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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실증하는 과정 중 자신의 위치를 찾다

글/대만 제자

[명혜망 2005년 4월 6일]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대만 대기원에서는 계속해서 일부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일보(日報)로 바뀌었지만 나 자신의 수련에 대해 책임지고 대법에 책임지기 위하여 그동안 내가 일을 하면서 보아낸 문제에 대해 써 내고자 하니 동수님들도 지대한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

첫째, 사람을 스승으로 여기면서 법을 스승으로 모시지 않았다

대기원 시보 책임자 및 일부 동수들은 신문사의 일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어서, 이는 대법사업이기 때문에 신문사는 반드시 느슨한 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동수에 대해 요구를 해서는 안되고 사업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서는 안되며 속인의 조직구조를 채용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보니 정책 결정자에게만 권한이 있고, 관련 담당자에게는 해당 권리가 없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의 사업에 대한 지도 및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는 법리 (사부님께서는 및 많은 설법에서 모두 대법제자가 사업할 때 응당 갖추어야 할 태도에 대해 지도적인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와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신문사에는 적극적이고 질서정연한 모습을 볼 수 없고, 일을 할 때는 성급하게 서두르게 되어 일처리 또한 신중하지 못하며 후과를 고려하지 않았다. 일을 꼼꼼하게 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속인의 전문 분야에 맞춰서 일을 해야 한다고 제기한 수련생은 오히려 정념이 부족하고 법공부가 착실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견을 견지하는 수련생은 배척을 받았으며, 회의 시에는 이러한 동수에게 참가 여부를 알리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참여하지 않은 동수들에게는 신문사에 일손이 딸려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들은 일반 동수들은 전문 기능을 가진 수련생이 신문사에 가서 협조하지 않는다며 강도높게 비평을 한다 (또는 그들에게 가서 일에 참가하라고 고무격려 했다). 그러다 보니 일에 참여하려 했지만 오히려 배척을 당한 동수들은 그저 쓴 웃음만 지을뿐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했다.

신문사에서 방향을 올바르게 잡지 못한채, 어떤 것이 속인들이 보기 좋아하는 내용인지 똑똑히 모르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전문 기능을 가진 동수들은 마음속으로는 급했으며 괴로워했다. 또 정책 결정자는 늘 틀린 건의를 택하였는데 (일부 수련생은 신문사의 일이 어떤 것인지 모르면서도 건의를 하여 대량의 인력과 물력을 소모하게 하였다) 이런 경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책임자는 새 방안을 시험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정체적인 업무기획 능력과 목표 설정 능력, 앞을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거시적인 식견이 없고, 인재를 감별할 줄 모르며 부동한 의견을 용납할 수 있는 넓은 흉금과 매 하나의 문제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없는 이런 경영팀은 속인 중에서도 기필코 실패하기 마련인 것이다. 하물며 대법제자(대법제자의 표준은 더 엄격하지 않은가?) 신문사인데도 운영체제가 없어 혼돈(混沌)상태가 나타났다. 신문사의 일은 모두 자신이 깨달아야 하고 틀리게 깨달으면 방할하였으며, 일체는 책임자의 깨달음에 따라 늘 변화되었는데, 즉 사람을 스승으로 여겼다. 어느 한 번은 각지의 동수들이 모여 밤 늦게까지 교류하였는데 나중에 결정을 내릴 때는 교류에 참가조차 하지 않은 한 모 책임자의 한마디 말에 의해 부결 당하였다. 이런 현상은 신문사에서 늘 발생하다보니 많은 동수들은 열심히 참여해 보았자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게 하여 더 이상 참여하기 싫어했다.

책임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의 근본을 찾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 의견이 많은 수련생이 시끄럽게 하고 협력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따라서 일부분 책임자를 스승으로 여기는 동수들 조차 책임자를 수호하는 마당이 형성되었다. 내가 이 문제를 제기함은 매 하나의 대만 대법제자는 모두 이 문제를 정시(正視)하고 이 마당(場)을 바로 잡아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좋은 환경을 개척하는 것은 매 대법제자의 책임이며 그저 몇 명의 책임자에게만 희망을 걸어서는 안 되는바 이렇게 하면 책임자에게 압력를 더 가해주는 것이다.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서로 법을 스승으로 모시는 중요성을 일깨워주기를 희망한다.

