서로 보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나누어 말하면 비교적 적합하다.

나는 우리가 욕을 먹고 전화가 끊어짐에 대해 금강부동 할 수 있으나 수련생이 불법으로 체포되고 박해 당함에 있어서 절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수련생은 30초 짜리 전화원고를 제공하였는데 여러분들이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30초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 일깨워주는데 당신이 전화를 들기만 하면 매 한 통의 전화는 모두 그의 힘이 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더는 참을 수 없다》경문을 여러분들과 함께 배워보자. “참음이란 진리를 위하여 일체를 버릴 수 있지만 참음이란 이미 인간성이 없고 정념이 없는 사악한 생명이 중생과 대법의 부동한 층차에서의 존재를 극악무도하게 파괴하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살인방화에 대한 무시가 더욱 아니다. 眞 善 忍은 법이다! 이는 우주대법이 부동한 층차에서의 체현이지, 절대로 사람이 인정하는 사람의 무슨 사상과 속인생활의 준칙이 아니다. 만약 사악한 것이 이미 구원할 수 없고, 필요 없는 지경에 도달하였다면, 가히 부동한 층차의 각종 방식을 취하여 제지시키고 제거해 버릴 수 있다.”

부족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5년 5월 3일
문장발표 : 2005년 5월 4일
문장갱신 : 2005년 5월 4일 13:42:00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5/4/101044p.html

(English Translation: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5/5/30/61322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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