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산둥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4월 4일] 사부님께서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반드시 세 가지 일, 법공부, 발정념, 진상 알림을 해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로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진정으로 믿어야 하며, 법에 용합되어 ‘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바로 수(修)이다’
나는 98년 10월에 법을 얻었다. 법을 접하자 마자, 정말이지 ‘너무 늦게 만났다’는 생각이 들만큼 늦게 만난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일하는 외 (당시에는 아직 퇴직하지 않았다), 여유 시간은 모두 법공부와 연공을 할 정도로 대법수련은 내 생명의 제일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99년 7월 20일 탄압이 시작될 때에도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내가 대법을 배우는 것을 동요할 어떤 요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법공부를 통하여, 나는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전법륜》은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하늘 사다리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진정으로 인생의 참뜻을 찾았다……. 나는 너무나도 행운이었던 것이다!
퇴직하고 난 뒤에 낮에는 1살이 채 안 된 외손자와 93세인 시어머니를 돌보는 시간 외는 바로 법공부를 하였다. 시간이 없으면 녹음기를 업고 들었다.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매 주마다 《전법륜》을 2-3번 정도 반드시 읽어야 하며, 계획적으로 사부님의 최신 경문들을 번갈아 봐야 한다고 규정해 놓고 실천하였다. 일년이 지나자 그동안 동수들의 체험담을 듣기만 하던 것으로부터, 차츰 나 자신도 법공부에서 감수한 것을 말 할 수 있었다.
대법의 개방(開啟)하에, 우리는 법공부와 수련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설하였는데, 자연히 우리 집이 공개되지 않은 모임 장소가 되었다. 처음에는 몇 명부터 시작하여 뒤에는 8명까지 늘었다. 그때 비록 사악의 탄압이 매우 창궐하였지만, 동수들끼리 일단 같이 있으면 마치 ‘세상 밖의 낙원’ 같은 느낌을 받았으며, 이를 두고 모두 세간에서의 유일한 정토라고 느꼈다. 우리는 같이 있으면 시간을 다투어 각자의 수련 체험들을 말하고, 진상을 하면서 경험한 일을 소개하였다. 우리는 일에 부딪히면 법으로 가늠할 수가 있었고, 모두 안으로 찾아서 법에서 제고를 가져왔다. 우리 8명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2년 동안 매주 한 번의 모임은 꾸준하게 견지하였다. 바로 우리 이 법공부하는 집체가, 불법으로 추격 당하는 동수들을 보호하였다. 또 집없이 떠돌아 다니는 대법제자들에게는, 우리 매 사람마다 모두 돈을 내어 도와 주었는데, 몇 십원에서부터 몇 만원에 이르기까지, 옷과 이불도 포함하여 매 사람은 모두 최선을 다하였다. 자료점에 있는 동수들은 우리들을 그들의 견고한 후원자라고 불렀다.
2001년 6월 12일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의 공능을 열어 주셔서 신통을 사용하여 대법을 박해하는 사악하고 썩어빠진 귀신들과 법에 부합되지 않은 신들을 청리하게끔 하였다. 우리는 《명혜망》에서 제기한 대로 정각에 발정념을 하였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천목이 열렸어도 낮게 보였기 때문에, 다만 일부 검은 기(黑氣)들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같이 모여 발정념을 할 때, 나는 우리 공간 마당과 매 사람의 몸에 있는 검은 기들을 보았다. 우리는 목적있게(有地放矢) 다른 공간에 있는 사악들을 청리할 수가 있어, 적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에 도달할 수가(事半功倍) 있었다. 예컨대 어떤 수련생이 마난 속에 있을 때, 그의 몸에는 검은 기들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짙고 빽빽하여, 우리는 그를 도와 집착을 찾고, 또 같이 발정념을 하여 제거하였다. 청리할 때 그의 몸에 있던 검은 기들은 차츰 맑아지고 하얗게 변하다가, 마지막에는 온 신체가 금황색으로 변하였는데 그는 바로 매우 편안한 감을 느꼈다.
