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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새로운 경문《역시 방할하노라(也棒喝》를 읽고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0월 24일】현재 우주의 중생들은 모두 우주가 정법(正法)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 정법은 곧 결속짓게 된다. 정법 중에서 낡은 우주를 해체시키는 동시에 무한히 아름답고, 낡은 우주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새로운 우주를 다시 생성(生成)하고 있다. 대법제자를 포함하여 모든 우주의 중생은 모두 낡은 우주의 생명이다. 낡은 우주의 생명으로서 본래 우리들에게 속하지 않는 새로운 우주로 들어갈 기회가 없었지만, 사부님께서는 정법이란 이런 형식을 통해 낡은 우주의 모든 중생들에게 미래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주셨다. 이러한 천지개벽 이래 모두 없었던 홍대한 자비와 사부님께서 이것을 위해 지불하신 고생과 감당은 그 어떠한 생명도 상상할 수 없으며 또한 보답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자비하시지만, 대법은 마찬가지로 표준이 있는 것이며 미래로 진입할 수 있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새로운 우주로 진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 새로운 우주 중의 위치는 생명의 진실한 심성(心性), 정법에 대한 태도 및 정법 중에서 일으킨 작용 등의 요소들을 봐서 결정한다. 낡은 우주 중의 어떠한 생명도 우주 정법의 진상을 볼 수 없다. 사부님께서 인간세상으로 오신 이런 정법의 형식은 또 우주 중의 일체 중생을 미혹시켰으며 중생들은 또 모두 변이가 발생하였다. 만약 정법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정확하게 대하지 못한다면 매우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며, 층차가 떨어지거나 심지어 도태되며 소멸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러므로 정법은 중생으로 놓고 말하자면 하나의 가장 좋은 기회이자 동시에 하나의 큰 고험이며 큰 재난인바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길은 자신이 걸어가야 한다. 중생은 정법 중에서 혹은 동화(同化)되든지 혹은 선해(善解)되든지, 층차가 올라가거나 내려가고 혹은 소멸되는데 모두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중생들에게 가장 큰 자비를 주셨고 가장 좋은 조건과 기회를 주셨으며 심지어 법을 파괴하는 생명, 가장 나쁜 생명에게도 거듭 기회를 주셨다. 때문에 최후의 결과에 직면하였을 때, 매 생명들은 모두 할 말이 없게 된다.

대법제자도 역시 낡은 우주의 생명이기에 역시 똑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다른 중생들과 비교하면 대법제자들은 가장 행운이며, 능히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되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하며 정법 중에서 가장 좋은 길을 걸을 수 있는 것, 이 역시 우리 자신의 선택이며 우리들이 올 때의 홍대한 서원(誓願)인 동시에 얻는 것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최상의 영광과 영원한 위덕이다. 이에 상응하여 정법 중에서 대법제자에 대해서는 더욱 높은 요구와 표준이 있어야 하는데 단지 개인 수련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법을 실증하고, 박해를 반대하며,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제자들이 해야 할 세 가지 일에서 체현되어야 하며 어느 하나가 빠져도 안 된다.

정법은 대법제자들에게 기타 중생들에게는 없는 가장 좋은 조건과 기회를 개창(開倉)함과 동시에 대법제자로 놓고 말하자면 역시 하나의 가장 큰 고험과 검증이다. 만약 대법제자가 정법 중에서 잘하지 못하고 걸어나와 법을 실증하지 못한다면, 정법 중에서 우리들에게 부여한 위대한 책임과 사명을 저버리게 되는데 그렇다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원만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주 두려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사람들을 말한다면, 한 생명이 역사상에서 오늘날 능히 법을 얻을 수 있는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며, 너무나 행운이다! 그러나 일단 그가 잃었을 때에, 여러분은 그가 직면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가? 아주 두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큰 책임과 거대한 사명을 부여했는데 그가 완성하지 못했을 때,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말해서 한 생명의 원만과 그것은 반비례되는 것으로, 그 생명은 정말로 무생지문(無生之門)으로 들어가게 된다.” (《2004년 시카코 법회에서의 설법 》)

법을 얻은 일부 사람들은 이 일을 전혀 상관하려고 하지 않거나 법공부를 구실로 집에 숨어 나오지 않으며 심지어 난(難)이 결속되면 원만하려고 환상하는데 어찌 가능하겠는가? “이 겁에 누가 그 밖에 있을손가, 웃으면서 뭇 신의 어리석음을 바라보노라” ( 《정대궁》). 정법시기에 단순한 개인수련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법제자는 반드시 걸어나와 법을 실증해야만 진정하게 수련하는 것이며, 비로소 대법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만 대법제자[大法之徒]가 될 자격이 있는가? 집에 숨어서 이른바 법공부를 한다는 그러한 사람들이겠는가? 단지 대법 중에서 얻으려고만 하고 대법을 위하여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는 사람들인가? 특히 대법제자가 박해 중에서 대법을 위하여 공정한 말을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아직도 이른바 집에서 책을 보는 가운데서 대법을 향하여 받으려고만 한다면, 이는 어떠한 사람인가? 당신들 스스로 평판(評判)해보라.” ( 《역시 방할하노라》)