둘째, 문외한이 전문가를 지도하다

책임자, 협조인이 자기가 책임진 업무의 범위와 업무의 특성, 그리고 속인사회의 실제 정황에 대해 똑똑히 알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책임지려고 하는데, 이렇게 했을 경우 곧 신문사의 동수들은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곤난이 증폭되며, 진행된 행사에 늘 대량의 인력, 물력을 동원했지만, 도리어 속인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효과가 뚜렷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동수들 뿐,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는 것을 저애하는 구실로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대만에서는 진상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며, 여러 가지 행사를 조직하는 것은 북아메리카(北美)동수들의 활동에 배합하기 위함이라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다른 동수들이 제기한 일부 건의에 대해서는 열심히 연구하지도 않고 들어보지도 않고서 일단 문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조급해 하는 바람에 일이 뒤죽박죽 되어버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동수들의 심신(身心)은 모두 피로해져 버렸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동수들은 또 이런 동수들에 대해 동정하면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곤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차츰 협조하려 했던 동수들은 무력함을 느끼고 떠났고, 한 단락 시간이 지난 후에는 신문사에서 일손이 딸린다는 소식을 알리면 또 한 팀의 동수들이 신문사 일에 투입되었으며, 여기에서 또 신문사의 문제를 발견하여 선의적인 건의를 제기하면 또 다시 채용되지 않는 악성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셋째,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는 것과 책임을 인식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 매 대법제자의 생명은 스승님을 도와 정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생생세세에 훈련을 받은 속인의 기능 역시 정법에 쓰이기 위한 것이다. 속인의 기능을 갖추려면 시간과 학습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신문사 내의 보편적인 인식은 도리어 속인의 기능으로 신문내용을 편집하거나 광고 업무를 토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반드시 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주요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신문의 내용이나 제목이 속인들이 알아 볼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광고를 얻느냐 못 얻느냐는 부차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선타후아(先他后我)하라는 요구와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이렇게 속인의 형식을 이탈하려 하고 초상(超常)적인 이치로 신문사를 경영하는 방법은, 늘 속인들로 하여금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우리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모르게 하였다. 새 동수들도 학습할 방법이 없게 되었으며 또 속인들로 하여금 모두들 대기원 신문은 파룬궁 신문이다라고 여기게 하였다. 원래 진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협조하려던 대기원 신문이었는데 도리어 우리가 사람들에게 먼저 대기원 신문을 위해 진상을 말해야 했는바 실로 노력은 많이 했지만 성과는 매우 적었다.

만약 매 한 사람마다 법을 얻음이 사부님께서 질서있게 배치한 것이라면, 일부 동수들이 속인과 잘 어울릴 수 있는 부분이 좀 많이 남겨져 있어 지금에 와서 대법에 쓰이게끔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한 수련생이 말하는 방식이 속인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그 수련생이 오락방면의 뉴스를 아주 잘 취재할 수 있는 것을 보았다. 만약 그 어떤 속인의 유행어를 듣지 않고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동수라면 이 일을 할수 없는 것이다. 고대의 대의학가들도 비록 천목으로 환자의 병조 부위를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맥을 보는 방법을 사용하여 사람들도 하여금 이해되게 하였다. 이 역시 속인 이 한층의 법을 수호하는 것이 아닌가.

현재 정황을 놓고 말하면 모두들 정체적으로 법에 대한 인식을 더 깊이있게 하고 업무과정 중에 실천에 옮기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 법공부가 잘 되어있고 이해를 깊이 한 노수련생은 되도록 신문의 내포와 방향 문제에서 심혈을 많이 기울여서 옆에서 협조하여, 전문 기능이 있는 동수들이 마음 놓고 일을 하게 함으로써 되도록 그들에게 재주를 발휘할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들이 잘 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바 두려워하는 마음도 버려야할 마음인 것이다.

물론 법공부를 한 시간이 길거나 짧거나 신문사의 경영팀은 꼭 성공과 실패를 감당할 결심과 책임을 지는 법(做法)이 있어야 하는바,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려니 하는 마음으로 동수들을 이끌고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매우 많은 수련생들은 신문사의 일처리 방법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친 법리와 맞지 않는데 대해 이해되지 않아 하고 있으며, 또한 어떻게 교류해도 책임진 수련생은 계속 자기 고집만 부리면서 심지어 늘 사부님께서 말씀한 것이다는 말로 다른 수련생들의 입을 막는 정황이 나타났다) 그리고 또 권리와 책임을 분명히 구분하여 일을 분배할 때 능력을 가늠하여 시켜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맡은 일을 잘 할 능력이 없는 수련생은 꼭 자신의 능력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하며, 자신이 할수 없을 때에는 즉시 다른 사람에게 하게 해야 하는데, 누가 나보다 더 잘할 수 있으면 누구를 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예를 하나 들어 설명하자면 얼마 전 신문사에서 수련생들에게 신문사의 수입과 지출의 균형문제에 대해 의견을 제기하라고 하였다. 신문업에 종사한 지 근 20여 년 된 한 수련생이 신문함에 관한 기획방안을 제출하였는데 신문사에서 이 동수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은 대부분 법리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일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전업인가를 알았는바, 그의 심혈이 깃든 이 기획방안은 객관적이고도 실용적이었는데 지불해야 할 인력 물력 및 얻을 수 있는 효익에 대해 매우 상세한 평가까지 하였었다. 실로 실행할 만한 좋은 방안이었고 또한 그 수련생도 이 방안을 집행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제기한 것이었다.

