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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습과 수련의 기점을 바로잡자

글 / 미국대법제자

【명혜망 2003년 12월 28일】대법 수련생 중에는 과학을 배우거나 과학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법학습과 실속있게 수련(實修)하는 과정에서 허다한 사람들은 대법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함을 인식하게된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표면적으로 성취한 것에 미혹됨이 비교적 심한 일부 수련생들(속인은 더하다)이 있는바, 현대과학의 부족한 점과 착오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비교적 현대과학에 집착하고 종종 과학의 관념을 이용하여 대법을 대하고 가늠하거나, 법공부 중에서나 잠재의식 속에서 의식적이던지 무의식적인던지, 자각적이던지 비자각적이던지 막론하고 과학지식을 이용하여 대조하고, 대법이 인류의 과학지식에 부합되는지 보는데, 이로부터 법학습과 수련에 미혹을 가져온다. 이것은 실제로 법학습과 수련의 기점문제와 관련이 있는바 의식적이던지 무의식적이던지 간에 속인의 과학을 진리의 표준으로 삼는 것이다. 과학을 이용하여 대법을 실증하는 과정에서도 아마 유사한 문제에 부딪힐 수 있는데, 즉 과학을 이용하여 대법을 실증하는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대법을 이용하여 과학을 실증하는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비록 현대과학이 이미 인류의 각개 영역에 스며들어왔다고는 해도, 현대과학은 본래 아주 한계가 많은 것이다. 예를 들면 현대물리학의 양대 지주(支柱)인 양자론과 상대론을 보면, 그것들간에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해석상 충돌이 나타난다(양자론의 확률적 해석과 상대론의 결정론간의 충돌). 이것은 현대물리학이 원래 완전하거나 완선(完善)하지 못하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양자역학은 단지 거시세계의 측정기기로 측량한 데이터를 통해서만 해석이 가능하므로, 본질적으로 말하여 일종 그렇다는 것은 알지만 왜 그런지는 모르는 데이터추론(數據擬和)의 수학적인 장난에 불과하다. 또한 미시세계는 본래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예를 들어 왜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두 개의 틈을 뚫고 나올 수 있으며, 왜 수학상 복소수영역의 확률파동을 중첩시키면 완전히 망연하게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미시적인 입자가 거시적인 입자를 구성한다는데 이르러서 사람들은 또한 자주 원자가 분자를 구성하는 모형[示意圖]으로 대조하고 원자핵과 전자궤도 모형에 이르기까지 경직되고 기계적으로 이해하는데, 사실은 이런 모형은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도 상당히 오도되기 쉬운 것이며, 게다가 현대물리학은 근본적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횡향(橫向)”과 “종향(縱向)”이라는 두 종류의 서로 다른 조합방식을 의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공간과 입자를 따로 떼어서 연구하고 있다. 즉, 표면공간의 입자도 따로 떼어서 연구를 진행하는데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과 같다.

상대론에 관해 말하면, 사실 아인시타인은 그것을 상대성원리라고 말했으며 또한 서로 다른 좌표계에서 관측자가 보는 물리현상의 수학적 규칙이 응당 불변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불변의 원칙은 아주 아름답지만 그러나 왜 그렇게 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 원칙이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알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는 정황하에 있다. 그렇다면 상대론에 기반하여 도출된 인력(引力)개념에 대해서는 단지 그 표현만을 알뿐 원인은 더더군다나 모르고 있다. 게다가 이 원칙을 만족하는 방정식은 서로 다른 여러 가지가 있다. 이에 아인시타인은 당초에 그 방정식 중에 하나의 우주상수를 도입하여 이 방정식을 하나의 안정한 우주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허블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발견하게되자 아인시타인은 이 우주상수를 버렸고 스스로도 자신의 가장 큰 착오라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최근 사람들은 우주상수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우주상수는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현재 우주과학은 겨우 데이터모형에 불과하며 그 원인을 모르며 맹목적이고 두서(頭緖)를 알 수 없는 수학적인 장난에 불과하다.

