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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어떤 상태여야 구원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 하다

글/정옌

[명혜망 2005년 4월 13일] 우리 대법제자들이 한 일체는 모두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중생이 구원되었음의 표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일부 대륙 동수들은 의혹이 생겼다. 대법의 진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표준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사이트에 3퇴 성명(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에서 탈퇴하다. 역자 주.)을 발표했는가를 표준으로 할 것인가?

* 의혹의 상태

이러한 수련생들의 사상 방법은 세인이 이미 대법의 진상을 이해하고 있지만, 만약 사이트에 3퇴 성명을 발표하지 않아도 구원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반드시 사이트에 3퇴 성명을 발표해야만 구원될 수 있다고 한다면 세인이 대법의 진상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이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듯 문제를 제기한 수련생들은 ‘중생이 어떤 상태여야 구원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답을 알면, 어떤 사람들이 구원되었는지 알 수 있어 시간을 더 들일 필요가 없으며,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그쳐 진상해야 하고,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좀 천천히 진상해도 된다는 것 등등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일부 수련생들은 자신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탈퇴하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그것의 한 분자이며, 한 입자이며, 그것이 구성한 일부분이자 또한 뭇 신들이 제거하려는 목표가 될 것이다. ” ( 《세간을 향해 파룬(法輪)을 돌리노라》) 의 진정한 내포를 법리상에서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어떻게 하여야만 탈퇴했다고 할 수 있는가? 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탈퇴할 수 있는가? 하는 이러한 곤혹스러움으로 인해 일부 수련생은 한동안 진상 알리기의 동력을 잃게 되었는데, 그 중 상당 수의 일부분은 갑자기 정력을 9평을 배포하고 사람들에게 3퇴를 권유하는데 쏟으면서 (물론 속인의 신분으로 이지적으로 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급선무이며, 대법의 진상을 알리고 안 알리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기까지 하여 아예 대법 진상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 동수까지 있다.

* 신은 사람이 문제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

사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더욱 많은 대륙 동수들은 마음을 조용히 하면 그 답안을 모두 알고 있다. 특히 이 몇 년동안 견정하게 수련하며 정법노정을 바싹 따라서 진상을 매우 착실하게 하고있는 대법제자들은 이러하다. 몇 달 이래, 명혜망에 올려진 많은 글에도 부동한 각도로부터 이런 문제들을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부분적 수련생들의 사유방식은 너무 기계적이고 간단하여 (예를 들어 말하면, 한 가지 일이 발생하였을 때, 오직 이 일만 가장 중요하고 기타의 것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으며 심지어 다른 것과 모두 병존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늘 문제를 단절시켜 인식한다고 여긴다.) 글 속에서 자신이 찾으려고 하는 답안을 줄곧 찾지 못함으로 인하여 하루하루 지나칠수록 초초하고 불안한 기분이 생긴다.

사실 신의 일면으로 문제를 본다면 이런 의혹이 생기지 않는다. 사람의 사유, 게다가 장기적으로 당 문화에 젖어 있음이 이렇게 사물을 인식하도록 조성하였다. 기왕 폭로된 바 이므로 마땅히 닦아버려야 하지 계속 이런 것들에 따라 사고하고 추구해서는 안 된다. 신이 문제를 볼 때는 원용한 것이고, 초탈한 것이며 모두 그 일 자체를 뛰어 넘어 보는 것이다. 한 가지 일이 나타났을 때, 그것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면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형세가 나타남으로 인하여 개변되거나 곤혹스러워 하지 않을 것이다.

