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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中영사관 앞에서 왕즈원의 미국행을 저지한 中공산당에 항의

[밍후이왕](밍후이 왕뤄윈 기자 샌프란시스코 보도) 2016년 8월 10일 정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200명 파룬궁 수련생들은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영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갖고 가족과 함께 모이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던 파룬궁수련생 왕즈원(王治文, 68)의 출국을 저지한 중국공산당 장쩌민, 쩡칭훙 등 파룬궁박해 주범들의 행태를 비난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파룬궁수련생들이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영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갖고, 왕즈원의 미국행을 저지한 파룬궁박해 주범들의 행태를 비난했다.

왕즈원은 전 베이징 ‘파룬따파(法輪大法) 연구회’ 책임자 중 한 명이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개시했다. 7월 20일 당일 새벽, 왕즈원은 집에서 불법 체포됐고 이후 약 15년간 불법 수감됐다. 감금 기간 그는 갖은 고문 박해를 받았다. 구타로 쇄골 및 치아가 전부 부러졌고, 손톱 밑에 이쑤시개를 꽂아 넣는 고문을 당했으며, 7일 동안 밤낮으로 수면을 박탈당했고, 28kg에 달하는 수갑과 족쇄에 채워져 작은 독방에 감금돼 박해를 당하기도 했다. 감옥 교도관은 4인 1팀의 바오자(包夾-감옥 교도관 지시로 수감자로 이뤄진 밀착 감시원)를 배치해 교대로 왕즈원을 감시하게 하면서 장시간 그의 수면을 박탈했고 그가 눈을 감기만 해도 때려서 깨웠다.

2014년 10월 8일, 불법 감금됐던 왕즈원은 감옥에서 석방됐다. 하지만 베이징시 시청(西城)구 ‘610 사무실(파룬궁 전문 박해기구)’은 그를 집에 돌려보내지 않고 그대로 창핑(昌平)구 세뇌반으로 납치해 계속 박해를 가했다. 이후 국제적인 비난과 여론의 압력 하에서 10월 25일 왕즈원은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2년 가까이 매일 24시간 지속적으로 중국공산당이 파견한 스파이의 미행과 소란을 받아왔다.

최근 미국시민권자인 왕즈원의 딸 왕샤오단(王曉丹)은 아버지를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남편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공산당의 겹겹의 포위와 감시망을 뚫고 베이징에 가서 18년 만에 아버지와 어렵게 상봉했다. 이들 부부는 미행하는 중국공산당 스파이들을 뿌리치고 아버지를 위해 미국 비자 발급 등 미국이민을 위한 일체 출국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바로 이들이 8월 6일 출국을 위해 마지막으로 광저우 공항 출입국을 통과하던 도중 부친 왕즈원의 여권은 출입국 공무원에 의해 강제로 훼손됐고 일행은 핍박에 의해 결국 출국할 수 없게 됐다. 당시 출입국 공무원은 왕즈원의 여권은 중국공산당 공안 내부에 의해 이미 무효화된 상태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탈당센터 대표 전원뱌오(甄文彪)는 집회에서 이는 파룬궁 박해 주범인 중국공산당 장쩌민, 쩡칭훙 집단의 소행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중국대륙에서 장쩌민, 쩡칭훙 등을 따라 파룬궁 박해에 가담했던 고위관리들이 차례로 낙마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부정부패 이유로 낙마하고 있지만 그 배후의 실제적인 주요 원인은 파룬궁을 박해한 죄로 인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장쩌민은 이미 20여개 국가에서 ‘집단학살죄’, ‘고문죄’, ‘반인류죄’로 고소 및 기소를 당한 상태이며 전 세계 각지에서 장쩌민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한편 파룬궁을 박해한 장쩌민 일당은 이미 궁지에 빠져 막다른 길에 몰렸지만 최후의 발악을 하면서 파룬궁 박해 정책을 지속하려 시도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파룬궁수련생 대표 왕펑(王楓)은 항의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즉각 박해 참여를 중단함으로써 장쩌민, 쩡칭훙 등의 자들과 함께 순장되지 말 것을 중국공산당 각 기관 관리들에게 정중히 고한다. 동시에 우리는 왕즈원에게 새로이 여권을 발급해주어 그가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중국 현 정권에 강력히 요구한다. 우리는 또 각국 정부와 인권단체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보내 왕즈원이 하루빨리 박해에서 벗어나 미국에 와서 가족과 함께 모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

문장발표: 2016년 8월 11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11/3328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