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 기자 우쓰징 인터뷰 보도) 중국에서 ‘80년대 출생자’는 대부분 외동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왕자병·공주병’에 걸린 사람으로 지칭하게 되었다. 그런 젊은이들이 ‘진선인(眞善忍)’을 표준으로 하는 파룬궁(法輪功)을 만났을 때 어떻게 될 것인가? 2년 전 이탈리아로 유학 온 중국인 탕윈옌의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 그의 동향을 알아보고자한다.
‘80년대 출생자’ 여성이 질투심을 내려놓다
2016년 5월 11~15일에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파룬궁수련생들이 뉴욕에 집결하여 ‘세계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날’을 경축했다. 나는 UN광장의 중심에 위치한 공원 나무 그늘 아래에서우연히 이탈리아에서 온 탕윈옌을 만나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가 20여 년 간 파룬궁을 수련한 경력과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심리적 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나 응석받이로 자랐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자기중심적이라 질투심이 많았습니다. 다른 아이가 나보다 공부를 잘해도 질투했고, 심지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왔을 때 엄마가그 아이를 좀 잘 대해줘도 질투를 할 정도였습니다.” 탕윈옌이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은 화통하고 대범했으며, 눈빛은 참으로 순정해 보였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어릴때 질투를 심하게 부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2016년 5월 뉴욕 파룬따파경축의날 행사에 참가한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는 탕윈옌의 모습 탕윈옌은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파룬궁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바로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반년 전인 1998년 말이었다. 그의 온 가족 세 식구는 당시 중국의 수천만 파룬궁수련생들처럼 매일 아침 연공장에서 연공했고, 저녁이면 수련생 집에서 단체법학습을 하면서 평온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연공했습니다. 점차 크면서 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나의 질투심을 닦아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괴로우면 ‘질투심이 또 올라왔다’는 것을 알고 닦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질투심은 점차 적어져갔습니다.”
탕윈옌은 베이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파룬궁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바로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반년 전인 1998년 말이었다. 그의 온 가족 세 식구는 당시 중국의 수천만 파룬궁수련생들처럼 매일 아침 연공장에서 연공했고, 저녁이면 수련생 집에서 단체법학습을 하면서 평온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연공했습니다. 점차 크면서 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나의 질투심을 닦아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괴로우면 ‘질투심이 또 올라왔다’는 것을 알고 닦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질투심은 점차 적어져갔습니다.”
1999년 베이징 1만여 명의 청원[上訪]에 직접 참여하다
1999년 4월 25일 1만여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이 베이징 국가민원처리사무실로 가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진정을 제기했다. 당시 경찰관들이 수련생들을 인도해서 중남해 건물 밖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국내외에 이목을 집중시키게 한 ‘중난하이진정사건’이다. 그때 탕윈옌도 어머니와 함께 그 속에 서 있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탕윈옌은 진정내용과 그 의의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본 광경은 그녀의 기억에 깊이 남아 있었다. 일이 끝나고 돌아갈 때 모든 파룬궁수련생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쓰레기를 모두 수거해 갖고 갔기 때문에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깨끗하고 말끔했다.
박해가 시작됐을 때 초등학생도 잘잘못을 알았다
중난하이 진정사건이 있은 3개월 후인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전면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각급 언론매체들이 갑자기 온통 파룬궁을 모함하는 거짓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탕윈옌은 텔레비전에서 왜, 그런 방송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보도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말했다. “바로 그 믿음이 당시 참으로 간고한 나날 속에서 나를 견지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커서 왜,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했는지를 알게 됐으며, 내가 왜, 견지했고,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지를 알게 됐지요.”
‘천안문분신자살사건’의 진실을 중학생에게 알리다
그녀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도 환경은 호전되지 않았다. 중공은 2001년 설 명절기간에 ‘천안문분신자살 조작사건’을 꾸며내 파룬궁수련생을 모함했다. 탕윈옌은 당시 텔레비전방송의보도를 보고 머리에 아주 또렷한 일념이 일었는데, ‘내 주위에 있는 수련하는 사람들 –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오빠, 언니들은 전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이튿날 학교에 가서 같은 학년 애들에게 말했다. “어제 저녁 텔레비전을 보았지? 그건 모두 가짜야!” 탕윈옌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땐 나이가 어려 무서운 줄도 모르고 애들에게 거침없이 방송보도 내용이 가짜라고 말했던 것인데, 그 말을 들은 애들은 모두 겁을 먹고 도망을 갔고 나는 그들의 뒤를 쫓아가면서 ‘그건 다 가짜야!’라고 외쳤습니다.”
