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무명
[명혜망 2005년 4월 12일] 내 보기에는 협조자든 책임자든 우선 모두 대법을 수련하는 제자이며 또한 ‘동수(同修)’라고 통칭(統稱)한다. 사부님께서『아태지구 수련생회의에서의 설법』중 “대법제자는 진정한 수련인이다. 만약 오늘의 사회형식이 이러하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이 불학회조차도 당신들더러 설립하지 못하게 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럼 곧 각지의 연공장, 책임자, 지역의 책임자인데 바로 이러하다. 사실 책임자 역시 소집인(召集人)으로서 역시 수련 중의 보통일원이며 여러분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고 대가를 더 많이 치르는 사람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이해하건대 이것은 이미 많은 수련생들중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책임자에 대한 정확하지 못한 인식을 직접 교정해 주는 것이다.
협조 일을 하는 수련생은 자신을 동수들의 일원에 놓아야지 그 이상은 아니다. 이것은 협조자의 수련과 작업으로 말하자면 모두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나 자신도 협조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감수를 항상 느꼈다. 아마도 속인사회의 표상속에서, 많은 동수들이 보건대 우리들이 대법에 대한 확고한 마음과 오성이 좋기에 훌륭히 감당할 수 있고 또한 동수들의 리더도 될 수 있기에 협조자를 본인도 모르게 수련생의 일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행정단위 영도자로 착각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협조 일을 하는 동수들한테는 매우 큰 고험일 수도 있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많은 동수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협조자들을 동수들의 상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심지어 일부 동수들은 협조자를 아주 대단한 인물로 생각한다. 또 좋고 그름을 확실히 분별하지 못하고 대법의 표준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으로 그들을 따라 한다. 내 보기엔 이런 행동은 오히려 동수들을 해치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런 행동은 협조자들로 하여금 환희심과 과시심리가 쉽게 생기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전법륜』중 “과시심리”에서 이 방면에 대해 이런 법을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 문제를 이야기함은 바로 여러분에게 알려 주려는 것이다. 일단 이런 사람이 나타나면 당신은 절대로 그를 무슨 대단한 각자로 여기지 말라. 이는 수련에서 아주 엄숙한 문제로서 오직 이 대법에 따라 해야만 비로소 맞는 것이다. 남의 공능이나 신통을 보지 말아야 하며 일부 그런 것을 보면 당신은 그를 따라갈 것이며 곧 이렇게 가서 들을 것이다. 당신도 그를 해칠 수 있다. 그는 환희심이 생겨날 수 있어 최후에는 자신이 무엇이든 다 잃어버리며 닫혀버려 결국에는 떨어져 내려가게 된다. 개공 되었어도 떨어져 내려갈 수 있으며 파악하지 못하면 개오하여도 떨어져 내려갈 수 있다. 그 부처도 잘 파악하지 못하면 역시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데 하물며 당신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사람인지라 더 말할 나위가 있는가! 그러므로 얼마나 많은 공능, 얼마나 큰 공능이 나왔고 신통이 얼마나 크게 나타났는지를 막론하고 당신은 꼭 파악해야 한다.”
또 한 방면은 협조자는 수련생들과 많이 접촉하는데 자신 주위에 있는 동수들에게 어떠 어떠한 수준에 도달하라고 요구하지 못하기에 자신들의 언행이 많은 동수들에게 영향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 말하자면 협조자의 책임은 중대하다. 즉, 경솔해서는 안되며 자아과시도 하지 말아야 하며, 꼭 청성하고 냉정한 두뇌와 심중한 태도를 유지하여야 한다.
사실 사부님의 평론문장 “금부처”에서도 책임자 본인과 주위 수련생들이 책임자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정확하게 인식하고 정확하게 책임자를 대할 것인가를 거듭 말씀하셨다. 많은 동수들은 어쩌면 앞부분에서 얘기한 그 기름튀김 이야기만 주의한 것 같다. 시간이 있으면 한번 열심히 보았으면 좋겠다.
수련은 마지막 단계까지 도착했다. 대법제자들은 마땅히 이 방면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아야 하며 자신을 그르치지 말고 또한 다른 동수들에게도 방해가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문장완성: 2005년 4월 11일
문장발표: 2005년 4월 12일
문장갱신: 2005년 4월 12일 02:47:27
문장분류: [제자절차]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4/12/994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