사부님께서 우리들더러 평판해보라고 하셨는데 그럼 우리 평판을 해보자. 이러한 사람이 능히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 될 수 없다. 진정한 수련자인가? 아니다. 일반적인 수련표준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 아니다. 새로운 우주의 사람 표준에 도달하였는가? 도달하지 못했다. 능히 미래에 남아서 사람노릇을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 최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법을 얻은 그러한 사람들은 표면적인 인간의 이쪽 면에서 말할 때 법의 내포를 알았고, 어떤 사람은 법속에서 생명의 연장을 얻었고, 어떤 사람은 신체의 건강, 가정의 화목, 친지, 친구의 간접적인 이득을 본 것과 업력의 감소를 얻은 것으로부터 사부가 그를 위하여 감당한 등등에 이르기까지 이 일체의 좋은 점을 얻었다. 다른 공간으로부터 말한다면 신체(身體)가 신의 몸(神體)으로 전화되지만 대법이 당신을 원만 시키려 할 때 도리어 인간으로부터 걸어 나오지 못하고 사악이 대법을 파괴할 때 당신은 도리어 나와서 대법을 실증(證實)하지 못하였다. 오로지 대법 속에서 좋은 점만 얻으려 하고 있고 도리어 대법을 위하여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는 사람은, 神의 눈으로 본다면 이러한 사람은 가장 좋지 못한 생명이다. 게다가 이 법은 우주의 근본이다. 지금까지 걸어 나오지 못한 그러한 사람들은 이번 마의 난(魔難)이 지나간 후 곧 도태될 것이다. 그 속에 있는 아주 많은 사람들은 연분이 아주 큰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사부가 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가 하는 원인이다.” ( 《건의》)

집에 숨어서 이른바 법공부를 한다는 그런 사람들, 걸어나와서 법을 실증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마땅히 평판해 보아야 한다. 자신은 도대체 어떠한 사람인가? 새로운 우주 중에서 어느 위치에 있을 수 있는가?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요구하던지, 아니면 사람의 표준으로 요구하던 지간에, 이런 사람들도 마땅히 꼼꼼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기타 대법제자들의 지불과 박해반대가 없었다면 현재 이런 상대적으로 좋아진 형세와 환경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악을 행한 자들의 사악한 정도와 이때까지의 운동 중에서의 사람을 다스리는 수단을 놓고 보면, 그런 악인들은 당신이 집에서 편안하게 이른바 법공부를 하게 하겠는가? 쉽사리 당신을 놔주겠는가? 설사 당신이 집에 숨어서 이른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도 가능하겠는가? 사악이 처음 시작할 때, 미친 듯이 “명예 상에서 실추시키고, 육체 상에서 소멸시킨다.” 고 하지 않았는가? 사악이 창궐할 때, 역시 한 때 책을 몰수하고 책을 소각하지 않았는가? 한 때는 사람마다 태도표시를 하고 통과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법을 얻은 생명으로서 걸어나와서 법을 실증하기가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대법제자가 걸어나와서 법을 실증하는 중에 아마 일부 위험에 부딪힐 수도 있지만 그것은 모두 표면적인 것이며, 만약 정념정행 하기만 하면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다. 걸어나와서 법을 실증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위험한 것이며, 두려운 것이다. 현재 사악요소는 이미 적고도 적게 남아 진상을 알리기가 매우 쉬워졌다. 걸어나오지 못한 동수들에게 건의하는바 자료배포는 몇 장의 진상자료로부터 시작할 수 있으며, 진상 알리기는 신변의 친척, 친구로부터 할 수 있는데 어떠한 위험도 없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방할하셨는바 남은 시간은 많지 않는데 아직도 청성(淸醒)하지 못하고 걸어 나와서 법을 실증하지 못한다면 직면한 것은 두려운 결과일 뿐이다.

“잘 하지 못한 사람들은 꼼꼼히 생각해 보라. 부디 사부의 자비를 가지고 장난하지 마라. 당신은 믿지 않을 수 있으며, 당신은 또 당신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거듭 이야기한다. 이렇게 큰 한 가지 일이 인류사회에서의 출현, 이렇게 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회에서의 표현이며, 나 이홍지가 말한 법은 천고 이래 사람들이 다 알고 싶어하고, 얻고 싶어해도 얻지 못했던 것으로, (박수) 이 일체는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라, 잘 하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부디 이지적이지 못함과 사람의 집착 때문에 자신의 영원을 망가뜨리지 마라. ” ( 《2004년 시카코 법회에서의 설법》)

문장 완성 : 2004년 10월 23일
문장 발표 : 2004년 10월 24일
문장 갱신 : 2004년 10월 23일 22:57:40
문장 분류 : 【제자교류】
원문 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0/24/874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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