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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즈원의 출옥 후 일부 상황 자술

[밍후이왕] 전 ‘파룬따파(法輪大法) 연구회’ 책임자 중 한 명인 왕즈원(王治文, 68)은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에 의해 개시된 광적인 파룬궁 박해에서 첫 번째로 체포된 파룬궁수련생 중 한 명이다. 7월 20일 당일 새벽, 집에서 불법 체포됐고 이후 불법 판결 16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갓 시작한 18살의 외동딸 왕샤오단(王曉丹)은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며 눈물이 마를 정도로 울었다.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 동안 왕샤오단은 17년간 아버지의 구명 운동을 위해 백방으로 뛰면서 각계 정의로운 인사들에게 관심을 촉구했다. 2014년 10월 왕즈원은 감옥에서 석방된 이후에도 2년 가까이 중국공산당 공안으로부터 24시간 미행과 감시를 당했고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다.

최근 딸 왕샤오단은 중국에 돌아가 아버지의 미국 이민을 위한 일체 수속을 밟았다. 그녀는 미국 공항에 도착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저는 여권도 있고 이민절차를 모두 밟았기에 반드시 아버지를 모시고 나올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했고 아주 기뻤습니다. 그러나 출국수속을 할 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들은 아버지의 여권을 잘라버렸어요. 출입국 공무원은 아버지 여권은 이미 공안내부에서 무효 처리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왕샤오단은 또 다시 아버지와 소식이 끊어졌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실신한 듯 먼 곳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되뇌었다. “아버지는 어디로 가시는지 알려주지 않았어. 난 또 아버지를 찾을 수 없게 됐어.”

아래는 8월 7일 왕즈원 본인이 직접 쓴 출옥 이후의 일부 상황이다.

'王晓丹(右)18岁离开父亲(中),18年后的2016年才与父亲在中国重逢,可是幸福是那么短暂。左一为王晓丹的丈夫杰夫。(王晓丹提供)'

18세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왕샤오단(오른쪽)은 18년 후 중국에서 어렵사리 아버지(중간)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나 부녀상봉의 행복한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사진: 왕샤오단 제공)

나는 왕즈원이다. 아래에 출옥한 이후의 일부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서술하겠다.

나는 2014년 10월 18일, 감옥에서 석방된 후 공안에 의해 다시 창핑(昌平)에 있는 세뇌반[베이징시 시청(西城)구 법제학습반]에 납치됐고 2014년 10월 25일에야 집에 돌아왔다.

집 주변 환경은 출입로에 4개의 적외선 감시카메라가 설치되는 등 변경됐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내가 사는 아파트 맞은 편 펌프실이 그들의 감시거점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국가안전계통의 배치에 따라 매일 두 명의 인원이 당직을 서며 감시했다. 그들은 수시로 내가 누구와 접촉하는지 알 수 있었으며 이런 상황에 대해 주위의 이웃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밖에 지역구 주민위원회와 물업(物業)관리협회에서도 나를 ‘사회질서 안정 유지’를 위한 중점 관리 대상으로 분류해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대로 나에 대한 감시공작을 다시 배치했다.

물론 그들의 감시통제 역시 전화 도청, 나에 대한 미행 등 형식으로 표현되었는데 그들이 인정한 일부 ‘민감한 날’에 모두 관련배치가 뒤따랐다. 이러한 것들은 내 생활에 대해 소란을 조성했을 뿐더러 생활환경 측면에서도 인위적으로 주변 시민들과 일부 간격이 생기게 했다.

자유를 회복한 후 나는 딸 왕샤오단과 한 자리에 모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갖고 있었다. 특수한 이유 때문에 오직 내가 여권신청을 한 후 미국을 가야만 이 꿈이 실현될 수 있었다. 내 이런 생각에 대해 경찰들도 잘 알고 있었다.

2014년 11월, 나는 베이징 시청(西城)구 출입국관리처에 가서 여권신청을 했으나 접수해 주지 않았다. 당시 그들은 접수를 거절하는 이유를 구두로 설명하지 않으면서 다만 권리를 박탈한 기간에는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이 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세도 일부 변화가 생겼다. 2016년 1월 인터넷을 통해 신청했고 아울러 정식으로 중국여권이 발급됐다. 이때부터 나는 미국에 가서 딸 왕샤오단과 함께 하기 위한 관련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 과정 중 몇 가지 절차에서 공안의 교란이 발생했다.

1. 2016년 2월과 3월, 시청(西城)구 웨탄(月壇) 파출소의 리야쥔(李亞軍), 왕퉁리(王同利) 등 두 명의 경찰이 집에 와 여권에 관한 일을 물으며 자신들에게 여권을 반납할 것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이 보관할 것이니 필요할 경우 요구하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거절했다. 리야쥔은 당시 전화로 연락을 취하더니 그의 상사가 파출소에서 나와 대화를 원한다고 했다. 나는 당시 내 생각을 전하며 현재 내 대답이 바로 나 본인의 태도이기에 당신은 상부에 보고할 수 있고 따라서 나는 파출소에 갈 필요가 없으며 만약 대화를 원한다면 내 집에서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나는 정식 절차에 따라 여권을 발급받았고 과거에 발급해주지 않던 것을 현재 발급받았는바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합법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2. 다시 나에게 여권 반납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그들은 내게 여권 반납을 하지 않아 “이미 당신의 여권을 무효화 처리했다”고 말했다.

