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지린대법제자
【명혜망】
신의 나타남은 나로 하여금 신의 존재를 믿게 하였다
나는 50여세이고 원래 간부업무를 하였다. 당문화의 주입으로 본래 무신론자여야 하는데 신, 불, 보살이 나의 앞에서 여러 차례 진실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곳곳에서 성불의 길을 찾게 하였다.
신불은 늘 나의 앞에 나타났는데 집, 길, 사무실 안에서 모두 나타났으며 심지어는 산에 오를 때 신불이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주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여래불, 관음보살, 도가, 그리고 이름 모를 신들이 아주 많았다. 한번은 집에서 천수천안관음을 보았다. 무수한 손들이 무수한 금빛 찬란한 눈을 받치고 있었으며 신체 전체가 온 방안에 가득 찼다. 나는 혼자 집에 있을 때 마음은 특별히 조용하고 머리는 늘 텅 비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벽, 천장을 주시하면 모두 신불이 나타났고 가끔은 천정이 없어지면서 하늘의 별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소파에 앉아 고대사회의 정경을 볼 수 있었는데 사람들의 옷 차림새가 모두 고대옷이었다. 그들은 바삐 돌아치고 번뇌가 없었으며 말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 정말로 “세외도원(世外挑源)”이었다. 길을 걸을 때 만약 좀 지나서 잘 아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 사람은 만나기 이전에 벌써 머리의 우측 상공에 나타났다. 그리고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낯선 사람)을 낮에 만나고자 하면 오전에 반드시 그 사람을 보았다. 가끔은 심지어 몇 달 전에 다른 공간에서 그 사람을 늘 만났다.
나는 어릴 때 선량하고 노인을 공경하며 사상이 단순하였다. 사업에 뛰어든 후 종래로 사회에 따라 도덕이 타락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보수적이고 완고하였다. 한동안 아주 출가하고 싶었고 정말로 비구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불문에 귀의한 후 그 스님들의 속인마음이 제거되지 않아 돈과 재물에 대한 욕구가 아주 강함을 발견하였다. 더욱이 관광명승지의 사찰에서 모두 불상을 팔아 돈을 벌었고 심지어 스님과 비구니가 지반을 쟁취하기 위해 점을 치며 돈을 벌었다.그리고 또 더러운 말을 하고 크게 손찌검을 하였으며 자신이 출가하여 수련하는 사람임을 완전히 잊었다. 그리하여 구경하는 관광객들의 멸시와 웃음거리를 샀다. 나는 아주 망연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일을 많이 생각하고 싶지 않아 혼자 집에 있으면, 다른 공간에서 동쪽에 한 무리 서쪽에 한 무리 남녀노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저녁에 침대에 누우면 다른 공간에서 온 한 가닥 강한 기류가 이불마저 부채질하듯 들썩이었다.
법을 얻기 전 어떤 때 한 사부가 나의 소복 앞에서 파룬을 돌리는 것을 가르쳐 주었고 아주 미묘하게 느껴졌다. 집안의 서재 앞에서 축이 있는 큰 파룬을 보았다. 나는 그곳에서 정좌하였다. 나는 이 일들을 기공을 연마하거나 혹은 부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그들은 모두 해석하지 못하였다. 후에 그래도 시(市)에 가서 일을 처리하면서 부처님을 믿는 사람을 만나서 물었고, 이 사람은 나에게 그것은 “파룬이 늘 돈다”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편벽한 산골에서 살고 있어 소식이 봉쇄되었고 근본적으로 파룬따파를 알지 못하였다.
나는“진선인”이 우주대법임을 믿었다
1996년 7월 나의 한 친척이 찾아와 어머니의 생신을 같이 지냈다. 그녀는 95년에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하여 심신 각 방면이 갈수록 좋아졌다. 주요하게 “진선인”에 따라 마음을 닦았으며 또 지금 전국에서 모두 이 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나는 듣자마자 아주 조급하게 서점에 뛰어가 최초의 대법책 4권을 샀다. 《전법륜》, 《전법륜(권2)》, 《중국파룬궁》, 《파룬따파 의해》이다.
나는 새벽에도 밤에도 책을 보았다. 더욱이 《전법륜》 이 책은 나를 아주 격동하게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여러 해 동안 찾았던 대법이었다! 책을 본 후 나는 5조 공법을 정확하게 배우려고 시(市)에 가서 연공장을 찾았다. 보도원은 열정적으로 맞아주었고 끈기있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법공부하는 곳과 연공장에 데리고 가서 법공부하게 하고 연공하게 하였다. 또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1500위안의 돈을 빌려주어 VTR을 사게 하였다.. 나는 모든 대법책과 설법테이프, 카세트를 청해갔다. 집에 돌아온 후 하루도 멈추지 않고 집에서 법공부를 조직하고 연공장을 조직하였다. 그 후 나의 고향에서 농촌에 이르기 까지 법을 배우고 수련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법을 얻은 후 나의 목 부위에 여러 해 동안 있었던 피부염이 나았고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던 치통이 사라졌으며 겨울에 갈라졌던 발의 상처가 나아졌다. 이어서 나의 백발은 검게 변하였고 정신상태는 홀가분하고 즐거웠다. 신기한 일도 끊임없이 나타났다. 법을 얻은 지 며칠이 안되어 나는 어머니 집에 공을 전하러 갔다. 길 가는 도중 차에서 사부님께서는 나의 정수리의 뚜껑을 여시더니 고공에서 나의 머리에 무수한 금빛 찬란한 종자를 쏟아넣으셨다. 어머니 집에 도착하자 나는 사부님께 어머니한테 파룬을 넣어줄 것을 빌었고 80여세인 할머니는 즉석에서 파룬이 도는 것을 느꼈다.
