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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련생과의 차이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7월14일】한 노수련생은 전에 사부님의 설법반에 참가하였고, 박해가 시작되기 전 일년 반 정도의 시간에 《전법륜》이 한 부의 법을 줄줄 외웠는데 아주 능숙하게 외웠다. 노교소에서 우리는 함께 있었으며,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사오(邪悟)가 가장 발광하는 시기에 기회가 있기만 하면, 우리는 그를 청하여 법을 외워 달라고 하였다. 그는 정말로 어느 곳을 짚으면 바로 그곳을 외웠으며 아울러 기본적으로 글자 하나, 구절 하나 빠뜨리지 않았기에 나는 그가 신기하다고 생각하였다. 마침 이런 노수련생들이 그 당시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긍정적인 작용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 이 한패의 동수들은 거대한 압력 하에서도 사오하지 않았고 또한 아주 많은 사오했던 동수들이 맑게 깨어나게 되었다.

나는 98년에 법을 얻었지만 깨달음이 높지 못하여 99년 초에 겨우 나와서 연공하며 실수(實修)에 들어갔다. 잇달아 바로 “4.25”, “7.20”청원과 노동개조 처분을 받았으며, 풀려난 후 핍박에 의해 집을 떠나 떠돌아 다니며 정법 홍류 속에 뛰어들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사실 노수련생과 같이 착실하게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단체로 용련하고 정진 실수(實修)한 과정이 전혀 없었다. “7.20”이후 사부님께서 우리를 원래 위치로 밀어 주셨지만 우리가 제 위치로 닦아낸 것이 아니었다. 또한 “기본기”의 문제로 인하여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감성적 인식에서 멈춰 버렸으며, 2년 동안의 노동개조 기한이 거의 찬 최후의 시기에 기한이 연장되는 것이 두려워, 근본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본심을 어기고 타협하였다. 그 당시 또한 이 노수련생이 혹독한 환경 속에서 조용하게 나에게 이 한마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일념의 차이로군!”… …이것이 바로 차이였다.

사부님께서 4~5명 대도(大道)의 사상과 함께 연결시켰을 때의 그런 느낌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한 단락 법에서, 그런 “고요한”상태는 완전히 “비었고” “무위(無爲)”라고 하셨다. 하루 사이의 공능으로 그러한 정도에 도달할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언어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 아주 많은 노수련생들은 아주 착실하게 수련함으로서 오랜 시간동안 법공부하고 심성을 닦음에 있어서 견실한 기초를 다졌다. 환경이 어떻게 변화든지를 막론하고 사부님에 대하여, 대법에 대하여 단호히 믿는 이 근본적인 문제를 아주 잘 해결하였다. 즉 평소의 법공부, 연공, 발정념, 진상알림의 과정 중에 반영되었고 평소의 언어와 행동, 사무를 처리는 중에 반영되는 바, 모두 수련인의 그러한 특유의 상태였다.

“心性(씬씽)이 얼마 높으면 공이 얼마 높다.”“이 사람의 공이 얼마나 높은가는 그의 공기둥이 얼마나 높은가를 척 보기만 하면 된다.”(《전법륜》). 오랫동안 착실한 실수 과정이 없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자비와 상서로움, 그러한 “순(純)”과”고요함(靜)”, 그러한 심성과 상태는 오랫동안 착실하게 닦아낸 것이며 꾸민다고 하여도 꾸며낼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주위에는 이러한 노수련생 동수들이 몇 명 있으며 모두 정부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어떤 이는 요직에 종사하고 있고 박해 이전에 바로 연공장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이끈 사람들이었다. 박해가 발생한 지금, 오랫동안 꾸준히 진상알리기를 견지하여 주위의 환경은 몇년 사이에 그(그녀)들에 의하여 아주 좋게 바로 잡혀졌다. 현지의 정부 관원과 610 두목이 바뀔 때면 그(그녀)들은 그때마다 매번 진상을 알렸다. 동시에 그(그녀)들은 몸소 체험하고 힘써 실천하며 이지적이고 지혜로우며 자비하게 진상을 알리면서 곳곳마다 法輪大法(파룬따파) 수련인의 올바른 형상을 체현하였다. 그리하여 아주 많은 중생들이 진상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이는 또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현지의 정법환경도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졌고 무슨 세뇌반을 연 적이 없었다. 현재 610의 주요 관원마저 진상을 안 후 우리 동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진정으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그러나 이웃 도시의 정황은 완전히 달랐다.

이뿐만 아니라 이 노수련생들은 또 장기적으로 기타 대법의 일을 지지하고 있는데, 착실하게 닦았기 때문에 몇년동안 지금까지 정념으로 바르게 행하고 있다. 하여 또한 속인 식의 그 박해를 전혀 받지 않았는데, 속인의 이치에 따르자면 그(그녀)들은 마땅히 박해의 중점이다. 여기서 나는 노수련생들이 아주 완벽하게 닦았으며 집착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그녀)들도 아직까지 문제가 존재하고 있으며 바로 법을 아주 익숙하게 외우는 노수련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내가 지금 보았을 때 그(그녀)들의 “신체(神體) 특징”이 갈수록 선명하다는 것이다.

