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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예전 동수와의 대화(1)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6월 24일】예전의 동수들 중 어떤 사람은 연공을 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반면으로 나아갔다. 이런 상황이 조성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말할 때, 그들의 집착심과 사람의 마음[人心]이 아주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착심과 사람의 마음이 표현되어 나온느 것은 매 사람마다 아주 구체적인데, 어떤 구체적인 집착심과 사람의 마음은 아마 어떤 동수들이 걸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매듭[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도와 이 매듭을 풀어주는 것은 우리 동문 제자들의 미룰 수 없는 책임이다. 나는 일부 굽은 길을 걸은 동수들이나 또는 아직도 청성하지 못한 예전의 동수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일부 매듭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되었는바, 이에 다음의 인식을 발표하여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부당한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1. 수련을 포기하고 속인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수련을 포기하고 속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비교적 많았다. 구체적인 원인은 서로 다르지만 주로 다음 세 가지이다.

가) 이번 박해의 실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함

그렇다면 이번 박해의 실질은 무엇인가? 바로 “사부는 일체 중생을 이끌어 구원(挽救)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사악한 세력은 오히려 정말로 중생을 이용하여 대법에 대한 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근본적인 목적은 중생을 훼멸시키는 것이다.”(《정진요지 2―대법은 견고하여 파괴될 수 없다》)이다.

사악한 낡은 세력은 중생들을 훼멸시킬 계획을 층층마다 안배했으며, 인간세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신(神)에 대한 사람들의 바른 믿음[眞正信仰]을 없애버린 것이다. 신을 믿지 않는 인간들은 어떤 짓이든 다 하며, 이로 인해 지금의 인류 사회는 훼멸할 지경에 까지 걸어왔다. 예를 들면, 단기간에 인류를 훼멸시킬 수 있는 대규모 살상무기나 생화학 무기를 대량으로 제조하거나, 인간을 복제하며 기계인간이나 클론인간을 만들려고 실험하며, 수질오염과 대기오염, 각종 천재(天災)가 빈발하며, 각종 괴상한 질병이 발생하고 만연하는 것, 자연 자원을 무절제하게 채취 낭비하거나, 생태환경이 급격히 악화되는 등등……이런 일체는 바로 낡은 우주가 성주괴멸(成住壞滅)의 최후 상태에 진입했을 때 인류사회에서 나타나는 표현들이다.

이에 대하여 속인사회의 많은 지식인들도 다른 각도에서 인식해왔고 근대사회에 들어선 이후 끊임없이 “지구를 구하자”, “인류를 구하자”는 호소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각종 개량 방안이 끊임없이 제출되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일부분 시험을 거치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이 일체는 바로 사람의 마음이 타락하여 조성된 것으로,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개변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마비되고 절망한 이 시기에, 우리 위대하신 사존께서는 일체 중생을 구하려는 호탕한 불은(佛恩)을 갖고 오셨다. 대법이 널리 전해지니 근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이 선(善)을 향하고, 인류 사회 중에서 사람들은 이미 진정으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은 정토(淨土)이며, 인류 사회의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감을 끊어 막음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장쩌민 집단이 중국에서 자행하고 있는 이번 사악한 박해는 근본적으로 말해서 인류 도덕과 양심의 기초를 파괴하는 것으로, 진정한 사람의 도덕과 양심이 없으면 신(神)도 이런 사회가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며, 인류도 결국은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이런 역사시기에 처한 사람은 모두 회피할 수 없는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즉, 사악(邪惡)을 따라 이렇게 미끄러져 내려가 얼마 후에 자멸하느냐, 아니면 대법을 인정하고 대법에 동화되어 새로운 우주로 진입할 것인가?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을 뿐 결코 제 삼의 길이란 없다.

나) 이번 박해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재대로 인식하지 못 함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이번 박해가 발생하게 된 원인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다. 왜냐하면 대법을 얻기 전에는 우리도 낡은 우주의 생명이었으며 우주가 성주괴멸의 말겁시기로 감에는 우리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낡은 우주의 법리가 결정하는 것으로 필연적이며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 하든 상관이 없다. 우리 동수들의 내원은 3부분으로 나뉘지만 어디에서 왔든지, 청성(淸醒)한 때에 우리는 대법을 선택했다. 우리가 사람 속에, 미혹 속에 진입했음에도, 사존께서 자비롭게 널리 제도하실 시기에 파룬따파의 대문으로 걸어 들어온 것은 정말로 “커다란 행운”이다.

“법을 얻은 그러한 사람들은 표면적인 인간의 이쪽면에서 말할때 법의 내포를 알았고, 어떤 사람은 법 속에서 생명의 연장을 얻었고, 어떤 사람은 신체의 건강, 가정의 화목, 친지, 친구의 간접적인 이득을 본 것과 업력의 감소를 얻은 것으로부터 사부가 그를 위하여 감당한 등등에 이르기까지 이 일체의 좋은 점을 얻었다. 다른 공간으로부터 말한다면 신체(身體)가 신의 몸(神體)으로 전화되지만……”(《정진요지 2―건의》)

만약 우리가 이 만고(萬古)에도 만나기 어려운 홍대한 자비와 불은호탕(佛恩浩蕩)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걸어 나오지 않고 떨어져 내려가거나, 심지어 반면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자멸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미 보지 않았는가? 연공하지 않고 반면으로 걸어나간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천재인화와 질병으로 육신을 잃어 사람이 되고자 하여도 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실제상 우리 중 어떤 사람, 그의 생명은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수련하지 않았다면 일찍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이는 일부러 놀라게 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법을 얻기 전에 병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거나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중에 법을 얻고 수련하여 비로소 건강한 신체를 갖고 세상에 살게 되었다. 그러나 탄압 후에 수련을 포기하자 옛 질병이 다시 재발하여 세상을 떠났는데 이런 예를 찾자면 드물지 않다.