현대의학과 생물학은 또한 단지 생명 중의 현상을 연구할 따름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현대과학은 생명의 본질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병을 치료하는 것에 관하여 말하면 세계 각국에서 매년 거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의학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러나 현재 암(癌)과 같은 난치병은 여전히 근치(根治)할 방법이 없다. 또한 현재 이미 발견된 유체이탈이나 임사체험과 같은 현상은 더욱 망연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단지 일률적으로 대뇌의 신경작용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전생체험을 통해 질병을 치료한 대량의 사례에 대해서도 마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보고도 못본 체한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대법은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방면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효과는 현대의학과 비교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실속있게 수련[實修]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깊이 체득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현대의학을 이용하여 대법을 가늠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진화론에 관하여 말하자면, 더욱더 하나의 가설 내지는 믿음에 불과한데, 근본적으로 대규모 실험을 통한 검증을 진행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작은 규모로 일부 생물종의 변이현상을 가지고 진화론을 증명하는데, 마치 한사람이 나무 위에 기어올라간 후에 자신이 이미 달에 갔다온 것처럼 말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근본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는 거짓인데, 이것은 모두 현대과학을 위배(違背)하여 자기가 자기를 위해 만든 원칙이다. 과학의 다른 방면도 마찬가지인데 대법이 펼쳐내는 박대정심한 내포는 현대과학이 영원히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과학을 이용하여 대법을 가늠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사부님께서는 《미국에서의 설법》과 《시드니에서의 설법》중에서 원자와 분자의 배열문제를 설명하셨는데 《미국에서의 설법》에서는 “원자로부터 분자에 이르는 사이의 거리를 20만 원자로 배열하여야만 비로소 분자란 이런 하나의 거리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시드니에서의 설법》에서는 “원자로부터 분자에 이르기까지 이 거리를 과학이 아는 것은 대략 200만개 원자를 배열해야 비로소 원자로부터 분자에 도달하게 된다.”라고 설명하셨다.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여 이십 만과 이백 만 중에 도대체 어느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장춘보도원 법회에서의 설법》중에서 “어느 것이든 모두 다 맞다. 2천만도 틀리지 않는다. 인간의 사상은 고정적으로 문제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분자에는 아주 많은 층이 있다. 현대의 과학 그것이 인식한 것은 바로 막연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의 말을 빌어 설하고 있는 바 당신은 기필코 뿌리를 파고드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20만개로 계산하라.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다. 분자만해도 아주 많은 층이 있으며 크고 작은 입자는 부동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사람이 현대과학의 인식과 틀을 이용하여 대법을 대한다면 장애에 부딪힐 수도 있다. 우리는 수련의 본질은 모두 다른 공간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있는데, 대법의 내포는 무한하며 모든 각 공간을 포함하므로, 단지 실속있게 수련하는 과정에서만 비로소 자기 층차에서 볼 수 있는 일부 공간의 경상(景象)을 깨닫거나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나의 개인적인 이해로는 다른 공간 속의 물질과 생명의 존재형식은 인류가 생존하는 공간과 차이가 너무 커서, 고정적이지 않으며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는데 우리 육안으로 물체형태를 볼 때와 같은 그런 고정불변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또한 허다한 다른 공간과 연계되어 있으며 매 한 공간중의 분자와 원자사이의 정황은 또한 같지 않기 때문에 인류 공간 중의 그런 고정적인 형식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 인간의 일부 개념은 사실 완전히 착오적이므로, 이런 개념들을 통하여 묻는 문제 또한 착오적이다. 문제가 착오적인데 어떻게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겠는가? 원자라는 개념을 예로 들면, 원자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인류공간 중에서 인식하는 사람들이 담론하는 원자는 원자의 외각(外殼)에 불과하거나 혹은 원자가 인류공간에 투사된 것이며 더욱 미시적인 공간 속에서의 진실한 존재가 아니다. 인류는 입자의 인식에 대하여 단지 횡향(橫向)조합의 개념만 있을뿐 종향(縱向)의 인식이 없으며, 더구나 우리가 하나의 표면적인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도 못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들이 굳어진 인간의 각도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어린아이에게 높고 깊은 도리를 알려줄 때 할 수 없이 어린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능력범위내의 일부 개념을 차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개념은 진정하게 높고 깊은 도리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다른 공간은 미신이나 상상이 아니며 진실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은 다른 공간에 대하여 또한 극히 일부분만 인식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현대 과학의 “암(暗) 에너지”에 대한 이론 해석은 모두 다른 공간(예를 들면 많은 우주 모형 등)과 관련이 있으나, 다른 공간에 대한 인식이 아주 적을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2―생각대로 사용》 중에서 “우주의 법이 어찌 인류의 문화에 의해 규범될 수 있겠는가? 오로지 법리(法理)를 똑똑히 이야기할 수 있다면, 나는 사람의 문화를 열어 놓고, 그러한 규범과 속박을 타개하여 생각대로 사용했는 바, 대법을 똑똑하게 표달(表達)하기 위해서 어떻게 사용하고 싶으면 곧 어떻게 사용했다.” “나는 오로지 법의 내포(內涵)를 중요시 할 뿐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당연히 현대 인류의 문화는 다양한 방면을 포함하며 현대과학도 현대 인류문화의 일부분이다. 석가모니의 말에 근거하면, 현재는 말법시기이며 화상(和尙)들은 자신마저도 제도하기 어렵고 불교(종교)는 또한 이미 인류문화의 일부분으로 변성(變成)되었다. 대법수련생 중에는 지식분자들이 매우 많아서 인류 사회중의 각종각양의 전문지식을 갖고 있다. 어떤 때에 이들은 자각적이거나 비자각적으로 속인 중의 문화지식을 이용하여 대법을 가늠하는데, 대법을 속인중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보고, 글자뜻만 파고들어가 법공부와 수련에 장애를 초래한다.

