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3월 8일】한번은 두 동수와 교류를 하였는데 한 수련생은 나의 말에서 내가 시간에 대해 느슨히 하고 있음을 보고서 그는 매우 놀라며 나에게 말하기를, “지금 시간이 대단히 긴박하므로 어떤 동수들은 1분의 시간을 낭비해도 아깝다고 생각하며 중생에 대해 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쩌면 시간이 긴박한 줄도 모릅니까?” 이 말은 나에게 아주 큰 충격을 주었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동수의 솔직함을 탄복하면서 만약 내가 또 어떤 아직 의식하지 못한 집착이 있다면 곧바로 지적해주기를 바랐다. 수련생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정말 당신에게 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두 수련생이 모두 당신에게서 하나의 문제를 발견하였는데 직접 당신에게 말하지를 않았습니다. 당신이 다른 공간의 일부 광경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자칫하면 수심이화(隨心而化)합니다.” 사실 공능 방면의 것들에 대해 나는 결코 집착하지 않았는데 동수들은 왜 이러한 생각들이 있는가? 확실히 스스로 집착하는 것들이 내부에 있다. 나는 자신이 이런 것들을 이야기할 때 늘 하나의 과시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찾아냈다. 바로 이 마음이 동수로 하여금 불편을 느끼게 하고 틀렸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두 동수의 입으로부터 나는 자신의 아주 많은 부족함을 발견하였다. 예를 들면, 진상을 이야기할 때, 너무 높게 말하고 강철을 녹일 만한 자비가 없는 등이다. 참으로 유익함이 적지 않았다.
이 일을 통해 나는 그 가운데서 인식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동수의 집착을 발견하였다면 마땅히 제때에 지적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동수로 놓고 말하면 일종의 자비이다. 왜 동수의 부족점이 당신 앞에서 폭로되는가, 이것은 그래 우연한 것인가? 사부님께서 일부러 당신으로 하여금 발견하게 하여 당신의 입을 빌어 수련생을 일깨워 주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어떤 때는 말하기 싫어하는가? 남에게 죄를 지을까봐 두려워서인가, 아니면 기타 원인인가? 이 자체가 바로 집착이 아닌가? 사실 우리는 그다지 우려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전적으로 동수의 제고를 위해서이며 상대방도 역시 수련인인데 그(그녀)가 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다. “나는 항상 한마디 말을 하는데, 만약 한 사람이 자기의 어떠한 관념도 없이 개인 이익의 각도에 서지 않는 것을 출발점으로, 진심으로 남이 좋아지도록 남에게 남의 부족함을 말한다면, 혹은 그에게 어떤 것이 바른 것이다. 라고 알려준다면, 그는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싱가포르 법회에서의 설법』)
우리는 오로지 부단하게 자신을 바르게 수련하고 자신을 순정하게 해야만 중생구도를 더욱 잘 할 수 있다. 만약 우리들의 잘못으로 인해 동수에게 하나의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한다면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개인의 견해이니 부당한 곳이 있으면 동수께서 자비로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문장 완성: 2005년 3월 7일
문장 발표: 2005년 3월 8일
문장 갱신: 2005년 3월 8일 15:25:24
문장 분류: [수련마당]
원문 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5/3/8/968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