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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참뜻을 깨달은 남호주 파룬궁수련생, 새해에 사부님께 감사드리다 (사진)

[밍후이왕] 2019년 새해가 다가오는 시기, 남호주 애들레이드의 파룬궁수련생 일부는 애들레이드 중심의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 파룬따파(法輪大法) 창시인 리훙쯔(李洪志)대사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단체로 공법을 시범 보였다. 많은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관람했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 후 일부 수련생은 차이나타운의 진상점에서 전시판을 진열하고 진상을 알렸다. 수련생들은 수련경험을 돌이켜 보면서 심신의 거대한 변화와 파룬따파 사부님에 대한 감격을 공유했다.

'图1:南澳阿德莱德部份法轮功学员在市中心的维多利亚广场向师尊恭祝新年快乐!'
남호주 애들레이드 파룬궁수련생 일부가 시내 빅토리아 광장에서 사존께 새해 인사를 드리다.

레스토랑 사장, 인생의 답안을 찾아 대법에 감사드리다

'图2:经营餐馆四十馀年至今仍掌大厨的张必光说:“修炼至今,70岁的人,体力上好像比40岁时还有劲头。”'
레스토랑을 40여 년간 운영했지만 지금도 수석 셰프인 장비광(張必光) 사장은 말했다. “지금까지 수련하여 70이 됐지만 체력은 40세 때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장 사장은 아시아레스토랑을 운영한지 40년이 넘었다. 칠순이 넘은 그는 매일 아침 5시 전에 일어나고 저녁 10시 반 후에야 마감을 하며 주 7일을 영업한다. 수석 셰프로서 그는 혼자서 화덕을 몇 개나 보고 가게 주인으로서 고객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는다. 무엇이 그에게 이처럼 가중한 셰프 일과 레스토랑 운영을 가뿐하게 감당할 수 있게 하는가?

장 사장은 남호주에서 가장 일찍이 파룬궁을 수련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십여 년 간 파룬궁을 수련한 소감을 말하면서 그는 매우 감격했다. “어렸을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5, 6살 때부터 아침 4시면 일어나서 고무나무에 칼금을 내야했지요. 당시 나의 신체는 매우 약했는데, 자주 어지럼증이 났어도 일어나서 일을 해야 했어요. 저승 문 앞까지 갔다가 온 적도 두 번 있어요.” 그는 호주에서 공부하는 기간에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용주의 좋은 평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추천을 받아 아시아레스토랑을 인수할 수 있었고 성공적으로 오늘까지 운영해왔다. 사업은 순조로웠지만 가정생활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부부 사이에 실랑이가 계속됐다. 장 사장은 말했다. “그때 나는 어렸을 때처럼 자주 하늘을 향해 물었지요. 인생은 왜 이렇게 즐겁지 않은가. 고생스레 일해서 돈은 모자람이 없지만 인생의 의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1999년 초에 아내의 한 친구가 싱가포르에서 장 사장의 가족을 보러 왔고 그에게 파룬궁을 소개했다. “당시 나는 별로 중시하지 않았고 다만 예의상 그녀의 말을 들었을 뿐이었어요. 후에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발생했지요. 2000년 초에 친구가 다시 방문했기에 공산당이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박해하는지 물었어요. 그녀는 너무 많이 말해 주지는 않고 나에게 ‘전법륜(轉法輪)’을 읽으라고 했어요.” 이번에 장 사장은 진지하게 읽었고 즐겁게 발견할 수 있었다. 책 속에 인생과 신앙에 관한 모든 문제의 답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내용 속에는 그 당시 아직 알 수 없는 곳이 있었지만 일주일간 고민하고 대법을 수련할 결심을 내렸다. 그리고 애들레이드 최초의 엘더 공원의 연공장에 가입했다.

“나는 매일 법공부하기를 그렇게 갈망했어요. 오전에 식재료를 준비할 때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점심 휴식 때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하루에 6시간 밖에 안 자도 원기 왕성하고 매일이 즐거웠고 힘이 넘쳤지요. 건강도 즉시 개선됐습니다. 나는 꽃가루알레르기를 앓은 지 몇 년이 됐는데 어떤 약도 소용이 없었어요. 심각할 때는 부득불 콧구멍에 냅킨을 두껍게 틀어막고 요리를 했는데 매우 괴로웠어요. 50여세 때는 이미 정수리가 벗겨졌어요. 신기한 것은 연공한지 3개월 후 정수리에 검은 머리카락이 올라오기 시작한 거지요. 6개월 후 꽃가루알레르기 증세가 사라졌고 오랫동안 주방 일을 하면서 팔뚝에 가득했던 데인 흔적이 천천히 사라졌어요. 거의 신체 하나를 새로 만든 수준이고 전신에 에너지가 충만했습니다. 생활이 이렇듯 홀가분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일상생활 중에서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수련했다. 그의 변화를 보고 장 사장의 아내와 주변의 일부 친구들도 전후로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왔다.

