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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대학생, 홍콩에서 진상 알리기 (3)

[밍후이왕] (위 문장에 이어) 국립 기남 국제대학 학생 위이청(余以澄)은 어려서부터 신체가 허약하였으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장염을 앓기 시작하였다.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없어 죽과 같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병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고 매달 고정적으로 중의(한의사)를 찾아 약을 복용하는 것이 일상화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동창의 추천으로 그들 오누이를 데리고 셋이서 함께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병이 아주 빠르게 치료도 없이 나았다.

파룬따파의 좋은 점을 전 학급이 함께 나누다

图1. 暨南国际大学学生余以澄(前一)在清华大学校园,和清大“法轮大法社”的同修一起炼功。

국립 기남 국제대학 학생 위이청(앞 첫 번째)이 청화대에서 ‘청대 파룬따파 단체’의 수련생들과 함께 연공하고 있다.

图2. 余以澄(前一)参加二零一四年七月举办的青年学子交流营,图为当时在中国医药大学校园炼功的照片。

위이청(앞 첫 번째)이 2014년 7월에 열린 청년학생 교류캠프에 참가하다. 사진은 그 때 중국 의약대학에서 연공하는 장면

위이청은 부끄러움을 타는 성격이어서 주도적으로 남과 접촉하지 못한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상냥한 어투로 학우와 말을 나누었으며 같은 또래끼리의 갈등도 별로 없었다. “나의 주변의 학우는 모두 아주 훌륭한 학생입니다.” 그의 대인 관계는 수련 전보다 훨씬 넓어졌고,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주변의 또래들은 모두 품행이 우수한 청년이어서 사람들은 모두 ‘근주자적(近朱者赤-붉은 것을 가까이 하면 붉게 된다)’이라고 말했다. 위이청은 이를 대법의 도움을 받은 체현이라고 생각했다.

위이청은 날마다 연공하고 법 공부하는 것을 견지했다. 나이가 들어가고 법 공부가 깊어감에 따라 고등학교 때부터 학우와 선생님에게 파룬궁이 중국 대륙에서 당하는 무고한 박해를 이야기했는데 어떤 학우는 주도적으로 그를 찾아 진상을 이해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와서 위이청에게는 걱정이 생겼다. “졸업하면 제각기 흩어질 텐데 반에는 아직도 파룬궁 진상을 모르는 학우가 있으니 어떡하나?” 학우들이 모두 진상을 알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

어느 날, 공민수업과(公民課-사회과) 선생님이 위이청을 찾아 파룬궁을 토론하면서 그에게 반 학생 모두에게 파룬궁을 수련한 소감을 나누라고 했다. 그는 연단에서 당당하고 차분하게 진상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후에 회고해 보니 그 때는 일심으로 진상을 알리느라 연단에서 전체 학급을 마주하고도 부끄러움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 “사부님(리훙쯔)께서 나의 염원을 이루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진선인(真善忍)을 행하니 마음이 안정되고 공부가 마음에 와 닿았다

함께 진선인을 수련하는 어머니 역시 아이의 품성을 중시하면서 다른 많은 가장들처럼 아이의 시험점수만을 묻지 않았다. 위이청은 말한다. “대법 수련을 하니 나의 공부에 도움이 무척 큽니다.” 고등학교 시험을 준비할 때 그에게는 깊은 체험이 있었다. “시간을 잘 안배하고 점수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법 공부와 연공을 게을리 하지 않으니 심정이 아주 안정되고 머리가 맑아지며, 학습에 집중할 수 있어 자연히 좋은 성적을 따내게 되더라고요.” 이런 인식과 성실한 진선인의 실행은 그를 순탄하게 고등학교에 합격하게 했고 3년 후에는 또 기남 대학에 입학하게 했다. 집을 떠난 대학생활 중에서 학우와 선배와 서로 접촉을 하면서도 시시때때로 자신에게 다채로운 여러 활동에 미혹당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일마다 진선인의 표준으로 대조하며 자신의 수련 상태를 더욱 잘 파악했다.

분초를 다투어 진상을 알리다

图3. 余以澄首次站在香港街头派发法轮功真相资料、向民众讲真相,觉得很有意义,也感受到“分秒必争”讲真相的紧迫。

위이청은 처음 홍콩 거리에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면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이 아주 의의 있는 일임을 깨달았다. ‘분초를 다투어’ 진상을 알려야 하는 긴박함을 느꼈다.