이런 전문 인재는 속인 속에서도 보기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신문사의 책임자, 협조인 및 일부 동수들은 이렇게 협조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적은 물력과 인력으로 능히 신문사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데 대해 기뻐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가 법공부가 깊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니고서, 명리에 대한 마음을 놓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신문사에 와서 무슨 좋은 점을 얻으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흠집만 잡고 나중에는 결국 그의 방안을 부결해 버렸다.

이것은 설 전의 일인데 설 후에는 일보(日報)로 발행하기로 하고 그 방식은 급유소에서 신문을 나누어주는 방법을 채용하기로 했다. 이때 이 수련생은 “사실 많은 신문사에서도 이런 방법을 채용한 적이 있는데 효과가 좋지 못하였으니 발행 중에 문제에 부딪칠 것이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는데 이런 정면적인 의견도 채용하지 않았다.

결국은 원래 방안을 집행하고자 할 때 문제가 나타났는 데, 돈을 많이 썼지만 (속인의 신문은 급유소에서 무료로 주지만 우리는 많은 돈을 써 가며 속인들에게 선물까지 주었는데, 이는 속인들 이치로 말하면 신문사에서 독자에게 선물까지 주는 일은 참 괴상한 일인 것이다) 효과는 좋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수련생이 또 다시 신문함 방안의 가능성을 제기하였는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신문사에서 그 방법을 채용하기로 했지만 다른 수련생에게 그 책임을 지게 하였다. 대법의 일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맞게 될 수련생에게 그전에 이미 다른 수련생이 상세한 방안을 작성한 것이 있고(이 기획방안은 몇 달 동안 준비한 것인데 이후 발생할 문제의 해결방안까지 마련하고 실제조작을 거쳐 실행이 가능하니까 제기한 것인바 가히 매우 짧은 시간내에 대기원의 지명도를 높이고 수입과 지출 균형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수련생을 찾아가면 자세히 알수 있으며 또 신문함을 만들 기업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때문에 새로 책임을 맡은 수련생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하에서 처음부터 조사하여야 했고 게다가 시간이 급한 상황에서는 잘못하기가 쉬운 것이다. 책임자가 이렇게 수련생들의 인력과 물력을 소중히 여길줄 모르는 바람에 대량의 자원이 낭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처음 아이디어를 낸 수련생을 존중하지 않는 이런 행위는 대법에 대하여, 수련생에 대하여 실로 말할 수 없는 큰 손상인 것이다.

특히 새로 들어온 수련생들로 하여금 신문사의 일에 참여하는 과정 중에 쩐, 싼, 런이 어떻게 구체적인 업무 중에서 표현되는지를 느끼게 함으로써 나아가서 대법수련 단체에 대해 좋은 정념이 생겨 더 정진하게끔 하는 동력이 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여 곤혹스럽게 했다.

사실 신수련생뿐만 아니라 매우 많은 노수련생들도 오래 전부터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매우 위대하고 매우 신성하다 하여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대기원의 정신은 무엇인가? 속인 사회에서 일으켜야 할 작용은 또 무엇인가? 우리의 모든 사상 기점이 진정하게 眞,善,忍을 실천하는데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르게 걸을 수 있는가 하는 관건이며, 진정하게 양성순환에 도달할 수 있는 관건이다.

만약 그저 설교와 유심(唯心)에만 그치고 자신이 수련을 잘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줄곧 자만하고 득의 양양하게 스스로 즐거워 하면서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실시를 홀시하고, 사회상의 여론으로 자신이 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 검토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존재하는 이런 교오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일을 한다면 어떻게 노력해도 모두 밖에서 구하는 것이다.

맺음말

나는 법을 얻은 지 거의 5년이 되고 있으며, 미디어팀 사업에 참여한 지 3년 가량 된다. 비록 신문사에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한 지 오래되었지만 배척당하고 고립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일부 책임자 동수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 하지 못했으며 하나의 정체적인 인식이 부족했고 두려워 하는 마음, 질투심, 불만이 가득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소감을 써서 여러분과 교류하지 못했다.

물론 내가 이해하고 있는 부분과, 문제를 보는 각도가 넓지 못하고 깊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소감을 쓰면서 줄곧 다른 수련생들이 말하던 소감을 쓰면 쓸수록 마음이 순정해 진다는 감각을 체험하였으며 다른 공간에서 장벽같았던 사악과 썩어빠진 귀신, 좋지 못한 물질이 붕괴되는 것을 보았다.