그것은 2001년의 겨울이었다. 어느 하루 나와 둘째 언니는 정각에 발정념을 하였다. 자신을 5분 동안 청리 한 후, 우리 집 위에 있는 하늘에 먹장구름이 뒤덮힌 것을 보았는데, 검은 기는 꺼멓고 또 빽빽하였는데, 마치 여름에 폭풍우가 오기 전의 까만 구름이 뒤덮이는 것 같이, 우리를 향하여 내리 눌렀다. 순간에 하나하나가 큰 사기 항아리처럼 그렇게 굵었는데, 3 m가 넘었고, 양쪽에는 가늘고 뽀족하였는데, 이때 가부좌한 나의 다리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곧 제일 큰 검은 물건이 나를 향하여 내려 올 때, 나는 바로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 하고 외쳤다. 이때 나의 눈앞에는 남북 골목이 나타났고, 이 골목길의 남쪽끝의 동쪽벽에는 ‘법정건곤, 사악전멸’이라는 한장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전날 저녁에 붙인 것이었다. 나는 급한 상황에서도 지혜가 생겨, 바로 스티커를 떼어 공중으로 확 뿌렸더니, 순식간에 모든 검은 기들은 없어졌으며, 온 공간마당은 바로 황금색으로 변하였다. 이에 둘째 언니의 “아이구”라는 소리와 함께 나는 정말로 견지하지 못하겠다 라는 소리가 들려 왔다. 분명이 그의 다리도 극통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태였던 것 같았다.
뒷 날 저녁 내가 시내에 자료를 전달하고 돌아올 때 광장에서 수련생을 만나 말을 몇 마디 하고 다시 돌아서 갔다. 이 광장이 있기 전부터 여기에서 십 여년을 살았기에, 광장에 대하여 너무나 익숙하였지만 나는 갑자기 흐리멍텅하여,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할 정도였다. 이렇게 광장에서 반 시간이란 시간을 허비하여서야 겨우 집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집에 들어 서자 남편은 나의 핸드폰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하면서, 오늘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3번이나 울렸는데, 처음 2번은 남편이 받아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니 끊었다가, 마지막 한 번은 그 사람이 이 핸드폰이 남편 것이냐고 물었다고 했다. 남편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바로 자신의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이 핸드폰은 지금까지 남편의 몸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상대방은 잘못 걸었으니 미안하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에 알았지만 이 핸드폰은 여자분이 사용하고 있다고 누가 말한 것을 알게 되었다. 만일 내가 흐리멍텅하지 않아 제시간에 집에 들어 왔다면, 그 전화는 틀림없이 내가 받았을 것이며 시끄러움도 아마 함께 왔을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시끄러움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먼저 다른 공간에 있는 사악들을 전멸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또 한 번은 나와 남편이 같이 발정념을 하였는데, 역시 모든 공간 마당에 검은 구름들이 빽빽이 있었다. 그래서 온 전력을 다하여서야 깨끗하게 청리하였다. 이튿 날 저녁에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였는데, 한 농촌무역 시장의 다리 위에, 나는 그 자리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스티커를 붙이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악들도 그 곳이 중요하다고 보고 전문적으로 사람들을 파견하여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다리 위에 올라 가 서쪽 난간에다 스티커 한 장을 붙이고, 5-6미터쯤 걸어 왔을 때, 중년 남자가 곧장 내가 붙여 놓은 곳을 와서 쳐다보고는 발견하지 못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리 동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한가하게 산보하는 사람처럼 보였기에 별로 개의치 않고,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다시 스티커를 붙이자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나와 나란히 된 다음에는 그가 자전거에서 내려서 나와 같이 걸었는데, 내가 빨리 걸어 가면 그도 빨리 걷고, 내가 걸음을 늦추면 그도 같이 늦추었다. 나는 그제야 그가 사악의 졸개라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었다. 나는 계속 정법 구결을 외웠기에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이렇게 다리 끝까지 갔을 때, 나는 빠른 걸음으로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 어두운 곳에 몸을 숨겼는데, 그는 마치 나를 보지 못한 것처럼 자전거를 타고 서쪽으로 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서는 나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한 사람이 걸어 왔는데, 그들은 서로 아는 사람으로 그들이 말하고 있을 때 나는 빠져나와 버렸다. 이 사실을 놓고 보더라도 우리가 먼저 다른 공간에 있는 사악들을 청리하면, 악인들은 악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 이후에도 자료를 배포할 때면, 역시 미행당하고 쫓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 놀라기만 했을 뿐 위험은 없었다.