* 대법에 대한 태도야 말로 최종 구원되는 근본이다

중생이 어떤 상태여야 구원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이 문제는 법공부를 견지하는 매 대법제자들은 답안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 몇 년간 줄곧 중생의 일체 지나간 착오는 따지지 않고 오로지 대법에 대한 태도만 본다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법이지 속인 중 어떤 일을 겨낭한 특정한 답안이 아니다. 왜 지금 9평이 나타났으며 아울러 해외 매체와 중국 대륙의 민간 경로를 통해 대대적으로 널리 보급되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천상의 변화가 아닌가? 이것이 바로 대법이 세인을 구도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 아주 많은 세인들은 사악한 당의 장애를 받아 대법에 대하여 진상 듣기를 거절한다

대법제자들이 몇 년동안 진상을 잘 알려 많은 세인들 또한 대법에 대해 명백해 지면서 미래를 얻었다. 그러나 아직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당문화(黨文化)의 독해를 깊이 받은 상태라 장애도 매우 큰데, 근본적으로 진상을 듣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도 있다. 마치 사부님께서 최근의 새로운 경문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이 박해를 폭로하고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정말로 일부 중국인들이 듣기조차 거부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정말로 당이 말한 것이 틀림없이 맞으며, 중공정부가 말한 것이 틀림없이 맞다고 여기면서, 파룬궁은 정말로 중공이 선전한 것과 같이 그렇다고 여긴다.” 이러한 사람 수는 결코 적지 않으며 아울러 아주 많이는 근기가 매우 높다. 그럼 우리는 그들을 구해야 하는데 물론 이런 사람의 특별한 장애를 겨낭하여 힘을 기울여야 한다.

* 9평은 장애를 타파함에 유력하여 세인들이 대법진상을 인식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사악이 통제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된 후, 이 부류의 세인들은 비로소 기회가 있어 자신의 선택을 결정하게 된다.(부체의 선택이 아니다) 9평이 바로 이 부분 사람들로 하여금 장애를 타파하는 예리한 무기가 아닌가? 탈당을 하는 것 역시 이런 사람들을 떠밀어서 똑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탈당을 하는 것은 세인들이 견정하게 사악한 당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명확한 표시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사악한 당이 도태될 때 함께 도태되는 것을 모면하게 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세인에게 9평을 보라고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탈당하는 것 역시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세인들로 하여금 가급적으로 빨리 탈당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행동하게 하는 것이며 자신이 견정하게 사악한 당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태도를 표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로 놓고 말할 때, 사악한 당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도태를 벗어나는 것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세인들이 정말 9평을 보는 것을 선택하고 탈당을 선택한 후, 그 신체, 두뇌 속의 그런 악당의 요소와 그들을 통제하는 사악한 영체들은 신에 의해 청리되는데, 그 때면 사람 자신의 상태에로 회복하게 되어 다시 대법진상을 보았을 때, 본심의 선택을 하게 된다. 즉 진상을 접수하는가 아니면 진상을 거절하는 가이다. 그러한 정황 하에서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그 자신의 마지막 선택이다.)