이 순간 나의 마음은 매우 평온하며 마치 한 학생이 선생님께서 내 주신 숙제를 다 한 것처럼 그렇게 편안하다.

뿐만 아니라, 그 전에 그들에 대해 견해가 있던 수련생들을 생각해도 마음 속에는 이젠 다른 견해가 없다. (쓰기전에는 견해가 좀 있었다) 지금 나의 몸은 매우 가볍고 머리도 마치 무게가 없는 듯 느껴진다. 나는 이것은 자신의 행위가 眞,善,忍에 부합된 후의 체현임을 잘 안다.

이렇게 틀린 일을 많이 하고 굽은 길을 그렇게 많이 걸은 제자에게 여전히 한 번 또 한 번 기회를 주며 제자의 각성을 기다리고 있는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사부님, 제자는 사부님께 죄송합니다. 항상 사부님의 자비를 소중히 여기지 못했으며 같은 잘못을 범하고 또 범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후에 꼭 결심을 내리고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잘 하며, 씬씽(心性)을 지키고 사악에게 틈 탈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며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더 잘 하겠습니다.

보충하는 말

혹시 부분적인 수련생들은 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이미 때 지난 인식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기하는 것은 지금 신문사가 받는 여러 방면의 압력이 매우 큼에도, 나는 옆에서 문제를 보아냈지만 도울 방법이 없음이 너무 안타까워 이렇게 심득을 쓰는 방식으로 여러분과 교류하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중점은 두 가지인바 하나는 삼계 내에서 일을 함에 있어서 삼계 이 부분의 이치에 부합되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협조인은 진정으로 전문기능이 있는 수련생들로 하여금 재주를 발휘하게 하고 그들을 믿고 고무격려하며 협조하여야 하는데 오직 정법수련의 내포와 정신만 잘 파악한다면 어떤 속인의 형식으로 가서 표현하던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재능을 모두 발휘하게끔 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문내용은 꼭 대법의 내포도 있고 속인들도 보기 좋아 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를 설명하고자 하는데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신문함 건이다. 대만에서 신문사를 경영하는 것은 기타 지역의 상황과 정반대이다. 국외에서는 나라가 크지만 중문으로 된 간행물이 적다. 대만은 나라가 작지만 중문으로 된 간행물이 수백 가지가 된다. 어떻게 부동한 지역에 대하여 부동한 경영 방안과 판매책략을 제기하는 가에 대한 문제는 공을 들여서 심각하게 연구해야 한다.

정신과 물질은 일성(一性)이다. 우리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얼마만큼의 공을 들여서, 어떠한 효과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 인력, 물력을 들이든지 꼭 기획한 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책임을 지는 표현이며 대법이 제자들이 하는 일에 대한 요구에 부합되는 것이고 참여하고자 하는 매 한 명의 수련생에 대하여 소중히 여기는 것이며, 우리와 접촉하는 속인들이 옳은 길로 돌아서게 하는 기회를 포착하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만약 기획하는 과정 중에 만나는 매 한 사람, 매 한가지 일, 매 하나의 과정, 매 하나의 부분에서 모두 선타후아(先他後我), 무사무아(無我無私) 할 수 있고,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 준다면, 만약 진정으로 이렇게 해낼 수 있다면 이 판매 활동 건에 주입된 생명은 기필코 좋고 선량할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매개 판매 활동건이 모두 이렇게 된다면 이런 것들이 모이면 양성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된다 해도 실제로 집행할 때면 꼭 쉽지 않을 것이며 매우 고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소중한 것으로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사람의 많은 관념을 버리고 많은 업력도 없앨 수 있으며 참여하게 된 동수와 더욱 좋은 정체를 형성할 수 있고 대법과 인연이 있는 중생을 더욱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왜 꼭 지역판을 만들고자 했던 원인이다. 사회에 더욱 깊이 들어가야 만이 더욱 많은 중생들과 친구가 될 수 있고 더욱 철저하고 세밀하게 진상을 전할 수 있으며 속인들의 선념(善念)을 일깨울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함께 협조할 수 있는 것이며,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고 마음으로부터 마음으로 전하면서 곳곳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가 닿는 강대한 효과를 발생하여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것은 개인의 소감인바 이렇게 글로써 제기함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히 제고하려는 것이다. 틀린 부분이 있다면 동수들이 지적해주고 원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문장 완성: 2005년 3월 30일
문장 발표: 2005년 4월 6일
문장 갱신: 2005년 4월 15일 23:16:26
문장 분류: 【수련마당】
원문 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5/4/6/985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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