어느 한번은 농촌에 공을 전하고 홍법하러 갔을 때이다. 연세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오랫동안 과로가 쌓여 아주 많은 병이 있었다. 얼굴색은 누렇고 날마다 약에 의지하였다. 내가 그녀의 집에 가서 물건 사고 나간 후 그녀는 정신이 좋아짐을 느끼었다. 약도 먹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으며 주동적으로 막 조직된 법공부하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하였다. 이 일은 또 한번 대법의 위력을 증명하였다. 나의 어머니는 大자도 알아보지 못하는 80여세의 할머니이며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지 하에 일년도 안되는 사이에 대법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배우셨는데, 아버지가 한 켠에서 읽으면 어머니는 한 켠에서 주의하여 듣고 기억하였다. 후에 모두 기억하였고 매일 일이 끝난 후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하였으며 점차적으로 300도 되는 돋보기도 벗어버렸다.
3년 동안 안정된 환경에서(96년 7월 – 99년 7월) 나는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수련하는 중에 대법의 신기한 재현(再現)을 여러 차례 겪었으며 이는 진정으로 나로 하여금 “진선인”은 우주대법 임을 믿게 하였다.
양심을 어길 수 없다
1999년 4월25일이 지난 후 장쩌민, 뤄간 등 한 무리들이 파룬궁에 대해 잔혹한 탄압을 계획하였으며 박해의 날짜가 점점 가까워졌다. 1999년 7월 20일 사악의 대법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성 도시 대법보도소의 소장들이 불법으로 수감되었다. 나는 가서 청원하였고 그 결과 공안국에서 경찰을 파견하고 회사는 보위과의 사람을 파견하여 여러 차례 나의 집 문을 부수고 소란을 피웠다. 그리하여 나의 어머니는 심장병이 돌발하였다. 돌아온 이튿날 아침 경찰 2명이 나를 공안국으로 불법으로 납치하였고 내가 어디에 갔었는지를 조사한다고 하였다.
경찰 문: 이 며칠동안 어디에 갔었는가? 베이징에 갔었는가 아니면 성(省)정부에 가서 소란을 피웠는가?
답: 청원하였다. 정부가 불법으로 잡아간 우리 보도참의 책임자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경찰: 당신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고 공산당과 대항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또 감히 중난하이를 포위 공격하고 각급 정부를 포위 공격하였는데 이는 반란이다.
답: 무엇이 반란인가? 우리는 국가가 우리에게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좋은 사람을 불법으로 체포할 수 없다. 당신은 우리가 “정부를 뒤엎자”고 외치는 것을 들었는가?
경찰: 듣지 못했다 .
나: 당신들이 법률을 위반하고 선량한 파룬궁수련생들을 마구 잡아들였는데 우리는 청원도 할 수 없는가?
경찰은 말이 없었고 한참 지나 또 다른 한 경찰로 바꾸었다.
후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바꾸었고 아침부터 저녁 8시가 넘도록 계속 되었다. 나의 남편이 공안국에 와 사람을 찾아서야 겨우 나를 집에 돌려보냈다.
2000년 말, 회사 총지부서기, 지부서기가 나를 찾아와 면담하였고 연말 개인총결을 쓸 것을 요구하였다. 내가 총결을 그들에게 준 후 이튿날 두 서기가 찾아와서 나의 총결이 부적절하며 반드시 파룬궁문제에서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전 세계 40여개 국가에서 모두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그 국가정부는 모두 지지하는데 유독 중국의 장(江)씨가 반대한다.당신들이 중국 근대사인 전쟁연대의 극좌, 극우, 57년 반우, 3반5반, 문화대혁명을 생각해보라, 어느 운동이 정확했는가? 어느 운동이 명예 회복되지 않았는가? 우리가 ‘眞善忍’을 수련하는데 무엇이 잘못인가? 좋은 사람이 많은 것도 죄란 말인가?”고 하였다.
