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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私)의 뿌리를 파다

글/중국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5월 30일] 요 며칠, 아내는 늘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제 장인어른과 아내는 모두 내가 진보하려 하지 않고 진취력이 없다고 말하였다. 아내가 나를 직접 지적하기를 내가 태만하고 게으르며 꾸물거린다고 하였다. 후에 나는 사부님께서 그들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조용해 진후 나는 꼭 한 번 잘 사고해 보겠다고 표시하였다.

이튿날 아침, 나는 알람 소리에 깨어났는데 떠오르는 첫 생각이 바로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은 것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3시 40분에 일어나 연공을 하였는데 장기간 나는 아침마다 한동안 사상투쟁을 한 후에야 일어났으며 어떤 때는 그대로 계속 자버렸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연공할 때면 늘 감각이 뿌듯하여 진짜로 이를 악물고 두 시간 연공을 견지하였다. 그래도 스스로는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고 생각하였다. 이때 나는 돌연히 이것이 아내가 나를 점화한 “태만하고 게으르며 꾸물거린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늘 태만하고 게으르며 꾸물거린다고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고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나에게 마치 좋은 구실을 찾은 듯 하였다. 그 구실이 바로 “이것은 그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 상태인 바 무엇이나 다 알고 무엇이나 다 명백하며 어떤 것이나 관계하려 하지 않으며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뼈 속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 틀린 것이 너무 많았다. 내가 연공함은 원만하기 위함이고 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세계에로 사람을 데려가려는 것이며 심지어 사상의 깊은 곳에서는 더 많이 데려가려는 생각도 있었는데 모두 나의 위덕을 위한 것이었고, 연공 중의 지불, 소업은 오히려 그렇게도 달갑지 않게 감당하였다. 진상을 이야기할 때도 자기의 친인들이 인식하지 못하면 급해서 화가 났으며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여 그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면 곧 이 사람은 구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였다. 진상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도 말을 청산유수처럼 줄줄 하면서 모두들 반드시 나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요구하였으며 내가 아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높은가 하는 과시심에 상대가 알아 듣든말든 아주 높게 이야기하였다. 법공부를 할 때에 다른 사람이 찾아 오면 시끄러워 했는데 그 사람은 가능하게 진상을 들으러 온 사람일 수도 있었다.

사부님은《뿌리를 캐다》경문 중에서,“나는 일찍이 보아내었다. 개별적인 사람의 마음은 대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사회의 무엇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한 속인이라면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인류사회를 수호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 한 가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수련하는 사람이다. “어떤 기점에 입각하여 대법을 대하는가”하는 이것은 근본적인(根子) 문제로써, 바로 내가 당신에게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당신들의 수련 중에, 나는 일체 방법을 써서 당신들의 모든 마음을 폭로시키며 뿌리로부터 그것을 파낸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사부님은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중에서 “사람을 말해 본다면 정말로 관건 시기에 다른 사람을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정법(正法)을 시작할 때, 일부 신들은 나에게 “당신만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 씁니다”라고 했다. 당신들이 들어도 불가사의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대법이 육성한 다른 사람을 위한 정법정각(正法正覺)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하지 않는다면 모든 생명은 역시 역사에 따라 결속된다. 그러므로 한 생명으로서,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고려할 수 있는 것과 표현된 관용은 기점이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표면상에서 대법제자가 하는 세 가지 일을 나도 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나의 “사(私)”적인 것을 체현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은 나 자신을 수호하고 나 자신을 실증하는 것임을 인식하였다. 나의 이런 “사(私)”는 나의 뼈 속에, 나의 심층에 존재하고 있으며 새 우주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뿌리상에서의 문제인 것이다.

사부님은 《2005년 맨하튼국제법회설법》에서“만약 여러분이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 한다면 곧 위덕이 없으며, 한 말이 법에 있지 않으면 중생을 구도한다는 것을 말할 나위가 없으며, 한 말에 위덕이 없고 힘이 없다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사악도 틈을 탈 것이다. 심지어 만약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한다면 정념도 부족하게 되며 일부 일을 처리할 때 속인의 그런 생각에 치우칠 것이다. 그럼 중생을 구도하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게 된다. 허다한 속인, 그들도 사실 대법제자를 도와 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속인이 대법제자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대법제자이며, 당신들이 하는 것은 당신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한 것이고, 또한 자신의 위덕을 세우고 있는 것이며, 신의 이 길에서 원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私)”의 뿌리를 뽑아 버리니 연공할 때 나는 더는 지루하고 참기 어려운 감을 느끼지 않았고 매우 홀가분하였다. 마지막으로 나와 여러분들은 다시 사부님의 설법을 학습하기로 하자 “대법 수련자가 자신이 사(私)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면 점차적으로 그것을 극복하라. 인식을 했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 중에서 또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이 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며 또한 자신이 “이기적인가 이기적이지 않는가”하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수련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반대로 늘 자신을 돌이켜보고 안으로 향해 찾을 것이다.”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문장 완성: 2005년 5월 29일
문장 발표: 2005년 5월 30일
문장 갱신: 2005년 5월 30일 00:20:43
문장 분류: [수련마당]
원문 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5/30/1029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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