3. 2016년 7월, 공안의 배치에 의한 감시원들의 감시가 강화됐다. 먼 곳에서 가까운 곳에 이르기까지 곁을 떠나지 않으며 매일 두 명이 주야를 가리지 않고 당직을 서가며 감시했다. 내가 채소를 사거나 산책을 나갈 때에도 곁에 붙어 있었고 내가 이발하러 갈 때에도 그들 역시 이발소 안에 함께 들어와 있었으며, 내가 일보러 나갈 때에도 그들은 한발자국도 곁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나에게 다가와 “오늘 어디로 갈 건가요?”라고 말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4. 7월 31일(일요일) 오전 10시 경, 네 명의 사람이 왔는데 이들은 각각 베이징 공안국 시청(西城)구 지국의 류(劉)씨 경찰, 웨탄(月壇) 파출소의 부소장과 왕퉁리 경찰 및 순(孫)씨 성을 가진 경찰이었다. 류씨 경찰이 말했다. “당신이 출국하고자 하나 규정에 근거해 권리가 박탈된 사람은 출국할 수 없다. 이후 당신이 베이징을 떠나고자 한다면 파출소에 신청해야 한다.” 당시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신들이 감시 통제하는 것은 당신들의 일이고, 나는 당신들의 논조를 인정할 수 없다. 처음에 발급할 수 없었던 여권이 정식으로 발급되었다. 그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던 지에 대해 당신들은 마땅히 당신들 상급에 물어야 하며 전적으로 합법적인 것이다. 권리박탈의 논조에 관해서는 당신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규정이 없으며 인터넷상에도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정말로 무슨 규정이 있다면 당신들이 관련 문건을 제공해 달라.”

류씨 경찰은 자신들이 나를 찾아와 소통을 진행하며 일부 사실을 설명하는 이것은 이미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최저선’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이야기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바오자(包夾-감옥 교도관 지시로 수감자로 이뤄진 밀착 감시원) 방식으로 나에 대해 감시를 진행하며 사람과 말을 하는 것조차 사진을 촬영하는 등 나의 생활을 엄중하게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그들은 상부에 이를 반영할 수 있다고 했다.

5. 7월 31일 밤, 나는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비자 신청을 위해 광저우행 여정을 시작했다. 당시 세 명이 당직을 서며 나를 미행했다.

광저우 신체검사센터에서 국가안전계통 공안의 감시 밑에서 미행을 받았다. 광저우 주재 미국영사관에서 출국비자를 신청한 이후 거처가 감시를 받았다. 8월 5일 저녁 9시부터 11시 사이에 현지 파출소와 기타 인원 20여 명이 셋방 입구에 와서 집주인에게 세를 준 집안에 들어와서 검사하라고 했다. 실내에서 10여 명이 불법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 구실이었다. 이후에 나와 함께 있던 사람의 엄숙한 거절로 인해 사태가 진일보 더 확대되지 않았다.

6. 8월 6일 오전 나는 미국행을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다. 여권, 미국 비자를 포함해 합법적인 모든 문건과 자료를 지니고 공항 출입국에 가서 출국 절차를 밟을 때 출입국 인원은 여권심사를 진행한 후 말했다. “당신은 여권을 분실한 적이 있는가? 인터넷상에서 무효 처리되었다”고 말하더니 또 “무효처리 된 이유가 명시되어 있지 않고 공안내부에서 무효처리된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미국에 가서 딸 왕샤오단과 함께 모이기 위한 비자신청 과정도 길고도 긴 길이었다. 자료를 준비해야 할뿐더러 경제면에서도 투자가 필요했다. 이밖에 가족들의 기대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있었으며 관련기관의 지지가 있었다. 그러나 공안부의 단독적인 행태로 인해 결국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나는 단지 이 과정을 간단히 서술할 뿐이다. 공안과 국가안전계통의 일부 사람들은 가족과 한자리에 모이기 위한 아주 일반적인 이민 건을 위해 국가기구의 체계적인 역량을 동원했는바 취한 수단은 오히려 떳떳하지 못하며 사람의 공포심을 자아냈다.

이에 나는 다시 한번 성명하는 바이다. 미국에 가서 딸과 한자리에 모여 함께 생활하는 것이 내 소원이다. 내가 밟은 전반 과정은 절차에 부합되며 취득한 여권은 합법적인 것이다. 이는 중국사회에서 발생한 실제적인 일로써 여러분들이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 바란다.

2016년 8월 7일

왕즈원

문장발표: 2016년 8월 13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13/3329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