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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속에서 성장하여 비바람 속에서 성숙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오설 

【명혜망 2005년 5월29일】나는 어릴 때부터 기공을 좋아하였고 15살 그해에 처음 사부님의 사진을 뵙게 되었는데 그렇게 익숙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에 마치 많은 것이 생각나는 것 같았는데 눈앞에는 사부님께서 용포를 입은 모습이 보였다. 비록 그 당시엔 아주 명백히 알지 못하였지만 이 연분은 나로 하여금 대법에 들어오게 하였다.

법을 얻은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다! 대법이 나에게 가져다 준 거대한 변화에 대해 무척 흥분해할 때 사악하고 미친듯한 박해가 곧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가정, 학교에서 오는 각종 압력은 눈사태처럼 내려왔다. 그러나 가족이 어떻게 반대하여도 나의 단호한 수련의 의지는 동요하지 못하였다. 어느 한 정치과 수업시간 선생님께서 대법에 대해 비방하기 시작하였고 나는 선뜻 일어나 사실을 밝혔는데 전 반 학생들이 놀라워하였다.

나와 똑 같은 나이인 여자 아이 츙(璟)은 어릴때부터 열려서 수련하는 아이였고 나를 만나자마자 “끝내 너를 찾아구나.”라고 하였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 천상에서 그녀와 놀아주던 친구들이 그녀에게 알려주길, 그녀가 이렇게 크게 자랐을 때(손짓) 함께 내려온 친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녀에게 시 한 수를 읽어주었다. 그녀는 숙명통에서 우리가 역사상 법을 기다려온 수많은 세(世)를 보았고 당태종이 아이일 적의 우리를 데리고 어화원에서 노는 것을 보았다.

2000년 나와 츙은 베이징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길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졌고 그 당시 나는 머리가 윙하였다. 그러나 아주 빨리, 얼마나 어렵든지 대법은 첫째라는 생각이 들었다.

톈안먼에서 우리는 아주 긴 현수막을 펼쳤으며, 그 뒤로 8개월 간수소 생활 속에서 가족과 학교 간수소의 끊임없는 세뇌는(바로 우리가 수련을 포기하게끔 핍박)성공하지 못하였으며 나중에 할수 없이 개정 심리를 하였다.

이 전에, 변호사는 나를 설득할 때 무의식 중에 “나는 당신이 좋은 제자가 되길 바란다.”고 한마디 하였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여 마음 속으로 반드시 노력하여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매일마다 노력하여 법을 외우고 연공하였으며 같은 호실의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인연있는 몇 사람이 여기서 법을 얻었고 한 사람은 연공하다가 간수자에게 발각되어 매를 맞았지만 나중에 여전히 단호하게 연마하겠다고 하였다.

간수소의 식단은 질이 아주 좋지 않았다. 한 재소자는 처음에 밥을 먹을 때마다 나를 보면서 멍해 있었다. 후에 그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네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고생을 하니 나는 가슴이 아프다.” 나는 웃었고 바람을 쐬는 마당의 벽에 이렇게 적었다.”큰 파도의 천번의 일굼을 받는 것은 본래 금이오, 백번의 단련을 겪은 나는 철이오.”

어느 한 번 그는 나에게”너는 반드시 정과를 이룰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연공할 때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법정이 열리는 그날, 전 반의 사생들이 왔고 아래는 또 학교의 지도자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법정의 변호에서 나는 법관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파룬궁은 국민과 나라에 백 가지 이익이 있을뿐 단 한 가지 해로움이 없다!” 공검법의 아저씨 삼촌들은 나의 진상을 들을 때 눈 빛에서 나는 그들이 선량한 일면이 감동을 받음을 보았다.

후에 법정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우리를 석방하였다. 나온 후 츙은 나에게 그녀의 하늘의 친구들이 우리를 아주 부러워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할 기회마저 없다고 그녀에게 말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아주 긴 천서를 보았는데 위에는 매 한명 대법제자들이 소원을 빌고 하계한 정황에서 이 시각의 표현까지 적혀있다고 하였다.

학교에 돌아온 후 학교는 잘못을 인정하라는 조건으로 나를 협박하였다. 비록 학교 생활과 날마다 함께 지내던 선생님, 동창생들이 그립지만 이러한 선택을 마주하고 나는 단호하게 학교를 떠났다.

현지의 주요한 대법 연락인들이 모두 불법으로 판결받고 노동개조당하여 자료 공급이 멈춰지고 모자랐다. 그 때 우리 두 아이는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에 의지하여 수 많은 일들을 감당하였으며 이로써 늘 밖에서 밥먹고 잠을 잤다.

후에 우리는 잇달아 불법으로 판결을 받았다. 그후 3년동안 감옥에서 어떠한 압력을 마주하여도 나는 시종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지켰다. 사부님께서는 “마음 하나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만가지 움직임을 제지시킬 수 있다”(《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

한동안 사법부는 감옥에 끊임없이 압력을 넣어 강제 전향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거액의 상급과 진급을 미끼로 하여 악경들은 이지를 잃었으며 잇달아 오랜 시간동안 체벌, 야밤 심문, 혹독한 매질이 이어졌다.

그들은 나를 위협하여 이른 바 죄를 승인하는 글을 쓰게 하였고 나는 담담하게 이렇게 적었다. “태어나 이 목숨을 얻어 가치있게 죽는다!” 그리고 엄숙하게 경고하였다.”대법을 선하게 대하면 공덕이 무량하고 대법을 박해하면 필히 악보를 받는다!” 마지막 한 차례 야밤 심문에서 나는 재차 그들에게 경고하였는데, “만약 그들이 불법으로 박해하여 후과를 초래하면 우리 해외의 수련생들은 반드시 폭로해 버릴 것이다.” 고 하였다. 그들은 방법이 없어 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였다.

가장 어두웠던 나날에 한 20여세 된 제자가 박해로 사망하였는데(이미 폭로되었음) 그에게 폭력을 가한 악범은 그에게 대나무 바늘을 사용하였다. 감옥에서 법을 얻은 한 단호한 수련생은 동성애 악범에게 유린을 당하였다.

모진 비바람 속에서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 하에 우리는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중히 여기라. 당신들이 걸어온 길을 반드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오로지 자신이 걸어온 이러한 길을 소중히 해야만, 여러분들은 비로소 이후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다.”(《2004년 부활절 뉴역법회에서의 설법》 반드시 우리가 걸어온 길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우리가 걸어온 길을 소중히 여겨야 비로소 이후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다. 남은 길이 어떻게 간고하든 지간에 우리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이 역사상 가장 휘황한 한 페이지를 원만하며 끝까지 걸어갈 것이다.

한 선량한 경찰이 전에 감탄하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네가 대학에 가면 꼭 아주 우수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비록 박해 속에서 소년 시기의 대학꿈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오늘날 대법 속에서의 수련은 곧 우주에서 가장 위에 있는 학부로서 여기서 미래 새로운 우주의 엘리트를 만들고 있다!”.

문장완성:2005년 05월 28일
문장발표:2005년 05월 29일
문장갱신:2005년 05월 29일 09:36:23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5/29/10289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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