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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기 위한 여행

글 / 멍화

[명혜망] 어린 수련생들과 그들의 자전거를 실은 밴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박해를 종식하고 중국에서 박해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토론토와 몬트리올에서 온 어린 수련생들의 자전거 여행이 4일간 진행되어왔다. 그들이 멀리 달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날 동안에 지정된 거리를 여행한 다음 우리는 여전히 매일 그들을 차에 태워 날랐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아직 실제로 시작도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 그들이 국경을 넘어가려고 하고 있고 짧은 기간이지만 토론토와 몬트리올에서 온 수련생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그들은 정법시기의 어린 수련생들 중에 있다. 정법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무엇일까? 어떻게 그들이 이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그들의 사명은 무엇인가? 이번에, 어린이들은 진정으로 여행을 그들의 마음에 주입시키고 부모님들과 다른 성인 수련생들의 그늘 밑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과거에, 어른들은 장난기 많고 순진한 어린 수련생들을 다만 어린이들로 취급했었다. 그들은 정말로 그들이 한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되돌아보면, 단지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일을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법공부 후 그들이 얼마만큼을 이해하는가? 법은 “眞-善-忍”의 원리이다. 그것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무엇인가? 한 어린 수련생이 그의 아버지와 가게를 갔다. 그는 아버지가 우연히 선반 위에 있던 상품을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그것이 더러워진 것을 보았다. “아빠, 이걸로 사요,” 그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러워진 상품을 사게 할 수는 없어요.”

한 소녀는 몇 시간 동안 그녀의 부모와 중국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 기간에 그녀는 발정념을 계속했다. 왜? 그녀는 중국 사람들이 파룬궁에 대한 진상을 알기 원했고 장에 의해 기만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법륜대법 심득교류회에서 그녀의 경험을 교류했을 때, 많은 성인 수련생들이 깊이 감동을 받았다.

한 어린 수련생은, 그의 어머니가 부르는 것을 듣고, 즉시 컴퓨터로 달려갔다. 사부님의 새로운 경문 “더는 참을 수 없다”가 막 발표되었다. 장난 좋아하는 어린이가 사부님의 경문을 읽는 동안 화면 앞에서 바로 눈물을 터뜨렸다.

사부님께서는 《”더는 참을 수 없다(忍無可忍)” 정진요지 II》에서 말씀하셨다,

“참는다(忍)는 연약한 것이 아니고, 거스르는 것을 그저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것이 더욱 아니다. 대법제자의 참음은 고상한 것이다. 이는 생명이 위대하고 견고하여 파괴되지 않는 금강부동(金剛不動)의 표현이며, 이는 진리를 견지하기 위한 관용(寬容)이고, 이는 아직도 인간성이 있고 아직도 정념(正念)이 있는 생명에 대한 자비와 구원이다. 참음이란 이미 완전히 인간성이 없고 정념이 없는 그런 사악한 생명의 무절제한 악행에 대한 무제한의 방임(縱容)이 절대 아니다. 참음이란 진리를 위하여 일체를 버릴 수 있지만, 참음이란 이미 인간성이 없고 정념이 없는 사악한 생명이 중생과 대법의 부동한 층차에서의 존재를 극악무도하게 패괴(敗壞)하는 것을 관용(寬容)하는 것이 아니고, 살인방화에 대한 무시가 더욱 아니다. 眞善忍은 법이다! 이는 우주대법이 부동한 층차에서의 체현이지, 절대로 사람이 인정하는 사람의 무슨 사상과 속인 생활의 준칙이 아니다. 만약 사악이 이미 구원할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하였다면, 가히 부동한 층차의 각종 방식을 취하여 제지시키고 산제(?除)해 버릴 수 있다.”

그렇게 오래되었다. 수련생들 모두가 이를 기다리고 있다. 어린 수련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법이 우주를 바르게 하는”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그들은 국경을 넘는 그들의 여정을 내디뎠다.

자전거 여행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이 1,000km 이상을 달린 첫 번째 단체도 아니다. 그들의 자전거는 새것이며, 그들은 헬멧을 쓰고 자전거 탈 때 입는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대부분이 워키-토키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어린이는 휴대용 개인 컴퓨터를 가지기까지 했다. 어른들은 보조 팀을 형성하고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여러 대의 차를 운전한다. 거기에 더해, 그들은 노선을 따라가며 수련생들에게서 도움을 받는다.

그러면, 그들이 자전거바퀴를 돌리는 의미는 무엇인가?

학교에서, 그들의 학우 중 많은 아이들은 그들의 은행구좌에 몇 백 불 또는 몇 천 불을 가지고 있다고 뽐낸다. 하지만, 어린 수련생들은 그들이 저금한 돈을 전부 진상하는데 내놓는다.

다른 아이들은 먹고, 마시고, 놀고 있다. 그리고 수영장에서, 해변에서, 또는 디즈니랜드에서 즐기거나 인터넷의 가상세계에서 헤매고 있다. 성인들까지도 유혹으로 충만한 세상에서 황홀해하고 매혹되어 있다.

그런데 이 어린아이들은 햇볕 아래에서 페달을 밟으며, 산길과 폭우 속에서 1,000km가 넘는, 베이징에서 상하이에 가는 만큼의 먼 거리를 여행하고 있다.

오늘 날 세계의 어린이들은 어린 나이에 그들의 순진성을 잃는다. 어린 수련생들, 수련하고 있는 소년 소녀는 다르다. 그들은 법륜대법에 대한 진상을 매체에 이야기한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법륜대법 연공을 시범해 보여준다. 누군가가 그들의 손에서 진상자료를 받아갈 때마다, 그들은 아주 행복해한다. 건강, 정직, 친절, 그리고 자비심이 그들의 아름다운 젊은 미소 속에 용해되어있다.

어른들은 “인간은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화제에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이것은 그처럼 현실적이지만 무거운 화제다. 하지만, 어린 수련생들은 이미 거대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 사이의 관계를 배웠다. “眞-善-忍”의 빛은 아주 새롭고 경이로운 미래를 비추고 있다. 수련생에게 삶의 의미는 단지 이상적이거나 믿음이 아니라, 현실이다.

하지만, 어린이는 어린이다. 그들은 아직도 어린아이들처럼 울고, 웃고, 논다. 때로는 낑낑거리고 게으름을 피운다. 그러나 그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사부님이 바로 그들 옆에 계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모두 더더욱 잘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미래의 무엇을 위해 떠나고 있는가?

몇 초 동안, 그들이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이 모든 생각들이 내 마음을 스쳐갔고, 눈물이 시야를 흐리게 했다. 나는 무엇인가 수련의 뜻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즉,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층차로 돌아가려는 여정을 내디딘 것이다.

문장발표: 2004년 7월 23일
문장완성: 2004년 7월 22일
문장분류: [수련생관점]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7/5/78684.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7/23/505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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