* 대법제자들이 해야 할 모든 일을 잘 하는 것 모두가 천상에 배합하는 것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9평을 보고 탈당 성명을 발표한 후, 더 말할 필요 없이 단번에 대법진상을 접수하였으며 예전의 태도와 전혀 달랐는데 이것이 바로 9평의 작용이다. 그러기 때문에 9평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 중에서 세인이 구원 받음에 있어서의 장애를 타파하는 중요한 일환이다. 만약 어떤 속인은 9평도 읽고 탈당성명도 발표하였지만 여전히 정면으로 대법이 좋다는 이 진상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이 겁난을 넘기고 저 겁난을 넘기지 못하는’ 이러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심전력해야지 집착을 부려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예전에 ‘전민 반박해’의 천상을 이야기 하신 적이 있는데, 그 고조가 나타날 때면 매 세인들은 모두 대법 앞에서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다. 전면 반박해가 천상인 것만큼 때가 되면 꼭 나타나게 된다.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일체 장애를 타파하고, 대법진상을 알리고, 반박해를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천상 발전에 배합하는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 부동한 편중(側重)、부동한 각도、부동한 방식으로 동시에 진행하여 형세변화에 좌우지 되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형세가 나타나면 우리가 해야 하는 내용이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또 우리들이 과거에 줄곧 하던 것을 더욱 유효하게 한다. 진상을 해도 좋고 세인의 장애를 타파해도 좋은데 이런 것들은 모두 속인의 작업임무가 아니므로 속인이 일하는 사유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가 부동한 시기에 하는 일들은 변화가 있지만 총체적으로는 구체적인 모 한 가지 일만 가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 부동한 일을 동시에 하고, 부동한 방면을 동시에 하고, 부동한 치중점을 동시에 하고, 부동한 방식으로 동시에 진행한다. 이것은 소수 두려운 마음이 많고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는 수련생들이 구실을 찾아 세 가지 일을 잘 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후자는 정정당당한 대법제자들이 마땅히 갖춰야할 심태와 행위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2001년 워싱턴 DC국제 법회 중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당신들은 완전한 일체(整體)로서 마치 사부의 공(功)과 같다. 물론 당신들과 공은 같은 것이 아닌 것으로 나는 예를 들었을 뿐이다. 마치 나의 공과 같이 동시에 모두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어떤 것은 방대한 우주 중에서 끊임없이 미시적인 데로 향하여, 더욱 높고 더욱 넓은 데를 향하여 거대한 위세로 충격하고 있는데 기세는 굉장히 방대하고 속도가 굉장히 빨라 일체 시간을 초월하여 대궁(大穹)을 바로 잡고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이런 충격이 지난 후에 부동한 층차의 생명의 죄업을 쓸어버리고 생명이 부동한 층차에 종횡으로 교차된 일체 관계를 평형 시키고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생명을 동화시키고 어떤 것은 생명의 위치를 다시금 마련하여 주고 있고 심지어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것과 각개 층차 중에서 모두 같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낮은 공간에서 하고 있고 어떤 것은 수련생을 보호하고 어떤 것은 사악한 것을 청리(淸理)하고 있는 것으로, 여러 면의 공(功)이 모두 이처럼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완전한 일체(整體)는 한가지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어떠한 한 가지 일을 하든지 간에 당신은 모두 당신이 대법제자라는 호칭에 자격이 있어야 한다.” (《도항》-워싱턴 국제법회에서의 설법)

* 어떤 때 무엇 일을 하더라도 수련、심성제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법의 내포를 이해하였을 때는 모두 수련인의 심성 표준에 도달한 것이며, 구하는 것 없이 스스로 얻은 것이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그리고 또 책속의 불도신이 우리에게 펼쳐 주었기 때문으로 자신이 속인처럼 ‘총명해지고’. ‘명백해진’ 이유만이 아니다. 때문에 항상 자신을 수련하고 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내가 사부님의 설법 중 모 한 마디 말씀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를 똑똑히 알려고 하거나, 혹은 ‘확실한 근거’를 찾는 것처럼 나는 어떤 일을 매우 하고 싶어 하거나, 혹은 가타 사람의 사상 방법으로 인해 아주 강한 마음과 관념을 품고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집착할 때, 신이 어떻게 법의 내포를 당신에게 펼쳐주겠는가?

건의 하는바 위의 예처럼 의혹이 있는 동수들은 마음을 조용히 하기 바란다. 대법제자들이 어떤 일을 하던지, 어떤 일에 부딪치던지 모두 수련의 요소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사부님께서 올해 《새해 문안》에서 “늘 사람의 마음을 써서 당신들이 인식을 제고하는 과정을 길게 늘이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은 신(神)의 길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이며 매 하나의 집착은 모두 장애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고정된 사상이나 방법을 품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람의 사고로 인식하여 방향(맥락)의 틀에 따라 문제를 이야기 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만 진정하게 사물의 실질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장 완성: 2005년 4월 12일
문장 발표: 2005년 4월 13일
문장 갱신: 2005년 4월 13일 01:33:40
문장 분류:【수련마당】
원문 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4/13/994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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