2015년, 성대(成大) 연구생 가오쉰유가 제기한 홍콩 진상 알리기 여행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위이청은 이는 자신에 대해서는 도전이고 또한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 가기로 결정했다! 타향에서 여러 명소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려 더욱 많은 세인들이 진상을 알게 할 것이다. 그의 염원은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았다. 일정 배치에 따라 그는 두 번째 주일에 홍콩에 도착하여 진상 알리기 여행 행렬에 투입됐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날마다 자료와 전시판을 메고 다녔지만 조금도 고생을 느끼지 못했고 처음으로 ‘분초를 다투어’진상을 알려야 하는 긴박함을 체험했다.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홍콩행은 오직 대륙 관광객이 진상을 알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홍콩 명소에는 관광객이 그치지 않았다. 대륙 관광객은 전망대에서 풍경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며 또 전시판에 눈이 이끌려 진상을 보기도 했다. 위이청은 말한다. “처음에 나는 대륙 관광객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하여 몹시 걱정스러웠다. 나를 괴상하다고 하지 않을지? 비난하지나 않을지?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니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대륙 관광객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이 진상을 놓치고 헛걸음질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두려운 마음과 고려하는 집착을 내려놓고 위이청은 그들이 진상을 차분히 다 보고 떠나려할 때를 기다렸다가 얼른 다가가 말문을 열면서 자료를 건네주고 진상을 알린다. 대다수 대륙 관광객은 모두 잘 들어주고 심지어는 더 많이 말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한 번은 짧은 시간에 두 남자를 가명으로 소선대에서 탈퇴시키기도 했다. 위이청은 격려를 받았고, 또한 대륙 관광객은 진상을 알고자 신경 쓰며, 자신의 걱정과 고려는 모두 쓸 데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타이완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 위이청, 가오쉰유, 저우팅웨이 세 사람은 이른 아침 빅토리아에서 사진을 찍다가 대륙 포산과 선전에서 온 약 25~26세의 세 명의 청년을 만났다. 그들이 호기심에 차서 물어보자 위이청 등 세 사람은 파룬궁에 관한 영화를 찍는다고 알려 주었고 일대일로 진상을 알려 주었으며 그 중 한 명은 가명으로 소선대에서 탈퇴했다. 대륙 청년이 사진을 함께 찍자고 청하기에 함께 찍었고 또 아침 식사도 함께 했다. 식탁에서 그들은 양안 시대의 생활환경에서부터 피차의 상황을 얘기하였고 그 사이에 진상을 더 많이 듣게 됐다. 세 대륙 청년은 모두 컴퓨터 봉쇄를 돌파하는 소프트웨어가 적힌 카드를 받았고, 또 연락 방식을 남겨 주면서 더욱 많은 소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여름 방학을 이용한 이번 홍콩 진상 알리기는 위이청에게는 아주 의의가 있었다. 자신에게 아주 큰 돌파와 경험을 갖게 했고, 수련에 있어서도 아주 훌륭한 격려와 채찍이었다. 그는 말했다. “기회가 있으면 나는 또 다시 가겠다!”

후기

타이완은 중국 대륙을 제외하고 파룬궁 수련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며,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청년학생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많은 대학과 전문학교에 ‘파룬따파 단체’ 학생동아리가 결성돼 ‘진선인’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파룬궁은 ‘진선인’을 근본 지침으로 하는 불가(佛家)의 상승(上乘) 수련대법으로서, 억만 인의 수련 실천을 통해 검증되었는바, 사회 안정, 사람들의 신체 소질과 도덕 수준 제고에 가늠할 수 없는 긍정적 작용을 일으켰다.

1999년 7월 20일, 중국 공산당 장쩌민 일당은 파룬궁 단체에 대한 말살적인 박해를 발동하고 동시에 모든 매체를 동원하여 파룬궁을 비방하였다. 날조하고 국민을 선동하여 파룬궁을 적대시하게 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파룬궁 박해 속에 빠져들게(참여하게) 하려고 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이 때문에 반 박해활동을 시작했으며 세인에게 진상을 밝히는 여정에 오르게 된 것이다.

본문 3편은 “타이완 학생 홍콩에서의 진상 알리기”중에 4명의 대학생, 연구생의 이야기를 엮은 것인데 이는 다만 많고 많은 청년학생 중의 몇몇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끝.

원문발표: 2016년 10월 19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0/19/3364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