2001년부터 장비광 사장은 굿우드(Goodwood) 지역센터에 연공장을 설립하고 일요일 아침마다 가서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그리고 지역에 개방하고 무료로 공법을 가르쳤으며 18년을 견지했다.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파룬따파가 개시(開示)한 우주의 비밀, 자비로운 불법(佛法)의 신성함 및 대법제자가 짊어진 책임으로 인해 장 사장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수승함을 느꼈고 금생에 법을 얻은 영광을 깊이 느꼈다. 그는 말했다. “지금까지 수련하여 70이 됐지만 체력은 40세 때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물론 더욱 감격스러운 것은 실제 수련 중에서 인생의 의의와 진리 및 더욱 많은 것들을 찾고 완전히 깨달은 것입니다.”

‘억만 년의 기연’을 소중히 하다

'图3:每到周末,赵君都会到中国城讲真相,让更多的世人,特别是中国人明白法轮大法好。'
주말이 되면 자오쥔(趙君)은 차이나타운에 가서 진상을 알려 더욱 많은 세인에게, 특히 중국인에게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게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자오쥔은 2009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녀는 말했다. “어떤 때는 생각합니다. 만약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 생각하면 정말 무서워요.” 수련하기 전에 자오쥔은 승부욕이 강하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면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성격에 돈을 많이 벌 생각만 했다. 자주 밤샘을 하기에 매우 고달프고 피곤했으며 아이도 따라서 고생스러웠다. “저의 부모님은 1995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했습니다. 그들의 변화를 보고 저도 ‘전법륜’을 읽었는데 당시 책 속에 쓴 것은 모두 진짜라고 믿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돈 벌기에 바빠서 퇴직한 후에 다시 배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해외로 나왔고, 2009년 중국의 부모님 댁에 설 쇠러 갔다가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성심껏 염해 눈에 들어간 폭죽 부스러기가 제거된 신기한 일을 경험했다. 그녀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를 알게 됐다. 법을 얻어 수련에 들어올 때가 된 것이다. 그녀는 회상했다. “제가 다시 ‘전법륜’을 읽을 때에야 알게 됐습니다. 세상에! 저는 하마터면 억만 년이나 기다린 기연을 놓칠 뻔 했습니다.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운이 좋습니까!” 당시 중국 내의 박해는 매우 심각했다. 그녀는 아버지께서 만든 대법책 ‘정진요지’를 가지고, 어머니의 신신당부를 듣고 호주로 돌아왔다.

“수련한 후 나의 인생관은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사람을 대하고 일처리를 했으며 모순과 어려움에 부딪히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고 제때에 자신을 조정했습니다. 업무 중에 사장님과 동료들과 잘 지내고 그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아름다움을 알게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대륙의 박해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주말이 되면 자오쥔은 빅토리아 광장에 가서 단체 연공에 참가하고 차이나타운에서 진상을 알려 더욱 많은 세인이, 특히 중국인이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게 했다.

오늘 자오쥔은 감사한 마음으로 사부님께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삼가 축원했다. 그리고 더욱 정진하여 한 대법제자로서의 역사적 사명을 잘 완성하겠다고 했다.

청년 수련생의 감사

장카이시(張凱西)는 한 수련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12살 때 부모님을 따라 법을 얻어 수련했다. “수련하기 전에 부모님의 건강은 매우 안 좋아 자주 약을 복용했습니다. 어린 저이지만 늘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을 잃을까봐 무서웠습니다. 파룬따파를 얻은 후 짧디 짧은 몇 개월 만에 부모님의 여러 가지 질병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장기간 집에 가득 찼던 여러 가지 한약 냄새도 사라졌으며 가정에 즐거움과 화목이 가득 찼습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한 후, 특히 어머니가 박해를 받은 후 카이시는 점차 수련을 느슨히 했다. 호주에 유학 온 후 해외 대법제자와 함께 법공부하고 수련을 한 후에야 다시 정진했다. 지금 수련의 길에서 이미 스무 해를 보냈다.

“어른이 됐을 때 스스로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저의 가족이 수련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수련의 길에서 줄곧 견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 답은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진선인은 이미 나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카이시는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승부욕이 강한 아이였으며 여러 방면에서 늘 1등을 다투곤 했다고 말했다. “법을 얻은 후 저는 실과 득의 관계를 알게 됐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의 법리에 따라할 수 있게 됐으며 선으로 남을 대해, 처음 내심으로부터 평화로움을 느꼈습니다.”

직장을 다닌 후 카이시는 늘 수련인은 어디에서나 모두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착실하게 업무를 잘해 이사회의 일치된 호평을 받았다. 업무 중 동료가 모르거나 잘못하면 그녀는 인내심과 너그러움으로 대했다. 동료들도 그녀와 함께 하기 좋아했다. “그들은 자주 제가 현대사회의 젊은이들과 다르며 일을 처리함에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할 줄 안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파룬따파의 공입니다. 파룬따파는 제가 이 혼탁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마음을 수련하고 선을 지향하며 내심의 순수함을 보존할 수 있게 했습니다.”

마지막에 카이시는 말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하셨습니다. 많고 많은 감사의 말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반드시 더욱 정진하여 자신의 서약을 완성하고, 사부님께서 덜 심려하고 좀 더 기뻐하며 안심이 되게 해드리겠습니다.”

원문발표: 2018년 12월 31일
문장분류: 해외소식>리훙쯔 사부님에 대한 문안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31/379774.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9/1/2/1744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