어머니가 세 번 불법적으로 잡혀갔는데, 가족의 두려움은 소식을 모르는 것이었다
탕윈옌의 어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세 번씩이나 중공에 납치돼 감금됐다. 첫 번째는 1년 반, 두 번째는 2년, 세 번째는 2년 반씩 감금당했다. 박해 초기 탕윈옌 어머니는 천안문에 가서 파룬궁의 억울함을 진정했다. 당시는 파룬궁수련생들이 경찰관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되면 대부분 실명을 밝혔기 때문에 경찰에서 명단을 작성하게 됐고, 그래서 중공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날이나 무슨 행사 또는 명절날만 되면 소위 ‘민감한 날’이라고 해서 그 명단에 수록된 사람들을 미리 납치해서 감금하거나 연금조치를 했다고 탕윈옌은 말했다. 어머니가 중공에 납치·감금된 얘기를 할 때 그녀의 표정은 긴장되고 엄숙했다. “한 번은 어머니가 집을 떠나 정처 없는 떠돌이생활을 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소식이 끊기면서 한동안 소식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소식을 알 수 없을 때가 가장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매일 생사를 몰라 걱정하던 차에 어머니가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의 과정을 가족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그 후 면회를가서야, 어머니가 천안문광장 부근 역 앞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납치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연공으로 지혜가 생겨 열등생이 우등생으로 되다
탕윈옌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한 채 거의 경찰로부터 소란을 당하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납치, 가택수색, 가족의 안전에 대한 근심걱정 등으로 시달림을 당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학업성취도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파룬궁이 그녀에게 지혜를 열어주어 열등생인 그녀를 우등생으로 변하게 했다고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의 내 학교성적은 매우 부진했습니다.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학습을 따라가지 못했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후부터 갑자기 지혜가 열려 공부를 할 줄 알게 되었고, 학업성취도가 높아져서 유명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다닐 때에 전문적으로 파룬궁박해를 하는 610사무실 사람이 학교로 탕윈옌을 찾아오기도 했고, 그럴 때면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그녀를 보호해줬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그녀가 공부를 매우 잘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가정이 화목하게 변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
어머니는 자주 중공에 납치됐다. 그러므로 탕윈옌은 아버지와 함께 늘 마음을 졸이며 살았다. 그런 일들은 탕윈옌이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 소녀시절 때 일어났으며, 그러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녀는 성년기로 들어섰다. 사고능력을 한창 성장시키는 그 시절에 겪었던그런 변고들이 그 여자아이에게는 심리적으로 어떤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을까?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그 여성의 얼굴은 평온했고 찬란했다. 지난 세월의 불우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탕윈옌은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늘 싸웠습니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들이 싸우면 언제나 침대 밑에 들어가 숨었는데, 부모님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됐으며, 나에게 새로운 가정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게 했습니다.부모들이 다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화목하고 안정된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입가에 엷은 미소가 흘렀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우리 집은 중공의 박해 때문에불안정했지만, 그래도 그때 수련의 아름다웠던 기억은 영원히 나의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로마에서 공부할 때 중국인에게서 받은 감동
탕윈옌은 2년 전 로마에서 유학하며 문화재복원전공을 공부했다. 그녀는 그곳의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파룬궁진상을 알렸다. 그 과정에서 그녀를 감동시킨 일이 있었다고 했다. 한 번은 로마에 거주하는 한 중국인이 현지 파룬궁보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보도원은 이탈리아인이였기 때문에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보도원이 “탕윈옌, 당신이 그 중국인과 통화를 해보세요”하고 부탁을 해서 통화를 하려고 했지만, 그 중국 사람이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조심스러운 맘이 들었다. 그런데 전화통화를 하자마자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 중국 젊은이는 그녀에게 사과부터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이전에 당신들, 파룬궁을 오랫동안 오해하며 당신들의 말을 믿지 않고, 중공이 말한 것이 맞다고 여겼습니다.” 그 젊은이는 중국에서 출국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인데, 호기심으로 사이트에 들어가 파룬궁진상을 보고 알게 되어 매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는 탕윈옌에게 말했다. “내가 (진상을)알고 난 후 얼마나 감개무량해했는지 압니까? 원래 중공이 말한 모든 것이 다 가짜였습니다! 국내에 있는내 가족들은 다 진상을 모르고 있습니다. 난 그들에게 알려주어야겠습니다!”
탕윈옌 역시 그 중국인의 말을 듣고 참으로 감개무량해했다. 그렇게 많은 해를 지나오면서 이제 그는 마침내 진상을 알게 됐으며, 또 자발적으로 파룬궁수련생에게 전화를 해서 사과를 했고, 또 파룬궁수련생을 도와 진상을 널리 알리겠다고 했는데, 이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겠는가? 탕윈옌은 작년에 한 수련생과 함께 로마의 차이나타운을 한 바퀴 돌면서 3퇴(당, 단, 대 탈퇴)를 시켰다. 그녀들은 가게마다 방문해서 진상을 알렸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모두 조용히 진상내용을 경청했다. 금방 이태리에 온 어떤 젊은이도 진상내용을 다 듣고 나서 바로 3퇴를 했다. “그건 정말 내심에서 우러나와 탈퇴한 것이다.”라고 탕윈옌은 말했다.
탕윈옌은 대법을 만난 지 거의 20여 년이 되었다. 동방에서 서방으로 왔지만 그녀는 태어나고 키워준 그 땅을 늘 그리워한다.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처럼 중국에서 나온 후다시 돌아가지 않았지만 그녀의 소원은 변하지 않았다. 바로 어느 날 정정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부모님과 함께 공원에서 연공하고,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 날이 멀지 않을 것이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문장발표 : 2016년 6월 17일
문장분류 : 해외소식>해외종합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16/6/17/330142.html