대법 수련생으로서, 우리는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하며”, 인류문화 중의 어떤 부분(과학, 종교, 역사 등등)으로 대법을 가늠하거나 대법에서 인류지식문화에 부합하는 것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이 부분에 관하여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법을 배우다(學法)》중에서 “대법을 잘 배우려고 생각한다면 오로지 어떠한 목적을 품지 않고 배워야 만이 비로소 옳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인류 역사나 속인사회 중에서 누적된 각종 관념은 모두 우리가 대법에 동화되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논어(論語)》에서는 세가지 관념을 말하는데 “속인의 관념”, “전통적 관념” 그리고 “굳어진 관념”이다. 이런 관념은 모두 우리가 개변(改變)하고 제거해야할 것들이다. 만약 수련생이 속인의 관념을 강렬하게 품고 대법을 대하거나 가늠한다면 달걀 속에서 뼈를 찾고 있는 것으로, 법공부와 수련의 기점을 이탈하는 것이며, 아마도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회의(懷疑)를 만들어낼지도 모르거니와 다른공간 속에서 쉽게 대법을 파괴하는 사악한 생명의 통제를 받을 수도 있다. 엄중한 경우에는 대법에서 이탈하거나 심지어 반대면으로 갈 수도 있다.

《전법륜》에서는 명확하게 “眞(쩐) 善(싼) 忍(런) 이런 특성은 우주 중에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집착을 제거해야하며, 속인의 관념과 인식을 없애야하며, 속인의 관념과 도리에 이끌리거나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국내의 적지 않은 세뇌반에서, 사악의 무리들은 늘 뇌봉(雷鋒)의 비디오를 보여준다. 뇌봉이 좋은 사람이 된 기점은 속인에 있고, 단지 속인중의 한 좋은 사람일뿐이며 게다가 그마저도 아주 제한적이다(가령 계급성을 말하는 등). 그러나 대법제자가 “眞(쩐) 善(싼) 忍(런)”에 동화되는 것은 속인 중의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며 우리들의 기점은 완전히 같지 않다. 명혜망 중의 일부 보도를 통해 볼 때 일부 수련생들은 고문과 시달림 속에서는 능히 걸어나올 수 있었지만, 그러나 노교소나 세뇌반 등의 위선(僞善)에 미혹되어 방향을 잃고 마는데, 위선의 근본목적은 수련생을 대법에서 이탈하게 하고 眞(쩐) 善(싼) 忍(런)를 위배하게 하는데 있다.

법학습과 수련의 기점을 바로 잡는 것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문제와 관련이 있으며, 이것은 자연히 근본적인 문제이며 우리는 응당 중시해야한다.

개인의 인식이므로 타당하지 않은 곳이 있으면 삼가 동수들이 바로 잡아주기를 바랍니다.

발표시간 : 2003년 12월 28일
문장분류 : 과학에 대한 나의 견해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3/12/28/634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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