2002년 봄에 우리 법공부 소조는 역시 주기적으로 모였으며, 주기적으로 심득 교류를 하였다. 어느 하루 발정념을 하는데, 역시 모든 다른 공간마당에 검은 기가 가득한 것을 보고, 한 시간도 넘는 시간을 거쳐서야 그것을 깨끗하게 청리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에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아마 위험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우리에게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였다. 나는 그날 저녁 대법자료와 서적들을 옮겨 놓았다. 이튿 날 8시 이후에 우리 8명 중 6명이 사악에게 잡혀가서 세뇌를 받았다. 이 일이 있기전 이틀 전에 다른 한 수련생이 잡혀가서 세뇌를 받았지만, 우리는 모두 모르고 있었으며 바로 그가 우리의 일체를 말한 것이었다. 그 후부터 나는 집을 떠나 떠돌아 다니는 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나는 줄곧 진상을 하면서 중생을 구도하였다. 나는 마주하고 진상을 하는 것이 제일 실질적이고 제일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즉시 상대방의 대법에 대한 태도를 보아낼 수 있고, 또한 그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제 때에 해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가던지를 막론하고, 적당한 사람만 만나면 나는 곧 진상을 이야기 한다. 나는 명절을 이용하여 시골에 갔을 때는 대법이 좋다고 이야기 하고, 친구나 친척들에게 대법이 좋다고 이야기했으며, 노인들에게 대법이 좋다고 이야기 하고,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도 대법이 좋다고 이야기 하였으며, 학생들에게도 대법이 좋다고 이야기 하였는데, 얻은 효과는 아주 좋았다.
나의 언니는 풍습성 심장병을 벌써 30여 년이나 앓았고, 나중에 또 고혈압, 반신불수에 걸려, 해마다 약을 떠나지 못했으며, 게다가 사흘이 멀다하고 병원으로 다녔는데, 일년에 적어도 5,6번은 병원에 입원하였기에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내가 떠돌아 다닌 후 더는 언니에게 주사를 놔주지 못하게 되었다. (형부는 내가 수련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곧 언니에게 “파룬따파는 좋다, 진선인은 좋다”를 묵념하라고 알려 주었고, 동시에 진심으로 읽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결국 기적이 나타났다. 삼년이 되어 가는데, 언니는 병원에 입원한 적도 주사맞은 적도 없고, 어떤 때에는 약을 조금 먹고도, 생활을 완전히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사부님께서 《대법행》에서 쓰신 것 처럼 “세 글자 진언은, 이치가 분명하고 언어가 명백하노라, 속인은 표면만 알아도 후한 복 받을 것이오”
내가 지금까지 한 것은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지금까지 톈안먼에 가서 사부님께 대한 공정한 말을 한 마디와 파룬따파는 좋다고 외쳐 본 적이 없다. 사부님의 자비와, 사부님의 보호가, 나의 수련의 길을 이렇게 평온하게 하였으며, 나로 하여금 오늘까지 사악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게 하셨다. 심지어 직장의 영도들도 나를 찾아 오지 않는데, 그들 또한 나를 찾지도 못한다. 매일 나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세 가지 일을 한다. 나는 이 세 가지 일을 착실하게 해야 하며 열심히 한다면, 수련의 길에서 침착하고 대범하게 걸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당한 점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로 시정해 주기를 바란다.
문장완성: 2005년 4월 3일
문장발표: 2005년 4월 4일
문장갱신: 2005년 4월 6일 17 : 47 : 06
문장분류: [제자절차]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4/4/9884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