한 생명이 대법을 얻어, 사존께서 베푸신 영원히 보답할 수 없는 은덕(恩德)을 받았음에도, 사악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할 때(사실은 본인에 대한 박해도 포함), 걸어나와 공정한 말이나 진실을 말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반면으로 나아가 사악의 편을 든다면 이것은 정상적인 사람의 도덕 표준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사람에서 걸어나와야 할 수련인이라면 마땅히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이런 생명이 사(私)가 없는 새로운 우주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질 수 있겠는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다) “박해에 반대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자신을 구하는 것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함

낡은 법리 중에서는 한 생명이 더 이상 구원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할 경우, 선해(善解)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훼멸을 촉진시킨다. 고급 생명은 종종 자기 아래의 생명을 처리할 때 파괴하고 새로 만든다. 지금 이 일보에까지 와서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중생을 훼멸하여 그 대가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법 수련생에 대하여 그들은 이런 것을 극한에까지 밀어부쳤다. 요 몇 년 사이 “수련생 자신의 업력(業力), 법에 대한 인식 부족, 난(難)속에서 아직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 고통스러운 관을 넘는 중에 정념(正念)으로 대할 수 없는 등등은 모두 사악한 것에 의해 박해가 가중된 주요 원인이자 또한 사악한 것이 진정으로 법을 파괴하는 근본적인 구실이었다” (《정진요지 2―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

사악한 세력이 사존께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이유는 대법이 너무 높고 너무 올바른 고덕대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박해를 하는가? 사념(私念)이 너무 무겁고 질투심이 크게 일어난 표현이 아니겠는가? 이런 변태적인 심리의 작용 하에서 그들은 대법제자의 수련 중에 나타난 누락을 틀어 쥐고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확대하고 강화하는데, 최종적인 목적은 이 대법제자를 훼멸시키려는 데 있다. 이런 훼멸은 주로 정신적인 훼멸이다.

왜냐하면 그것들도 이런 특수한 역사시기에 한 대법제자가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반면으로 걸어가 이 믿음을 반대한다면―그의 진정한 생명은 그가 믿는 파룬따파가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곧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형(無形)적인 박해는 유형(有形)적인 박해보다 더 사악하다. 과거의 많은 동수들이 육체적인 박해를 받을 때는 견고하게 흔들리지 않다가, 도리어 사악의 세뇌를 받아 잘못된 길로 들어가는데, 이것은 정신적인 박해의 엄중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피가 보이지 않을 뿐, 사악이 진정으로 당신을 훼멸시키려는 살인 수단이다. 이 한점이 표면 공간에서 표현되면, 앞에서 언급한, 믿음을 포기한 사람들이 육신의 생명을 잃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그러나 다른 공간에서는 훨씬 더 참혹하다.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이 사람(주체)이 믿음을 포기하여, 생명을 잃게 될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걸어나와 박해에 반대하며, 어떤 정황 하에서건 항상 대법을 수련하려는 자신의 견고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을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사(爲私)를 기점으로 하는 낡은 법리는 이미 철저히 해체되고 있다. 파룬따파는 사(私)가 없는 것이며 아(我)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우주는 이미 성립되었고 무한히 아름답다. 낡은 우주는 겨우 대법제자의 대응되는 천체 일부와 표면 인류 사회에 잔존한 일부에서 낡은 법리의 작용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대법에 동화(同化)하여 새로운 우주로 진입할 것인가?, 아니면 낡은 법리에 집착하여 자신을 훼멸시킬 것인가? 선택하는 일만 남았으며 이것은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이다.

오랫동안 속인으로 남는 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낡은 법리 중에도 이런 말은 없다. 낡은 세력은 당신을 철저히 훼멸시키려고 하며, 당신을 걸어나오지 못하게 하며 떨어져 내려가게 하거나 심지어 반면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사존께서는 당신을 구하고자 하시며 한번 또 한번 기다리고 계시며, 한번 또 한번 기회를 주셨으며, 한번 또 한번 자비롭게 구도하셨으며, 지금은 당신의 그 마음이 청성(淸醒)해질 수 있는지 보고 계신다.

깨어나라! 대법제자로서 박해에 반대하는 것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뿐만아니라 또한 자신을 구도하는 것이다.

“다시는 이 기연을 놓치지 말자”

(후속)

문장완성 :2004년 6월 21일
문장발표 :2004년 6월 24일
문장갱신 :2004년 6월 24일 5:50:24 AM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7/9/50005.html
중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6/24/776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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