노수련생과의 최대의 차이는 바로 법공부에서의 차이였다. 최소한 《전법륜》을 읽은 횟수가 노수련생만큼 많지 않은 것으로서, 얼음 석자가 하루 아침에 얼 수 없듯이 이는 오랫동안 꾸준히 축적된 것이며 또한 인체가 신체(神體)로 전화된 정도의 과정으로서 지름길이 없는 것이다. 이전 한동안 나는 정법 활동 중에서 좌절을 당하였으나 사부님께서 또 한번 자비하게 나를 보호해 주시어 비로소 마난을 면하였다. 그후 나는 반복적으로 깨달으며 잘못을 찾았다. 동수의 도움 하에 비로소 깊이 깊이 깨닫게 되었는데 사실 법공부가 착실하지 못하고 수련의 기초가 부족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선천적인 부족함”을 보충하고 노수련생과의 차이를 좁히며 하루빨리 제고하기 위하여 나는 법을 외우는 이런 법공부 방식을 선택하였다. 이전에도 여러차례 외웠지만 최후에는 모두 포기하였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역시 자신에 의해 장애된 즉, 무슨 나이가 좀 많고 기억력이 좋지 못하고 문화정도가 높지 못하고 시간이 없다는 등등이었는데 실은 모두 교란이었다. 진정으로 이 마음들을 내려놓고 마음 먹고 법공부할 때 상황은 이렇지 않았다. “불성이 나오자 시방세계를 진동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새롭게 배치할 것이며 속인 중의 그 요소들은 아예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견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법 외우기를 갓 시작하였을 때 방해력이 아주 커서 발정념으로 제거하는 것 외에 또한 자신의 특징에 알맞는 법을 외우는 방법을 찾아야 비로소 더 좋게 법을 외우며 효율을 제고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매 하나의 자연단락을 반복적으로 10번 통독한 후 다시 매 한 마디 법의 첫번째 글자와 표점 부호를 써서 다시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외웠다. 외워냈을 때 다시 다음 단락으로 들어 갔고 1절을 외운 후 다시 이 1절을 연결하여 몇번 외웠는데 기본적으로 괜찮았다. 처음 외웠을 때 아마도 글자와 구절을 빠뜨리거나 혹은 뒷부분을 외웠는데 앞부분을 잊어버리는 현상이 있으나 이는 정상이다. 그것은 또 두번째가 있고 세번째 … ..가 있어 완전히 외워낼 때까지 계속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둔한”방법은 나에게 효과가 있었고 습관이 되자 속도도 느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이미 제5강의를 외웠다. 이를 써냄은 법을 외우고 싶어하는 중노년 수련생들에게 참고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실 《전법륜》을 우리는 이미 몇십번을 읽었고 백번, 수백번을 읽어서 이미 아주 익숙한데 왜 더 한 층 올라가서 이 한 부의 우주 대법을 외워서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예전에 위에서 제기했던 법을 외운 그 노수련생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불가사의 할 정도로 익숙하게 외웠습니까? “그는 그 당시 이렇게 말했다. “책(법 )속에 들어갔습니다. 책(법) 속의 법리를 따라 가면 선생님께서 설법하실 때의 신태(神态)와 어투까지 외울 수 있습니다.” 이는 또 2000년 말의 일이었다.

법을 읽는 것과 법을 외우는 느낌은 완전히 다른 바, 법을 외우는 것 또한 목적이 아니며 법공부를 더 깊이 하는 일종의 방식이다. 또한 지금의 정법 형세에 적응되며 진정으로 대법에 동화하는 것이야말로 목적이다. 이 방면의 교류체험 문장은 사이트에 아주 많다. 한 수련생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만약 정법이 결속되는 그 날이 있다면(물론 긍정코 있음)그럼 우리의 법공부, 수련은 똑같이 결속되는 그 날이 있지 않겠는가? 아주 도리가 있다. 또한 우리는 이 날이 멀지 않았음을 모두 알고 있으며 더 깊이 법을 외울 시기가 온 것이다.사실 내 주위의 동수들 중에는 모두 기본적으로 법을 외우고 있고 어떤 수련생은 이미 아주 여러번 외웠고 아주 많고 좋은 체험문장을 써냈다.

여러분들이 모두 알다시피, 착실하게 법을 잘 배워 대법에 동화해야 비로소 중생을 구도하는 중임을 더 잘 완성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2004년 시카코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또 한번 우리를 자비하게 지적하셨다:”…법공부를 많이 하라, 법공부를 하라, 법공부를 하라, 법공부를 하라고 알려주었다.”,우리 대륙의 매 한 명의 제자들은 모두 아주 깊은 감촉을 받았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어깨에 중생을 구도할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있으며 법공부는 아주 중요한 것이며 일체 정법일을 잘할 수 있는 기초인 바, “법이 사람을 연마시키는”공법은 일체 공, 일체 상태가 모두 법에서 온다.

어떤 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법을 비교적 늦게 얻은 우리 제자들이 일부 정법의 일을 하도록 배치하신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정법 일을 하는 과정 중에 자신의 문제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자신의 집착을 찾아내며 넘어지고 엎어지는 중에 다소 깨달음으로써 하루 빨리 제고하여 노수련생과의 차이를 좁히고 정오정각(正悟正覺)의 표준에 도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부님께서 손을 한번 젓는 순간에 정법은 곧바로 완성될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더 이상 사부님의 자비를 우습게 알아서는 안 된다.

문장완성:2004년 7월13일
문장발표:2004년 7월14일
문장갱신:2004년 7월15일 2:57:08 AM
문장분류 : [제자절차]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7/14/7937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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