두 사람은 헛소리를 해댔다.“공산당이 당신에게 월급을 주어 당신을 먹여 살리는데 반대로 공산당을 반대한다. 무엇이라고 하여도 소용없다. 반드시 다시 써야 하고 반드시 당신의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에게 말한 내용을 다시 한번 종이에 썼다. 그리고 또 이렇게 보탰다. 만약 나에게 양심을 어기는 거짓말을 하라면 불가능하다. 공산당은 인민에 의해 먹여 살려지는 것이고 절대로 공산당이 인민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였고 절대로 위법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만약 당신들이 기어코 나에게 사실을 위반하라고 한다면 “불합격당원”으로 정하거나 혹은 당적을 제적해도 괜찮다. 이 총결을 올려보낸 후 나는 집을 떠나 법을 실증하였다.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고 법을 실증하며 한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나가다
2000년 12월 초, 나는 홀몸으로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고 대법을 실증하였다. 아침에 나는 눈보라를 맞으며 길에 올랐다.
기차역을 출입할 때 비록 경찰의 심문이 있었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베이징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신분증이 없어 거처를 잡을 수 없었다. 편벽한 곳의 단층집이라도 모두 경찰이 날마다 호구를 조사하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 올라와 방을 임대한 파룬궁수련생들은 누구도 감히 나를 받지 못하였다. 그 당시 이미 밤 10시가 되어가고 날씨가 아주 추웠다. 그리고 지리도 모르고 사람도 몰라 나는 거처를 빨리 찾게 해달라고 사부님의 가지를 빌었다. 이때 방법이 떠올랐고 기차를 타고 베이징 역 전의 한 역에서 내려 순조롭게 여관을 찾았다. 숙박부에 기록할 때 신분증이 없어도 아무 말이 없었다. 밤에 경찰이 문을 두드리고 조사할 때 주인이 극력으로 엄호해 주었다.
이튿날 베이징에 들어가 수련생을 찾았다. 그 당시 나는 아무 것도 없어 수련생을 빨리 찾게 해달라고 사부님의 가지를 빌었다. 그 때 톈안먼 앞과 광장은 음산하고 공포스러웠고 곳곳마다 경찰차이었다. 경찰과 사복경찰이 곳곳에서 사람을 체포하였다. 사부님의 가지 하에 반나절도 안 걸려 톈안먼 어귀에서 백발의 할아버지를 발견하였다. 경찰이 지나간 후 관광객들 앞에서 겉옷을 벗고 가슴 앞의 현수막 “파룬따파는 좋다”를 드러냈다. 나는 즉시 그와 말을 걸었고 우리는 합작하여 현수막을 만들기로 하였다. 작은 것은 붙이고 큰 것은 걸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지하통로, 버스, 전신주 등 곳곳에 붙였다. 나는 또 이 수련생을 거처까지 모셔와 법을 실증하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교류하였다. 그는 베이징에 네 번 왔었고 진상을 알린 경험이 아주 많았다. 그후 우리는 만든 현수막을 모두 붙이고 나서, 각자 고향에 돌아가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들과 교류하기로 하였다.
내가 또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 여전히 날마다 광장에서 기회를 보면서 현수막을 펼쳤다. 매일 많은 수련생들이 광장으로 가는 길에서 맞아 쓰러졌고, 어떤 이는 펼치고 외치기도 전에 경찰에게 맞아 쓰러졌다. 일부는 포륜동작을 할 때 경찰이 뒤에서 걷어찼고 또 경찰이 곤봉으로 수련생들을 때리는 것을 늘 보았다. 많은 수련생들이 그 자리에서 맞아 머리가 터지고 피를 흘렸다. 나는 간단하게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좋은 시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어느날 나는 기차역에서 십여 명의 여인들이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함을 발견하였다. 마치 붙잡힌 후 갓 풀려난 것 같았으며 그녀들이 돌아갈 차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법을 실증하는 일은 우리 여러 제자들의 공동의 힘이 필요하기에 지금은 집에 돌아갈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주동적으로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당신들은 파룬궁입니까?”대답이 없었고 그녀들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어서 나는 성실하게 말했다.“제가 파룬궁입니다. 저는 당신들과 할 말이 있습니다.” 말을 끝내고 나는 기차역을 걸어 나왔다.
그 후 한 젊은 사람이 따라왔다. 나는“사부님의 정법의 길은 아직 결속되지 않았고 우리는 더욱 잘해야 합니다. 곤난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며 호법의 길을 계속 잘 걸어야 합니다.”고 하였다. 바로 이렇게 남은 사람들을 나의 거처로 데려갔다. 며칠이 안되어 나의 거처에는 12명의 남녀노소가 함께 있게 되었고 같이 교류하였다. 시간이 길어지자 여인숙 사장도 알아챘고 우리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를 모두 가장 안쪽에 있는 방 몇 칸에 배치하였다. 그곳은 각지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온 수련생들을 맞아주는 거점이 되었다. 법을 실증하는 물품도 전부 있었고 나는 또 VCD를 복사하는 기술을 배우도록 배치되었다. 많이 나가서 전단지를 배포하였는데 베이징 지도에 따라 매일 주민구역을 한바퀴 뛰어다녔고 밤에는 나가서 현수막을 걸고 진상사진 등을 붙였다.
(계속)
문장완성: 2005년 06월 20일
문장발표: 2005년 06월 21일
문장갱신: 2005년 0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6/21/1044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