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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에 대한 인식

글 / 다칭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6월 27일】수천 수백 년 이래, 수련하여 원만하는 것이 매 수련인의 최종 목적이었다. 이전의 수련은 개인의 해탈에 도달하기 위해서였고, 개인수련에 속하였으며, 기초상에서 위사위아(為私為我)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法輪大法(파룬따파)중에서 수련하며, 정법수련을 하고 있다. 기초는 무사무아(無私無我)한 것이다. 대법제자의 원만은 이전 수련의 원만과 본질적으로 같지 않다. ‘원만’의 개념은 이미 변화되었고 ‘원만’에 대한 관념도 개변되었다.

진상을 알리어 중생을 구도하고,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세가지 일’을 잘 하는 것은 대법제자가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올바른 깨달음[원만]을 이루는기 위해 반드시 닦아야 할 과제이고,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 그렇지 않고 자아를 고집하고, 개인수련을 고수하고, 이전의 ‘원만’의 관념을 고수하여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러 가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올바른 깨달음[원만]을 이루는 것을 말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지옥에서 끌어올려 주셨고, 고통스런 환경으로부터 구출해 주셨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구도하러 갈 수 없는가? 옛말에도 ‘죽는 것을 보고도 구원하지 않으면 소인이다’라는 도덕규범이 있는데, 하물며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임에랴. 진상을 알리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마땅히 끝까지 해야 하는 책임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올바른 깨달음[원만]을 이루는 것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개인의 조그마한 인식입니다.

문장완성 : 2004년 6월 27일
문장발표 : 2004년 6월 27일
문장갱신 : 2004년 6월 27일 오전 2시 50분 19초
문장위치 : [제자절차]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6/27/781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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